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후기

우리, 이토록 작은 존재들을 위하여 / 사샤 세이건

도봉별곡 2023. 1. 30. 20:28

우리, 이토록 작은 존재들을 위하여 / 사샤 세이건

천문학자 칼 세이건과 영화, TV쇼 제작자이자 작가인 앤 드루얀의 딸인 사샤 세이건의 첫 책. 출간 전부터 화제를 모았으며 2020년 가디언이 선정한 ‘이 세계를 이해하도록 돕는 30권의 책’에 선정되었다. 부모에게서 이어받은 과학적 사고의 뿌리와 극문학을 전공한 저자의 인문학적 통찰이 돋보이는 에세이다.

 

칼 세이건과 앤 드루얀에게 과학이란 직업이기도 했지만, 세계관이자 철학이기도 했다. 그들이 말하는 과학적 시선이란 냉정한 검증의 눈초리가 아니라, 새롭게 발견된 진실을 기쁘게 바라보는 태도다. 사샤는 십대 때 아버지를 잃었지만 그의 가르침을 기억하며 세계와 인간사를 정밀하게, 그러나 매우 따스한 시선으로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사샤 세이건은 태어남과 성장, 명절과 결혼, 죽음같이 인간의 생애주기에 따른 사건들을 계절의 순환이라는 자연의 리듬과 이어나가며, 우리가 행하는 일상 속 작은 의식들이 얼마나 삶의 순수한 기쁨을 일깨우는지 담담하고 아름다운 문체로 발견해나간다.

 

들어가는 말

1장 태어남

2장 한 주의 의식

3장 봄

4장 매일의 의식

5장 고백과 속죄

6장 성년

7장 여름

8장 독립기념일

9장 기념일과 생일

10장 결혼

11장 섹스

12장 다달의 의식

13장 가을

14장 잔치와 금식

15장 겨울

16장 죽음

끝맺는 말

더 읽을거리

감사의 글

 

 

