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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작시

도봉산 3 – 꽃바람 / 도봉별곡 도봉산 3 – 꽃바람 / 도봉별곡 어둑새벽 찬바람에 꽃잎 지는 소리 놀라 깨어보니 새벽안개 자욱한데 둥근 바람이 오히려 느릿하게 걸어서 온다 물고기는 물에서 자유롭고 새는 하늘에서 자유로우니 꽃은 바람을 만나 자유롭다 바람이 산을 만나면 무엇이 될까 외딴 섬만 바람을 유혹하는 것이 아니다 천축사 굴참나무가 골 깊은 속살 드러내고 은밀하게 유혹하면 사철 산바람은 은근하게 걸어오고 가을 한철 높새바람은 광대같이 널뛰며 달려온다 비구름은 산을 넘지 못하고 새는 높새바람을 타지 못하면 하늘에 닿지 못한다 바람에 눈이 있어 산을 만나면 웃음이 되고 웃음을 꽃에게 보내면 사랑이 된다 *제1시집 에 수록 더보기
도봉산 2 / 도봉별곡 도봉산 2 / 도봉별곡 산은 세상의 모든 비밀 간직하며 솟는다 높새바람이라도 불 때면 구만리장천으로 날려 보내고 웃는다 산에는 도인만 사는 게 아니니 시정잡배도 오라 온갖 서러운 사랑 더러운 사랑 다 버리고 가라 작아서 아쉬운 졸병참나무도 굳건히 뿌리 내리고 상수리나무와 키 재기 할 수 있는 곳은 산밖에 없다 우이암에 달빛 내리고 찬바람 자운봉을 감돌고 휘몰아 칠 때 죄 많은 자 오라 내 그 땀 한숨 다 받아주마 산비둘기 울음 안타깝고 하늘 높이 날지 못하는 하늬바람은 슬프다 모두 오라 너희들 차마 쏟지 못하는 비밀 내려놓고 가라 내려가서는 더 이상 죄 짓지 마라 문사동 푸른 물 풀려 머리 푸르게 반짝이는 금강암 지나 도봉계곡에 올챙이 개구리 버들치 숨을 때 함께 희롱하던 쇠백로는 주린 배 채울 곳이 여.. 더보기
도봉산 1 도봉산 1 / 도봉별곡 도봉산은 집의 조건을 두루 갖췄다 스승과 제자들이 시로 문답을 주고받았다는 문사동問 師洞은 공부방 선인봉 밑 캠프장은 침실과 주방 만장봉 암벽과 와이(Y)계곡 암릉은 위험한 놀이터 선인봉 밑 산악인의 방은 응급실 명상의 방 신선대와 선인봉 쌍봉약수 옆 계곡은 쇠백로와 올챙이 숨바꼭질 놀이방 한여름 밤 마당바위는 뭇별이 보이는 천문대 그 아래 도롱뇽이 사는 약수터 으뜸 물맛 푸른 샘 자줏빛 구름 노니는 자운봉 자운봉 옆 배추흰나비바위는 오르지 못하는 하늘정원 자운봉 오르다 들르는 찻집 시인의 마을은 사랑채 맑은 버들치 노는 도봉계곡은 연못이 있는 정원 샤워실 송추폭포 먹을거리 푸짐하게 차려 놓은 거실 송추계곡 새장도 있다 비둘기바위 에덴바위는 무허가 화장실 안방 차지는 병풍바위 부엌.. 더보기
화장火葬 / 도봉별곡 화장火葬 / 도봉별곡 티끌은 불이 두려워 불꽃 위에 앉지 않으나 불이 지치면 남는 한 줌 뭉친 티끌에서 흩어진 티끌로 변해가고 바람을 떠나지 못해 갈 곳 없어 구만리를 떠돌아도 뿌리 내릴 곳은 있으리 가족의 잔혹사와 원혼冤魂이 뭉쳐 소소리바람 같았던 그대여 바람 속 티끌이 되어 그림자를 내리지 않는 연기처럼 떠돌아도 무심한 세상의 장천長天 마음껏 노닐다가 찬비 적셔 쉴 자리 그리우면 내 어깨 위에 내려오세요 그러다 언젠가는 뿌리 내려 자리 잡으면 외로움 다 버리고 깊게 살아요 그대 그때까지 잘 가요 *제1시집 에 수록 더보기
