고추잠자리의 꿈
큰 꿈 가지고 태어나
곡우에서 한로까지 만나는 절기들
긴 잠 깨어나 짝 만나 새끼 낳고
찬이슬에 마감해야 하는 일생
나의 일생은 인간에게 몇 년일까 궁금해지는 한여름밤
긴 낮의 해와 짧은 밤의 달에게
바람은 무슨 의미를 주는가
그 바람에 의지하여 몸 닮은 해까지 가본다
날개는 투명하여 열을 통과시키는 천상의 옷
이카루스의 날개는 높이 날지 못하니
해까지 가다가 스러지더라도
튼튼한 이빨은 고추 키운 가난한 할머니 드리고
배 주름은 쌍영총 미인의 치마에 무늬 졌고
날개는 다가올 눈꽃 처녀에게 준다면
다음 생은 사람으로 몸 바꿀 희망 가지고
오늘은
고추 키운 흙으로 돌아가리
*이카루스 : 그리스 신화 속 인물. 새의 깃털과 밀랍으로 날개를 만들어 붙이고 새처럼 나는 것이 신기하여 하늘 높이 올라가지 말라는 아버지의 경고를 잊은 채 높이 날아올랐고, 결국 태양열에 날개를 붙인 밀랍이 녹아 에게해에 떨어져 죽었다.
첫 번째 시집<바람의 그림자. 2006. 12. 17 발행> 수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