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기설. 사성제. 중도. 삼법인. 오온

연기의 나선형 순환 구조

도봉별곡 2022. 9. 10. 13:29

연기의 나선형 순환 구조

 

12지 연기가 이처럼 일방향의 인과 관계이면서도 상호 의존 관계가 되는 것은 그 연기 고리에 있어 제1항인 무명이 연기의 절대적 시작점이 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다시 연기의 마지막 항인 노사로 인해 발생한 것이기 때문이다.

 

사진 : 연기의 나선형 순환 구조

 

이처럼 12지 연기에서 성립하는 상호 인과성은 일방향의 이시적 상호인과성이다. 그렇기 때문에 12지 연기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생기는 것들을 설명하는 발생의 논리일 수 있는 것이다. 즉 그 안에서 상호 의존 관계로써 표현되는 순환은 일종의 나선형의 원이 동일한 원점으로 되돌아가는 닫힌 원이 아니다. 시작점이 끝점과 맞물리는 닫힌 원이라면 그 안에서 발생이 일어날 수 없을 것이다. 그것이 닫힌 원이 아니라 한 바퀴 돌아온 끝점이 시작점으로부터 멀어진 나선형 원이기에, 그 거리만큼 시간이 경과하고 그 시간 안에 다른 것이 발생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의 무명에 대해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노사와 그 무명으로부터 생겨나는 노사는 이름은 같은 노사이지만, 내용은 서로 다른 것이다.

 

이처럼 연기의 각 항들이 동시적 상호 인과가 아니라 이시적 상호 인과의 관계로서 존재하기에, 따라서 어느 항이든 그것이 인과 계열을 따라 한 바퀴 돌아오고 나면 이전의 그것과는 다른 것으로 바뀌어 되돌아오기에, 인과 관계로 이어지는 12지 연기는 발생의 논리이며 윤회의 논리가 되는 것이다.

 

그런데도 많은 불교 연구가들은 불교 연기에서의 상호 의존성을 일방향이 아닌 쌍방향의 것이라고 논한다. 이는 대개 일방향이 일직선적인 선형적 인과인 데 반해, 쌍방향이어야지 비선형적 상호 의존성이 확보된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는 일방향이 시작과 끝이 맞물려 형성되는 순환 구조 속에서의 상호 의존성을 간과하기 때문이다. 즉 동시적(쌍방향적) 상호 의존성인가 이시적(일방향적) 상호 의존성인가는 모두 순환적인 상호 의존성 안에서의 구분이지, 선형적 인과와 비선형적 인과의 구분이 아닌 것이다.

 

물론 12지 연기를 동시성으로 파악하는 것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것은 연기적 발생을 가능하게 하는 시간성을 추상하고서 그 논리적 구조만을 고찰하는 것이다. 시간 흐름을 따라 성립하는 발생의 측면, 즉 시간성을 배제하고, 따라서 연기로 인해 형성된 것들의 수적 차이성을 배제하고서, 단지 발생의 논리적 구조만을 고찰하면, 거기에서는 시간성이 배제되었기에 동시성으로 보여지게 되는 것이다. 안옥선이 12지 연기를 쌍방향이라고 논할 때에는 시간성을 배제하고 그 논리적 형식만을 고찰하기 때문이다. 반면 김성철·박병준 등은 12지 연기가 일방향이라고 반면 인정한다. 그러면서 식과 명색의 관계만은 예외적으로 쌍방향 인과라고 주장한다.

 

십이연기설의 다른 지분들은 불가역적인 한 방향의 조건 관계로 표시되는데, 식과 명색만 가역적인 쌍방향의 조건 관계로 표시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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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의 무아론 / 1부 근본 불교의 무아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