  • P. 13~14
  • 우리집은, 종교는 없어도 결코 냉소적이지는 않았다. 부모님은 내가 살아 있음을 너무나 아름답고, 아찔할 정도로 신비롭고, 우연히 일어난 신성한 기적으로 느낄 수 있게 해주었다. 부모님은 우주는 막대하고 우리 인간은 궁벽한 곳에 있는 작은 행성에서 눈 한 번 깜박할 순간 동안을 살아가는 아주 작은 존재라고 했다. 또 두 분의 책에도 나오지만 “우리처럼 작은 존재가 이 광대함을 견디는 방법은 오직 사랑뿐이다”라는 말도 나에게 들려주었다. 접기
  • P. 17
  • 이 책을 읽는 당신에게 독실한 신앙이 있다면 기쁜 일이다. 다행스러운 일이다. 확실한 믿음이 있는 사람은 이미 많은 것들을 기리면서 살고 있을 것이다. 이 책은 그러지 말라고 쓴 책이 아니라 기뻐할 만한 것들을 더욱 늘리라고 쓴 책이다. 사람은 누구나 축일, 축하, 전통 등을 누릴 수 있어야 한다. 또 누구나 시간을 헤아리고 기록해야 한다. 누구나 공동체가 필요하다. 누구나 사랑하는 사람을 맞아들이거나 혹은 그들에게 작별을 고해야 한다. 내게 신앙이 없다고 해서 이 지구상의 삶의 리듬을 따라 살고 싶은 욕망도 없는 것은 아니다. 접기
  • P. 35
  • 아버지는 “증거의 부재는 부재의 증거가 아니다”라고 했다. 다시 말해 증거가 없으므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게 아니라 존재하는지 아닌지를 알 수 없다는 말이다.
  • P. 101
  • 호기심을 품고 세상을 탐구하는 일은 퍼즐을 완성하는 것보다는 조개껍데기나 우표처럼 작고 예쁜 물건들을 모으는 수집가가 되는 것과 비슷했다. (…) 머릿속을 맴도는 질문의 답을 찾으려는 충동에 압도되었다. 답을 찾으면 다음 질문이 또 떠올랐다. 지엽적인 질문도 있고 우주적인 질문도 있었다. 지엽적인 질문은 보통 ‘잡다한 정보’라고 별것 아니라 치부되기 일쑤이지만 아주 작은 지식이 다른 것의 실마리가 되고 우리가 우주에서 어떻게 존재하느냐를 슬쩍 엿볼 수 있는 틈이 되기도 한다. 접기
  • P. 107~108
  • 결국은 우리의 취약함이 우리가 무언가 더 깊은 것에 다가갈 수 있게 해준다. 사랑도 그렇고. 오류를 기꺼이 인정한다면, 예측이나 선입견을 과감히 놓아버릴 수 있다면, 상상했던 것보다 더 많은 것에 다가갈 수 있다.
  • P. 141
  • 삶이 유한함에도 불구하고 행복한 게 아니라, 삶이 유한하기 때문에 행복하다고 느낄 수가 있었다. 이게 나에게는 어른이 되었다는 징표 같았다. 나는 모르는 게 약이라고는 절대 생각하지 않는다. 아는 것이 축복이며, 기쁨을 얻으려면 때로 공포를 직접 마주해야 할 때도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얼마나 작은 존재인지, 우리의 시간은 얼마나 짧은지를 진심으로 인정하고도 삶을 사랑할 수 있게 되자, 진짜 어른이 된 느낌이었다. 접기
  • P. 162
  • 언젠가 딸아이가 크면 우리는 한여름에, 어쩌면 하짓날에 집밖으로 나가 어딘가 오래전부터 있었던 아름다운 곳으로 갈 것이다. 아니면 그냥 고개를 들어 밤하늘을 올려다볼 수도 있다. 그다음에 현대적이고 새로운 것이 시야에 들어오지 않도록 가릴 방법을 찾아내는 거다. 손을 터널 모양으로 만들어 그 틈으로 보면서 이 광경을 처음으로 바라본 최초의 인간은 어떤 심경이었을까 상상해볼 것이다. 우리가 지금 보는 빛이 아주 먼 옛날에 멀리에 있는 별을 떠났을 때는 이 세상이 어떠했을까를 상상해본다. 그때 여기에 생명이 있었을까? 다른 별자리를 바라보는 누군가가 있었을까? 우리는 같이 시간여행을 하면서 그 사람들의 허파에 들어갔을지 모르는 공기 분자를 들이마셨다가 다시 그것을 세상에 내어놓을 것이다. 접기
  • P. 281
  • 믿음이 있건 없건 사람은 누구나, 다음에 무슨 일이 오든 지금 이 순간에 경험하는 이것은 필연적으로 끝나리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그 사실을 붙들고 살아간다. 삶 이후에 무를 발견하든 의미를 발견하든 그것은 우리가 아는 존재와는 다른 새로운 무엇일 것이다. 만약 당신이 윤회를 믿는다고 하더라도, 다른 몸으로 다른 시대에 사는 삶은 오늘날 경험하는 것과는 전혀 다를 수밖에 없다. 이다음에 무엇이 오든 우리 중 누구도 그것을 피할 수는 없다.
  • 플레이아데스성단의 별 일곱 개도 언젠가는 죽을 것이다. 우리는 그 사실을 머릿속에서 밀어내는 대신에, 두려움을 무시하는 대신에, 두려움을 존중하고 두려움에 관해 이야기하고 빛이 사라지기 전까지 빛을 조금이라도 더 즐겨야 한다. 접기
  • P. 317
  • 크리스마스와 하누카 이전에, 일신교나 아니 어떤 종류의 종교도 있기 전에, 우리 조상들은 별을 올려다보며 계절의 변화, 시간의 흐름, 어둠이 무엇을 가져올지에 대해 알아내려고 애썼다. 온기와 빛이 찾아올 날이 멀지 않았음을 알고 가장 길고 가장 추운 밤을 기념하는 행위는 아주 오래된 것이다. 어디에 살든, 어떤 종교를 믿든, 어떤 민족에 속하든, 조상 때부터 우주 안 지구의 자리를 경외감을 가지고 고찰했다는 사실은 모두 매한가지다. 그들에게는 그것이 신성한 일이었다. 오늘날 우리에게도 여전히 그렇다. 자연의 신비와 아름다움에 대해 조상들은 꿈도 못 꾸었을 지식을 과학을 통해 얻게 되었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접기
