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봉별곡 2021. 7. 1. 07:20

십이연기(7)

그리운 어머니.

요즘은 시간이 나면 동네에 사는 C씨를 만나 산책을 가곤 합니다. 그와 산책을 하면서 불교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소소한 행복입니다. 그는 오래 전 대학원에서 같이 불교공부를 한 동기로 저보다 8살이 많은 형입니다. 수업과 세미나에서 그와 나눈 격렬한 논쟁은 제 공부에 많은 도움이 되었지요. 둘이서 난해한 화엄을 이해하기 위해 함께 공부하며 토론하고 밤늦게 학교를 나올 때면 그는 늘 이렇게 말하곤 했습니다.

“호진아, 우리는 화엄학자로 살지 말고, 화엄행자로 살자.”

 

그는 석사학위를 마친 후, 학교를 훌쩍 떠났습니다. 자신은 학문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였지요. 사람들은 서울대 출신의 그가 박사과정을 포기한 것을 의아해했지만, 공부능력과 학문적 창의성이 반드시 일치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그는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능력과 욕망을 냉정하게 분별해 나아가고 물러날 때를 명확히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박사학위를 받은 여러 동학들보다도 불교를 더 적실하게 이해하고 삶에서 실천한 진짜 불교행자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불교는 자신의 욕망이 이끄는 대로 살기 위한 도구나 면죄부가 아니라, 지혜와 실천으로 자신과 주변을 밝혀나가라는 가르침이니까요. 그런 그가 제 생일날 문자로 이런 메시지를 보내왔습니다.

“사바세계에 함께 태어나줘서 고맙습니다.”

 

저는 속으로 ‘덕분에 사바세계가 부처님의 세계가 되었습니다.’라고 되뇌었습니다.

 

십이연기의 지분(支分)

어머니, 지난 시간에는 십이연기 지분 가운데 ‘촉(觸)’과 ‘육처(六處)’에 대해서 공부해보았습니다. 오늘은 ‘명색(名色)’과 ‘식(識)’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9. 명색(名色)

 

“비구들이여, 명색이란 무엇인가? 명은 수(受), 상(想), 사(思), 촉(觸), 작의(作意)이다. 색은 사대(四大)와 사대를 취한 색을 말한다.”

 

명색(名色)은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흔히 사용하는 익숙한 말입니다. 명색은 주로 어떤 사람의 직업이나 사회적 위치를 가리키기도 하고, 대외적으로 표방하는 명분을 말하기도 하지요. ‘명색이 작가인데 글을 전혀 쓰지 않는다.’라든지 ‘이번 사업은 명색만 그럴 듯하고 실질적 이익은 없어.’와 같이 주로 부정적 맥락에서 사용됩니다. 이때 명색은 이름(名)에 중점을 둔 단어입니다.

 

십이연기 가운데에도 명색이 등장합니다. 이때 명색은 산스크리트인 나마루빠(namarupa)를 한자로 번역한 것인데, 이름이란 뜻을 지닌 나마(nama)와 물질이란 의미의 루빠(rupa)가 결합한 단어입니다. 명색이란 한자의 뜻만 새겨서는 십이연기의 명색을 알기 힘든 이유입니다. 그러나 산스크리트 어원을 안다고 해도 명색이 이해되지 않기는 매한가지입니다. ‘이름과 물질’이라니? 도대체 무슨 뜻인지 여전히 감이 잡히지 않으실 거예요. 명색은 불교학파와 논사에 따라 워낙 해석이 분분한 관계로 깊이 파고들면 끝이 없지만 기본적으로 알아야 할 핵심에 대해서만 이야기하고 넘어가도 큰 문제는 없으리라 봅니다.

 

어머니, 비록 명색(名色)이란 말은 낯설지 몰라도 색(色)이란 용어는 워낙 유명하니까 그 의미를 짐작해볼 수 있을 겁니다. 《반야심경》의 ‘색즉시공 공즉시색’은 불자가 아닌 일반인들도 심심치 않게 사용하고 있을 만큼 유명한 구절입니다. 물론 그 뜻을 제대로 알고 쓰는 경우는 거의 없지만요.

 

십이연기의 지분인 명색에서 색은 바로 《반야심경》 구절에 나오는 그 색과 같은 의미입니다. 색은 바로 인간을 구성하는 다섯 요소인 색, 수, 상, 행, 식의 오온(五蘊) 가운데 하나입니다. 색은 바로 지(地), 수(水), 화(火), 풍(風)의 사대(四大)로 이루어진 우리의 몸뚱어리입니다. 여기서 언급하고 지나가야 할 것은 지수화풍을 말 그대로 땅, 물, 불, 바람 등의 물질적 원소로 이해해선 곤란하다는 점입니다. 불교에서 말하는 지수화풍이란 단단한 성질, 흐르고 결합하는 성질, 따뜻한 성질, 이동하는 성질을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말입니다. 우리의 육신은 손톱과 뼈와 같은 단단한 지(地)의 성질을 지니고 있고, 혈액과 침은 결합하고 흐르는 수(水)의 성질을, 체온은 따뜻한 화(火)의 성질을, 들숨과 날숨은 이동하는 풍(風)의 성질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인간의 몸이 사대로 이루어졌다는 것은 바로 인간의 몸이 지수화풍의 네 가지 성격으로 분류가 가능하다는 것이지 실제로 지수화풍이란 물질적 실체가 신체를 구성하고 있다는 뜻이 아닙니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지수화풍의 사대를 물질의 궁극적 근원이자 신체를 이루는 실체로서 이해한 불교도들도 있었습니다. 경전의 말에만 얽매여서 가르침의 근본을 잊고 이론에만 몰두한 결과이지요. 만약 지수화풍이 실체라면 지수화풍으로 이루어진 우리의 몸뚱어리도 실체가 되어야겠지요. 이런 식으로 연결해나가다 보면 부처님이 애초에 나라고 할 만한 것이 없다는 무아(無我)의 근본가르침을 배반하는 결과를 낳게 됩니다. 그래서 《반야심경》에서는 명색만 불교도인 이들에게 ‘색즉시공’이라는 말로 따끔하게 혼을 내고 있는 것이지요. 즉 인간의 신체는 지수화풍이란 실체적 물질들의 구성이 아니라 이러한 네 가지 성질이 연기적으로 결합해 있으니 공하다고 말하는 것이 색즉시공의 의미입니다.

