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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작시

마음의 그림자, 유식唯識 / 道峰 金定南

마음의 그림자, 유식唯識 / 道峰 金定南

 

 

마음이 만든 그림자는 빛에 의해 소멸된다

다만

업으로 남아 저장된다

 

마음이 눈에 보입니까

1,700년 전 요가수행자들은 밥도 눈곱만큼 먹고

별 할 일이 없었는지 마음을 분석했다네

삼계유심三界唯心,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만법유식萬法唯識*이라는 결론을 내놓고 웃었을까

보이지도 않는 것을 분석했다는 것은

나같이 하릴없는 무소유자나 할 짓인데

그들도 마찬가지다

 

불교는 존재의 허망한 상태를 변계소집성遍計所執性, 관용의 정신을 의타기성依他起性*, 위대한 방임을 원성실성圓成實性*이라고 부른다.

 

열어놓은 문 사이로

가을을 재촉하는 하늬바람이 불어오면

남국에서 온 풍경風磬이 운다

그 눈물 속에 귀가 있는지

바람이 전하는 말은 무엇일까

 

바람이 그치고

단풍이 울면

가을이 지나고

겨울에는 눈이 어떤 마음을 전할까

 

제1식, 눈이 전하는 마음

제2식, 귀가 듣는 마음

제3식, 코가 맡는 마음

제4식, 혀가 맛보는 마음

제5식, 몸이 느끼는 마음

제6식, 다섯 개의 마음을 모으는 마음

제7식, 사량심과 이기심과 차별심

제8식, 업의 저장식, 기억의 저장창고, 윤회의 주체

 

8개의 심왕心王

그래도 마음에 차지 않았는지

그 속에서 51개의 심소心所를 찾아냈다네

그 감정 다 외우다가 시간은 그냥 가버릴 테고

참 하릴없는 사람들 그냥 요가나 하다 때가 되면 죽고 말지

 

그것도 부족해서 100가지 마음까지 기어이 찾아냈고

두 개의 큰마음에서 엄청난 비밀을 발견해냈다네

제7말나식에서 생존의 원인을 찾아내고, 폭력의 이유를 알아냈으니

참으로 할 일 없는 사람들이다 어디에 쓰려고

그런다고 전쟁이 없어지나, 윤회가 멈추나

윤회는 자아가 없다는 것을 아는 순간 멈춘다는데

수행은 지혜를 찾아내 말보다 행동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것

7식을 원만하게 청소하면 남는 것 제8아뢰야식

그것을 깨어남이라 한다네

 

바람이 분다고 풍경이 움직이며 부딪히며 소리를 내는가

마음이 흔들리는 그림자다

풍경이 흔들리는 것으로 보이는가

할머니 집 감나무가 흔들리는 것을 보고

아니요 아니요 했다던 다섯 살의 큰딸은

지금은 아비의 촘촘한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 닮아

살고 싶은 대로 사니 걱정은 덜었고

나는 아직 성긴 그물에도 걸리니 나의 마음을 모른다

이번에

바람이 그치면 가을비가 온다고 한다

가을비가 그치면 단풍이 지천에 깔리고

아직 가지 않은 두 길 중

길바닥에 깔린 단풍이 더 단풍답다는 것을 사람들은 모른다 시인들은 알까

 

*삼계유심三界唯心,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만법유식萬法唯識 : 세상의 모든 것은 마음의 에너지가 작용하여 변화를 일으킨다는 불교 용어

*의타기성 : 초기불교에서 말한 연기법을 유식에서는 바로 의타기성(依他起性)이라 한다. 이는 만물이 인연에 의해 생겨났다는 뜻으로, 사물은 언제나 원인과 결과에 의해 생성소멸(生成消滅)을 거듭한다는 것이다. 의타기성은 인연이기 때문에 무자성, 자성(自性)이 없다는 소리이고, 즉 본무자성(本無自性)임을 나타내는 유식의 철학관이다. 부싯돌이 부딪치므로 불이 일어나듯이 마음은 본래 나고 멸함이 없으나 인연에 의해 생(生)하고 인연에 의해 멸(滅)하므로 연생연멸(緣生緣滅)인 것이다

*원성실성 : 원성실성은 본래적인 것, 중생의 망상분별을 떠난 참다운 성품 자체를 말한다. 원만, 성취, 구경, 진실의 의미로서 이른바 불성(佛性), 법성(法性), 본성(本性), 진여(眞如), 실상(實相)의 경계가 원성실성이다. 즉, 원만성취가 이루어진 무한 공덕을 갖춘 진여불성(眞如佛性)을 말한다. 진공묘유(眞空妙有)의 자리가 원성실성이고, 중도이며, 이것이 우리의 본래성품이다. 한 송이 꽃을 보더라도 꽃은 꽃대로 자연 그대로 피어나온 것이데, 그 꽃을 두고 우리 중생은 곱다, 안 곱다, 예쁘다, 밉다 하고 마음을 일으킨다. 본래에는 그런 것이 없다. 따라서 본래대로 본다면 진여불성이다. 이것이 바로 진여연기(眞如緣起)이고, 중도(中道)로서 원만하게 이루어진 참다운 우주의 실상(實相)이다.

 

*제4시집 <방랑자의 노래>에 수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