  • P. 93
  • (...) 어떤 방식으로 작동하는지 원리를 안다고 해서 마법처럼 생각하면 안 되는 건 아니지 않나? 입증할 수 있는 것이라고 해서 아무 재미도 없는 것이 되어야 할 필요는 없다. (....) 그러니 우리가 일상적으로 치르는 의식들은 생물학, 기술 등의 과학적 과정으로 이루어지는 마법이나 마찬가지다. 삶의 아주 사소한 신비들까지도 다 찬미하면서 살 수 있다면 우리 일상은 얼마나 많이 달라질까? 접기
     - jjuggumism
  • 증거의 부재는 부재의 증거가 아니다. - 알란책방
  • 사랑하는 딸 페르세포네가 망자와 저승의 신, 고대 그리스의 악마격인 하데스에게납치를 당하자 데메테르는 제정신을 잃었다. 올림포스산에서 내려와 지상으로 가서 비천한 노파의 모습을 하고 한없이 딸을 찾아 헤매다니느라 곡물을 관장하는 신의 역할은내팽개쳤다. 그래서 식량이 부족해졌다. 사람들이 굶주렸다. 다른 신들이 걱정하기 시작했다. 마침내 신들이 힘을 모아 페르세포네를 구해오자고 합의했다. 페르세포네가 무사히 어머니의 품으로 돌아오자 세상에는 꽃이 피고 먹을 것도 풍부해지고 사람들은 목숨을 부지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지하 세계에 있는 동안에 페르세포네가 석류알을 몇개 먹었기 때문에 지하 세계와의 연을 영원히 끊을 수가 없게 되었고 그래서 페르세포네는 해마다 다시 지하 세계로돌아가야 했다. 그리하여 지상 세계에서 아무것도 자라지않는 겨울과 다시 생명이 돋는 봄의 순환이 끝없이 계속되는 것이다. 그리스인들에게는 이것이 계절의 기원이었다.
  • 봄과 관련된 전설들은 하나같이 수난의 시간이 끝나고가슴 벅찬 기쁨이 찾아오는 이야기다. 모든 게 사라진 듯 보일 때 비밀, 감춰진 기적, 희망을 다시 찾는 이야기가 담겨있다. 봄이란 그런 것이다. 재생, 재탄생, 부활, 죽음으로부터의 구원이라는 주제에서는 종교적 이상이 자연과 충돌하지 않는다. 오히려 동식물의 생태로부터 영감을 받아 종교의식이 생겨났다고 할 수 있다. 접기
     - gaudium
  • 존과 내가 날마다 하는 작은 의식이 몇 가지 있다. 매일 아침 존이 나보다 먼저 일어나 커피를 만들어서 침대에 누워있는 나에게 한잔을 가져다준다. 그러면 나는 존에게 고맙다고 하고 내가 존을 얼마나 대단하게 생각하는지 이야기한다. 이 작은 사랑의 행위가 우리가 보낼 하루 그리고 우리가함께하는 삶의 분위기를 만들어준다. 저녁때 존은 퇴근하면서 출발!!!˝이라고 나한테 문자 메시지를 보낸다. 이 문자를받으면 여전히 가슴이 살짝 떨린다. 좋아하는 사람을 곧 만나게 되리라는 설렘이다. 이것도 작은 의식이다. 접기
     - gaudium
  • 사실 나에게 의미가 있는 특별한 행동은 그게 무엇이든 어떤 면에서는 일종의 의식이다. 다른 식으로 할 수도 있는데 그렇게하지 않고 굳이 이 방식을 거듭할 때 사소한 행동들이 의식이 된다. 존이 아무 예고 없이 그냥 집에 올 수도 있지만, 문자로 알려주는 덕에 나는 기분 좋게 들뜬 마음이 된다. - gaudium
  • 누구에게나 이런저런 일상적 의식이 있다. 출근할 때 어떤 길을 택해서 가는지, 혹은 아이들 저녁을 어떻게 준비하는지도 의식이 될 수 있다. 날마다 하는 일과 함께 습관적으로 떠올리는 이야기 토막도 여기에 넣을 수 있다. 나는 자기전에 얼굴에 보습 크림을 바르면서, 젊어지는 샘물 전설을떠올린다. 주름개선 크림 광고에 자주 나오는 이야기다. 이런 작은 의식들이 우리 마음을 편하게 해주고 일종의 리듬이나 패턴을 만들어주고 안정감을 만들어주는 것 같다. 스킨케어 습관을 통해 시간의 흐름을 늦출 수 있다면 물론 그것은 엄밀히 말해 전설 때문이 아니라 과학 때문일 것이다.이렇게 둘을 칼같이 나누어놓으면 재미가 사라지는 건 사실이지만, 접기
     - gaudium
  • ˝마루하는 죽으면 천국에 가고 천국에는 하느님이 있고천사들이 하프를 연주한대. 그런데 엄마 아빠는 죽음이 영원히 꿈꾸지 않고 자는 것하고 비슷하다고 했잖아. 누구 말이 맞아?˝
  • 부모님은 입을 맞춘 듯이 바로 한목소리로 대답했다. ˝그건 아무도 몰라!˝
  • 그냥 그렇게 말하기만 한 것이 아니다. 마치 그게 정말좋은 일이라는 듯이 활짝 웃으며 열띤 목소리로 즐겁게 말했다.
  • 이 대화가 나에게는 정말 큰 깨달음을 주었다. 죽음이라는 미스터리에 대해 더 잘 알게 되지는 않았지만 삶의 본질을 엿보는 창을 얻은 것 같았다. 모르는 것이 부끄러운 일이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다. 불확실성은 실제로 존재한다. 얼버무리거나 덮어버릴 필요가 없다. 최대한 많이 알려고 애쓰는 도중이라도 불확실성이 있음을 얼마든지 받아들일 수있다. 접기
     - gaudium
  • 새로운 신비를 찾아 헤맨다는 신호로 받아들였으니까. ˝그건 원래 그런 거야˝라든가 ˝내가 그렇다면 그런 거야˝라는 식으로 대답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대신 아버지는 웃으면서, 유리로 만들고 형광색을 칠한, 약간 조악한 입체 은하수모형 위에 죽 꽂혀 있는 갈색과 녹색 장정의 『브리태니커백과사전』 중에서 한 권을 꺼냈다. 우리는 같이 책에서 답을 찾아보고 새로 알게 된 사실에 신이 나서 들썩였다. 접기
