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이 있는 마당 / 道峰 김정남
봄날은 오고 감이 잔인하지만 아직
오지 않은 3월의 마지막 날
한때 ‘사진이 있는 마당’ 집
주모는 한 사랑은 잃고 한 사랑은 버리고
바람으로 불을 식힌다고
먼 바다를 건너갔다 다시는 술을 팔지 않았다
애증과 시비는 묘하게 닮고 주모와 나도 닮아
마음속 불을 버리지 못한다
마음속 불이 펄펄 끓던 젊디젊었던 때
나는 사랑을 버리고 왔고
사랑은 나와는 인연이 없어져버렸다
경기도 광주 땅 하숙집 아래 청자 백자 빗는 가마 앞에 앉아보니
마음속 불과 가마 속 불은 닮아있었다
가마 속 불은 마당 안에 쌓인 수백 다발의 나무로 일주일을 버텨가며
1300도까지 올라 청자 비색이라도 내었지만
마흔 살 도공은 도망간 사랑을 버리듯 내 청춘까지 모두 깨버리곤 했다
그는 한을 버리지 않고 간직했다
나는 한이 아니라 불이라고 시비를 걸었다
내 안의 불은 밖으로 나가지 않다가
차디 찬 돌로 만든 도봉을 일 년 열두 달 올랐더니
구름이 바닥을 편편하게 깔아준 다음에야 자운봉 위로 올라
불을 머리끝으로 끄집어내면서 잃었던 어머니 찾은 아이마냥 꺼이꺼이 한바탕 춤을 추었다
그 불이 꺼지고
수십 년이 지나 다시 붙을 줄 알았다면
당초에 그 불을 지폈으랴만
시비를 가려봐야 애증에 빠지는 것일 뿐
멀리 간 주모는 내 시집이 자기를 닮았다고 했다
맞바람으로 불을 껐다는 말은 사실일까?
바람으로 불을 껐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제3시집 <방랑자의 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