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봉별곡 2021. 8. 8. 12:04

연기/무아/공

 

초기불교든, 아비달마든, 중관학이든, 유식이든, 화엄이든 연기의 본질이 달라질 수는 없습니다. 연기의 핵심은 '의존성'입니다.

 

초기불교와 아비달마의 12지연기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삶과 죽음을 되풀이 하는 중생의 삶에 대한 연기적 조망입니다.

 

소위 소승은 12지연기의 경우 연기관계가 일방향(一方向)입니다.

 

'무명 → 행 ... 명색 → 육입 → ...'에서 보듯이... 소위 대승인 반야사상이나 중관학의 경우 연기관계가 쌍방향(雙方向)입니다. '눈 ↔ 시각대상', '긴 것 ↔ 짧은 것', '나 ↔ 세계'에서 보듯이...

그러나 소승과 대승, 양대(兩大) 사상의 연기사상이 달라진 것이 아닙니다. 초기불교의 경우, 시간의 흐름에 따라 불가역적으로 살아가는 중생(생명체)에 대해 연기를 적용했기에 일방향의 연기로 표현이 된 것입니다.

 

중관학의 경우 '눈과 시각대상', '긴 것과 짧은 것' 등 시간적으로 공존하는 사태에 대해 연기를 적용하기에 쌍방향의 연기로 표현이 됩니다.

 

연기법이 달라진 것이 아니라 <연기를 적용하는 대상>이 달라진 것일 뿐입니다.

 

초기불교와 아비달마에서는 아(我)에 대해 연기를 적용했고 반야와 중관 등 대승불교에서는 법(法)에 대해 연기를 적용한 것입니다.

 

더 간단히 정리하면, 초기불교의 연기관의 경우 연기에 대한 존재론적 적용이고 중관학, 반야학의 연기관의 경우 연기에 대한 인식론적 적용입니다.

존재론적 조망에서는 원인 때문에 결과가 생하지만, 거꾸로 결과 때문에 원인이 있을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인식론적 조망에서는 원인 때문에 결과가 있고, 거꾸로 결과 때문에 원인이 규정됩니다. 예를 들어, 진흙이 원인이 되어 항아리가 생기지만, 항아리가 생겨야 과거의 진흙이 항아리 재료(원인)라고 규정이 됩니다.

 

항아리 공장에 진흙이 아무리 많이 쌓여 있어도, 나중에 그 흙으로 기와를 만들면 그 진흙은 항아리 재료가 아니라, 기와 재료로 정체가 바뀝니다. 즉, 결과가 발생한 다음에 원인의 정체가 규정이 되는 것입니다. 이런 논리에 대해서는 <중론> 도처에서 상세히 설명합니다.

 

따라서 초기불교와 중관학의 경우 연기설이 달라진 것이 아니라, 연기를 적용하는 대상이 달라진 것일 뿐입니다.

 

초기불교의 경우 시간의 흐름에 따라 생로병사한 후 다시 윤회전생하는 '자아'에 대해 연기를 적용했기에 12연기설의 가르침으로 표현된 것이며, 중관, 반야학의 경우 '눈과 시각대상', '긴 것과 짧은 것', '진흙과 항아리'와 같은 '법'에 대해 연기를 적용했기에 쌍방향의 연기를 설하는 법공(法空)의 사상으로 표출된 것입니다.

 

과거 동아시아에서 소승은 아공, 대승은 아공과 함께 법공을 가르친다고 대승과 소승을 구분한 것이 모두 옳습니다.

 

(물론 아공을 제대로 체득하면 법공은 저절로 체득된다고 보는 것이 중관귀류논증파 월칭의 연기관입니다.)

유식학의 경우 아뢰야연기론을 통해 연기를 가르칩니다. 이는 초기불교, 부파불교의 12연기설과 큰 차이가 없습니다. 다만 윤회에 대해 보다 구체적으로 설명하기 위해 아뢰야식을 도입한 것일 뿐입니다.

대승기신론의 여래장사상 등의 연기설에서는 물과 파도의 비유로 연기를 가르칩니다.

