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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작시

오사카 교토 관서의 풍물기행 / 道峰 김정남 오사카 교토 관서의 풍물기행 / 道峰 김정남 17자 하이쿠(俳句) 17자 센류(川柳) 31자 와카(和歌, 短歌) 를 겹치면 보이는 역사의 뒤안길 백제사百濟寺 뒤 많은 돌무덤 자리 잡고 새파란 이끼 눈물자국 아리다 나와 핏줄이 비슷하게 이어온 옛사람들 마음 지금은 안쓰럽다 시나브로 숨기는 사랑(忍戀) 딱 어울려 춤추는 낱말이다 시나브로 춤추는 사천왕사다 가난을 벗 삼아 고난을 친구 삼아 자신을 거친 바다에 홀로 뜬 섬으로 알고 섬을 의지하여 살아가노라면 얼마나 많은 밤에서 밤으로 마음을 한 곳으로 모으고 숨을 고르고 의심을 풀지 말고 의심의 덩어리를 깨기 위해 밤을 지새우며 낮을 견뎌야 할까 삶이여 놓치지 않고 붙잡기 위해 나는 오늘도 끝없는 길 위에 서서 잠이 든다 눅눅했던 66년 삶의 때가 조금씩 사라.. 더보기
엄마의 칼국수 / 道峰 김정남 엄마의 칼국수 / 道峰 김정남 피난민촌 친구의 집은 춥고 더웠다 친구의 어머니는 항상 다정했으며 누나는 예뻤고 두 분은 쉬지 않고 재봉틀을 돌리고 있었다 그미가 좋아했다던 이북의 수제비를 뜨지 않고 ‘국수를 좋아하면 건강하게 오래 산단다’ 쌀독에 쌀이 떨어졌다는 것을 에둘러 뜻한다는 것과 가난해서 미안하다는 것과 자식이 오래 살기를 바란다는 바람을 담은 엄마의 몸짓이다 그 아까운 것을 얻어먹고도 맛있다는 말도 건네지 못했던 바보는 훗날 어른이 되어서야 국수가 최고의 은유적 사랑이라는 것을 엄마는 최고의 시인이었음을 알았다 *제3시집 에 수록 더보기
비석을 만지면서 / 道峰 김정남 비석을 만지면서 / 道峰 김정남 작년에 본 박인환의 망우리 무덤은 흙과 잔디가 반반인 성지 같았다 비석을 쓰다듬는 왼손은 죽음의 장엄함을 통증을 이기지 못하는 오른손은 삶의 비장함으로 가득 찬 주머니에 넣고 있었다 지난밤 꿈에서 만난 박인환 백구두를 신고 명동백작이란 별명이 어울리지 않는 신설동 풍물시장 안에 부안이 고향이라는 장금이네 식당에서 소맥을 곁들인 아귀찜을 먹으며 밤을 태웠다 취하면서 세상은 넓어졌고 목에 낀 때를 벗기며 우리의 거칠고 악의적인 단어들은 취기로 비도덕적인 연금술을 거쳐 금이 되었고 때때로 꿈이기에 가능한 금강석이 되었다 ‘목마와 숙녀’에서는 트로이 목마가 되고 술병 속에 춤 그림자가 어른거렸다 환생한 듯 이름이 비슷한 박인희의 ‘얼굴’에서는 무욕의 복면을 썼고 ‘세월이 가면‘에.. 더보기
수상한 냄새 / 道峰 김정남 수상한 냄새 / 道峰 김정남 시절이 하도 수상하여 이사의 냄새에는 먼지만 들어있는 것이 아니다 버리려고 책 정리를 하다 서가 첫 칸의 철학과 문학과 양자론과 상대성이론에서는 향기가 났는데 맑았다 둘째 칸에서 피의 향기가 났다 수상하다 냄새를 찾다가 겨우 찾은 책 속에서 역사와 민주와 공화와 종교와 혁명에서 피비린내가 풍기고 백과사전에서 세상의 모든 냄새가 비벼져 삶의 냄새가 났다 거칠다 그 냄새를 완화할 코가 퇴행하고 닳아 궁금증을 버무렸더니 색은 왜 검정이 되고 빛은 흰색이 되는가를 밤새 현미경으로 궁리하다가 하현달은 먼 바다로 이동하는 하천에 얕게 잠기어 기울어가고 어둑새벽을 지나 날이 새고 깜박 졸다가 바람의 꿈이 결론이 되어 중랑천으로 가라앉는다 바람을 닮은 세상의 냄새는 역시 수상하다 *제3시집.. 더보기