 

그렇다면 명(名)은 무엇일까요? 《반야심경》의 색즉시공 다음에 나오는 구절을 떠올려보시면 됩니다. 색에 대해서 공하다고 말하고 나서, ‘수, 상, 행, 식도 이와 같다.’라고 말하지요. 수(受), 상(想), 행(行), 식(識)은 바로 인간의 감정이나 인식의 측면을 가리킵니다. 색과 수, 상, 행, 식의 다섯 가지를 하나로 묶어서 우리는 오온(五蘊)이라고 부릅니다. 즉 오온은 인간을 신체적 측면과 정신적 측면으로 나누는 불교적 분류법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이제 십이연기 중 명색은 바로 오온을 의미하고, 이는 바로 몸과 마음을 통틀어 나타내는 말이란 것을 이해하셨을 겁니다.

 

10. 식(識)

 

“비구들이여, 식(識)이란 무엇인가? 식은 여섯으로 안식, 이식, 비식, 설식, 신식, 의식이다.”

 

식(識)은 산스크리트 비즈냐나(vijnana)를 번역한 말로 분별하고 구분해서 안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식과 유사한 개념으로는 심(心)과 의(意)가 있습니다. 이처럼 맥락에 따라서는 식을 마음이라 부르는 경우가 왕왕 있지요. ‘마음이 곧 식’이라는 표현에서 불교에서 식이 매우 중요한 개념으로 다루어져 왔음을 알 수 있습니다.

 

특히 대승불교에서 중관사상과 양대 산맥을 이루는 유식사상(唯識思想)은 초기불교의 여섯 가지 식(識)의 작용에다 일곱 번째 식 말라식과 여덟 번째 식 알라야식을 추가해서 발전된 사상이지요. 중국불교사에서는 여기에 또 하나를 더해 아홉 번째 식 아말라식이 있다고 주장하는 학파도 등장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다양한 식의 개념은 중관의 공(空)사상을 그 기반에 두어서 실체로서의 식을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님에 주의할 필요가 있습니다. 만약 식을 육신이 죽어도 남아서 윤회하는 영혼의 개념으로 파악하면 명색은 불자인데 믿는 바는 힌두교도나 기독교인과 다르지 않는 우스운 상황이 연출되는 것이지요. 실제로 식에 대한 오해는 부처님이 직접 가르치셨던 당시에도 광범위해서 초기경전에도 이와 관련된 일화가 나타납니다. 어떤 비구가 식이 오온 가운데 가장 핵심적이며 나를 이루는 실체라고 다른 이에게 가르친 일이 있었는데 그 사실을 안 석가모니 부처님이 그 비구를 불러 ‘이 바보같은 비구여! 내가 언제 식이 ’나‘라고 가르쳤는가?’라고 꾸짖는 장면이 등장할 정도입니다.

 

처음 인용한 경전에서는 식은 오직 여섯 종류가 있다고 했습니다. 바로 안식, 이식, 비식, 설식, 신식, 의식이지요. 어머니, 지난 시간에 공부했던 십이연기의 ‘육처’가 기억이 나시나요? 안, 이, 비, 설, 신, 의라는 감각기관인 ‘육처’와 거기에 대응하는 색, 성, 향, 미, 촉, 법이란 ‘여섯 대상’이 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바로 우리의 감각기관인 육처와 그 대상인 육경(六境)이 만나면서 여섯 가지 식(識)이 발생하게 됩니다. 대표적으로 눈이라는 감각기관과 그것의 대상이 되는 사물의 색깔이나 형태가 만나서 안식(眼識)이라는 인식작용이 일어나는 것이지요. 안식으로 인해 우리는 그 사물이 둥글거나 푸른색을 띤 것임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코로 냄새를 맡아서 그것이 향기롭다고 아는 것은 비식(鼻識)이겠지요. 이와 같은 여섯 가지의 분별적 인식작용을 육식(六識)이라 부릅니다. 그렇다면 육처와 육경, 그리고 육식이 서로 화합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이 세 조건의 만남을 지난 시간에 삼사화합인 ‘촉(觸)’이라고 배웠습니다. 이처럼 십이연기란 각 지분이 상호조건이 되어서 노사의 고통이 발생하거나 소멸하는 연기의 실상을 보여주는 것임을 잊지 않으시길 바랍니다.

 

어머니, 오늘은 명색과 식에 대해서 공부해보았습니다. 늘 건강하시고 마음을 잘 가꾸는 일상이 되길 아들이 기원합니다.

 

강 호 진

한양대 법대 졸업, 동국대 불교학과 석사, 박사과정 수료

저서 『10대와 통하는 불교』, 『10대와 통하는 사찰 벽화이야기』 외

[출처] ‘명색(名色)’과 ‘식(識)’|작성자 불교기초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