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대성이론. 거시물리학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도봉별곡 2022. 12. 15. 19:05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32] 그래서 대학원을 경제학으로 가기 위해 노리고 수학과를 지망하는 사람들도 꽤 있는 편이다.
[33] 이 가정을 쓰면 주식 가격이 일종의 확산-임의보행모델이 된다.
[34] 1919년 이혼소송 당시 만일 노벨상을 받으면 상금을 자녀 양육비로 첫 번째 부인 밀레바 아인슈타인에게 주기로 돼 있었기 때문에 상금은 그의 몫이 아니었다. 그래서인지는 모르지만, 미리 수상 가능성을 암시하는 말을 들었음에도 이를 무시하고 극동 여행을 떠나 있어서 수상식에는 참석하지 못했다.
[35] 위성이 수신기에 신호를 보냈을 때 그 신호가 가는 시간을 이용, 위성을 중심으로 걸린 시간을 통해 구한 거리만큼의 구를 구하고 그 구의 접점들의 위치로 현 위치를 알아내는 GPS의 원리상, GPS에 탑재된 원자시계는 지상의 수신기에 있는 시계와 동기화 되어야 하는데, 위성과 지상의 중력 차이와 위성과 지상의 속도 차이로 인해 두 시간은 지속적으로 어긋나게 되어 있다. 중력에 의한 시간차를 상대성이론으로 보정해주지 않는다면, 도저히 사용할 수 없을 만큼 거대한 오차가 생긴다. 간단히 말해서 상대성 이론이 없다면 위성과 지상의 거리 오차는 매일 약 12km씩 차이나게 된다.
[36] 통계물리나 열역학에 관심이 있는 사람은 이게 얼마나 간단한 착상과 쉬운 계산으로 되어있으면서 실제와 거의 정확히 맞아 떨어지는지 알고 있을것이다. 보통 물리 계산식은 여러가지 치환 공식과 복잡한 계산 절차를 거쳐야 하지만 아인슈타인 고체 모델은 식 자체도 짧고 간결하며 단독으로도 완벽하지 않지만 거의 근접하게 계산 된다.
[37] 기존에 아인슈타인은 숟가락만 얹었다고 되어있었는데, 논문 쓰기 전 토론에 참여했을 뿐만 아니라 논문 발표 후, 슈뢰딩거에게 보낸 편지에서 자신이 생각한 핵심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다고 안타까워 하기까지 했다.
"...언어의 이유 때문에 이는 토론을 거친 후 포돌스키에 의해 쓰여졌다. 그러나 이 논문은 내가 본래 원했던 대로 잘 나오지 않았다. 오히려 말하자면 박식함 때문에 핵심이 질식되었다..." Fine, A.,1986, The Shaky Game: Einstein, Realism and Quantum Theory
[38] 전자에 적용되는 힘은 약한 핵력(약력, 약한 상호작용)
[39] 아인슈타인 A to Z p.430
[40] 말년의 아인슈타인은 고등연구소에서 매주 화요일에 하는 무도회에 나가는 것이 자신의 유일한 역할이라고 회고하기도 했다.
[41] 물론 이 당시는 빅뱅이라는 용어가 나오기 한참 전이라 이런 용어는 없었다.
[42] 말하자면 은하들 사이에 존재하는 만유인력에 반발하는 만유척력을 고의적으로 집어넣은 것이다.
[43] Einstein, A. Zur quantentheorie der strahlung. Phys. Z., 18, 124.(1917)
[44] 나치 소속 과학자라는 의미가 아님.
[45] 아울러 핵무기가 기존의 재래식 무기와는 전혀 차원이 다른 성격의 정치적 영향을 일으킬 수 있는 존재임을 아직 깨닫지 못했고, 핵무기 개발 기술이 자신들의 적대 세력(특히 소련)에도 전파될 가능성을 간과했던 당시 미국 정부의 판단도 작용했다. 실제로 소련은 미국보다 불과 4년 후인 1949년 원자폭탄 개발에 성공했다.
[46] 러셀의 찻주전자로 유명한 철학자이다.
[47] 1회 회의는 1957년 7월 캐나다 퍼그워시에 10개국 22명이 참여하였다. 당시 방사능의 위험성을 경고하면서 핵실험 중지를 요구하였고, 매년 전 세계를 순회하면서 계속되고 있다. 과학적 연구성과를 바탕으로 핵과 각종 대량살상무기의 위험성을 경고하고 안전책을 요구하고 있다. 따로 사무국은 없으며 개인참가형식이고 1995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하였다.