 

심환멸문으로 규정되는 물은 중관학의 공성에 해당하고 심유전문으로 규정되는 파도는 유식학에서 가르치는 마음이 창출해 낸 만법에 해당합니다. 심환멸문은 연멸(緣滅)에 해당하고, 심유전문은 연생(緣生)에 해당합니다. 따라서 여래장사상의 연기설은 연기 그 자체에 대한 설명이 아니라, 연기에 대한 Meta的 조망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화엄의 법계연기는 중관학, 반야학의 법공 사상과 맥을 같이 합니다. 예를 들어 '나'는 '학생'에 대해서는 '교수'이지만, '아들'에 대해서는 '아버지'이고 '부인'에 대해서는 '남편'이고 '배고픈 사자'에 대해서는 '고기덩어리'이고 우리 집의 '바퀴벌레'에 애해서는 '당장 밟아 죽일 수 있는 괴물'입니다.

 

또, 적군에 대해서는 '무기'이고 화학자가 볼 때에는 '탄소, 수소, 산소, 질소, 칼슘의 복합체'일 뿐인 '물질'입니다.

 

나의 진정한 정체는 교수도 아니고, 아버지도 아니고, 남편도 아니고, 고기덩어리도 아니고..... 물질도 아닙니다. 다시 말해 나의 실체는 공합니다. 이는 반야, 중관에서 가르치는 절대부정의 조망입니다.

 

그러나 거꾸로 보면 나는 아버지가 될 수도 있고, 남편이 될 수도 있고 ... 물질이 될 수도 있습니다.

 

다시 말해 나는 모든 것이 될 수 있습니다. 이는 화엄에서 가르치는 절대긍정의 조망으로 '일즉일체'라고 표현됩니다.

 

'나'라는 '하나'가 곧 '모든 것'에 해당한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학생'에 대해서는 나는 반드시 '교수'입니다. 또, '아들'에 대해서는 나는 반드시 '아버지'입니다. 마치 '긴 것'이 있어야 '짧은 것'이라는 생각이 발생 가능하듯이 교수나 아버지라는 규정 모두 원래 그런 것이 아니라, 상대방에 맞추어 연기하는 것입니다.

화엄에서는 모든 것이 될 수 있다는 절대긍정을 통해 연기법의 '연멸(緣滅)'을 가르치고 반야, 중관에서는 그 어떤 것도 아니라는 절대부정을 통해 연기법의 '연멸(緣滅)'을 가르칩니다.

화엄의 법계연기는 사사무애연기라고 합니다. 사사무애연기는 일즉일체, 일체즉일(다즉일)로 표현됩니다. 풀이한다면, '하나가 곧 무한이요, 무한이 곧 하나다'라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위에서 교수, 학생 등등의 예에서 보듯이 이 역시 의존성이라는 연기의 법칙에서 도출된 명제이며 연멸(緣滅)인 공(空)의 경지를 절대긍정의 표현을 통해 나타낸 것일 뿐입니다.

어떤 개념이든 곰곰이 생각하면, 그 테두리가 무너집니다. 이것이 화엄의 법계연기입니다.

반야심경의 '색즉시공 ... 수상행식 역부여시'의 경문을 이용하여 반야중관과 화엄과 선불교의 연기가 모두 한 맛이라는 점에 대해 설명해 보겠습니다.

 

불교에서는 색, 수, 상, 행, 식의 오온을 말하는데 오온 각각에 대한 이해가 쉽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오온 각각이 분리되어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눈 앞에 볼펜 한 자루를 들 때, 그것은 색이기도 하지만, (불고불락의) 수이기도 하고, (볼펜이라는 이름이 붙은) 상이기도 하고,  (나의 주의력을 집중하는) 행이기도 하고 (나의 안식에 나타난) 식이기도 합니다.

 

비단 볼펜뿐만 아니라 이렇게 세상만물은 색수상행식의 오온을 모두 갖추고 있습니다.

 

이는 일즉일체의 진리로 <화엄의 사사무애 연기>입니다.

 

또, 반야심경에서 색즉시공, 공즉시색 ... 수상행식 역부여시 라고 가르치는데 이는 다음과 같이 정리됩니다.

 

색 = 공

수 = 공

상 = 공

행 = 공

식 = 공

 

이는 <반야중관의 연기관>입니다.

 

그런데 수학, 또는 산수에서는 다음과 같이 가르칩니다.

A = B

C = B

-------

∴ A = C

따라서

색 = 수 = 상 = 행 = 식

이 됩니다.

 

즉, 물질이 느낌이고, 느낌이 생각이고, 생각이 의지이고, 의지가 마음이며, 물질이 마음이고 ....

이는 언어가 무너진 화두, 공안의 세계로 <선문답의 연기>입니다.

 

언어가 무너진 경지는 별다른 것이 아니라, 우리가 체험하는 지금 이 순간의 세상 그대로에 대한 조망일 뿐입니다.

