時論, 시에서 계절과 사랑을 읽다

개 같은 가을이 / 최승자

도봉별곡 2021. 6. 5. 16:06

개 같은 가을이 / 최승자

개 같은 가을이 쳐들어 온다.

매독 같은 가을.

그리고 죽음은, 황혼 그 마비된

한 쪽 다리에 찾아온다.

모든 사물이 습기를 잃고

모든 길들의 경계선이 문드러진다.

레코드에 담긴 옛 가수의 목소리가 시들고

여보세요 죽선이 아니니 죽선이지 죽선아

전화선이 허공에서 수신인을 잃고

한번 떠나간 애인들은 꿈에도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그리고 그리고 괴어 있는 기억의 廢水(폐수)가

한없이 말 오줌 냄새를 풍기는 세월의 봉놋방에서

나는 부스스 죽었다 깨어난 목소리로 묻는다

어디 만큼 왔나 어디까지 가야

강물은 바다가 될 수 있을까.

최승자, 『이 時代의 사랑』, 문학과 지성사, 2013(초판 1981), 14쪽

시인이 가장 사랑하는 시인, 다수의 시인이 그 대상이 오르겠지만, 생존하는 시인 중 사랑받는 시인이라면, 최승자 시인이 가장 앞에 서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왜?”라고 묻는다면, 그것은 ‘시인의 시를 향한 갈망’ 때문일 것입니다. 우리 시대 최승자는 이름 그대로 시가 되었습니다. 최승자라는 이름을 대신해서, 시라고 읽어도 부족함이 없습니다. 따라서 ‘최승자의 시’가 아니라 최승자라고 읽어도 시가 내재하여 있는 것입니다.

이 시대의 사랑 저자최승자출판문학과지성사발매1981.09.01.

최승자 중에 제가 가장 사랑하는 시를 손꼽으라면, 오늘 소개한 「개 같은 가을이」입니다. 이 시의 압권은 첫 연에 있습니다. 화자는 말하죠. ‘개 같은 가을이 쳐들어 온다’고.

가을을 아름답고 풍요하다고 얘기하는 시인은 봤어도 ‘개 같은’이라는 수식어를 붙이는 시인은 단 한 번도 보지 못했습니다.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최승자가 가을에 ‘개 같은’이라는 수식어를 붙인 이후 누구도 사용할 수 없는 개념이 되었다고. ‘개 같다’는 의미의 강렬함이 가을에 붙일 수 있는 부정적 수식어의 자리를 완전히 지워 버렸습니다. 탄식을 넘어, 아름다움으로 느껴지는 저 수식어는 해석해서는 안 되는 언어로 바뀌어 버렸습니다.

저는 ‘감히’라는 단어를 가장 경멸하지만, 이 시만큼은 제가 감히 해석할 수 없다고 얘기하고 싶습니다. 왜냐하면, 해석하는 순간 의미의 파장이 해석 안쪽으로 한계 되기 때문입니다. '진심으로 좋은 시'는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느끼는 것입니다.

시를 사랑하는 분들이라면, 이 시집만큼은 꼭 사서 읽어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시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도 시를 사랑하게 만드는 시집, 그 단 한 권이 있다면, 저는 이 시집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시인이 툭툭 던지듯 발화하는 ‘날 언어’는 마음을 후비고 파죠. 시인의 묵직한 직유가 무거운 우리 마음을 화창한 가을날 수년간 묵은 이불의 먼지를 털 듯 가볍게 할 것입니다.

시 쓰는 주영헌 드림

[출처] (시 아침) 최승자 시인의 시 '개 같은 가을이'|작성자 주영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