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작시 썸네일형 리스트형 한가위에 취하다 / 道峰 김정남 한가위에 취하다 / 道峰 김정남 상긋거리며 불암산 뒤에서 떠오르는 한가위 붉은 신화를 닮아 단단한 희망을 떠올린다 기도는 날카로운 달빛이 되고 소원은 차가운 동그라미 젊어 근시였던 눈은 중년에 난시로 변하더니 세월 흘러 노안이 되었다 그 사이 따뜻해진 달은 하늘바다를 여유롭게 헤엄치며 파도 없는 중랑천에 그림자 찍는다 젊음과 늙음, 뫼비우스의 띠 되어 내 눈이 밖으로 나가 나를 보니 이지러진 눈동자 속에 작아진 달이 손짓한다 내가 달이 되어 밤새 구름과 노닐다가 돌아와 보니 현관에는 딸들과 사위들의 신발들 긴 동그라미의 축제가 한창이다 *제3시집 에 수록 더보기 함백산 비구름 / 道峰 김정남 함백산 비구름 / 道峰 김정남 눈물 같은 비가 내린다. 슬픈 사람이 빗소리를 좋아 한단다 비로 만든 집에서 살았다는 시인이 있다 이른 새벽, 진흙으로 바른 따뜻한 방바닥의 흙 내음 과 함께 내리는 새벽비의 향기에 취해본 적이 있는가 산사(山寺)에서 능선과 계곡을 넘나드는 운무와 더불어 하루 종일 요사채의 양철지붕 위에 내리는 비의 향기를 맡아본 적이 있는 가 1,573 미터의 함백산에서 비를 흠뻑 머금은 무거운 구름이 중함백을 넘지 못하고 천년 주목의 숲에 떨어질 때 그 비의 향기를 본 적이 있는가 하도 슬프고 외로워서 맞는 비가 눈물인지 빗물인지 모르는 비를 맞아본 적이 있는가 하느님이 흘리는 눈물이 비란다 비의 향기는 무슨 색일까 비워있는 색깔을 채우려 비가 내린다 빨간 꽃잎에 비가 내리면 비는 그 .. 더보기 시간 순례자의 길 / 道峰 김정남 시간 순례자의 길 / 道峰 김정남 내가 길이 되지 못했으니 어설픈 신화와 슬픈 전설을 찾아 한 번은 순례의 길을 떠나야 한다 순교를 위해 달이 눈물을 흘리는 어둡고 험한 길에서 죽을지언정 돌이킬 수 없는 회한을 건져주지 않는다 해도 모든 것은 마음이 그린 영상에 지나지 않다는 것을 알아버린 다음에야 내 순례의 마지막을 길 위에서 맞아야 했다 쓸데없는 무익함에 바친 정열에 찬사를 보내며 눈은 쏟아지고 모든 길이 모이며 새벽불이 하나둘 켜지는 광장 화형대 기둥과 땔감을 친구삼아 죽음을 대할 때 허기로 물든 민중은 잔인했으며 비로소 순례의 길을 고달프게 간 것을 후회하고는 결코 보여주지 않는 시간이 자신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시간 안에는 ‘나’가 없었다 멈추지 않는 것과 존재하는 것에 대해 무한한 평온을 .. 더보기 제주, 구름과 바람 / 道峰 김정남 제주, 구름과 바람 / 道峰 김정남 달리 할 짓이 없어 작성한 버킷리스트 100대 명산 중 89번을 메웠다 남은 11에 대한 걱정은 지웠다 고소공포증 핑계, 눈이 많이 내려서, 태풍이 와서 어쨌든 여러 번의 시도와 기회에도 오르지 못한 곳 많이 쌓인 무기한 항공마일리지를 죽기 전에 사용할 마음도 있어 이번에는 기필코 오르리라 마음 다잡으며 고소공포증을 이겨보려고 평생 앉지 않던 창가의 좌석을 원했다 비행기가 솟아오를 때 손바닥을 적시는 땀은 나의 인내 밖이다 잠시 동안 지수화풍 중 역시 바람의 힘이 강하다는 것을 느낀다 하늘에서 바라본 대지는 인위보다 자연의 힘이 더 셌다 추수가 끝난 논은 삭막하게 네모지고 밭은 황톳빛을 띠며 힘을 잃고 골프장은 노랗게 익어버렸다 바람이 조는지 바다는 잔잔하다 제주가 가.. 