 

색이 수이고, 수가 상이고, 상이 행이고, 행이 식이고, 식이 색이고, 색이 상이고, 상이 식이고....

마치 부처님이 마른 똥막대기이고, 달마스님이 인도에서 중국에 들어오신 뜻이 '정전백수자'이듯이....

 

생각이 무너지고, 언어가 무너진 것이 이 세상의 참 모습니다.

 

생각이 무너지기에, 숭산스님께서 가르치신 '오직 모를 뿐(Only Don't know)'인 자리입니다.

또, 간화선의 경우 화두를 들고, 생각을 막습니다. 생각의 출구인 4구 모두를 막습니다. 이는 중도(中道) 자리에 머무르는 수행이며, 중도는 그대로 연기입니다. 화두를 들고 있는 자리는 사구분별이 모두 끊어진 <연멸(緣滅)>의 자리입니다. 이것이 <간화선의 연기성>입니다.

 

따라서 간화선의 수행방식은 초기불교의 사상적 중도를 체득하는 여법한 수행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더 설명하자면, 책을 한 권 이상 써야 할 겁니다.

이상 제 설명이 도움이 되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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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제가 공부해 나가는 것은 이런 골격으로 해가고 있습니다.

┃12지연기---업감연기--유식/중관----여래장연기---법계연기

┃나를 포함한 일체를 어떻게 분류하는가?

┃근본불교에서는 12처 18계 오온의 속성은 모두 변한다.그래서 벗어날수 있는 길은 12연기를 통해 무아를 체득한다.

┃부파불교는 업감연기인데 일체 모든 존재를 오온 12처 18계로 보지 않고 5위 75법으로 본다.

┃대승불교/ 초기대승은 법공사상

┃ 중관사상에서는 존재를 8가지로 본다. 8불중도

┃ 아뢰야연기/ 5위 100법으로 본다

┃ 여래장연기

┃법계연기는 여래장연기에서 무명의 실체가 파악이 안되서 법계연기가 나온다고 하는데 그러면 여기서 법계연기는 어떻게 파악을 해야하는지

┃가르침을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힌두교 성자들은 아뜨만을 공과 같은 것으로 본다고 하는데, 부처님께서는 왜 아뜨만을 부정하셨을까?

 

현대 힌두교에서는 부처님을 비쉬누 신의 9번째 화신으로 간주합니다.

 

또 현대 인도의 불교학자들은 불교를 힌두사상의 일부로 간주합니다.

 

일본의 불교학자인 나까무라 하지메 같은 분도 아뜨만 사상을 무아와 같은 것으로 해석한 바 있습니다.

 

샹카라의 힌두신학의 기원은 대승불교의 중관, 유식 사상에 있습니다. 샹카라의 스승의 스승은 가우다빠다란 사람인데 불교 승려였다가 힌두교로 개종한 사람으로 대승불교철학을 힌두신학으로 변형시켰으며, 샹카라가 이를 그대로 계승합니다.

 

반야바라밀다의 무분별을 체험한 자에게 도덕적 윤리적 실천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물으셨습니다.

결론을 먼저 말씀드리면, 어떤 불교수행자가 체험한 무분별이 진정한 반야바라밀다의 무분별이라면 그의 일거수일투족은 도덕적으로도 지극히 선할 겁니다.

 

진정한 반야바라밀다를 체득한 분은 남이 보기에도 도덕적 윤리적 실천에 어긋나는 행동을 하지 않아야 합니다. 팔정도의 삶을 산다고 볼 수 있습니다.

 

부처님 당신을 포함하여 부처님 당시의 모든 수행자들이 그랬습니다.

그런데 후대의 동아시아 불교계, 또 과거의 티베트 불교계에서도 반야바라밀다를 수행하던 분들 가운데 '막행막식'의 행동을 보이는 수행자가 가끔 나타났습니다. 단적으로 말하면 이들의 행동은 반야바라밀다가 아니라, 공병(空病, 또는 惡取空, 空見)의 증상일 뿐입니다.

 

아공(我空)을 도외시 하고 법공(法空)만을 추구할 때, 공병에 빠져 가치판단을 상실하게 됩니다. 감성적 번뇌의 정화없이 인지적 번뇌의 정화만 추구했기 때문입니다. 이런 분의 경우 악행을 하고도 죄책감조차 못 느낄 수 있습니다.

