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메모

이용악 사회적 관심과 예술적 이상의 동력

도봉별곡 2022. 12. 1. 18:47

이용악

사회적 관심과 예술적 이상의 동력

 

오랑캐꽃

 

―긴 세월을 오랑캐와의 싸움에 살았다는 우리의 먼 조상들이 너를 불러 오랑캐꽃이라 했으니 어찌보면 너의 뒷모양이 머리태를 드리운 오랑캐의 뒷머리와도 같은 까닭이라 전한다

 

아낙도 우두머리도 돌볼 새 없이 갔단다

도래샘*도 떳집도 버리고 강 건너로 쫓겨갔단다

고려 장군님 무지무지 쳐들어와

오랑캐는 가랑잎처럼 굴러갔단다

 

구름이 모여 골짝 골짝을 구름이 흘러

백년이 몇백 년이 뒤를 이어 흘러갔나

 

너는 오랑캐의 피 한 방울 받지 않았건만

오랑캐꽃

너는 돌가마도 털메투리도 모르는 오랑캐꽃

두 팔로 햇빛을 막아줄게

 

울어보렴 목놓아 울어나 보렴 오랑캐꽃

 

* 도래샘: 빙돌아서 흐르는 샘

 

이용악의 시는 이데올로기적 경향성을 띤 민족적 감정을 노래한 것이 많다. 그만큼 그의 시에는 민족의식·역사의식·사회의식·계급의식이 강하게 풍기고 있다. 여기서 주의해야 할 것은 이러한 관념적 선입관으로 시의 내용을 연역(譯)식으로 재단해버리는 일이다. A. 테이트는 “시인은 한 종류 이상의 시를 쓸 수 있게끔 마련되어 있다. 때문에 어떠한 비평적 통찰력도 어느 한 종류의 시에만 절대적인 가치를 줄 수는 없다”고 했다. 이 말은 시인 개개인의 특수한 자질을 이야기한 것이면서 한 개인의 다양한 자질에도 적용할 수 있다. 한용운과 윤동주의 경우 사상적 선입관을 배제하고 순수 서정시로 백미를 이룬 시가 있고 김소월의 시에서 소위 민족시라고 일컬을 수 있는 작품이 있는 것은 바로 이러한 뜻에서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짙은 방언으로 풋풋한 향토적 서정을 다룬 백석과 이용악을 비교해보면 이용악에게서는 계급 경향성의 사회의식이 강하게 풍기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윤영천 교수는 “이데올로기적 편견 없이 그 작품 세계만을 두고 볼 때 이 시인이야말로 진정한 순수 시인으로 일컬어져 마땅하다"고 했지만 사실상 그의 시 속에는 이데올로기적 관념이 노골화된 작품들이 상당수가 되는 것은 부인할 수가 없다. 가령 「오월에의 노래」, 「하나씩의 별」, 「빗발 속에서」, 「無宿者」, 「다시 오월에의 노래」 등은 그러한 개념의 실천적 행동을 선동하는 내용이 부분적으로 드러나 있다. 소위"예술이 사회주의 사회가 요구하는 방향으로 전진할 것을 요구하는 사회주의 리얼리즘에 접근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독자가 미리 마련한 주관적 잣대(독자 일반의 고정 관념 포함)를 사용하였을 때만 그러한 성분으로 모습을 보이는 작품들이 더 많다. 이러한 경우 그 자체의 성분은 그러한 색깔을 드러내지 않게 마련이다. 이것이 시의 소재가 갖고 있는 내포의 보편성이자 자의적 해석의 소여가 된다. 테이트가 "좋은 시라는 것은 자와 의 가장 먼 에서 모든 의미를 통일한 것"이라고 한 말도 바로 이러한 함축미의 조화로운 극대화를 시사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나는 여기서 이러한 유의 작품을 나름대로 조심성 있게 몇 편을 선별하여 소개하고자 한다.

 

오랑캐꽃은 제비꽃의 별칭으로 이 꽃이 필 무렵(이른 봄)이면 북쪽 오랑캐들이 먹을 것을 약탈하려고 자주 쳐들어오는 데서 유래한 이름이라고 한다. 이 시는 잦은 외침에 찌든 우리 민족의 한을 상징적으로 읊은 시다. 이 시의 장점은 수사상으로 역설과 아이러니의 매력에 있다. 시학의 전문성이 아직 활용되지 못한 당시의 한국 시단에 이만한 기교를 구사하는 일은 결코 용이한 일이 아니다. 시에서 오랑캐꽃은 고려 장군들에 의해 쫓겨난 호족의 후예일 수도 있으면서 호족의 피 한 방울도 받지 않았고 그들이 사용하는 돌가마도 털메투리도 모른다는 애매한 신분의 꽃으로 묘사된 것이 그렇고, 목 놓아 울어보라고 애정을 쏟는 것은 우리 동족에 대한 연민인지 쫓겨 간 호족에 대한 혐오감인지 애매한 것이 또한 그렇다. 아니면 외세의 잔흔을 허구화한 것이 이 꽃이라면 두 팔로 햇빛을 막으려고 한 것은 저주인가. 자위인가. 이런 아이러니가 문제가 될 수 있다. 그러나 2연에 나라의 재운(運)을 상징하는 구름이 몇백 년을 흘러갔다는 표현은 물론 전체적으로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시인의 의중은 역사적 내지 정치적 비전을 담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물질적 관념이든 형이상학적 관념이든 그것은 시적 상상력의 자유를 제한하는 것임에는 틀림없다. 영국 시인 카울리의 광명에의 讚歌」를 보면 오랑캐꽃에 대한 이런 구절이 나온다. "어린애처럼 벌떡 일어서는 오랑캐꽃 당신의 보랏빛 기저귀를 차고 아름다운 튤립에 반하고 당신은 화려히 알락달락한 옷을 입고 있다." 순수한 서정은 어떠한 색깔의 관념의 옷을 입혀도(독자의 주관에 의해) 그 색깔이 시의 몸에 배지 않는다. 어떠한 조명이 지나가듯이 일과성에 그치고 만다. 그러나 시의 피부에 배어 있는 시인의 고정관념의 염색소는 언제나 그대로 보존된다.

