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회

[등현스님의 초기불교에서 禪까지] <30> 설일체유부의 수행법-구사론을 중심으로

도봉별곡 2021. 12. 23. 07:57

[등현스님의 초기불교에서 禪까지] <30> 설일체유부의 수행법-구사론을 중심으로

 

“모든 주관 오해 환상이 없어야 열반 경지”

무아ㆍ윤회 반대개념 절충 위해
과거 현재 미래로 업 상속 설명
조건 속박 따라 유의ㆍ무의 결정

등현스님

● 유루법과 무루법

설일체유부(說一切有部)는 분별설부(分別說部)와 같은 장로부(theravāda)에 속하고, 그 시작은 대략 기원전 2C의 가다연니자(迦多衍尼子) 논사가 쓴 <발지론(發智論)>에서 비롯된다. 설일체유부의 ‘설일체유(設一切有)’는 ‘모든 법이 삼세에 존재한다’는 뜻이다. 이는 무아와 윤회라는 두 가지 반대되는 개념을 절충하기 위해서 만들어낸 가다연니자 존자의 고안이다.

 

무아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게 되면 업의 상속을 설명할 수 없기 때문에, 과거의 업이 현재로 현재의 업이 미래로 넘어가는 매개체를 설명하기 위해서 ‘삼세에 존재하는 법’을 강조한 것이다. 삼세에 존재하는 법을 통해서 업이 금생에서 내생으로 전달되기 때문이다. 물론 힌두교처럼 불변의 자아를 상정하면 이것은 쉽게 해결된다. 왜냐하면 불변의 자아가 과거의 행위를 금생에, 금생의 행위를 내생에 받기 때문이다. 

 

법의 자성(自性)이라는 개념은 이미 기원전 3세기에 승론(vaiśeşika)과 느야야(nyāya) 학파가 발전시킨 존재에 대한 그 당시 인도의 과학적 접근 방식이고, 이 개념을 설일체유부에서 적극 도입하여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아무튼 이 때문에 설일체유부는 용수보살로부터 소승은 아공(我空)은 알지만 법공(法空)은 모른다는 질책을 호되게 받게 되지만, 수행 방법론이라는 측면에서는 분별설부의 가르침과 큰 차이가 없다.

 

오히려 분별설부가 기원전 3세기 전후로 인도 역사에서 자취가 묘연해진 후, 초기 불교의 명맥을 유지하기 위해서 안간힘을 쓴 종파가 바로 설일체유부이다. 마치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 장남이 아이들을 뒷바라지하기 위해 온갖 궂은일을 도맡아 하다가, 훗날 동생들에게 심한 질책을 받는 것과 비슷하다.

 

법이란 무엇인가. ‘사실’이 법이다. 인간은 대상과 존재를 ‘사실’ 그대로 보지 않고 내가 생각하는 대로, 편리한 대로 보고, 믿고 싶어 한다. 이것을 ‘조건 지워진 법(有爲法)’이라 하고, 나의 감정과 주관을 빼버리고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을 ‘조건으로부터 자유로운 법(無爲法)’이라 한다. 모든 법에서 인연의 업을 제거하면 무위법이고, 인연을 지어서 대상을 보면 유위법이다.

 

구사론에서는 이 세계를 조건에 속박된 유위법의 세계(saṃskŗta)와 조건의 속박이 소멸된 열반의 세계(asaṃskŗta)로 나누고, 그중 조건에 속박된 유위법의 세계는 다시 번뇌가 있는 유루법(有漏法)과 번뇌가 소멸된 무루법(無漏法)으로 나누고 있다. 그러므로 열반은 모든 주관과 오해와 환상이 없는 상태이고 이를 무위, 무루라 한다. 이 상태가 설일체유부의 목표이다.

 

반대로 윤회의 세계는 주관과 오해와 환상에 의해 만들어진 세계이고 이를 유위, 유루법이라 한다. 분별설부에서는 4위 82법 중 1가지 무위, 설일체유부에서는 5위 75법 가운데 3가지 무위가, 유식에서는 5위 100법(dharma)가운데 6가지 무위가 무루이고 그 밖의 모든 법은 유루이다.

 

무루라고 부르는 이유는 모든 형태의 번뇌로부터 자유롭기 때문이다. 이 무루법은 5위법의 분류에서는 무위이지만 사성제의 분류에서는 멸성제 즉 열반이고 대승에서 여여성(如如性) 또는 참된 성질, 여래장, 불성, 무구식 등으로 부르고 있다.

 

사성제 중에서 고통과 고통의 원인은 유루법인 반면, 고통의 소멸과 소멸을 향해 가는 도는 무루법이다. 물론 도성제는 고통의 소멸로 이끄는 수행일 뿐이기에 엄격히 말해 순수한 무루법은 아니다. 그러나 그러한 수행을 닦는 사람은 점점 번뇌를 없애고 차츰 무루혜를 증진시킬 수 있다. 또한 도성제에서는 무지가 증가하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그것을 무루법에 포함시킨다.

 

요컨대 세가지 수행 즉, 계율, 선정, 지혜는 통틀어 팔정도의 내용이고 세번째인 멸성제는 무루법이다. 

[불교신문3515호/2019년8월3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