용수 보살께서는 공을 공부하다가 공견에 빠진 사람의 경우, "그 어떤 부처님께서 출현하셔도 구제불능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중론, 제13장 관행품 제9게). 그렇게 공견, 공병, 악취공은 무섭습니다. 부처님께서도 "공견에 빠지느니 차라리 수미산 같은 아견을 갖는 게 낫다"고 가르치십니다(가섭소문경). 불교의 공 사상을 잘못 공부하여 '가치판단이 상실된 막행막식의 수행자'가 될 바에야

"수미산 같은 아상(我相)을 갖고 잘난 체 하며 선행(善行)을 하는 외도(外道)로 사는 것이 차라리 낫다."는 준엄한 가르침입니다.

반야바라밀다를 올바로 파악한 분의 경우 지극히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사람이 됩니다. 유물론적 세계관, 허무주의적 인생관의 폐해가 심각한 이 시대에 '참나', '진여'라는 용어로 불교를 가르치는 것은 시의적절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여래장 사상도 그렇지만, 대승불교 사상 중에는 우빠니샤드의 아뜨만 사상(有我論)과 유사해 보이는 사상들이 많이 있습니다. 불성, 진아(眞我), 열반의 사덕(四德)인 상락아정(常樂我淨) 등등....

교수님 말씀하신 대로 이 모든 사상들에 대해 유아론이라고 비판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말과 글로 표현된 불교사상'가운데 절대로 비판되지 않는 사상을 제시할 수도 없는 노릇입니다.

 

초기불전 도처에서 부처님께서 무아(無我)를 설하시지만 무아조차 부정하며 침묵을 지키시는 구절도 발견됩니다. 또, 초기불교의 삼법인에서 제행무상을 가르치지만 <중론>에서는 '무상이랄 것도 없다'고 비판하기도 합니다.

 

그 어떤 불교사상이라고 하더라도 그것이 언어로 표현된 이상 양면성을 갖습니다. 모든 불교사상은 대부분 궁극적 진리로 인도하는 좋은 역할을 하지만 잘못 이해할 경우 불교와 아무 관계가 없는 도그마가 될 뿐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그 어떤 언어표현이라고 하더라도 상황과 교화대상에 맞게 제대로 쓰일 경우 진정한 불교로 인도하는 가르침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승만경>과 같은 여래장 계통의 경전에서 유아론적인 표현을 사용하고 있지만 이 역시 해석 여부에 따라 진정한 불교로 인도하는 가르침의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보리도차제론>의 저자인 티베트 쫑카빠 스님의 경우 그 어떤 불전의 그 어떤 사상이라고 하더라도

긍정적으로 수용하여 정법으로 해석해냅니다. 불전의 가르침을 해석하는 저의 접근 방식 역시 이와 마찬가지입니다.

여래장 사상은 무아와 공 사상이 널리 퍼진 후 이에 대해 허무주의적으로 이해하는 사람들이 많아지자 이들을 제도하기 위한 목적에서 창출된 것이라고 합니다.

우빠니샤드에서도 유아론을 얘기하고 불교의 여래장사상도 유아론과 유사하지만 우빠니샤드의 경우 만고불변 유아론만 주장하는 반면, 무아와 유아를 오가면서 이랬다, 저랬다 하는 데 불교의 특징이 있습니다. 불교의 가르침은 도그마가 아니라, 방편시설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선 어록에서는 부처님께서 45년간 '횡야설 수야설' 하셨다고 노래합니다. 횡으로 설하시기도 하고 수직으로 설하시기도 하셨다는 말입니다. 무아든, 공이든 모두 대기설법, 방편시설입니다. 유아와 자성을 주장하면, 무아와 공을 설하시지만 무아와 공에 집착하면 이를 다시 파기하십니다. 여래장 사상은 무아와 공에 대한 집착으로 야기된 허무주의적 불교관을 타파하기 위한 대(對)-시대적(時代的) 방편시설로 보아야 할 것입니다. 여래장사상을 체계적으로 설명하는 <보성론> 도입부에서도 이런 식으로 설명합니다.

여래장 사상을 방편이 아니라 어떤 실체로 이해하는 수행자에 대해서 강 교수님의 지적은 구구절절 옳은 말씀입니다. 그러나 허무주의적 불교관에 빠진 사람의 경우 여래장 사상은 묘약과 같이 쓰일 수 있다고 봅니다.

