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메모

이수익 / 진기한 장외적(場外的) 시선의 경이

도봉별곡 2022. 11. 15. 22:26

이수익

진기한 장외적(場外的) 시선의 경이

 

내 목소리가

저 물소리의 벽을 깨고 나아가

하늘로 힘껏 솟구쳐 올라야만 한다.

 

소리로써 마침내 소리를 이기려고

歌人은

심산유곡 폭포수 아래에서 날마다

목청에 핏물 어리도록 발성을 연습하지만,

 

열 길 높이에서 떨어지는 물줄기는

쉽게 그의 목소리를 덮쳐

계곡을 가득 물소리 하나로만 채워버린다.

 

그래도 그는 날이면 날마다

산에 올라

제 목소리가 물소리를 뛰어넘기를 수없이 企圖하지만,

 

한번도 자세를 흐트리지 않는 폭포는

준엄한 스승처럼 곧추앉아

수직의 말씀만 내리실 뿐이다.

 

끝내

절망의 유복자를 안고 下山한 그가

발길 닿는 대로 정처없이 마을과 마을을 흘러 다니면서

소리의 昇天을 이루지 못한 제 恨을 토해냈을 때,

 

그 핏빛 소리에 취한 사람들이

그를 일러

참으로 하늘이 내리신 소리꾼이라 하더라.

 

(「昇天」)

 

시인의 의식 활동은 항상 장(場) 내외의 경계선상에서 전개된다고 본다. 이 장은 인간의 정신 활동 전체에 걸쳐 있다. 가령 물질적 내지 정신적 생활에 필수적으로 따라다니는 어떤 형식의 틀이 될 수도 있고 늘 되풀이되는 상용(常用)의 길이나 수단 도구도 될 수 있다. 사실 모든 학문이나 예술 활동의 출발이 이러한 상궤(軌)를 파괴하는 데서 비롯된다고 하는 것은 별로 새삼스러울 것이 못되지만 유독 어떤 시인들이 여기에 민감할 경우, 우리는 그 시인 특유의 개성미를 거기서 발견할 경우가 많다. 소설의경우도 주인공의 인물이 기인(奇人)인 경우를 꽤 많이 접하게 되는데 이때대개는 그 인품이 소박, 순수, 정직으로 통하게 된다. 말하자면 정상적인평균인은 장내적(場內的)인 인물로서 독자의 매력을 살 수 없는가 하면 기인형은 장외적(場外的)인 인물로서 개성적인 매력을 갖게 된다.

 

이수익 시에 나오는 제재(題材)는 인물이든 아니든 장외적인 시선을 받고 있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여기 「昇天」의 소리꾼은 장내와 장외의 경계선 상의 인물이다. 자신의 장내적인 목소리를 폭포라고 하는 장외적인 소리의 典範에 귀화시키려고 혼신의 힘을 쏟지만 실패하고 만다. 이 시의이야기는 한편의 드라마 같은 역전을 연출한다. 시적 담화의 표면적인 의미는 분명 소리꾼으로서의 실패를 가리키고 있지만 청취자의 수용 반응은 성공으로 암시되어 있다. 다시 말하면 일상 장내적인 감정으로서의 한()은 실패가 낳은 최고의 비극적 감정이지만 장외적인 예술성으로서는 순치된 감정이 된 셈이다. 이야기체의 시적 담화에서 이러한 역설이주는 신선한 감각도 중요하지만 이 시가 주는 주제상의 지적인 암시가 주목거리가 된다. 그것은 단순히 '고강도의 장인(匠人) 정신'이라고 해도 좋을 도식적인 주제 설정을 가지고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주제의처리가 제3의 장외의 시선(청취자)을 통하여 성공적으로 전도(顚倒)시키는 시적 의장(意匠術)이 돋보이는 데 있다.

 

빈 山幕엔 /

능구렁이처럼 무겁게 살찐 고요가

땅바닥에 배를 깔고 숨을 몰아쉬고 있다./

흙담이 무너져 내려 썩고, 나무기둥이며 문살이

오랜 세월 비바람에 썩고 썩어/

향기로운 부식의 냄새를 피워 올리는

이 버려진 山幕 하나가 고스란히 해묵은 포도주처럼/

맑은 달빛과 바람소리와 이슬을 먹고 발효하는

深山의 특산품인 것을//

 

神이 가끔 그 속을 들여다보신다.