더보기 숨바꼭질 / 道峰 김정남 숨바꼭질 / 道峰 김정남 여태 내가 찾는 것이 무엇인지 궁금했다 언젠가는 우리들의 시대가 온다던 시절은 남대문시장과 대전과 광주로 나눴다 나의 기대는 남대문에 묻히고 아파트와 돈 욕망에 멈췄다 욕망을 식히라고 나비물을 뿌리는 순간 뇌리를 스치고 지나가는 각성 뒤늦은 기준은 누가 세우나 판자의 틈 사이로 비치는 빛기둥. 좁은 틈 사이로 뻗치는 빛살 한때 셀 수 없이 많은 학원들과 철거민이 쫓겨 온 10번 종점의 난민들이 혼재한 은행사거리는 강북에서 가장 비싼 아파트와 가장 낮은 집들이 혼재하여 오히려 아파트에 사는 애들이 역차별을 당했다면 믿어질 일은 아니나 큰딸의 말은 항상 정직하다 그래도 배꽃의 밤은 무심한 듯 거짓말을 닮아 황홀했다 한글고비古碑는 양반상놈의 차별 냄새를 풍겨 기분이 언짢았지만 두 겹의.. 더보기 무등산 1 / 道峰 김정남 무등산 1 / 道峰 김정남 무등산 입석대 억새바람 맞으며 하나는 눕고 하나는 서있다 오가는 길손마다 옛날 옛적엔 바다였을 거라고 보라고, 변하지 않는 것은 없는 거라며 5. 18사태가 민주항쟁으로 바뀌지 않았느냐며 빨갱이들이 민주투사로 바로 섰다고 그 아래 장발재는 규봉암 가는 길이 나있는데 자기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오리도 못가고 발병 난다고 말린다 부끄러운 마음으로 천왕봉 하늘을 올려다보니 서석대가 죄를 짓지 않을 자만 오라고 손짓하며 빛난다 이도저도 자신이 없어 증심사로 내려가 산문 밖에서 사천왕에게 사죄하고 내려와 5월이면 내리는 비 맞으며 구 도청 앞에서 무릎 끓고 광주천을 흐르는 부끄러움 앞에서 목을 놓았다 *제3시집 에 수록 더보기 남도로 간다, 지리산 혁명의 성지로, 다시 혁명을 위하여 / 道峰 김정남 남도로 간다, 지리산 혁명의 성지로, 다시 혁명을 위하여 / 道峰 김정남 젊은 날 울분을 산에다 털고 온 것을 미안해하는 마음과 다시 방랑을 시작하는 마음으로 불편한 몸을 가지고 남도길에 올랐다 지도는 필요 없다 머릿속은 온통 길과 높이와 바람으로 차있으니 그것으로 충분하다 구례시장에서 맛으로 절로 힘이 솟는 김치를 사면서 석 달 열흘은 끄떡없겠다는 용기를 짊어지고 성삼재 가는 버스를 기다렸다 노고단대피소에서 막걸리 한잔 뒤통수에 반골이 솟아 하지 마라면 더 하는 수상한 성격은 나도 모른다 가까운 길옆의 노고단은 가짜이니 진짜를 보러 멀리 오른다 임걸령 피아골삼거리에서 잠시 갈등 노루목 지나 삼도봉에서 물 한 모금 동판銅版 지도는 여전하다 중봉은 자주 지나쳤으나 이번은 그럴 수 없다 40년 전 남원 은선.. 더보기 끝없는 길 - 보들레르의 ‘파리의 우울’을 읽고 / 道峰 김정남 끝없는 길 - 보들레르의 ‘파리의 우울’을 읽고 / 道峰 김정남 나는 철학적 시인이고 소설가이고 극작가이고 싶다 단 평론가는 절대 되고 싶지 않고 번역가가 되기에는 온 길을 되돌아가기에 시간이 아깝고 난 홀로 가는 길 위의 인간이라 남의 글에는 관심이 없는 까닭이다 길이 거의 끝나는 곳에서 유령을 자처하는 자를 만났다 -왜 그렇게 누추하오 -게으르다오 -게으름과 누추는 같은 뜻이 아니오 -누추는 가난한 거고 게으름은 부자라서 그런 거라오 그대는 뭐하는 사람이며 왜 혼자 다니오 -철학자요 -철학은 몽상이며 탐욕스럽소 더구나 행동하지 않는 비겁자요 -추측만 할 뿐이오 -철학과 시인의 중간이 바람직하오 -늙어 어릿광대 같다는 생각도 하오 -고독하오 -고독은 때때로 향연과 같소 향연은 길처럼 끝이 없소 -길이 .. 더보기 이전 1 ··· 3 4 5 6 7 8 9 ··· 26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