     - gaudium
  • 어원을 더 많이 알수록라틴어가 눈에 더 잘 들어왔다. 백과사전 항목 하나를 읽을때마다 퍼즐 조각 하나를 제자리에 끼워넣는 기분이었다.
  • 곧 퍼즐 전체를 완성할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 그렇지만 자라면서 이 퍼즐에는 가장자리도 테두리도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사방으로 끝도 없이 계속 뻗어나가기만 했다. 새 조각을 얻을 때마다 부족한 조각이 얼마나 많은지를 알게 될 따름이었다. 전체 그림을 완성하는 날은 오지 않으리라는 걸 알았다. 접기
     - gaudium
  • 그 어떤 것이라도 세상을 탐구하는 의식,itual의 실마리가될 수 있었다. 나는 어딘가 새로운 곳에 가면 이런 생각을했다. 지금 내가 있는 장소의 이름이 뭐지? 거리 이름은? 동네 이름은? 도시는? 나라는? 이런 고유명사가 붙여진 데는무언가 이유가 있을 텐데 사람 이름을 딴 것일까? 아니면이곳을 탐험한 사람이 고향을 그리워하며 붙였나? 원주민들이 부르는 이름을 우스꽝스럽게 영어로 옮겨 적은 것인가? 시간이 흐르면서 이름이 압축되어 이렇게 되었나? 뉴욕New York이 영국 요크York 지방에서 따온 이름이라면 뉴질랜드의 ‘질랜드’는 어디에 있지? ‘아메리카‘라는 이름은 어디에서 왔을까? 접기
     - gaudium
  • 신경세포 연결이 발달하고 시냅스가 나에게 필요한 것보다 더 기록적인 속도로 형성되어갔을 것이다. 불필요한 것들은 성장하면서 ‘가지치기‘ 과정을 통해 사라진다. 발달심리학에서는 이 시기를 직관적 사고기‘라고 부르기도 한다. 가톨릭 교회법에서는 ‘분별 연령the age of reason‘이라고 부른다. 뭐라고 부르건간에 네 살에서 일곱 살 사이의 작은 인간이 단순한 논리적사고를 하기 시작하는 때다. 이 시기를 기념하는 의식은 아동기의 시작과 끝인 출생이나 사춘기를 축하하는 의식처럼 흔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몇 가지 찾아볼 수 있다. 가톨릭교도는 이때 첫영성체를 한다. 일본에서는 시치고산七五三’이라는 명절에 세 살, 다섯 살, 일곱 살이 된 여자아이와 세살, 다섯 살 남자아이가 전통의상을 입고 신사에 가서 무사히 성장하고 발달했음을 축하한다. 고대 스파르타에서는남자아이가 일곱 살이 되면 군에 입대했다. 오늘날, 지구상거의 어디에서나 아이들은 세 살에서 여섯 살 사이에 통과의례를 거친다. 새 옷을 입고, 특별한 가방을 메고, 사진을찍고, 입맞춤을 받은 다음 보통 노란색인 커다란 차를 타고집 근처에 있는 교육시설로 간다. 학교에 입학하는 날은 생체 변화를 축하하는 날이기도 하다. 아이들이 세상에 나갈만큼, 새로운 정보를 받아들이고 자기 길을 걸어가기 시작할 만큼 몸과 지능이 자랐다는 뜻이다. 접기
     - gaudium
  • 나는 딸아이가 좀 자란 뒤에 세계의 역사와 예술과 그 안의 존재들과 그들 삶의 방식, 우주에 관한 탐구를 노란 버스를 타고 집에 돌아오는 순간에 끝내지 않았으면 하는 소망을 품는다. 방과후에, 주말에, 여름방학 때도 아이가 내가그랬던 것처럼 무언가를 알아내는 일을 집에서 날마다 수행하는 성스러운 의식으로 여길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러면 이렇게 수많은 답을 알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우리가 아는 것은 너무나 적다는 사실을 아이가 편안하게 받아들이게끔 되지 않을까. 결국은 우리의 취약함이 우리가 무언가더 깊은 것에 다가갈 수 있게 해준다. 사랑도 그렇고, 오류를 기꺼이 인덩한다면, 예측이나 선입견을 과감히 놓아버릴 수 있다면, 상상했던 것ㅂ더 많은것에 다가갈 수 있다. 접기
     - gaudium
  • 영영 답을 얻을 수 없는 비밀도 있다. 우리는 아마 살아생전 빅뱅 이전에 무엇이 있었는지 알 수 없을 것이다. 인류가 결국 어떻게 될지도 알 수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얻을수 있는 답도 있다. 지금, 아버지와 마루하는 내가 옛날에했던 질문에 대한 답을 안다. 우리 모두 언젠가는 알게 될것이다. 하지만 그때가 올 때까지는, 해가 뜰 때부터 질 때까지 하루 안에도 배우고 축하할 것이 너무나 많다. 접기
     - gaudium
  • P. 47
  • 세계는, 인류는, 문명은 순식간에백 년씩 거꾸로 돌아가기도 하고 그럴 때 슬픔을 느낄 수 있는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을 견뎌야만 한다.
  • 같은 장소에서 언제나 같은 일들이 벌어지지는 않는다는 걸 알고, 지금이 그리 좋지 않은 시대라는 걸 인정하면서도 어디선가 다정한 대화들이 계속되고 있길 바라는 마음만큼은 버릴 수가 없다. 접기
     - 스칼렛
  • P. 11
  • 우리는 집에서 세상의 역사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했다.
  • 부모님은 사람들이 아무리 열렬히 신봉하는 것이라고 해도그게 반드시 사실이라는 법은 없다고 가르쳤다. 물론 어떤생각들은 주관적이다. - 힘차게떠올라
