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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작시

혜능의 서방정토西方淨土 / 道峰 金定南

혜능의 서방정토西方淨土 / 道峰 金定南

 

 

혜능은 예리하며 견고한 반야를 통하여 번뇌와 절망을 부수고자 했으니

 

인간의 마음은 금강을 들고 있음에도 바람 앞의 등불처럼 흔들린다 그러나 그것은 결국 어떤 절망과 번뇌에도 파괴되지 않으니 거기에 지혜의 검을 발휘하여 번뇌와 절망을 쳐부수자

 

바라밀은 도피안이다. 서방정토로 믿는다. 그러나 서방정토는 없으니 “마음이 헤매면 차안此岸이고 마음이 깨달으면 피안彼岸이다”

 

마음의 안쪽에 무엇이 있느냐고 묻는가 거기 불건전한 상념, 정념, 충동 등이 있으니, 이 무지無知, 즉 무명無明이 있는 곳이 이 언덕이고 이것을 불식시키고자 마음이 밝아진 곳이 저 언덕이다 결국 도피안度彼岸은 내 마음 안에서 일어난 사태, 피안彼岸은 시공을 점하고 있는 어떤 다른 세계에 있지 않다 극락은 없다 다만 비운의 공자 구마라집이 만든 허구의 언어다 젖과 꿀이 흐르는 환상의 땅, 서방정토도 없다 혜능은 대중을 앞에 두고 얘기한다 “내가 서방정토를 보여주랴‘ 마음이 헤매면 차안此岸이고 마음이 깨달으면 피안彼岸이다”

 

*혜능 : 선의 창시자. 달마에 이은 제6조. 육조단경으로 후대에 이름을 떨침.

*鳩摩羅什 : 구마라집. 인도의 명문 귀족인 아버지 쿠마라야나(Kumārāyana, 鳩摩炎)의 아들로 어머니는 쿠차국 왕의 누이동생인 지바카(Jīva)이며, 쿠차국에서 태어난 그는 7세에 어머니를 따라 출가하여 아버지의 고향인 서역(西域) 카슈미르 야르칸드에서 대승(大乘)과 소승(小乘)을 배우고 고국에 돌아와 열심히 대승을 설파하여 그 명성은 중국 내부에까지 퍼졌다. 384년 쿠차로 쳐들어온 중국 후량(後涼)의 장군 여광(呂光)의 포로가 되었다. 군사(軍師)의 위치에 있으면서 여광을 돕기도 했지만, 여광은 그를 포로로써 취급했고 달리는 말에서 떨어뜨리거나 함께 포로로 끌려온 쿠차의 왕녀를 강제로 아내로 맞게 하는 등의 잔학한 짓도 했다고 한다. 18년 동안 여광과 여찬(呂纂) 밑에서 양주(涼州)에서 살던 쿠마라지바는 서기 401년 후진의 황제 요흥(姚興)에게 국사(國師)로서 영접되었다. 요흥의 뜻에 따라 여성과 혼인, 환속한 그는 이후 경전 번역에 종사하여 35부 300권의 불경을 한문으로 번역했다. 쿠마라지바는 413년(409년이라고도) 장안에서 세상을 떠났는데, 임종 직전 그는 "내가 전한 것(번역한 불경)에 틀린 것이 없다면, 내 몸이 사라진 뒤에라도 내 혀는 타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사후 불교의 방식대로 화장되었고, 다 타버린 그의 시신 속에서 혀만은 타지 않고 남아 있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