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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작시

한가위에 취하다 / 道峰 김정남

한가위에 취하다 / 道峰 김정남

 

 

 

상긋거리며

불암산 뒤에서 떠오르는 한가위

붉은 신화를 닮아

단단한 희망을 떠올린다

기도는 날카로운 달빛이 되고

소원은 차가운 동그라미

 

젊어 근시였던 눈은

중년에 난시로 변하더니

세월 흘러

노안이 되었다

 

그 사이 따뜻해진 달은 하늘바다를 여유롭게 헤엄치며

파도 없는 중랑천에

그림자 찍는다

 

젊음과 늙음, 뫼비우스의 띠 되어

내 눈이 밖으로 나가

나를 보니

이지러진 눈동자 속에

작아진 달이 손짓한다

내가 달이 되어

밤새 구름과 노닐다가

돌아와 보니

현관에는 딸들과 사위들의 신발들

긴 동그라미의 축제가

한창이다

 

*제3시집 <방랑자의 노래>에 수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