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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작시

금강경, 진공묘유의 꽃 / 道峰 金定南

금강경, 진공묘유의 꽃 / 道峰 金定南

 

 

아침에는 잎사귀마다 해가 뜨고

낮에는 바람이 구름을 부르더니 해를 가린다

밤에는 물결마다 달이 뜬다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를

의심하여 묻거나 생각하는 것

자체가 의미 없는 짓이다

여래는 의미 없는 질문에 답하지 않는다

법을 함부로 거론하지 마라

여래의 말을

따라 하지 말고 여래의 행동을 본받아 행하라

팔정도는 변하지 않아 좋다

십바라밀에서 왜 4바라밀을 빼느냐

통일신라 때까지 실천하던 십바라밀을

수행승들이 핍박당하던 조선시대에 와서

사바라밀을 빼고 육바라밀만 강조하는 것은 무슨 짓거리냐

무분별지와 분별지를 구분하기 위함의 방편이라 한다

 

누가 좌선만을 고집하는가

명상에 무슨 자세가 필요하느냐

나도 젊은 시절 좌선은 화두를 들고 가부좌를 틀고 앉아 명상하는 것이라 알았지만 알고 보니 좌선의 뜻은 밖으로 모든 경계에 마음이 움직이지 않는 것을 좌坐라 하고 안으로 본래 성품을 보아 어지럽지 않는 것이 선禪이다고 주장한 육조 혜능의 풀이임을 모르고 앉아서 명상하는 것이 좌선인줄 아는 무지한 수행자가 많다

젊은 날에 그렇게 배웠으니까 무지했음을 인정한다

 

답답해진 전재성 박사가 붓다는 수행의 자세에 대하여 일언반구도 하지 않았다고 목소리를 높여서 가르쳐도 참선은 앉아서 해야 가장 효율적인 참선이라고만 믿는 수행자가 거의 대부분이라 해도

 

끊어진 길에도 길은 있고

막힌 벽에도 문은 있나니

계속 걸어가고 열고 들어오너라

 

깨달음, 궁극의 목적인가 과정인가

 

왜 선과 교를 구별하는가

 

마명의 불소행찬佛所行讚*을 능가하는 석보상절

세종이 가장 자주 읽은 책 금강경 능엄경

이것은 불가사의의 하나

 

티베트불교에서 스승을 구하고 정하는 기간이 길다 그러나 나는 스승을 맹신하지 않는다 나의 길을 간다 스승도 남이거늘 길지도 않은 길을 하마 남이 갔던 길로 가겠는가

 

연기가 공이 되며

중도가 공이 되며

유식이 중도가 되며

팔정도가 중도가 되며

무아가 공이 되며

윤회가 공이 되며

오온이 무아가 되며

유업보 무작자가 되며

나는 있는데 없다고 하며

법이 있는데 공이라 하며

맙법귀일하처거萬法歸一下處去 모든 것은 하나로 돌아가나

그 하나는 어디로 가는가

다시 그 자리로 돌아서 가고 오느니

 

근기론과 경계론은 희론戱論이다

내 일찍이 사향사과四向四果*의 네 가지 방향과 네 개의 열매는 얘기 했느니

여래도 아라한이다

누가 누구를 붓다라 하는가

 

육도윤회 또한 방편이리니

신도 육도의 맨 윗자리지만 그 또한 윤회하나니

함부로 붓다라 칭하지 마라

스승을 높인다고 제자가 덩달아 올라가느냐

그것을 무명치無明痴라 하나니

지눌은 책을 읽으면서 세 번의 무릎을 쳤으니

책 속에 나의 마음이 들어있나니

무슨 이유로 사교입선捨敎入禪, 책을 멀리하여 마음을 흐리느냐

성철은 증도가證道歌를 읽고 발심했나니

신회*의 환생인가 그 제자들도 닮은 행동을 하고 있음을 안타깝게 여기노라

다시 얘기한다

여래는 행여 근기론과 경계론을 얘기한 적 없나니 희론으로 스스로 망상에 빠지려느냐

 