 

(「廢家」)

 

이 시도 장외 의식이 동기가 된 원형적 상상력의 한 장면을 보여주고 있다. 원형은 보편성을 의미한다. 생성과 사멸이라고 하는 보편적 진리가 주기적 운동을 전개할 때 발생하는 현상적 의미를 미화한 것이다. 세계가 본질적으로 상징이라 한다면 시도 그 본질이 상징이다. 이 시에서 느낄 수 있는 미감(美感)은 자연의 숨은 비밀이 상징적으로 형상화된 데서 온다. 아울러 이 시는 죽음의 의미를 역설적으로 미화함으로써 자연법칙의 신비감을 생생하게 느끼게 한다. 또 한편으로 뱀을 등장시킨 것은 '죽음의 향기' 같은 엄숙하고 무거운 정조를 상징한다. 여기에 마지막 행에서 신을 등장시킴으로써 주제와 기교 사이의 정교한 결합의 묘를 보여주기도 한다. 1920년대 한국 시에서 '죽음의 예찬'을 주제로 한 극단의 감상적 관념시와 비교해본다면 이 시는 현대시의 한 특징을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다고 하겠다.

 

이수익의 시로 얼핏 보면 예술성의 시비로 몰고 갈 작품이 있다. 소설에서 가끔 화젯거리가 되는 '예술이냐 패륜이냐 하는 문제와 유사할 수도 있는 작품으로 「그리운 악마」가 있다.

 

숨겨둔 情婦 하나 있으면 좋겠다/

몰래 나 홀로 찾아드는

외진 골목길 끝, 그 집/

불 밝은 窓門

그리고 우리 둘 사이/

숨막히는 暗號 하나 가졌으면 좋겠다//

 

아무도 눈치 못 챌/

비밀 사랑/

둘만이 나눠 마시는 罪의 달디단/

祝杯 끝에/

싱그러운 젊은 심장의 피가 뛴다면!//

 

찾아가는 발길의 고통스런 기쁨이

만나면 곧 헤어져야 할 아픔으로

끝내 우리 침묵해야 할지라도 //

 

숨겨둔 情婦 하나

있으면 좋겠다/

머언 기다림이 하루 종일 전류처럼 흘러 /

끝없이 나를 충전시키는 여자/

그 악마 같은 여자

 

이 시는 의도적으로 부도덕을 노래한 시가 아님은 물론이다. 이수익은 “시의 목적은 진리나 도덕을 노래한 것이 아니다. 시는 다만 시를 위한 표현인 것이다"라고 갈파한 보들레르나 “도덕적인 시, 부도덕한 시가 문제가 아니다. 다만 잘 씌어져 있는가 그렇지 않는가가 문제다"라고 호언한 오스카 와일드와 같은 예술지상주의 시인은 아니다. 그러나 탐미주의적 열정은 없다 하더라도 "둘만이 나눠 마시는 罪의 달디단 '란 표현을 통해서 그런 의식의 일단을 내비치고 있다. 다만 그는 '마력적인 시의 의미'를 추구한 시인의 일반적인 자질을 보여줬을 뿐이다. 따라서 우리는 이시를 대할 때 일상의 부도덕적 관념은 시인의 상상력 속에서 비등점에 이르면 모두 기화되어버린다는 사실을 확인한다. 그래서 시인은 '최고의 자유인'이란 것을 시인한다. 한편 이 시는 현대 시인의 의식 현상에서 종종 드러나고 있는 한 현상으로, 오래전에 상실해버렸고 모더니즘의 시에서 그 결별이 표면화되었던 전통적인 서정성에 대한 향수를 자아내기도 한다. 외진 골목길 끝, 그 집 불 밝은 窓門, 이는 아무리 거기서 탈출하려고 해도 집요하게 따라다니는 과거 의식의 잔영 중의 하나일는지 모른다. 그것은 '초가집' 이미지라 해도 좋을 그러한 서정적 공간이다. 이 시는 이러한 의식 공간에 다분히 현대적 감각의 정욕적 인물을 등장시키고 있다. 과거 같으면 은밀해야 할 정교(情)가 적나라하게 노출된 채 말이다. 이러한 현상은 어떻게 이해해야 될까. 이 시가 독자에게 호소하는 것은 가녀린 향수에 안주하기에는 너무나 벅찬 정치·사회·문화 전반의 테러리즘에 대한 구명의 절규일 수가 있다. 척박한 정신적 황무지에서는 악마의 마력 같은 시적 재생력이 절실히 필요하다. 이렇게 이 시는 현대시의 에너지성 위기를 극복할 전격적 충전을 극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한국현대시백년 현대시인백인 유시욱 지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