 

말 아닌 말로

병실의 전설을 주받는

흰 벽과

하아얀

하얀/

벽 //

 

화병에 씨들은 따알리야가

날개 부러진 두루미로밖에

그렇게밖에 안 뵈는 슬픔ㅡ

무너질 상싶은

가슴에 숨어드는

차군 입김을 막어다오//

 

실끝처럼 여윈 思念은/

회색 문지방에

알 길 없는 손톱 그림을 새겼고

그 속에 뚜욱 떨어진 황혼은 미치려나

폭풍이 헤어드는 내 눈 앞에서

미치려는가 너는//

 

시퍼런 핏줄에

손가락을 얹어보는 마음ㅡ

손끝에 다앟는 적은 움직임/

오오 살아 있다

나는 확실히 살아 있다

(「病」)

 

한국의 식민지시대 시는 대체로 시인의 경험적 가능성이 크게 위축되고 폐쇄된 상태를 보여준다. 지성은 겉으로 생경하게 드러나고 정서는 감상의 날개를 타고 왕겨처럼 날아다니거나 가을비처럼 무겁게 가라앉기가 일쑤다. 감각은 내면으로 파고들어 밝은 빛을 잃어버리는 예가 많다. 이용악 시는 이러한 약점을 어느 정도 극복했다. 다시 말하면 하강하는 정서와 상승하는 의지, 이 양면을 변증법적으로 종합하지는 못해도 다 가지고 있기는 했다. 「病」은 바로 이러한 유의 양감정을 표출한 대표적 시에 속한다. 1연은 흔히 죽음처럼 무거운 병실의 공기를 흑색의 이미지로 묘사하는 것과는 달리 백색의 공포로 병인(病人)의 감정을 철저하게 증발시켜버린다. 여기서 인간은 살아 있는 형태(形骸)의 화석이 될 수밖에 없다. 여기에 대해서 4연은 이 형해의 화석에서 살아난 재생의 맥박을 기적처럼 묘사하고 있다. 사실 시인의 의지란 것은 의미를 실은 의식의 강도 높은 역동력에 불과한 것이다. 이 역동력이 주는 감동 때문에 2, 3연의 감상은 극복되었다고 볼 수 있다.

 

애비도 종 할애비도 종 한뉘* 허리 굽히고 드나들던 토막

기울어진 흙 벽에

쭝그리고 기대앉은 저 아이는 발가숭이

발가숭이 아이의 살결은 흙인 듯 검붉다//

 

덩쿨 우거진 골짜구니를 맑고 찬 새암물 돌 돌 가느다랗게

흐르는가 나비사 이미 날지 않고 오랜 나무 마디마디에 휘휘

감돌아 맺힌 고운 무늬모냥 버섯은 그늘에만 그늘마다 피어 //

 

잠자듯 어슴프레히 저놈의 소가 항시 바라보는 것은

하늘이 높디 높다란 푸른 하늘이 아니라 번질러놓은 수레바퀴가 아니라

흙이다 검붉은 흙이다.

(* 한뉘: 한평생)

(「흙」)

 

가진 자는 임종을 맞으면 모든 것을 풀어놓고 무로 돌아간다. 그러나 가진 것이 없는 좋은 자신의 현실적 무가 원형의 무 속으로 아무런 갈등 없이 귀화해버리고 만다. 토색(土色)은 원형질이다. 무소유의 종과 거기다가 발가벗은 종의 아이가 흙빛을 닮았다는 것은 원형적 상상력의 논리다. 2연의 샘물과 버섯은 미화된 원형의 상징이다. 3연의 소는 털의 빛깔조차 흙빛이다. 울 때는 하늘로 머리를 들어 울지만 조용히 새김질할 때는 그 시선은 땅 위를 향한다. 사실 하늘은 실체가 없다. 그것은 인간이 만들어낸 허구적 이상에 불과하다. 아무리 높은 산이라도 그 정상은 좌절의 상징이다. 하늘 높이 솟은 나무도 해마다 모든 잎사귀들이 땅으로 떨어지고 만다. 이것은 원형 개념의 실제 현상들이다.

 

이용악의 프롤레타리아 의식(종의 신분 의식)은 여기서 보는 그대로 원형 의식을 만남으로 해서 그 예술성이 한결 돋보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