[48] 이 인형은 다큐멘터리 시리즈 내내 등장한다.
[49] 3차대전에서 쓰일 무기들의 엄청난 화력으로 문명은 다 망해버릴 테니, 4차대전은 석기시대로 돌아가 저런 조잡한 것으로 싸우게 된다는 의미.
[50] 실제로는, 이런 신빙성 없는 썰과는 반대로 밀레바는 아인슈타인보다 수학을 못했다. 일례로 밀레바는 졸업 시험의 수학 과목을 재수까지 하였으나 결국 통과하지 못해서 졸업조차 하지 못했다.
[51] 시험이 쉬운 것도 아니었다. 가령, 부인 밀레바의 경우 두 번이나 졸업시험에서 떨어져 학위를 받지 못했다.
[52] 지금은 미분기하학은 수학과 3학년에서 배운다.
[53] 대표작 트리스트럼 섄디
[54] 근데 아인슈타인은 4~5살 되기 전까지 말을 거의 못했다. 그리고 나서도 말을 더듬거려서 부모가 "얘는 안 되겠구나" 하고 포기했었다.상술된 것처럼, 아인슈타인은 어학시험에 여러번 낙방하였는데 이러한 점이 영향을 미친 것일수도 있다.
[55] 참고로 아인슈타인 자신은 상술한 당시 독일 교육 환경의 권위주의적인 분위기에 질려서 자퇴하고, 가족들이 있는 밀라노로 갔다. 당시 이탈리아이탈리아 통일 전쟁의 여파로 인한 자유주의적인 분위기가 만연해있어서, 교육 현장에서도 권위주의적인 부분이 거의 없었는데, 아인슈타인은 이런 환경에 대단히 만족스러워 했다.
[56] 롤프 도벨리의 「스마트한 생각들」에서 인용한 찰리 멍거의 "운전사의 지식"에 관한 이야기도 이 버전(플랑크, 강연 외운 운전사)을 따르고 있다. 어쨌든 여기서 유래한 "운전사의 지식"은 잘 알지도 못하면서 아는 척만 하는 지식을 가리키는 말로 쓰이고 있다.
[57] 누가 봐도 독일어를 못 하는 기자가 독일어로 질문을 하니 아인슈타인이 답변을 하기도 전에 조금씩 웃는 사람들이 보인다. 아인슈타인은 '당신의 서투른 독일어를 보니 웃겨서 기분이 좋다'라는 뜻으로 기자를 가볍게 놀렸다.
[58] 옆에서 실실 쪼개고 있는 사람은 프린스턴 고등연구소장을 지낸 바 있는 프랭크 아이델로트(Frank Aydelotte) 박사. 반대편은 그의 아내이다.
[59] 보어와 아인슈타인 모두 특정 종교에서 말하는 인격적인 차원에서의 신을 지칭하는 건 아니고 과학법칙을 주관하는 선에서 설계자로서의 신이라고 보면 적절하다. 즉, "과학법칙이 이렇게 생겨먹었고 실험적으로도 증명했으니, 우리 우주가 이렇게 생겨먹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게" 정도로 이해하면 쉽다. 과학자들이 신이라는 단어를 쓸 수밖에 없을 정도(물론, 신의 존재를 믿고 안 믿고를 떠나서)로 양자역학의 탄생은 당시 과학자들의 기계론적 세계관의 충격을 주었다.
[60] 이후 말년에 통일장 이론을 연구할 때 신은 심술궂은 것 같기도 하다는 말을 남기기도 했다고 한다.