  • P. 13
  • 아버지가 나에게 가르쳐준 모든 것, 아버지가 지지하는 모든 것이 내가 다시 아버지를 만날 수 있으리라고 믿을 수없게 만들었다. 그렇지만 우리집은, 종교는 없어도 결코 냉소적이지는 않았다. 부모님은 내가 살아 있음을 너무나 아름답고, 아찔할 정도로 신비롭고, 우연히 일어난 신성한 기적으로 느낄 수 있게 해주었다. 부모님은 우주는 막대하고우리 인간은 궁벽한 곳에 있는 작은 행성에서 눈 한 번 깜박할 순간 동안을 살아가는 아주 작은 존재라고 했다. 접기
     - 힘차게떠올라
  • P. 35
  • 아버지는 ˝증거의 부재는 부재의 증거가 아니다˝라고 했다. - 버터컵
  • P. 68
  • 정말 봄이왔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게 무엇이든 간에 그걸 연구하며 기리는 과학 분과가 있다. 우리 각자가 어떤 순간을 봄의 변화가 응축된 것으로 느끼는 어둡고 추운 시기가 물러가고 빛, 온기, 아름다움, 풍요가 다가오는 것이 봄의 핵심이라는점은 다를 바 없다. 모든 게 다 죽은 것처럼 느껴지다가,
  • 어떻게든 다시 삶의 기회가 주어지는 것이다. 접기
     - 버터컵
  • P. 170
  • 정치적 혁명이나 과학적 혁신이나 모두 권위를 맹목적으로받아들이기를 거부함으로써 이루어지며 사물의 본질은 무엇인가? 라는 질문에서 태어난다. 독립의 날은 (비유적인 의미에서) 우리의 진화하는 능력을 찬미하는 날이다. - 버터컵
  • P. 175
  • ˝나는 비판적 사고 능력을 사용하겠다고 약속합니다. 독립적 사고를 기르겠다고 약속합니다. 독립적 판단을 할 수 있게 스스로 공부하겠다고 약속합니다.˝ - 버터컵
  • 돌아오고 나서 몇 주, 어쩌면 몇 달이 지나자 무기력감이 조금씩 사라지고 다른 생각이 조금씩 자라나기 시작했다. 새로운 것은 아니고 아주 오래전에 부모님이 나에게 주입한 생각이었다. 살아 있다는 그 자체가 경이롭고 아름답다는 사실을 나는 알았지만, 그전에는 정말 절실히 느껴본 적은 없는 것 같다. 나는 내일 무슨 일이 일어나 간에지구상에서의 작은 순간 하나하나가 의미 있다는 생각을나 자신에게 계속 각인했다. 그리고 만약 삶이 영원히 이어진다면 삶이 더는 소중하지 않을 것이라고. 내가 언젠가는틀림없이 죽을 테지만 지금은 살아 있고 그게 매우 운좋은일임을 되새겼다. 서서히 이런 생각들이 가슴 떨리는 기쁨을 가져다주기 시작했다. 그렇게 되기까지 시간은 걸렸지만 결국은 여행을 떠나기 전보다 더 행복한 상태가 되었다. 접기
     - gaudium
  • 게다가 삶이 유한함에도 불구하고 행복한 게 아니라, 삶이유한하기 때문에 행복하다고 느낄 수가 있었다. 이게 나에게는 어른이 되었다는 징표 같았다. - gaudium
  • 그 경험을 통해 내가 아는 것과 내가 느끼는것 사이의 인지부조화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어떤 정보 때문에 마음이 불편하다고 해서 그 정보를 계속 머리에서 밀어내지 않게 되었다. 아니 적어도 덜 밀어내게 되었다. 그게나에게는 성장을 향한 큰 걸음이었다. 그러려면 환상을 버려야 했고 그래서 고통스러웠다. 한편으로는 그 덕에 더 깊은 현실감을 얻었으니 잘된 일이다. 사람은 살아남으려면반드시 나름의 방법으로 높은 곳에서 뛰어내리고, 애착담요를 버리고, 세상의 무시무시한 경이를 향해 나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접기
     - gaudium
  • 책이란 얼마나 놀라운 물건인가. 나무로 만든 납작하고잘 휘어지는 물건인데 그 안에 검은색 선이 꼬물꼬물우스운 모양으로 찍혀 있다. 그런데 그 물건을 한번 들여다보면 어느새 다른 사람의 마음속에 들어가게 된다.
  • 그 사람은 수천 년 전에 죽은 사람일 수도 있다. 저자가수천 년의 세월을 넘어 조용하면서도 또렷한 목소리로 당신의 머릿속에서 말을 건다. 글은 인류의 가장 위대한 발명일 것이다. 서로를 모르는 사람들, 멀리 떨어진 시대에 사는 사람들을 하나로 이어준다. 책은 시간의 굴레를 벗어난다. 책은 인간이 마법을 부릴 수 있다는 증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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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gaudium
  • 내가 아버지한테로 시간여행을 하는 방법이 한 가지 더있다. 어릴 때 아버지가 대기 중의 공기 입자는 아주 오래전부터 변함없이 그대로이기 때문에 우리는 수천 년 전에 살았던 사람들과 같은 공기로 호흡한다고 말한 적이 있다. 요새도 가끔 그 생각을 한다. 깊은숨을 들이마시고 이 공기 입자 중 일부가 아버지가 들이마시고 내쉬었던 공기일 수도있다고 생각한다. 사랑하는 사람의 공기를 들이마신다니얼마나 친밀한 행위인가. 접기
     - gaudium