 

부처님께서 자아의 크기에 대해 겨자씨나 허공에 비유하신 경문을 아직 본 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무아를 주장하신 것도 아닙니다. 부처님께서는 자아의 존재에 대해 대부분 무아라고 설하셨지만,

어느 경우에는 무아도 유아도 부인하며 침묵을 지키신 후 연기를 설하시기도 합니다.

 

침묵 후의 설법은 다음과 같습니다.

 

'무아라고 설하면 단견에 빠지고 유아라고 설하면 상견에 빠진다. 여래는 단견과 상견의 양 극단을 떠나 중도에 의거하여 설법한다. 이것이 있음에 저것이 있고 .....(12연기설)"

 

윤회에 대한 깊은 통찰은 불교의 발생과 함께 시작되었다는 이론은 초기불교 전문가인 영국 옥스포드 대학의 곰브리치 교수의 주장입니다. 인도종교 문헌을 뒤져보면 윤회에 대한 체계적인 논의는 불교의 발생과 함께 시작합니다. 어제 법보신문을 보니까 스위스 로잔 대학의 브롱코스트 역시

'윤회설의 베다, 우빠니샤드 기원' 이론을 부정하더군요.

인도철학 개론서를 보면 일반적으로 윤회설의 기원에 대해 말할 때 우빠니샤드의 5화 2도설를 들먹입니다.

 

사람이 죽은 후 화장하면 그 영혼은 하늘로 올라가는데 빛을 따라 천상에 태어나든가 조도에 들어가 윤회한다고 합니다. 이것이 2도(道)입니다. 조도에 들어가 윤회하는 경우 ① 달에 들어가 (月入), ② 비가 되어 내려옴 (降雨), ③ 食物(곡식)의 씨앗이 되어, ④ 남자가 먹으면 정자(精子)가 되고, ⑤여자와 잉태하여 태어나서 자란다.

 

그러나 이것은 '신화적 윤회관'입니다.

불교와 공존하던 육사외도 가운데 일부 역시 윤회를 얘기하지만, 그 설명이 체계적이지는 못했습니다. 그러나 불전에서는 무아설과 업설에 근거하여 윤회를 설명합니다. 부처님께서 누군가의 모습이나 행위나 과보를 보고 이를 그의 전생과 연관시켜 설명해 주는 일화가 초기불전 도처에서 발견됩니다.

 

저의 경우 현대 인도사상가 가운데 가장 좋아하는 사람이 크리슈타 무르티입니다. 가장 깔끔하고 건전합니다. 대학 재학시절 크리슈나무르티의 저술 가운데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번역된 '아는 것으로부터의 자유'를 읽은 이후 오랜 동안 심취한 적이 있습니다.

 

도스토예프스키, 조각가 권진규, 크리슈나무르티, 소설가 오영수, 청마 유치환 등등 ....이런 분들이 젊은 시절 제가 심취했던 예술가, 저술가, 문인들입니다. 초기불교를 가르치는 경주 동국대 불교학과 안양규 교수님 역시 크리슈나 무르티 전문가이셨습니다. 그나마 현대인도사상가 가운데 불교와 가장 흡사한 방식으로 가르침을 펴는 분이 크리슈나 무르티라고 생각합니다. 제도화 된 종교 모두를 부정하는 크리슈나 무르티였기에 제도권 불교, 형식화 된 불교수행에 대해서는 비판적이었지만

석가모니 부처님과 부처님의 가르침에 대해서는 항상 존중하고 흠모했다고 합니다.

 

어떤 특수한 상황에 처할 때면, '이럴 때에는 부처님께서는 어떻게 하셨는지?"라고 불교를 잘 아는 분들께 여쭙곤 했다고 합니다. '잎새가 다 떨어진 마른 겨울나무 가지'를 가장 아름답다고 보았던 감성의 성자 크리슈나 무르티였기에 '시집'도 남겼다고 하지요. 사당동 제 서가 어딘가에 크리슈나무르티의 책들이 잔뜩 꽂혀있을 겁니다.

 

불교의 묵조선의 방식과 크리슈타 무르티의 방식을 비교하는 논문이 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강 교수님께서 인용하신 크리슈나무르티의 오도경험담에 대해 정답을 말할 수는 없겠지만, 짐작컨대 그 글만 보아서는 강 교수님 말씀대로 우빠니샤드의 범아일여의 체험과 흡사한 것 같습니다.

 

불교적으로는 삼계 가운데 무색계의 삼매인 식무변처정(識無邊處定)이 우빠니샤드의 범아일여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주관인 나의 의식(識)이 무한히 펼쳐진 경지(無邊)에 대한 체험(定: 삼매)입니다. 이는 나의 자아가 우주에 편재함을 체험한 것으로 범아일여(梵我一如)의 경지라고 볼 수도 있을 겁니다.

