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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작시

비목碑木 비목碑木 전라남도 영광군 영광읍 연성리 산1번지 의성 김씨 세장산世葬山 표지석 산죽나무 속에 숨어있고 300년의 역사를 묻은 곳 전설 속 패랭이 명당 오래 된 묘 40여기 10대조 묻혀있다 기막힌 가훈 둘 ‘남이 도모하는 일에 보증을 서지 말지어다, 일가를 이루고 싶으면 늦더라도 혼자의 힘으로 하라.‘ 이것을 지켰으나 부모님 섬기지 못했으니 남는 회한 부모님 산소 밑에 잘 생긴 주목 한 그루 심고 앞에 작은 편백나무 비목 세우고 육신은 태우고 평장으로 여기 묻어라 비문에는 ‘여기 보살의 세계를 꿈꾸며 세상과 하나 되기를 갈망했으나 이루지 못했으니 다시 환생할 것을 다짐한다 다만 때 묻은 거울조차 닦지 못하고 육신이 흩어짐을 아쉬워하노라‘ 유언의 실천은 남은 자의 몫이거늘 내 어찌 알랴 *첫 번째 시집 수록 더보기
새벽 예불禮佛 새벽 예불禮佛 동짓날 갓밝이 법고法鼓 소리 범종각을 품고 돌면 둥둥 둥둥 둥둥 소매는 어둠을 가르고 세상 아직 암담해 법고 소리로 맞는 아침 딱딱 따닥 사천왕이 실눈으로 웃고 금강역사가 눈 부릅뜨는 일주문 너머 동녘 밝아오면 댕댕댕 범종 소리에 날아오르는 비천상飛天像 번뇌가 지혜라 *갓밝이 : 동이 틀 무렵. 여명(黎明) *첫 번째 시집 수록 ​ 더보기
월요일 아침 신문 월요일 아침 신문 피 끓는 월요일 현관문 살짝 열고 아침 신문 맞으며 왜 아침에 일어나는가 를 생각한다 하루의 나를 완성하기 위하여, 혹은 일주일의 일생을 위하여? 거기에는 시가 있는 아침이 있고 노회한 풍운아의 회고록이 있으니 사실일까 자기변호의 장광설일까 시시하게 넘어가다 야구 얘기에 잠시 속상하다 축구에 즐겁다가 미국여자프로골프에 환호하는 아침 월요일에는 바쁠 게 없고 남산 가는 길은 왜 이리 더딘가 버스 안의 상념과 졸음 사이를 오가다가 아쉬울 거 하나 없어야 하는 오후 졸음을 애써 참으며 으레 나오는 청와대 기사는 넘어가고 경제장관의 잠꼬대 같은 기사는 더 이상 잃을 게 없어 상관없으니 나쁜 일상은 정치에 관심을 갖는 것 교황의 유머나 불교의 성역 없는 개혁, 기독교의 화합으로도 세상은 도통 바.. 더보기
시인을 위하여 시인을 위하여 내게는 딱 시 쓸 만큼의 산과 술과 세월이 있다 자유를 닮은 건강은 덤 아침마다 스스로 자라는 부끄러움과 함께 가지 않아도 되는 여유와 시간의 자유 속에서 세상을 향해 외치지 않아도 시는 그대로 좋다 내 편견과 갈애를 미워하지 않아도 따뜻한 등이면 남고 넘치며 뼈를 깎지 않아도 피를 토하지 않아도 뒷눈으로 세상을 보지 않아도 튼튼한 몸으로 쓰면 된다 아직 얼굴을 내민 적도 세상으로 내려온 적도 없이 스스로 존재한다는 신에게 기도하지 않아도 될 만큼의 확신과 그것을 위한 고집이 있을 만큼만 있다면 시인에게 시는 세상을 밝히는 태산 같은 등불이어야 한다 먼 길 함께 가는 도반 같은 친구여야 한다 첫 번째 시집 수록 더보기
고추잠자리의 꿈 고추잠자리의 꿈 큰 꿈 가지고 태어나 곡우에서 한로까지 만나는 절기들 긴 잠 깨어나 짝 만나 새끼 낳고 찬이슬에 마감해야 하는 일생 나의 일생은 인간에게 몇 년일까 궁금해지는 한여름밤 긴 낮의 해와 짧은 밤의 달에게 바람은 무슨 의미를 주는가 그 바람에 의지하여 몸 닮은 해까지 가본다 날개는 투명하여 열을 통과시키는 천상의 옷 이카루스의 날개는 높이 날지 못하니 해까지 가다가 스러지더라도 튼튼한 이빨은 고추 키운 가난한 할머니 드리고 배 주름은 쌍영총 미인의 치마에 무늬 졌고 날개는 다가올 눈꽃 처녀에게 준다면 다음 생은 사람으로 몸 바꿀 희망 가지고 오늘은 고추 키운 흙으로 돌아가리 *이카루스 : 그리스 신화 속 인물. 새의 깃털과 밀랍으로 날개를 만들어 붙이고 새처럼 나는 것이 신기하여 하늘 높이 올.. 더보기
오래된 거울 오래된 거울 오래된 거울을 보며 아집我執으로 사람들 상하게 하지 않았는지 오래된 주름은 누구의 책임일까 얼굴과 이별할 때 되지 않았는지 꿈속에서 나비였다가 고추잠자리로 변하고 호랑이였다가 산과 물도 되었으니 이만하면 잘 살았을까 내 얼굴처럼 익숙하게 미망迷妄의 자괴로 거울 닦으면 세상의 중심에 내가 없었듯 삶을 간섭했던 거울의 티끌과 마음속 묵은 때까지 닦여질까 한 번도 본 적 없는 망상妄想의 그림자가 아니었을까 반성하는 새벽 첫 번째 시집에 수록 더보기
시인의 섬 시인의 섬 시인의 밤은 너무 깊어 언제 새벽이 깰지 모른다 어떤 이는 고행이라 하고 신선놀음이라고도 하지만 정작 그는 시가 무엇인지도 모르고 맹물로 쓴다 시 한 편에 4만 원인 시절에 차라리 갯가에 나가 바지락을 캐겠다며 섬으로 간 시인은 바지락이 시가 된다는 것을 알았다 세월이 흐르니 바람도 시가 되어 불고 바다는 더 큰 시로 출렁거리더라 섬사람이야말로 완전한 시였더라 더보기
시인의 책상 시인의 책상 불암산 향해 열린 창문으로 천상의 노래 들리는 새벽 오늘은 왜 일어났는가를 생각하며 마주 앉는 오래된 책상 위에는 둥지처럼 역사와 문학과 과학과 철학과 종교와 음악이 졸고 시는 깨어있다 (역사) 토사구팽의 한신을 보며 믿지 말라 인간을 돈이 없어 불알 짤리는 사마천 잔인하여라 인간이여 나 같으면 목 짤리고 말지 조광조의 사약과 정약용의 17년은 원상회복 불가능 영역 (문학) 침묵의 즐거움 누리며 항해하는 넓은 바다에서 에이허브 선장의 ‘백경’ 잡을까 내친 김에 남극 가서 새우라도 잡아야 하나 옛적 바다였던 히말라야 가서 눈표범 잡을까 (과학, 우주물리학) 우주는 생성과 소멸을 반복한다는 가설들 빅뱅, 빅립, 빅프리즈, 빅크런치, 암흑물질, 암흑에너지 불가지론不可知論으로 무장하여 우주 끝까지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