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이 잔인한 이유는 / 도봉별곡
4월이 잔인한 이유는 겨울잠이 부족한 뿌리를 굳이 깨어서 준비도 되지 않은 어린 싹을 밀어내서가 아니고 지리산에서 3월부터 핀 산수유가 4월에도 지지 않아 희미해진 옛사랑이 생각나서도 아니고 섬진강 가 매화 밑 동백이 동박새를 기다리다 지쳐서가 아니고 저 먼 아메리카 인디안 아니시나베 족이 ‘더 이상 눈을 볼 수 없는 달’이라 해서도 아니고 불암산 밑 봄밤의 배꽃을 아직 기다려야 하기 때문이다
4월이 더 잔인한 이유는 예로부터 혁명이 많아 홍매화 핏빛으로 산하를 물들여서가 아니고 남도 바닷가 구릉에 유채꽃이 노랗게 흐드러져서가 아니고 저 먼 아메리카 인디안 체로키 족이 머리맡에 둔 씨앗을 뿌리지 못했기 때문이 아니고 그 땅에는 아직도 씨앗이 인디안 목에 걸린 멍에처럼 싹을 틔우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도 4월이 잔인한 이유는 정선 땅 두위봉 천년 주목 밑 응달의 눈꽃이 녹기도 전에 목련 개나리 진달래 벚나무 철쭉 영산홍이 한꺼번에 꽃을 피우기 때문이다 그 옛날 도서관 앞 라일락꽃이 보라스럽게 피었다가 최루탄을 맞아 눈물을 흘렸기 때문이다 라일락의 눈물이 너와 내가 한 발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게 만드는 족쇄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4월이 진짜로 잔인한 이유는 4월 16일에 가라앉은 세월이 아직도 세월을 기다리기 때문이다 피고 지는 꽃 속에서 잠이 들고 깨어나도 그날마다 어김없이 하늘이 울기 때문에 너와 내가 한없이 슬프기 때문이다 아무리 불러도 오지 않는 신을 부르다 지쳤기 때문이다 신조차 어쩌지 못해 외면한 세월을 우리 모두가 목에 걸린 낚시 미늘의 상처보다 더 아파하기 때문이다
*첫 번째 시집<바람의 그림자>에 수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