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다고 해서 인생이 바뀌지 않는다. 불교가 위대한 종교인 이유는 아는 데 있는 게 아니고, 내가 스스로 체험하고 스스로 깨치는 데 있다. 나는 무엇인가에 대해 스스로 고민하고 스스로 체험하고 스스로 깨쳐야만 그것이 불교다.”
20대 내내 학생운동과 노동운동에 전념했고, 30대에 프로그래머로 변신해 고려대장경 전산화 작업에 참여하다 출가한 뒤 봉암사, 송광사, 화엄사, 석종사 등 제방선원에서 정진한 중현스님. 현재는 광주 무등산 증심사 주지로 살며 유튜브 채널 ‘증심사’를 통해 세상과 소통하고 있는 스님이 코로나19로 사찰에 오지 못하는 이들에게 보내는 지상 법문집 <불교를 안다는 것 불교를 한다는 것>을 최근 펴냈다.
코로나19와 인공지능의 시대에 종교의 자리는 점점 줄고 있다. 특히 코로나19로 증심사도 타격을 입었다. 주지 중현스님은 그야말로 인적이 끊어진 텅 빈 절 마당을 보며 생각이 많아졌다. ‘절이란 무엇인가? 또 스님이란 무엇인가? 사찰은 사람들이 찾아와 삶의 고단함을 씻고 스님에게서 인생 지혜 하나쯤 받아오는 곳인데, 사람 없는 절이 무엇이고 스님은 무슨 소용일까?’ 이러한 고뇌를 거듭한 스님은 “불교는 사찰에도 없고 스님에게도 없다”라는 결론을 내렸다. 불교는 바로 각자의 삶에서 실천해야 한다는 것이다. “불교는 사찰에 오지 않아도 각자의 삶에서 실천하며 사는 데 있다”는 스님은 절에 사람이 오지 않는 것쯤은 별로 중요한 일이 아니며, 승복 입은 자신이 할 일은 멀리 있는 이들이 스스로 마음의 건강을 챙길 수 있도록 돕는 데 있음을 깨달았다. 지난해 절을 찾은 사람들과 나누었던 법문을 추려 책으로 묶어낸 이유가 여기에 있다.
우리시대 큰 스승 법정스님은 “종교 생활은 복습”이라고 강조했다. 불교에 대한 편견 중 하나는 불교는 복잡하고 심오하고 추상적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머리로 이해하고 공부해야 하는 종교로 인식하기도 한다. 그러나 불교는 부처님 당시부터 하나의 수행체계로, 교리는 실천을 위한 바탕이었다. 이는 2500년이 지난 현대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불교는 여러 방면에서 다양하게 정의 내릴 수 있지만, 중현스님은 “불교는 종교의 외피를 두른 수행 시스템, 즉 수행”이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여기서 말하는 수행이란 무엇일까? 수행은 행복하기 위해서 행(行)을 닦아 마음을 바꾸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번뇌로 불리는 온갖 생각과 감정 등 행복을 가로막는 수많은 방해 요소들을 잘 관리하고, 그것이 마침내 유기적인 이타 행위로 발현되도록 이끄는 것이다. 또 다른 관점에서 수행은 ‘자신과의 대화’이다. 문제가 닥칠 때마다 자신과 대화하며 무엇이 올바른 길인가를 찾아가는 과정이다. 법정스님이 말한 ‘복습’은 이러한 끊임없는 대화, 실천, 연습을 가리킨다. 때문에 스님은 “불교는 아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근본적으로 해야 하는 종교”라고 거듭 강조한다.
이와 더불어 중현스님은 ‘불교는 깨달음의 종교’라는 점에 주목한다. 부처님은 이 세계를 원인과 조건으로 생성하고 소멸하는 연기적 관점으로 이해하며, 인간 삶의 괴로움을 해결했는데 이것이 바로 깨달음이라는 것이다. 혹자는 깨달음을 추상적인 어떤 신비한 경지로 오해하고 수행의 목표로 삼는다. 스님은 깨달음에 대한 잘못된 태도를 경계하며, 오늘날의 깨달음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바르게 이해하고 성찰하며 이를 수행으로 다져 종국에는 내 삶을 바꾸는 데 있다고 한다.
그리고 성찰과 수행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자세하게 말한다. 연기, 무상, 무아, 공 등 부처님의 가르침의 핵심을 일상 법문으로써 이해를 돕고, 나아가 예불, 염불, 참선, 호흡 수행, 화두, 번뇌 끄기, 자비, 팔정도, 계정혜, 마음공부 등 수행법에 대한 의미와 방법, 태도를 세세하게 일러준다. 스님은 각자의 삶에 바쁜 현대인들을 향해 “수행은 벼락치기로 통하지 않으며, 철저하게 자기 체험으로 만들어가는 것”이라며 “직접 체험하고 실천하는 불교를 함으로써, 나를 바꾸고 세상을 변화시키는 불교를 하자”고 당부한다. 스님의 이러한 주장이 녹아 있는 이 책은 내 삶에 폭과 깊이를 더해주는 불교 입문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