시간여행 / 道峰 김정남 시간여행 / 道峰 김정남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을 따라 돌아오지 않는 여행을 떠난다 다시 돌아온 들 시간과 공간이 변하고 바람도 그때의 바람이 아닐 테니 그 자리는 없다 기억의 거짓말을 오류라거나 착각이라 하더라도 나 또한 변해있을 테니 모든 것이 왜 어떻게 변해 다시 만나도 이미 인연을 비우고 버려 새로운 만남이 된다 시간은 때때로 휘면서 흐르고 다시 떠난 자리로 돌아오는 길 위의 길이기에 끝을 모른다 *제3시집 에 수록 더보기
설악의 겨울교향곡 / 道峰 김정남 설악의 겨울교향곡 / 道峰 김정남 모처럼 좋은 소식 있어 함께 떠난 가족여행 주문진에서 복어쓸개주에 복어회 먹고 동해의 해를 닮은 얼굴로 가자 젊을 적 설악의 마음으로 추운 바람소리에 지레 겁먹고 설악동 앞에서 돌아서는데 서운함이 뒤돌아본다 서운함 속에는 봄여름가을겨울이 오고 가는 소리 봄꽃 피는 소리 여름 소낙비 내리는 소리 가을 단풍잎 떨어지는 소리 겨울 함박눈 내리는 소리 들어있고 아직 화채능선과 용아장성을 오르지 못한 것 과태료를 물지 않아도 걱정하지 않을 배포는 남아있다 구곡담계곡 쌍폭에서 떨어지는 마른 물소리 토왕성폭포 얼음 어는 소리 용아장성龍牙長城 이빨 가는 소리 백담사 앞 맑은 호수가 없어져 터진 한숨소리 오세암 만해卍海 선시 짓는 소리 영시암 목수 나무못 박는 소리 수렴동대피소 새벽밥 .. 더보기
대양의 노래 / 道峰 金定南 대양의 노래 / 道峰 金定南 지난 밤 꿈을 꾸었다. 앞에는 작은 삼각날개를, 뒤에 큰 삼각날개를 단 요트를 타고 대양의 노래를 부르며 나가는 꿈. 돌아올 마음은 담지 않고 바람만 잔뜩 담았다. 식량은 없으니 단식으로 버틸 것을 다짐한다. 해가 마중 나온다.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를 떠올리며 낚시는 포기하고 바이킹처럼 약탈해서 살아갈 마음은 전에도 한 적 없으니 지금도 전혀 없다. 돌아오긴 영 글렀다. 내 삶의 굴곡을 닮은 파도는 마음속에서 바람 따라 춤추고 어스름이 하늘을 물들이자 집 생각이 났으나 역시 물결무늬는 아름다운 것. 아! 작은딸 이름에 아름다운 물결무늬 ‘미渼’가 들어있지. 머리를 털어 생각을 잠재우고, 바다 속으로 해가 들어가고 마침내 북극성이 밤의 한가운데에 자리를 잡자 마젤란이나 바.. 더보기
메멘토 모리/Memento mori – 죽은 시인의 사회 1 / 道峰 김정남 메멘토 모리/Memento mori – 죽은 시인의 사회 1 / 道峰 김정남 너의 승리는 죽음을 먹이로 삼는다 죽음의 순간을 기억하라 너도 언젠가는 죽는다 사람이 어떻게 죽음을 맞이하는가를 알려고 온몸의 감각을 열어두어도 소리 없이 다가온다. 시간이 몸 안에 갇힌다는 얘기다 시간과 몸이 부딪치지 않을 때 죽음은 결코 오지 않는다 그러기 전에 너의 삶을 온전하게 살아라 삶을 남에게 뿌리까지 송두리째 맡기지 말고 섬 하나는 만들어놓고 당신이 세상의 주인이 되듯 의지하지 말고 살아라 시간이 몸 안에 갇혀 힘을 잃어가면서 시간의 파동이 두 개의 진자가 시간이 지나면 같아지듯 몸의 진동과 맞아 들어갈 때 비로소 죽음이 다가온다 시간을 무처럼 썰어 사고 팔 수 있다는 어리석음은 더 이상 겪지 마라 다만 공간이 휘면..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