  • 반대로 생각해도 마찬가지다. 지금 이 순간 내가 자동으로, 불수의운동으로 숨쉬는 공기가 예수나 무함마드나 클레오파트라가 숨쉬었던 옛 공기일 뿐 아니라, 새로운 미래세대가 마실 공기인 것이다. 비단 사람에게만 해당하는 것도 아니다. 사람이 지구를 완전히 망가뜨리지 않는다면 지금 우리가 마시는 공기가 아직 진화하지 않아 생기지 않은생명체의 숨이 될 수도 있다. 우리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새로운 존재의 숨이 되는 것이다. 우리는 누군가의 먼 미래이자 누군가의 오래된 과거이니까. 접기
     - gaudium
  • 영어에서는 누군가 죽은 날이 해마다 돌아오는 기일‘을 뜻하는 간단한 단어가 없다. 이디시어로는 있다. 야르제이트ahrea라고 한다. 유대교에서는 사랑하는 사람의 야르제이트가 되면 24시간 동안 타고 꺼지는 특별한 초에 불을 밝히는 의식을 한다. 바로 불어서 끄는 생일 초와 역설적인 대비를 이루는 셈이다. 내가 어릴 때 엄마는 야르제이트 초에 불을 붙여서 레이철 할머니, 틸리 할머니, 벤저민 할아버지와또 내가 사진과 이야기를 통해서만 아는 다른 조상들을 기리는 전통을 가르쳐주었다. 내가 자라면서 사랑했던 사람들을 잃게 되자 나는 스스로 야르제이트 초를 밝히게 되었다. 이 전통이 특히 내 마음에 와닿는 까닭은 촛불이 오래전에 소멸한 뒤에도 빛이 남아서 반짝이는 죽은 별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이가 죽었을 때 충격이 너무 큰 나머지 그 사실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할 때가 있다. 그럴 때작은 불빛을 밝히면 마치 그들이 아직 영원히 사라진 게 아닌 듯한 느낌이 든다. 접기
     - gaudium
  • 별자리 때문에 피부색, 젠더, 인종, 성정체성, 종교 등에따라 차별받듯 차별을 받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유사한 면이 있다. ˝나는 당신에 대해 한 가지를 알므로 당신이 어떤사람인지 안다˝고 말하는 것에서 여러 차별주의에 내재한게으르고 섣부른 가정을 볼 수 있다. - gaudium
  • 마지막 방에는 여러 언어로 이런 문구가 적힌 액자가 있었다. 지금 당신의 모습은 우리의 과거이고, 지금 우리의 모습은 당신의 미래다….… - gaudium
  • 유발 하라리는 『사피엔스』에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말을 길들인 것이 아니다. 밀이 우리를 길들였다. 길들이다.
  • domesticate‘라는 단어는 집‘을 뜻하는 라틴어 도무스dom 에서 온 말이다. 그런데 집에 사는 것이 누구인가? 밀은 아니다.˝ 하라리는 ‘농업‘이라고 하는 식물과 인간의 관계가 인간에게 불리한 일이었다고 주장한다. 인간이 제비뽑기에서짧은 쪽 막대를 뽑았고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식물에게 속아 쉴새없이 농사를 지어 식물이 온 지구에 널리 퍼지고 번성하게 돕고 있는 것이다. 그냥 수렵 채집을 하며 살았으면더 낫지 않았을까? 접기
     - gaudium
  • 캐런 암스트롱은 『신화의 짧은 역사』에서 이렇게 말했다. ˝신화는 과거에일어났던 일이지만 또 항상 일어나는 일이기도 하다. 우리는 역사를 엄밀히 시간 순서로 보기 때문에 이런 일을 가리키는 단어가 없다. 신화는 역사를 넘어서는, 인간 존재에서영구한 것을 가리키며 우리가 무작위적 사건의 혼란스러운흐름 너머를 이해하고 현실의 핵심을 언뜻 볼 수 있게 하는예술의 형태다.˝ 접기
     - gaudium
  • 또한 『피의 장: 종교와 폭력의 역사』라는책에서는 ˝신화는 역사적으로 일어났던 사건 이야기가 아니다. 그보다는 사람의 일상적 실존에 내포된 영구한 진실을 표현한다. 신화는 언제나 현재에 대한 것이다˝라고 했다.
  • 우리가 축하하는 모든 명절, 생일, 독립기념일 등은 과거에대한 것인 만큼 현재에 대한 것이기도 하다. 우리는 끊임... 더보기
     - gaudium
  • 대니얼 데닛이 『주문을 깨다』에서 ˝그리움에 이끌리고혐오감에 되밀리고,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의 시신 앞에서갈등에 휩싸인다. 이 갈등이 도처에서 종교가 생겨나는 데핵심적 역할을 했음은 당연한 일이다˝라고 했다. - gaudium
  • P. 10
  • ˝사실이기를 바란다고 해서 사실이라고 믿어버리면 위험해.˝ - miru2003
  • P. 11
  • 아무리 그렇게 믿고 싶더라도 무엇이 사실인지 아는 편을 택하겠다고 했다. 가슴속의 진실이나 나에게만 진실인 것, 진실처럼 들리고 느껴지는 것 대신, 입증하고 증명할 수 있는 사실을 택하겠다고. ˝인간은 자기 자신을 속이는 경향이 있어.˝ - miru2003
  • P. 12
  • 옛날 사람들은 너무나 당연하게 해가 지구 주위를 돈다고 믿었다. 하지만 믿는다고 해서 사실이 되지는 않는다. 지금 우리가 믿는 것들 가운데에도 나중에는 어떻게 그것도 몰랐느냐고 폭소와 경악을 자아낼 일들이 분명 있을 테다. 새로운 정보가 생기면 앎도 달라진다. 아니 달라져야만 한다 - miru2003
  • P. 12
  • 과학은 다른 사상과 비교하고 대조해 볼 수 있는 사실 체계가 아니라, 어떤 견해가 면밀히 들여다보아도 무너지지 않는지 검증하고 확인하는 방식이라고 했다. - miru2003
  • P. 16