 

이런 체험은 삼매에서 일어나면 다시 사라지기에 윤회 내의 체험일 뿐입니다. 그러나 불교의 깨달음은 어떤 체험이 아닙니다. 범아일여의 체험, 식무변처정의 체험의 경우 그 삼매의 상태에서 나오면 그 체험은 없어지고 다시 일상 생활로 돌아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크리슈나 무르티의 오도체험 역시 그 날 그 순간, 또는 다음에 분위기가 잡힌 특정한 순간에만 가능한 '체험'일 뿐입니다. 이러한 '체험'은 불교적 깨달음이 아니라, 일종의 '삼매 체험'입니다. 마치 식무변처삼매와 같은.... 또, 마치 범아일여의 삼매와 같은....

그러나 불교의 깨달음은 좌선의 상태에서 일어나도 변화가 오지 않습니다. 불교의 깨달음은 탐, 진, 치, 만 등의 번뇌가 모두 사라진 것일 뿐 어떤 체험의 상태가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고, 집, 멸, 도 사성제에서 '고'의 원인인 '집'의 번뇌가 다한 것이 '멸', 즉 열반이기 때문입니다. 탐욕과 분노와 종교적 어리석음과 교만심 등의 번뇌가 완전히 녹아없어진 것이 불교의 깨달음입니다.

혹 어떤 특수한 체험을 불교의 깨달음으로 착각하고서 수행해 왔던 분들이 계셨다면, 크리슈나 무르티의 오도체험에 대한 강교수님의 문제제기와 저의 답변을 통해 도움을 받으셨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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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철교수님

┃무더운 여름에 잘 계시는지요.

┃근래 두권의 책을 읽었읍니다. 한 권은 전영화씨의 "비 그게 아니고" 또 한 권은 김영호교수의 "크리슈나무르티의 명상"입니다. 두 권다 아래의 크리슈나무르티의 오도경험을 내세워 부처님의 깨달음과 동일하다고 주장합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인 무아와 일치한다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제 소견으로는 아무리 봐도 힌두교의 범아일여입니다. 교수님의 고견을 부탁드립니다.

┃첫째 날 내가 그 상태에 들어 있으면서 내 주위 사물에 대해 더 의식하는 동안 나는 최초의 가장 비상한 체험을 가졌습니다. 한 남자가 길을 고치고 있었습니다. 그 사람이 나 자신이었습니다. 그가 들고 있던 곡괭이는 나 자신이었습니다. 바로 그가 깨고 있던 돌이 나 자신의 일부분이었습니다. 부드러운 풀잎이 나의 존재였고 그 사람 옆의 나무가 나 자신이었습니다.나는 거의 길 고치는 사람들과 같이 느끼고 생각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나는 나무를 통과하는 바람을 느낄 수 있었고 풀잎위에 있는 작은 개미를 느낄 수 있었읍니다. 새들 먼지 그리고 바로 그 소음은 나의 일부였습니다. 바로 그 때 차 한 대가 조금 떨어져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나는 운전사, 엔진 ,타이어였습니다. 차가 나에게서 멀어져가면서 나는 나 자신에게서 멀어지고 있었습니다. 나는 모든 것 속에 있었습니다. 아니 모든 것이, 생물이건 무생물이건, 산 벌레 그리고 모든 숨쉬는 것들이 내안에 있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루 종일 나는 이 행복한 상태 속에 들어 있었습니다....나는 더할 수 없이 행복했습니다. 나는 생명의 샘 원천에서 맑고 순수한 물을 마시고 나서 갈증이 해소되었습니다. 더 이상 목마를 수 없었고 더 이상 짙은 어둠 속에 있을 수 없었습니다. 나는 빛을 보았습니다. 나는 모든 슬픔과 자비를 치유하는 자비를 만졌습니다.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세상을 위해서입니다....나는 찬란한 자유의 빛을 보았습

┃니다. 진리의 샘이 나에게 나타나서 어둠이 사라졌습니다. 영광에 가득 찬 사랑이 나의 가슴을 취하게 만들었습니다.(Mary Lutyens, Krishnamurti:The Years of Awakening, 170-171 쪽)

 

[출처] 김성철교수님의 연기에 대한 답글 外(무아, 공 관련) |작성자 지오스님

[출처] 연기/무아/공|작성자 임기영불교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