시간의 틈 / 도봉별곡 시간의 틈 / 도봉별곡 과거와 현재, 현재와 미래 사이 틈이 보였다 의아해서 그 사이로 호기심을 밀어 넣었다 지갑 속의 동그라미가 홀로그램 되어 눈길 따라 왔다 갔다 커졌다 작아졌다 방안을 떠돌아다니다 한 순간 폭발과 소멸이 있었다 한겨울의 오후에 깨어보니 꿈속의 꿈 몸은 떨었고 시간은 무심하다 생각과 생각 사이에 핀 한낱 뇌파의 변주變奏에 다름 아닌 것을 사람들은 초월적 신비라 할까 *제1시집 에 수록 더보기
시간 찾기 / 도봉별곡 시간 찾기 / 도봉별곡 시간은 시계 안에서 원칙을 지키며 또박또박 어김없이 걸어간다 시계 감옥 안에 갇혀 있지만 시계 밖으로 나오면 시간이 갖는 자유는 무한하다 시간과 빛이 만나 달리면 누가 더 빠를까 눈 없는 화가는 봤지만 시간을 보지 못하는 우리는 보고 싶은 것만 보는 자들 아닌가 그래 떠나자 시간 찾으러, 어렵다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은 더 큰 실패 성공의 방법을 알기는 쉬워도 실천은 어렵다네 실패의 방법을 알기는 어려워도 실천은 쉽다네 빅뱅으로 가는 길 머나먼 길, 창조의 순간을 만나려고 길을 떠났으나 발걸음 뗄 때마다 길은 지워지고 다시 못 올 길을 못숨 건 구도자처럼 기어이 가야 한다 참, 창조의 순간은 시간과 빛 공간이 하나였다지 아마, 그 순간을 만나면 뭐 할 건데 첫째 만나고 나서 생각.. 더보기
어깨 수술 전후 / 도봉별곡 어깨 수술 전후 / 도봉별곡 오른쪽 어깨를 움직이지 못할 만큼 아파 병원 순례 끝 마주친 의사 왈 MRI검사 결과 회전근개 파열입니다 모니터를 보며 근육의 색깔이 하얗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오십견 석회화건염 등은 물리치료 가능하나 선생님의 상태는 회전근 90%가 끊어졌고 10%만 붙어있어 수술요법 아니면 현재의 고통을 덜 수 있는 방법은 없습니다 확신에 찬 단호한 어조에 장사치 냄새 물씬 재수 옴 붙었네 좁은 어깨 하나 수술에 그것도 내시경으로 세 구멍 통해 수술하는데 비용은 내버려 두고 전신마취를 해야 한다고 글쎄 젊었을 적 야구와 테니스를 즐긴 어깨가 무슨 죄야 나이 들어 어깨 혹사한 적 없는데 남의 어깨 MRI 사진 들이대고 내 것인 양 거짓말을 하는 건 아닐까 국립대병원 아니면 대체로 수술을 권한.. 더보기
겨울나무 / 도봉별곡 겨울나무 / 도봉별곡 넉넉한 만추晩秋, 하늬바람 불면 햇살 참아내던 잎은 고개 떨군다 잎을 떨구는 것은 생살을 털어내는 아픔이 아니라 딱지를 뜯어 내 상처를 아물게 하는 일 바람에 이내 아무는 시름 잎을 떨구는 것은 바람과 잠시 헤어지고 긴 겨울 쉼을 준비하는 일 추위에 흔들리지 않는 안락한 긴 잠 잎을 떨구는 것은 봄을 품는 일 머지않아 다가올 된바람 맞이하는 일이다 나무, 언제나 그 자리에 있어 다시 돌아간다 *제1시집 에 수록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