  • 아이가 자라면서 생각도 자랄 때 이 광대한 우주 안 우리의 작은 자리에서 가슴 떨리는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 있게끔 생각의 틀을 만들어줄 수만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할 것이다. - miru2003
  • P. 32
  • 태어난다는 것 자체가 정말 놀라운 일이다. 아기가 세상에 태어날 때, 새로운 사람이 다른 사람의 몸 안에 생겨날 때, 격한 감정과 함께 우리는 삶이라는 막대한 경이의 일부를 경험한다. - miru2003
  • P. 35
  • 아버지는 ˝증거의 부재는 부재의 증거가 아니다˝라고 했다. 다시 말해 증거가 없으므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게 아니라 존재하는지 아닌지를 알 수 없다는 말이다. - miru2003
  • P. 10
  • 사실이기를 바란다고 해서 사실이라고 믿어버리면 위험해. - 다오앤
  • P. 14
  • 우리처럼 작은 존재가 이 광대함을 견디는 방법은 오직 사랑뿐이다. - 다오앤
  • P. 35
  • 무언가를 ‘믿지 않는다’라는 말이 그것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확신한다는 뜻은 아니다. 존재한다는 증거를 보지 못했기 때문에 믿음을 보류한다는 뜻이다. 신이나 내세 같은 종교적 요소에 대한 내 생각도 아버지가 외계인에 대해 갖는 생각과 마찬가지다. 아버지는 ˝증거의 부재는 부재의 증거가 아니다˝라고 했다. 다시 말해 증거가 없으므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게 아니라 존재하는지 아닌지를 알 수 없다는 말이다. 접기
     - 다오앤
  • P. 41
  • 내게는 이 모든 혼돈 속에서 어떻게든 당신이 당신이 되었다는 생각만큼 놀랍고 경이로운 건 없는 것 같다. - 다오앤
  • P. 46
  • 우리 각자가, 살아서, 이 세상에서 함께 살아가게 되기까지, 우리가 바로 지금 이 순간에 도달하기까지 있었던 그 모든 일에 대해 나는 경이를 느낀다. - 다오앤
  • P. 66
  • 어쩌면 우리는 봄을 사랑하게끔 진화했는지도 모른다. 봄이 왔다는 것은 이제 위험을 벗어났으며 얼어 죽거나 굶주릴 가능성이 줄어들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사방에서 모든 것이 다시 태어나는 모습을 보면서 죽음에 대한 근원적 공포를 누그러뜨릴 수 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어느 쪽이든, 봄의 기쁨은 신앙이나 교리 같은 것과 무관하게 누구든 얼마든지 누릴 수 있다. 접기
     - 다오앤
  • P. 74
  • 어떤 주제와 상징들이 수천 년을 넘어 계속 이어진다는 것은 근사하고 감동적인 일이다. - 다오앤
  • P. 91
  • 삶의 아주 사소한 신비들까지도 다 찬미하면서 살 수 있다면 우리 일상은 얼마나 많이 달라질까? - 다오앤
  • P. 98
  • 과학은 모호함을 허용해야 한다. 우리가 모르는 것에 대해서는 믿음을 유보해야 한다. 불확실성 때문에 짜증이 날 수도 있겠지만 그 덕분에 우리는 더 많은 데이터를 축적하게 된다. - 다오앤
  • P. 107
  • 결국은 우리의 취약함이 우리가 무언가 더 깊은 것에 다가갈 수 있게 해준다. 사랑도 그렇고. 오류를 기꺼이 인정한다면, 예측이나 선입견을 과감히 놓아버릴 수 있다면, 상상했던 것보다 더 많은 것에 다가갈 수 있다. - 다오앤
  • P. 126
  • 죽음을 통해 우리는 삶의 소중함을 알게 된다. 무언가의 부재를 겪지 않고는 그것의 진짜 가치를 알 수가 없다. 우리가 헛발질했다는 사실을 시인하고 속죄하지 않고는 더 나은 존재가 될 수 없듯이. - 다오앤
  • P. 141
  • 삶이 유한함에도 불구하고 행복한 게 아니라, 삶이 유한하기 때문에 행복하다고 느낄 수가 있었다. 이게 나에게는 어른이 되었다는 징표 같았다. 나는 모르는 게 약이라고는 절대 생각하지 않는다. 아는 것이 축복이며, 기쁨을 얻으려면 때로 공포를 직접 마주해야 할 때도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얼마나 작은 존재인지, 우리의 시간은 얼마나 짧은지를 진심으로 인정하고도 삶을 사랑할 수 있게 되자, 진짜 어른이 된 느낌이었다.
  • 성장의 정의에 ‘두려움을 마주한다’는 의미가 들어가기도 한다. 무언가 힘든 일을 하고, 자신을 해방하고, 내 운명을 스스로 받아들이는 일이 성인이 되는 관문이다. 접기
     - 다오앤
  • P. 143
  • 어떤 정보 때문에 마음이 불편하다고 해서 그 정보를 계속 머리에서 밀어내지 않게 되었다. 아니 적어도 덜 밀어내게 되었다. 그게 나에게는 성장을 향한 큰 걸음이었다. 그러려면 환상을 버려야 했고 그래서 고통스러웠다. 한편으로는 그 덕에 더 깊은 현실감을 얻었으니 잘된 일이다. 사람은 살아남으려면 반드시 나름의 방법으로 높은 곳에서 뛰어내리고, 애착담요를 버리고, 세상의 무시무시한 경이를 향해 나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접기
     - 다오앤
  • P. 154
