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나라는 하늘 끝 동쪽에 있고/ 이 나라는 땅 끝 서쪽에 있네./ 해가 뜨거운 남쪽에는 기러기가 없으니/ 누가 내 고향 계림으로 소식을 전하리오.”(‘왕오천축국전’) 신라의 승려 혜초는 8세기에 인도로 불교 성지순례를 다녀온 후 ‘왕오천축국 전’을 남겼다. 인도는 불교성지로서 예나 지금이나 신자들이 꼭 방문하고 싶어 하는 부처님의 나라다. 그런 인도에서 불교의 가르침을 가장 심도 있게 교육하는 곳으로 날란다대학이 꼽힌다. 날란다는 세계 최초의 대학으로도 유명하다. 대학교육이 발 달한 서양이 아니라 동양에서, 더욱이 불교대학의 형태로 연구와 논의, 강의의 열기가 가득한 고도의 교육기관이 개화했다는 사실은 주목할 만하다. 해외 유학생으로 북적이던 세계 최초의 대학 날란다는 기원전 6~7세기 부처가 설교를 하던 자리로, 수제자 사리불존자가 태어난 곳이기도 하다. 800년 뒤인 427년 그곳에 불교의 가르침을 전파하 는 수도원 대학이 세워졌다. 14만㎡에 달하는 날란다대학은 붉은 벽돌로 지어진 수도원과 사원을 갖춘 대단지 대학이었다. ‘진리의 산’이란 뜻의 다르마 군즈(Dharma Gunj)라고 불리던 도서관은 9층 높이의 건물 세 채로 이루어져 있었다. 1197년 이슬람 세력이 침략했을 때 대학건물을 파괴하고 책을 불살랐는데, 책이 얼마나 많은지 3개월 동안 불길이 사그라지지 않았다고 한다. 2~3층으로 지어진 수도원에는 넓은 정원과 사리탑, 계단과 테라스가 딸린 수많은 방이 있었다. 학생 (수행자)들이 머물 수 있는 기숙시설이었다. 많을 때는 학생이 수만 명, 선생님은 2000명에 달했는데 모두 이 수도원에 기숙했다. 그 당시 날란다대학은 스리랑카·중국·티베트·페르시아·인도네시아·일본·한국에까지 널리 알려져 있었던 만큼, 많은 외국인 유학생들이 이 대학을 찾았다. 입학 경쟁도 뜨거웠다. 스무 살된 학생들이 다양한 분야에서 구두시험을 치렀는데, 열 명 중 두세 명이 겨우 합격할 정도로 치열했다. 재미있는 것은 ‘대당서역기’를 쓴 현장법사가 6~7세기경이 대학의 학생이었다는 사실이다. 삼장 법사(현장법사)와 손오공이 나오는 장편소설 ‘서유기’에 영향을 준 것으로 알려진 ‘대당서역기’는 날란다대학을 설명하는 주요 문헌자료다. 현장법사는 날란다대학의 우수한 학생으로 수학을 마치고 교수 제의를 받았지만 “아직 깨닫지 못한 자들을 망각하고 어찌 여기서 혼자 즐기리오”라면서 인도를 떠나 중국으로 돌아갔다. 날란다대학의 전통을 계승한 인도 티베트국립대학교 1197년 이슬람 맘루크왕조(Mamluk Dynasty) 의 침략으로 날란다대학이 파괴됐다. 날란다대학의 스승들은 학교가 파괴되자 티베트를 망명지로 삼아 이주하기 시작했다. 이처럼 인도의 스승들이 티베트로 이주하거나 티베트의 학생들이 인도를 방문하면서 주요 경전을 티베트어로 번역하거나 실제 수련을 거치는 과정에서 불교 전통과 문화가 그대로 티베트에 전수됐다. 그리하여 불교가 인도에서 사그라지던 12세기, 티베트에서는 불교관련 학문이 종교 예술과 문화로 번성하게 된 것이다. 티베트에서는 날란다대학의 수도원 전통을 전수 받아 모든 수도원이 학문과 연구, 배움의 센터 역할을 한다. 교육과정도 날란다대학과 유사하게 운영됐다. 1960년대 문화혁명 기간에 중국이 티베트 지역을 완전히 점령하면서 6000개의 수도원과 사원이 파괴됐다. 티베트의 민족 정체성을 소멸하고자 서적도 전부 불태웠다. 1959년 불교의 본고장인 인도로 망명한 티베트의 달라이 라마는 소멸되는 불교 전통을 보호하기 위해 부탄·네팔·히말라야 지역을 포함해 인도 전역에 250여 개 수도원을 만들고 수도원 중심의 불교교육을 부활시켰다. 달라이 라마는 불교교육을 심화하고 외국인에 게도 교육의 기회를 주고자 1967년 인도 네루 전 총리의 허가를 받아 바라나시에 티베트학연구소 도 설립했다. 이 연구소는 소실된 불교경전 중 과거 에 티베트어로 번역되었던 것을 다시 산스크리트 어로 복원한 공적을 인정받아 인도의 국가적 지원 을 받는 티베트국립대학교(Central university of Tiebetan studies)로 승격했다. 현재는 날란 다대학의 교육전통을 계승하면서 현대의 과학교육과 고대 영적 교육의 만남을 시도하고 있다. 달라이 라마는 1년에 한 번씩 꼭 바라나시를 방문해 이 대학 법당에서 직접 제자들에게 가르침을 설파한다. 재건된 날란다대학, 글로벌 대학으로 도약, 파괴된 지 약 800년 후 날란다대학의 부활이 이루어졌다. 고대 날란다대학 터에서 12㎞ 떨어진 곳에 약 180만㎡의 부지를 확보하고, 중국·싱가포르·태국·일본·한국·호주 등 여러 나라에서 기금을 지원 받아 날란다대학이 재건된 것이다. 오래전부터 진 행되던 날란다대학 재건 논의는 압둘 칼람(APJ Abdul Kalam) 인도 전 대통령과 니티시 쿠마르 인도 비하르주에 위치한 날란다대학 터. [위키백과] Life & Culture | 바라나시의 힘과 매력 ③ 불교교육의 전통 세(Nitish Kumar) 전 비하르주 총리의 활약으로 막강한 추진력을 얻었다. 압둘 칼람 전 대통령은 2006년 동아사아정상회의(EAS)에서 날란다대학 설립 안을 발표해 큰 지지를 이끌어냈다. 2014년 1월 인도를 방문한 박근혜 대통령도 만모한 싱 전 총리와 정상회담을 가진 후 날란다대학 설립 지원에 대한 양해각서(MOU)에 서명한 바 있다. 인도 의회의 승인을 받아 2014년 9월 1월 드디어 현대 날란다대학이 문을 열었다. 세계 곳곳에서 1000명이 지원했고 최종 15명의 학생이 선발됐다. 총장은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이자 하버드대학 교수인 아마르티아 센(Amartya Sen)이다. 센 총장은 “지식과 영성, 전문성과 열정이 아시아인에 국한되지 않는” 새로운 인재를 양성하는 날란다대학이 될 것이라는 포부를 밝혔다. 이제 학문과 수련을 겸비 한 글로벌 대학, 과학과 영성의 조화를 이룬 고대 날 란다대학의 꿈이 재현되려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