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대성이론. 거시물리학
위대한 설계(grand design) / 스티븐 호킹 1
도봉별곡
2022. 5. 30. 07:37
위대한 설계(grand design) / 스티븐 호킹
序文
설계자 없는 위대한 설계 / 전대호
스티븐 호킹은 일반상대성이론과 양자물리학을 결합하는 현대물리학의 최첨단 분야에서 첫손에 꼽을 만한 대가이며 대중에게는 아마도 아인슈타인 이후로 가장 유명한 과학자이다. 그런 그가 어떤 연유로 「위대한 설계」라는 책을 쓰게 되었을까? 아래의 인용문에서 그 단서를 찾을 수 있다.
"아주 많은 자연법칙들이 극도로 정밀하게 조정되어 있다는 사실이 비교적 최근에 발견되었고, 적어도 우리들 가운데 일부는 그 발견을 계기로 이 위대한 설계(grand design)가 어떤 위대한 설계자의 작품이라는 해묵은 생각으로 복귀했다. 그 생각을 미국에서는 '지적 설계(intelligent design)'라고 부른다.”
우주가 실로 위대하게 설계되었다는 사실에 동의하지 않을 사람은 드물다. 동서고금의 수많은 사상가들이 자연의 아름다움과 숭고함을 찬양했고 그런 자연 앞에서 인간의 지위를 겸허하게 돌아볼 것을 권고했다. 그런데 지난 20세기에 과학자들은 우주가 참으로 절묘하게 설계되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간단히 말하면, 이 우주를 지배하는 자연법칙들과 거기에 포함된 자연상수들이 마치 정밀한 조정을 거치기라도 한 것처럼, 우리인간이 살기에 딱 적합하도록 정해져 있다는 사실이다.
예컨대 중력의 세기는 중력상수 G의 값에 의존하는데, 이 값이 지금보다 조금만 더 컸더라면, 우리 인간이 현재 수준으로 진화하여 이렇게 글을 쓰고 읽는 일은 결코 불가능했을 것이다. 다른 자연상수들에 대해서도 똑같은 이야기를 할 수 있다. 심지어 우주의 공간 차원이 3개라는 사실도 우주가 우리 인간에게 적합하게 설계되었다는 주장의 근거로 삼을 만하다. 이쯤 되면, 누군가가 훗날 인간이 번영하게 하기 위하여 우주를 지금 이 모습으로 설계하고 제작한 것이 틀림없다는 생각이 들 만하다. 물론 그 누군가의 이름은 '신(神)'일 테고 말이다.
위 인용문이 지적하듯이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그런 생각에 동의한다. 우주 만물의 경이로운 운행과 조화를 보면서 우주를 창조한 신을 떠올리는 것은 오랜 전통이다. 철학에서 '자연신학(natural theology)'으로 불리는 그 사상적 전통은 과학의 발전에 따라 꾸준히 세력을 잃어왔다. 이유는 간단하다. 신을 떠올리는 마음은 우리의 합리적 이해가 한계에 부딪힐 때 생겨나는데, 과학은 합리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현상들의 범위를 차츰 넓혀왔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사건 앞에서 당황하고 두려움마저 느끼면서 신을 찾는 사람에게 과학은 그 사건을 합리적으로, 곧 자연법칙에 따른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이해할 길을 열어줌으로써 신을 동원하지 않고도 앎의 기쁨을 누리고 두려움에서 풀려나게 해준다. 이런 의미에서 과학의 번창은 자연신학의 쇠퇴를, 우리의 세계관에서 신의 역할이 줄어드는 것을 뜻한다.
그런데 문제는 과학이 완벽한 삶을 제공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역사를 돌이켜보면, 어떤 시대의 과학도 완벽하지 않았다. 늘 오류가 있었으며, 당대에 제기된 질문들 가운데 일부를 미해결로 남겨둘 수밖에 없었다. 따지고 보면 이것은 당연한 일이다. 과학은 상점에 진열된 완제품이 아니라 인류 문명과 더불어 진행 중인 거대한 기획이니까 말이다. 미해결 질문이 남아 있어야 과학이 진행될 것이 아닌가. 과학이 아직 설명할 수 없는 영역이 남아 있다는 것은 과학의 결함일 수도 있겠지만 오히려 과학이 살아 있기 위한 기본 조건이라고 보는 편이 더 합당하다.
그러므로 현재의 과학이 설명하지 못하는 것들이 있다는 사실은 현재의 과학이 살아 있다는 사실과 마찬가지로 당연하다. 예컨대 오늘날의 물리학자들은 중력상수의 값이 왜 측정을 통해서 밝혀진 바로 그 값인지 모른다. 왜 우주의 공간 차원이 2개도 아니고 4개도 아니라 딱 3개인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