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대성이론. 거시물리학
위대한 설계(grand design) / 스티븐 호킹 3
도봉별곡
2022. 6. 19. 01:16
위대한 설계(grand design) / 스티븐 호킹 3
1.존재의 수수께끼(9~11쪽)
우리 개인은 오직 짧은 시간 동안만을 존재하면서, 우주 전체의 작은 부분만을 경험한다. 그러나 인간은 호기심이 많은 종이다. 우리는 궁금증은 품고 대답을 찾는다. 때로는 우호적이고 때로는 이 광활한 세계에 살면서 저 위의 끝없는 하늘을 바라보는 사람들은 언제나 수많은 질문을 던져 왔다. 우리가 속한 세계를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우주는 어떻게 작동할까? 실재의 본질은 무엇일까? 이 모든 것은 어디에서 왔을까? 우주는 창조자가 필요했을까? 우리 대부분은 인생의 대부분을 이런 질문들에 매달려 보내지는 않는다. 그러나 우리는 누구나 예외 없이 한동안 이런 질문들을 고민하게 된다.
이런 질문들은 전통적으로 철학의 영역이었으나 현대에 이르러 ‘철학은 이제 죽었다’고 주장하는 철학자들이 늘어간다. 현대 철학의 큰 사조는 ‘실존주의’에서 더 이상 크게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실존주의 철학자 칼 야스퍼스는 “우리는 붓다, 마하비라, 바라문들, 탈레스,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예레미야, 에스겔, 자라투스트라, 공자, 노자, 장자, 제자백가 등이 출현해 기원전 9세기부터 기원전 2세기에 이르기까지 찬란한 축(車軸)의 시대를 이루었고, 기원후 예수의 출현은 경제적 종교인 및 직업종교인에 의해 타락했으나 본래의 빛은 아직까지 이어져오고 있다. 오늘날 과학적 합리성은 초월적 신비주의의 틀에 갇힌 종교의 발전을 서서히 가로막고 막강한 힘을 발휘하고 있다. 과학발전의 큰 축은 과학자들, 특히 물리학자들과 진화생물학자들이 주도하고 있으며 그들은 거의 유물론자이다.” 그런 과정에서 칼 야스퍼스는 “인류는 아직도 축의 시대의 통찰을 아직 뛰어넘지 못하고 있으며 따라잡을 가능성 또한 거의 없다”고 통탄했다. 현대 과학의 발전, 특히 물리학의 발전을 따라잡지 못했기 때문이다. 지식을 추구하는 인류의 노력을 통하여 발명과 발견의 횃불을 들고 있는 자들은 이제 과학자들이다. 그런 커다란 흐름은 상당히 오랜 기간 이어질 것이다.
이 책은 목적은 최근의 발견들과 이론적인 발전들이 시사하는 대답들을 제시하는 것이다. 그 대답들은 우주와 우주에서의 우리 자리에 대한 새로운 생각을 향해서 우리를 이끈다. 그 생각은 전통적인 생각과 사뭇 다를 뿐더러 우리가 겨우 10년이나 20년 전에 품었을만한 생각과도 다르다. 그럼에도 그 새로운 생각은 첫 밑그림은 거의 1세기 전에 그려졌다고 할 수 있다.
전통적인 우주관에 따르면, 대상들은 잘 정의된 경로 위에서 움직이고 확정된 역사를 가지고 있다. 우리는 매 순간 대상들의 정확한 위치를 특정할 수 있다. 이 “고전적인” 우주관은 일상생활에서 충분히 타당하다. 그러나 이 관점으로는 원자와 아원자 규모의 전제들에서 발견된 외관상의 기이한 행동을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이 1920년대에 밝혀졌다. 그 관점 대신에 이른바 양자물리학이라는 다른 개념 틀을 채택할 필요가 있었다, 양자 이론들은 작은 규모의 사건들을 대단히 정확하게 예측할 뿐만 아니라 거시적인 일상생활의 세계에 적용하면 옛 고전이론들의 예측들을 그대로 재생할 수 있었다. 그러나 양자물리학과 고전물리학은 물리적 실재에 대한 관념들이 근본적으로 서로 전혀 다르다.
10~11.양자이론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定式化 할 수 있지만 아마도 가장 직관적인 기술은 리처드 파인만의 기술일 것이다. 파인만은 캘리포니아 공과대학에서 일하면서 근처에 선술집에서 봉고 드럼을 연주하기도 한 다채로운 성격의 인물이다. 파인만에 따르면 1시스템은 하나의 역사가 아니라 가능한 모든 역사를 가지고 있다. 우리는 우리들 대답들을 추구하면서 파인만의 접근법을 상세히 설명하고 그것을 토대로 삼아, 우주 자체도 단일한 역사를 지니지 않았으며 심지어 독립적인 존재조차 아니라는 생각을 검토할 것이다. 이 생각은 많은 물리학자들이 보기에도 급진적인 것 같다. 실제로 오늘 날 과학에서의 많은 생각들과 마찬가지로, 이 생각은 상식에 어긋나는 듯하다. 그러나 상식의 토대는 일상 경험이지, 원자의 내부나 초기 우주의 과거를 깊숙이 들여다 볼 수 있는 경이로운 과학기술들을 통해서 드러난 우주는 아니다.
