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기불교 경전들 속에서 핵심을 이루는 교리는 연기와 중도, 삼법인, 사성제, 팔정도 등이다. 부처님은 일체의 현상세계를 시간적, 심리적, 공간적으로 고찰해 각각 무상(無常), 고(苦), 무아(無我)라고 파악했다. 일체무상(一切無常), 일체개고(一切皆苦), 제법무아(諸法無我)다. 삼법인(三法印)이다. 불교인지 아닌지를 판가름하는 근본원리다. 그리고 이 가르침의 핵심 주제가 연기(緣起)와 무아다.
만일 불교가 ‘자아는 존재한다. 그 존재하는 자아란 색수상행식 오온 화합물 이외의 다른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면 문제는 간단했다. 바로 유아론(有我論)이다.
그런데 불교는 스스로 무아론(無我論)을 내세웠을 뿐 아니라, 다른 학파들로부터도 무아론이라는 이유로 많은 비판을 받아왔다. 무아론을 내세우면서도 업보설이나 윤회설은 그대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무아론 즉, 자아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행위를 하는 자, 즉 업을 짓는 자와 그 행위에 의한 결과, 즉 업보를 받는 자는 과연 누구란 말인가. 만일 자아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이 생에서의 업에 따라 다음 생으로 윤회하는 자는 과연 누구란 말인가. 무아론은 윤회와 업과 상충되거나 모순된 이론처럼 여겨졌다. 과연 그런가.
초기불교~대승불교 무아론
非我.사후 자아존속 문제 등
논쟁사항 체계적으로 정리
이화여대 철학과 한자경 교수가 이에 대한 그동안의 연구결과를 모았다. 〈불교의 무아론〉이다. 책에는 초기불교에서 부처님이 가르친 무아론부터 그리고 논쟁이 본격화된 대승불교의 무아론까지의 논의를 모두 담았다.
무아론과 비아론의 차이와 논쟁을 비롯해 무아론의 의미, 사후 자아의 존속 문제, 유업보(有業報)와 무작자(無作者)의 논리 등 근본불교의 무아론에 대해 경전을 근거해서 정리했다.
또 유부(有部)에서 논의하는 업의 본질과 업력, 그리고 다른 부파의 설명에 대해서는 제2부 ‘유부의 무아론’에서 정리했으며, 경량부에서의 자아, 업, 윤회에 대해서는 제3부 ‘경량부의 무아론’에서 정리했다. 유식의 무아론과 무아론에 담긴 불교존재론 등 각 제4부와 5부에서 고찰했다.
‘죽음 이후에도 자아가 존재하는가’라는 물음이 ‘정당한 물음인지’에 대한 답이기도 하다. 자기 동일성을 가진 자아와 연기 법칙에 따라 업으로써 이어지는 자아는 과연 어떻게 다른지에 대한 답이기도 하다.
무아론과 함께 무상(無常), 공(空)등 불교의 핵심 키워드에 대한 오해와 편견에 대한 저자의 생각도 정리했다. 흔히 존재의 무상성을 설명하면서 생명체가 언젠가 죽음을 맞아 죽게 된다거나, 무생물도 시간이 지나면 색이 바래고 닳아 없어지기 때문에 무상하다는 설명은 맞지 않다는 설명이다. 불교의 무상은 언젠가 존재가 끝나기 때문에 무상이 아니라 그 존재의 순간 그 자체에 非存在가 스며들어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매순간 생멸을 거듭한다는 것, 바로 그렇기 때문에 무상하다고 말하는 것이다.
한자경 교수는 이화여대 철학과를 거쳐 이화여대 대학원을 졸업했다. 독일 프라이부르크 대학에서 서양철학을 공부했고, 칸트를 주제로 학위를 받았다. 계명대 철학과에서 강의했으며, 동국대 불교학과에서도 유식을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동안 저서로는 〈칸트와 초월철학〉, 〈자아의 연구〉, 〈자아의 탐색〉, 〈유식무경〉, 〈동서양의 인간이해〉, 〈일심의 철학〉, 〈불교철학의 전개〉 등 자아(自我)에 대한 연구가 연구의 중심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