수많은 성인 중 당대에 가장 많은 것을 이뤘으나

수명의 한계가 있어 너와 내가 모두를 이루지 못했다

그러니 언젠가는 우리의 날이 올 것을 믿는다

금강경, 그 기막힌 은유 진공묘유眞空妙有의 꽃

여래는 긍정과 부정과 긍정을 오가며 향기를 날린다

세상을 믿지 않는 나이 68세

종심從心의 나이로 접어들어 남의 말을 듣지 않아도 되는 나이

뭐든 바로 잡고 싶은 주책의 나이가 되어

잘못하여 왜곡한 일들을 바로 잡고 싶을 뿐

이번 기회로 말은 하고 싶었다

 

화두는 방편에 지나지 않으니 거기에 목 매지 말고

답이 있다고 믿거든

맹신은 아닌지 따져보고

의문을 던진 선사의 뒤안길을 잘 살펴보라

 

금강경의 마지막 충고가 장엄하게 울린다.

 

‘세상의 모든 일들, 꿈같고 신기루 같고, 물거품 같고 그림자 같은 것. 이슬처럼 덧없고, 번개처럼 스쳐 지나가는 것’

 

 

*불소행찬 : 『불소행찬』(佛所行讚)은 불교시인이라 불리는 마명 스님이 쓴 석가모니부처님의 생애에 관한 장편서사시다. 원전명은 『붓다차리타』이며 서기 1세기경에 서술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사향사과(四向四果) : 사문4과(沙門四果)는 원시불교와 부파불교의 수행 계위이다. 줄여서 4과(四果)라고도 한다. 4쌍8배(四雙八輩)라고도 한다.

 고타마 붓다의 제자들은 그의 가르침을 듣고 수행함으로써 아라한이라는 이상의 경지에 도달할 수 있다고 생각하였으며, 아라한의 경지에 도달하는데는 4향4과라고 불리는 8종의 위계(位階)가 있다고 했다. 즉 아래서부터 말하면 예류(豫流: 수다원) · 일래(一來: 사다함) · 불환(不還: 아나함) · 아라한(阿羅漢)의 4위가 있어서, 아래와 같이 과(果)를 향해 수행(修行)해 가는 단계(向)와 그에 의해 도달한 경지(果)로 나누어서 설명한 것이 4향4과이다. 사상팔배四雙八輩, 팔보특가라八補特伽羅라고도 한다

 

*혜능의 제자 신회(668~760)의 소망이 남종선이 낙양과 장안에서 입지를 구축하고 혜능을 6조로 만듦으로써 자신이 7조가 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하루아침에 세상의 인식이 바뀌기는 쉽지 않다. 그런데 6조로 불리던 신수의 제자로서 7조로 불리던 보적(651~739)이 739년에 입적하고, 안록산이 일으킨 안사의 난(755~763)이 발발함으로 인해서, 신회의 뜻은 당대에 성취되기에 이른다. 이것은 안사의 난에 의하여 낙양과 장안은 심하게 파괴되었고, 당시 그곳에 근거지를 두었던 북종선의 타격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또 이 과정에서 신회의 비판과 황실과의 연결점이 생김으로 인해서 6조와 7조가 변경되는 것을 인정받는 상황이 벌어졌으나, 신회는 760년에 입적하여 그 열매를 보지 못하는 아이러니가 벌어지고 713년에 입적한 혜능은 40년이 경과한 후에 남종선이 주류가 되면서 6조로 올라서게 되는 것이다. 신회의 눈물겨운 혜능 현창운동이 극적으로 성공함에도 불구하고 본인들은 영광을 맛보지 못한다. 역사의 어이없는 비정•참담한 아이러니다. 그러면서 혜능의 어록을 감히 경經으로 부르는 비틀린 명예가 탄생한다. 이후 이를 테면 혜능어록이 육조단경으로 여러 단계 도약하는 기현상이 벌어졌다.

 

*제4시집 <방랑자의 노래>에 수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