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빔밥의 이율배반二律背反, 역설, 패러독스 등 / 도봉별곡
여러분에게 맛난 점심으로 비빔밥을 제공하겠으니 유세차 모년 모월 모일 1시까지 약수도서관으로 오시기 바랍니다. 단, 1시를 넘기면 공짜는 없는 것으로 하되 늦으신 분들은 자신의 돈으로 드시거나 굶거나 알아서 할 일입니다. 집으로 돌아가셔도 됩니다.
비빔밥에 들어갈 재료가 궁금하시면 미리 공개합니다.
뻣뻣한 직유, 지난봄에 지리산 달래봉에 가서 고사리를 따왔는데 산주인에게 들켜서 혼났소.
감칠 맛 나는 은유, 비빔밥에 고추장이 빠지면 맨밥에 참기름 없이 일본간장도 아닌 조선간장으로 밥 비벼먹는 것과 다름없습니다. 맛을 상상에게 맡깁시다. 고교시절 저의 시골 친구들이 광주로 유학 와서 먹던 것인데 서너 번은 먹을 만한데 다섯 번째부터는 정말이지 맛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런데 은유는 복잡하게 생각할 것 없이 깡패들이 형사를 비유하여 짭새라 쓰는 것 등이 은어가 됩니다. 그래서 그들이 모르는 상징적 은유를 사용하십시오. 시적 기법의 결정판입니다.
고소한 상징, 전주비빔밥의 생명은 콩나물인줄 아시는 분은 지금부터 오해를 푸십시오. 전주 참기름입니다.
다진 소고기 육회, 젊은 암소가 맛있다는데 그런 이유로 비빔밥집 주인은 모두 반페미니스트이지만 자기 부인과 딸들은 끔찍이 사랑합니다.
손가락 모양의 육회 몇 조각, 술안주로 좋지만 엉덩이 부위가 맛난 것은 분명 이유가 있습니다만 말씀드리기 곤란합니다.
죽순, 싱싱한 봄날이 가기 전에 드십시오. 시를 사랑하는 산사람들의 산행에 따라 가시면 담양이 고향인 남자가 가져오니 봄여름가을겨울 자주 먹을 수 있습니다.
계란, 도봉은 날계란을 더 좋아하니 참고하십시오.
값이 배로 뛰는 산채비빔밥은 이미지 · 관념의 사물화, 주제나 소재가 떠오르면 이미지 30개를 준비하면 더 맛납니다.
아이러니, 소금이 달다는 터무니없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율배반, 나처럼 고집 센 주방장이 차려주는 집을 찾으십시오. 아주머니는 친절하실 겁니다. 창이 있어야 방패가 제 역할을 하는 겁니다.
패러독스, 찬란한 슬픔. 그러나 형용사를 자주 쓰면 남발이 됩니다. 형용사의 동사화를 넣어보십시오. 맛이 달라질 겁니다.
공감각적 심상, 시를 읽다 자신도 모르게 마음속에 어떤 감각적인 영상이 떠오르는 것을 느낀 적이 있을 것입니다. 그때 그런 영상을 이미지, 또는 심상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쉬운 것을 어려운 용어를 사용하는 이유는 무식해야 속이거나 부려먹기 쉬워 라틴어를 자기들만 아는 종교 종사자들, 한자만으로 글을 썼던 양반 놈들이 가증스럽지 않습니까.
객관적 상관물, 민주주의를 비빔밥으로 부르는 사람도 있습니다. 역순으로 비빔밥이 민주주의입니다. 미친 놈 아닙니다. 이래서 시가 멋지답니다.
비틀기, 비빔밥은 잘 비벼야 합니다. 숟가락보다 젓가락으로 비비는 게 더 잘 섞입니다.
호들갑, 시적 과장도 때로는 필요합니다. 인간의 유전자에 꼭 들어있으니 어찌 외면합니까. 사람이 많아야 더 맛나는 겁니다. 추임새, 얼씨구, 지화자.
이미지의 폭력적 결합, 비빔밥은 분명 맛있으나 그러기 위해서는 잘게 썰어야 하는 잔인한 폭력이 필요합니다.
낯설게 하기, 언어를 가지고 마음대로 놀기. 단골에게 모른 척 욕하는 반가움도 있습니다.
비논리의 논리, 첫사랑으로 사랑하시라
그것이 안 되거나 첫사랑이 생각나지 않거든 차라리 수필을 사랑하시라 그러나 수필은 손 따라 쓰는 것이고 시는 자유가 쓰는 것임을 절대로 잊지 말고 기억하시라
영원한 페미니스트인 저는 여자는 나의 두 어머님처럼 존경하고 사랑합니다. 사랑은 여러 가지이므로 남녀상열지사 같은 것으로 생각하셨다면 바로 마음을 돌리시기 바랍니다. 그런다고 내가 목석은 아닙니다.
만약에 말입니다. 이래도 비빔밥이 맛이 없다면 자유와 겸손과 검소를 넣으십시오. 그래도 맛이 없다면 일곱 개의 목뼈 중 세 개는 쓸모가 없어졌다니 남은 네 개를 걸겠습니다. 나는 돈 되는 일 아니면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것을 아시지 않습니까.
*제2시집 <시인의 농담>에 수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