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색인의 전설 / 道峰 김정남
가을 늦자리
산신령 옆 자리에 앉고 싶어 오른 설악
밤이 되면 전설이 되는 이의 뒷모습에서
발견한 뒤꿈치가 닳은 등산화는 아름다워도
그 눈물겨움에 무거워진 달빛 받으며 내려가는 산길
누울 자리가 없어 동굴을 찾아 헤매다
아무도 가지 않은 검은 산길로만 가던 폭우 내리치는
밤이 흐르고
비와 구름 사이로 비치는 카시오페이아의 전설*
플라톤의 동굴의 비유* 닮았다
이분법이란 허망해서, 회색은 비겁해서 양쪽에서 받는 혐오
산벚꽃 벗겨져 내리고
순간 숨이 멎고 영원과 찰나, 시작과 끝이 상극이 아닌
하나가 되는 환상에
내 눈의 인식작용을 부인함으로써
산에 굴복하여 죽을지도 모르는 상황에서도
나는 북극성의 주인이어야 했다
북두칠성은 국자가 되어있고
반대편 카시오페이아는 여전히 의자에 거꾸로 앉은 채 북극성을 돌고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카시오페이아의 전설 : 카시오페이아는 에티오피아에 위치한 페니키아 왕국의 왕 케페우스의 아내이자 안드로메다의 어머니이다. 아름다운 외모를 가졌으나 자만심과 허영심이 강하였으며, 이러한 성격 때문에 파멸에 이르게 되었다. 카시오페이아는 자신과 안드로메다의 미모가 해신 네레우스의 딸들인 님프 네레이데스보다 아름답다고 자랑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바다를 지배하는 신 포세이돈은 크게 노하여 홍수를 일으키고 괴물 고래를 보내어 에티오피아 왕국을 파괴하기 시작하였다. 케페우스와 카시오페이아는 재난을 막기 위해서는 그들의 딸을 해신에게 제물로 바쳐야 한다는 신탁을 듣는다. 케페우스의 결정으로, 안드로메다는 해변의 바위에 쇠사슬이 묶인 채로 괴물에게 바쳐지는 제물이 될 운명을 기다리게 되었다. 이때 마침 메두사를 퇴치하고 페가수스를 타고 돌아가던 페르세우스가 안드로메다를 발견하였다. 안드로메다에게 반한 페르세우스는 결혼을 조건으로 괴물을 무찔러 그녀의 목숨을 구해준 후 아내로 삼았다.
포세이돈은 카시오페이아의 허영심에 대한 처벌로, 그녀가 죽은 뒤에 별자리로 만들어 의자에 앉은 채 거꾸로 매달려 있게 하였으며, 계속하여 천구의 북극을 돌게 하였다.
*플라톤의 동굴의 비유 : 동굴에 사는 속박된 사람들이 보고 있는 것은 '실체'의 '그림자'이지만, 그것을 실체라고 믿어 버리고 있다. '실체'를 옮겨 가는 사람들의 소리가 동굴의 안쪽에 반향하고, 이 믿음은 확신으로 바뀐다. 똑같이, 우리가 현실에서 보고 있는 것은 이데아의 '그림자'에 지나지 않다고 플라톤은 생각한다.
*제3시집 <방랑자의 노래>에 수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