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려들의 죽음에 대한 마음가짐
승려들이 죽음을 초월한 것처럼 말하는 것은 단순한 직유의 언어가 아니고, 붓다가 말한 초기 불전에서 가장 오래된 문헌인 <숫타니파타>에 공을 관찰하여 무아를 증득하도록 가르치는 구절이 있는데 “항상 생각을 집중하여 자아에 집착하는 견해를 타파하여 세간을 공으로 관찰하라. 그러면 죽음을 초월할 수 있다.”는 구절이 있으며, 이것은 조사들의 법문을 수없이 들어 머리에 새긴 까닭이다. 대승불교가 발호하여 부흥기가 되면 붓다의 근본법문인 연기설로 시작하여 삼법인 무상·고·무아의 무아를 공으로 정형화하여 표현한 것이 600권에 이르는 <반야경>이다. 너무 방대하여 그것을 280자로 요약한 것이 절의 의례에서 빼놓지 않고 등장하는 ‘약방의 감초’를 닮은 <반야심경>이다. 그러므로 조계종의 소의경전(所依經典 : 근본경전)인 <금강경>과 더불어 <반야경>을 하나의 글자로 표현하면 공이다. 공사상을 단지 바라문의 아트만 사상을 부정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불교 내부에서 무아를 특히 잘못 이해하여 고정된 자아가 존재하고 있는 것/비아/으로 착각하는 부파불교를 설득하거나 대항하기 위하여 설정하였다. 부파불교 중 특히 설일체유부의 삼세실유(三世實有, 현상은 무상이나 과거, 현재, 미래에 걸쳐 고정불변한 것이 있다는 주장)사상은 대승불교가 타파해야 할 대상이었다. 특히 금강경에서 여러 차례 언급한 무아는 “[나]와 [나의 것], [나라고 하는 것]이라고 할 것이 없다”는 것을 강조한 무아의 강조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필자가 금강경을 읽으면서 깊이 새겨둔 구절이 10차례나 있는 것에 대한 시적 표현으로 ‘붓다는 주었다 빼앗는다’는 구절인데, 주었다 빼앗지만 손 안에 남아있다는 은유적 해석은 ’진공묘유(眞空妙有)‘의 깊은 뜻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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