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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작시

제주, 구름과 바람 / 道峰 김정남

제주, 구름과 바람 / 道峰 김정남

 

 

 

달리 할 짓이 없어 작성한 버킷리스트

100대 명산 중 89번을 메웠다

남은 11에 대한 걱정은 지웠다

고소공포증 핑계, 눈이 많이 내려서, 태풍이 와서

어쨌든 여러 번의 시도와 기회에도 오르지 못한 곳

 

많이 쌓인 무기한 항공마일리지를 죽기 전에 사용할 마음도 있어

이번에는 기필코 오르리라 마음 다잡으며

고소공포증을 이겨보려고 평생 앉지 않던 창가의 좌석을 원했다

비행기가 솟아오를 때 손바닥을 적시는 땀은 나의 인내 밖이다

잠시 동안 지수화풍 중 역시 바람의 힘이 강하다는 것을 느낀다

하늘에서 바라본 대지는 인위보다 자연의 힘이 더 셌다

추수가 끝난 논은 삭막하게 네모지고

밭은 황톳빛을 띠며 힘을 잃고

골프장은 노랗게 익어버렸다

바람이 조는지 바다는 잔잔하다

 

제주가 가까워오면서 양떼와 새털구름이

비행기 위에서 노는 것을 보며 바람의 힘을 느낀다

아래를 보니 거문도 위다

추억은 힘을 잃어가고 난 미래에 물들어간다

 

마감시간을 넘어가며 마침내 마지막으로 도착한 한라산 정상에서

내려다 본 백록담

국립공원관리공단직원은 정상에 오늘처럼

해가 피어 날이 맑고 바람이 져서 없고, 백록담에 물이 고여 있으며 안개가 없는 2유 2무의 날은

일 년에 고작 몇 번뿐이니 행운의 날이라고 한다

 

역사는 더러운 것들의 모음들이라

4. 3반란이었던 역사를 4. 3민중항쟁으로 바뀔 때까지 앓았던 화병, 이제는 조금씩 풀어가시라

이승만도 서북청년단도 풀어주시라

 

모레, 영실 - 윗세오름 - 남벽분기점까지 오르려던 계획은 내년으로 남겨두고 바로 비행기에 올랐다

부디 잘 계시라

바로 잠이 들어 옆 사람이 깨우니 김포공항이다

 

*제3시집 <방랑자의 노래>에 수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