현대 과학에서 자연법칙들은 대개 수학의 언어로 표현된다. 그것들은 엄밀할 수도 있고 근사적일 수도 있지만, 이제껏 이루어진 관찰 사례들에서 예외 없이 성립해야 한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자연법칙은 비록 모든 사례에서 보편적으로 성립하지는 않더라도, 최소한 규정된 조건들에 맞는 사례들에서는 예외
없이 성립해야 한다. 예컨대 물체들이 광속에 가까운 속도로 운동하는 사례들에서는 뉴턴의 법칙들이 수정되어야 하는 것을 오늘날 우리는 안다. 그럼에도 우리는 뉴턴의 법칙들을 법칙으로 간주한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적어도 광속보다 훨씬 느린 속도들만 등장하는 일상세계의 조건에서는 매우 훌륭한 근사적(近似的) 법칙으로 성립하기 때문이다.
만일 법칙들이 자연을 지배한다면, 다음의 세 가지 질문이 제기된다.
1. 법칙들의 기원은 무엇일까?"
2. 법칙의 예외, 이를테면 기적은 존재할까?
3. 가능한 법칙들의 집합은 오직 하나뿐일까?
과학자들과 철학자들과 신학자들은 이 중요한 질문들을 다양한 방식으로 다루어왔다. 첫 번째 질문에 대한 전통적인 대답ㅡ케플러, 갈릴레오, 데카르트, 뉴턴의 대답은 법칙들이 신의 작품이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 대답은 신을 자연법칙들의 화신으로 정의하는 것과 다름없다. 신에게 구약성서의 신이라는 따위의 다른 속성들을 부여하지 않는다면, 신을 위의 첫 질문의 대답으로 제시하는 것은 하나의 수수께끼를 다른 수수께끼로 바꾸는 것에 불과하다. 요컨대 만일 우리가 그 질문의 대답에서 신을 언급한다면, 진짜 문제는 두 번째 질문이 된다. 기적, 곧 법칙의 예외가 존재할까?
두 번째 질문에 대한 대답들은 전통적으로 선명하게 양분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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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칙의 지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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었다. 고대 그리스의 저자들 가운데 가장 큰 영향력을 발휘한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는 법칙은 예외가 있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 반면에 성서의 관점을 채택할 경우, 신은 법칙을 창조했을 뿐만 아니라 예외를 허락해달라는 기도를 들어주는 존재이다. 신은 죽음이 임박한 환자를 치유하고, 가뭄을 서둘러 끝내고, 크로케 경기를 올림픽 종목으로 복귀시킬 수 있다. 데카르트의 견해와 정반대로, 거의 모든 기독교 사상가들은 신이 법칙들을 일시적으로 무력화하고 기적을 성취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심지어 뉴턴도 그런 기적을 믿었다. 그는 신이 개입하지 않는다면, 행성들의 궤도가 불안정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행성들은 서로를 중력으로 끌어당겨 서로의 궤도를 교란시키는데, 그 교란이 점차 누적되면, 결국 행성들이 태양과 충돌하거나 태양계 바깥으로 내던져질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므로 신은 행성들의 궤도를 계속 재조정해야 한다고, “천상의 시계가 작동을 멈추지 않도록 태엽을 감아야 한다고 뉴턴은 믿었다. 그러나 라플라스(1749-1827) (정식 이름은 드라플라스 후작, 피에르-시몽)는 그 건드림(교란)이 누적되지 않고 주기적일 것이라고, 즉 일정한 주기로 커지고 작아지기를 반복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태양계는 그처럼 스스로 자신을 재조정할 것이었다. 따라서 태양계가 현재까지 유지된 까닭을 설명하기 위해서 신의 개입을 들먹일 필요는 없다는 것이 라플라스의 입장이었다.
*라플라스의 악마
라플라스는 일반적으로 과학적 결정론을 분명하게 주장한 최초의 인물로 간주된다. 과학적 결정론이란, 어느 한 시점에서 우주의 상태가 주어지면, 완전한 법칙들의 집합에 의해서 우주의 미래와 과거가 철저히 결정된다는 입장이다. 이 입장은 기적이나 신의 능동적 역할의 가능성을 배제한다. 라플라스가 제시한 과학적 결정론은 위의 두 번째 질문에 대한 근대 과학자들의 대답이다. 더 나아가서 그것은 모든 근대 과학의 토대이며, 이 책 전체에서 중요한 원리가 된다. 어떤 초자연적인 존재가 개입하지 않기로 결심할 때에만 성립하는 자연법칙은 자연법칙이 아니다. 나폴레옹은 라플라스의 과학적 결정론을 인정하고 그에게 신과 그의 세계관이 어떻게 조화를 이루느냐고 물었다. 라플라스는 이렇게 대답했다. "폐하, 신이라는 가설은 저에게 불필요했습니다."
인간은 우주 안에서 살면서 다른 물체들과 상호작용하므로, 과학적 결정론은 인간에게도 적용되어야 한다. 그러나 많은 이들은 과학적 결정론이 물리 과정들을 지배함을 인정하면서도 인간의 행동만큼은 예외로 삼으려고 한다. 왜냐하면 그들은 우리에게 자유의지가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데카르트는 자유의지의 개념을 보존하기 위해서 인간의 정신은 물리세계와 다른 어떤 것이며 그 세계의 법칙들을 따르지 않는다고 단언했다. 데카르트에 따르면, 인간은 신체와 영혼이라는 두 요소로 이루어졌다. 신체는 평범한 기계일 뿐이지만, 영혼은 과학법칙에 종속되지 않는다. 해부학과 생리학에 관심이 많았던 데카르트는 뇌의 중앙에 있는 "송과선(松果線)" 이라는 작은 기관을 영혼이 주로 머무는 장소로 간주했다. 송과선은 우리의 모든 생각이 형성되는 장소, 우리의 자유의지가 솟아나는 샘이라고 그는 믿었다.
법칙의 지배 38 39
*“여기 이 두 번째 단계에서 좀더 명확한 설명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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