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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작시

첫눈 오시는 날 / 도봉별곡

첫눈 오시는 날 / 도봉별곡

 

 

 

시인이 술 마시는 이유 365가지, 첫째는 첫눈이 와서 마지막은 주머니가 비어서다 첫눈을 보며 이웃의 시인이 왜 SN 시인은 맨날 상을 받느냐 그것도 시 한 편에 오만 원인 때 공모전도 아닌데 천만 원짜리 시는 또 뭐야 다른 시인의 말 커넥션이라는 게 있지 알아먹지도 알아먹고 싶지도 않은 시를 그들은 키득거리며 지들끼리 웃고 즐긴다 말이 돼야지 왜 말이 안 돼? 시인 선생님은 빛처럼 곧게 끌고 가라지만 그들의 시는 왔다 갔다 하다가 마지막만 제목과 비슷하게 끝난다 내 원 참! 늙은 시인이 고개를 끄덕거린다 그들은 그들의 시를 쓰고 우리는 우리의 시를 쓰면 돼 그들 중 몇 사람은 산문조로 장난하듯 낙서하듯 갈겨쓴다 더 늙은 시인은 억울하면 출세해 그들은 목숨 걸고 쓰는 거고 우리는 즐기며 쓰는데 목숨줄 아닌 걸 다행으로 알아! 시인 선생님은 그래도 백만 원짜리 신춘문예라도 공모는 해야 한단다 식당에서 나오면서 우리 선생님은 속도 좋아 시가 헤퍼지는데 시도 아닌 것을 존중하라니 없으면 하느님도 욕하는 세상인데 이래저래 술맛 좋았던 점심이다 그래도 변하지 않는 건 짜고 치는 고스톱은 사기여 사기! 하루가 지난 날 기형도 시를 읽다가 이것이야말로 시다 젊은 날 죽으려고 목숨 걸고 썼으니 처음에는 속내를 알기 어려워도 다섯 번 읽으면 속이 보이니

 

쌓여야 첫눈이다 시가 술을 마시는 날의 오후

 

*제1시집 <바람의 그림자>에 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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