[61] 아인슈타인의 종교적 관점에 대한 연구는 활발히 있어왔는데, 주류 종교들의 인격적인 신을 포함한 모든 인격적인 신은 믿지 않았고, 생전에 17세기 범신론자인 스피노자를 언급한 내용과 유명한 우주의 법칙을 신에 비유하여 언급한 내용 등으로 그는 범신론자이자 기독교와 같은 유일신교적 회의론자였다. 하지만 그의 범신론적인 사상이 일반적인 범신론과 다르다고 보는 시각도 있으며, 일반 대중이 생각하는 '신'이라는 이미지가 아닌 우주 전체의 법칙이나 과학적으로 밝혀낼 수 있는 어떠한 형태를 신이라고 표현한 특수한 범신론이라고 보는 것이 주류다. 그가 불교에 대해 언급한 “현대 과학의 요구에 부합하는 종교가 있다면 그것은 곧 불교가 될 것이다” 라는 말이나 그가 일반적인 무신론자의 범주안에 포함된다고 여기는 것이 타당하다. 아인슈타인이 쓴 "Science and Religion"을 보면, 위의 어록 바로 앞에 "But science can only be created by those who are thoroughly imbued with the aspiration towards truth and understanding. This source of feeling, however, springs from the sphere of religion."라고 쓰여있다. 해석하면 "그러나 과학은 진리와 이해를 향한 열망에 완전히 빠져있는 사람들에 의해서만 만들어질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느낌의 원천은 종교의 영역에서 시작된다." 인데, 그는 인간의 운명과 삶에 관여하거나 인격을 가진 신을 강조하면서 부정해왔다는 것과 불교에 대한 그의 긍정적인 평가 등을 봤을 때 확실히 반종교인은 아니었다.
[62] 다른 표현으로 "사랑에 빠지는 것은 사람이 하는 가장 미련한 짓이 아니라, 마치 중력처럼 책임을 물을 수 없는 것이다."가 있다. 낭만과학자
[63] 3차 세계대전에서 문명은 다 망할 테니 4차대전은 석기시대로 돌아가 저런 걸로 싸우게 된다는 의미(...). 유명한 어록인 만큼 변형이 많다. 근데 저 정도로 문명이 퇴화했으면, 인류가 다시 문명을 재건하기 전까지 세계전쟁 규모의 무언가를 할 수 있을지는 의문
[64] 참고로 정면으로 대치되는 말로 군사학 논고"평화를 원한다면, 전쟁을 준비하라."가 있다. 다만 군사학 논고가 로마 제국 시절에 나왔다는 것을 감안할 것. 대군을 유지하는 것이 핵심인 고대와 핵무기 하나로 세상을 쑥대밭으로 만들 수 있는 현대를 같은 선상에 놓을 수는 없다. 다만 전쟁이 남을 침략하는 전쟁만 있는 것이 아니라 방어 전쟁도 있으므로 국력을 키워 타국의 침입에 대비하란 뜻으로도 볼 수 있다.
[65] 18세기 영국의 사상가 에드먼드 버크도 비슷한 취지의 말을 한 적이 있다. 칼 포퍼도 "추상적인 선을 실현하려고 하지 말고 구체적인 악을 제거하기 위해 노력하라."라는 미묘하게 비슷한 말을 남겼다.
[66] 직원에게 팁을 줄 현금이 없자 쪽지에 적어서 건네주며 "아마 당신이 운이 좋으면 이 메모가 보통의 팁보다 훨씬 더 가치가 있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그리고 실제로 그렇게 됐다.
[67] 과학이론이란 단순히 관찰결과를 요약함으로써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관찰로 보이는 것들이 '무엇'인지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해 사고하는 방식을 만들어가는 아주 복잡하고 창의적이며 독창적인 과정이라는 뜻
[68] H.G 웰스가 쓴 동명의 고전 SF 소설을 영상화했다.
[69] 아인슈타인 본인은 전쟁을 싫어하는 평화주의자였지만 Dr. 와일리는 세계 정복을 꿈꾸는 매드 사이언티스트.
[70] 물론 마리치는 졸업 시험을 더 치려고 하였으나 아인슈타인과의 결혼으로 인해 졸업을 포기했다.
[71] 아인슈타인 본인은 어린 시절,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독일 사회에서 혐오와 멸시를 여러 번 받았다. 한 예로 아인슈타인이 독일 학교에 다니던 어린 시절, 그가 운동장에서 낡은 못을 발견하고 혹시 누가 이걸 밟고 다치지나 않을까 걱정되어 담임교사에게 못을 가져오자, 그 교사는 아인슈타인을 칭찬하기는커녕 오히려 다른 학생들 앞에서 그 못을 들어 보이며 "유대인들은 이런 못으로 예수를 못박아 죽였단다."라고 말하며 아인슈타인을 놀렸고, 그 말을 듣고 아인슈타인은 마음이 아팠다고 고백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