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을 위하여
내게는 딱
시 쓸 만큼의 산과 술과 세월이 있다
자유를 닮은 건강은 덤
아침마다
스스로 자라는 부끄러움과 함께 가지 않아도 되는
여유와
시간의 자유 속에서
세상을 향해 외치지 않아도
시는
그대로 좋다
내 편견과 갈애를 미워하지 않아도
따뜻한 등이면 남고 넘치며
뼈를 깎지 않아도
피를 토하지 않아도
뒷눈으로 세상을 보지 않아도
튼튼한 몸으로 쓰면 된다
아직 얼굴을 내민 적도
세상으로 내려온 적도 없이
스스로 존재한다는 신에게
기도하지 않아도 될 만큼의 확신과
그것을 위한 고집이 있을 만큼만 있다면
시인에게 시는
세상을 밝히는 태산 같은 등불이어야 한다
먼 길 함께 가는 도반 같은 친구여야 한다
첫 번째 시집<바람의 그림자> 수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