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자작시

고추잠자리의 꿈

고추잠자리의 꿈

 

 

 

큰 꿈 가지고 태어나

곡우에서 한로까지 만나는 절기들

긴 잠 깨어나 짝 만나 새끼 낳고

찬이슬에 마감해야 하는 일생

나의 일생은 인간에게 몇 년일까 궁금해지는 한여름밤

 

긴 낮의 해와 짧은 밤의 달에게

바람은 무슨 의미를 주는가

그 바람에 의지하여 몸 닮은 해까지 가본다

 

날개는 투명하여 열을 통과시키는 천상의 옷

이카루스의 날개는 높이 날지 못하니

해까지 가다가 스러지더라도

 

튼튼한 이빨은 고추 키운 가난한 할머니 드리고

배 주름은 쌍영총 미인의 치마에 무늬 졌고

날개는 다가올 눈꽃 처녀에게 준다면

 

다음 생은 사람으로 몸 바꿀 희망 가지고

오늘은

고추 키운 흙으로 돌아가리

 

 

*이카루스 : 그리스 신화 속 인물. 새의 깃털과 밀랍으로 날개를 만들어 붙이고 새처럼 나는 것이 신기하여 하늘 높이 올라가지 말라는 아버지의 경고를 잊은 채 높이 날아올랐고, 결국 태양열에 날개를 붙인 밀랍이 녹아 에게해에 떨어져 죽었다.

 

첫 번째 시집<바람의 그림자. 2006. 12. 17 발행> 수록

'자작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월요일 아침 신문  (0) 2020.06.25
시인을 위하여  (0) 2020.06.24
오래된 거울  (0) 2020.06.22
시인의 섬  (0) 2020.06.19
시인의 책상  (0) 2020.06.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