  • ˝사실 우리도 시간여행을 하는 거야.˝ 아빠는 말하곤 했다. ˝일 초씩 미래로!˝ - 다오앤
  • P. 156
  • 책이란 얼마나 놀라운 물건인가. 나무로 만든 납작하고 잘 휘어지는 물건인데 그 안에 검은색 선이 꼬물꼬물 우스운 모양으로 찍혀 있다. 그런데 그 물건을 한번 들여다보면 어느새 다른 사람의 마음속에 들어가게 된다. 그 사람은 수천 년 전에 죽은 사람일 수도 있다. 저자가 수천 년의 세월을 넘어 조용하면서도 또렷한 목소리로 당신의 머릿속에서 말을 건다. 글은 인류의 가장 위대한 발명일 것이다. 서로를 모르는 사람들, 멀리 떨어진 시대에 사는 사람들을 하나로 이어준다. 책은 시간의 굴레를 벗어난다. 책은 인간이 마법을 부릴 수 있다는 증거다. 접기
     - 다오앤
  • P. 159
  • 내가 아버지한테로 시간여행을 하는 방법이 한 가지 더 있다. 어릴 때 아버지가 대기 중의 공기 입자는 아주 오래전부터 변함없이 그대로이기 때문에 우리는 수천 년 전에 살았던 사람들과 같은 공기로 호흡한다고 말한 적이 있다. 요새도 가끔 그 생각을 한다. 깊은 숨을 들이마시고 이 공기 입자 중 일부가 아버지가 들이마시고 내쉬었던 공기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사랑하는 사람의 공기를 들이마신다니 얼마나 친밀한 행위인가. 접기
     - 다오앤
  • P. 235
  • 나는 우리에게 옳은 것이 다른 모든 사람에게도 옳을 수는 없다는 걸 안다. 옳은지 아닌지를 판단하는 데 쓸 수 있는 유일한 잣대는 그로 인해 다치는 사람이 있나?라는 질문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 다오앤
  • P. 278
  • 납골당에는 방이 여섯 개 있는데 전부 아주 오래전부터 카푸킨 수도회 구성원들의 유골을 재료로 써서 아주 정교하게 장식해놓았다. 정강이뼈, 종아리뼈, 넓적다리뼈의 방. 엉치뼈, 엉덩뼈, 꼬리뼈의 방. 해골의 방. 수천 개의 인체조각. 지금 우리 몸안에 있는 것과 같은 것들이다.
  • 마지막 방에는 여러 언어로 이런 문구가 적힌 액자가 있었다. 지금 당신의 모습은 우리의 과거이고, 지금 우리의 모습은 당신의 미래다...... 접기
     - 다오앤
  • P. 279
  • 플레이아데스성단의 별 일곱 개도 언젠가는 죽을 것이다. 우리는 그 사실을 머릿속에서 밀어내는 대신에, 두려움을 무시하는 대신에, 두려움을 존중하고 두려움에 관해 이야기하고 빛이 사라지기 전까지 빛을 조금이라도 더 즐겨야 한다. - 다오앤
  • P. 311
  • 너희한테 들려줄 아주 멋지고 대단하고 짜릿한 사실이 있어. 너무 거대하고 장대해서 어떤 인간도 멈출 수가 없는 일이야. 내일부터 다시 낮이 조금씩 길어질 거고, 서서히 다시 꽃이 필 거고, 햇살이 돌아올 거야. 여름이 다가오고 있어. - 다오앤
  • P. 333
  • 삶에서 상실을 마주할 때마다 이전의 모든 상실을 다시 겪는다. 하나하나의 작별은 다른 모든 작별이다. (...) 이 상실들이 모두 하나로 이어진 것처럼 느껴진다. 이 모든 일이 내 삶의 최초의 슬픔으로 나를 끌고 간다. 나의 아버지의 죽음. - 다오앤
  • P. 342
  • 우주에 어떤 비밀이 숨어 있든 우리가 태어났다는 사실은 달라지지 않는다. 우리는 기쁨을 느낄 것이고 고통을 느낄 것이고 거대하고도 광활한 우주의 아주 작은 일부로서의 존재를 다양하게 경험할 것이다. 다음에 무슨 일이 일어나건 간에, 우리는 여기에 있었다. 각각의 삶의 기록은 시간의 흐름 속에서 잊힐지라도 우리가 여기에 있었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우리는 살았다. 우리는 이 거대함의 일부였다. 살아 있음의 모든 위대함과 끔찍함, 숭고한 아름다움과 충격적 비통함, 단조로움, 내면의 생각, 함께 나누는 고통과 기쁨. 모든 게 정말로 있었다. 이 모든 것이. 광대함 속에서 노란 별 주위를 도는 우리 작은 세상 위에 있었다. 그것 하나만으로도 축하하고도 남을 이유가 된다. 접기
     - 다오앤
  • P. 349
  • 몇 주 뒤, 내가 헬레나에게 줄 채소를 찌다가 돌아보니 헬레나가 유아용 의자에 앉아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때 나는 가장 가까운 별의 도움으로 땅에서 자라난 음식을 헬레나가 더 크게 자라는 데 쓸 에너지로 바꿀 수 있게 준비하고 있었다. 수백만 년에 걸친 진화의 결과로 가능해진 일이다. 헬레나는 호기심 어린 눈으로 내가 사소하고 일상적인 의식을 수행하는 것을 지켜보았다. 반쯤 신성한 과업을 수행하는 나의 모습이 헬라나의 뇌에 각인되는 중이었다. 언젠가 나는 사라질 테지만, 헬레나는 나를 기억하기를 바란다. 그러면 나는 헬레나 뇌의 뉴런 안에서, 그리고 핏속의 세포 안에서 조금 더 살 수 있을 테니까. 접기
     - 다오앤
  • P. 358
  • 남편 존, 내 평생의 사랑, 나는 어쩌면 이렇게 운이 좋을까. 변하지 않는 무조건적 사랑과 수없는 격려의 말과 한없는 인내심과 믿음에, 매일매일을 축하할 만한 날로 만들어준 것에 감사해. 당신과 함께할 수만 있다면 광대한 시간 속에서 눈 한 번 깜짝할 만한 순간이라도 나에게는 충분해. - 다오앤
  • P. 359
  • 우리 각자가, 살아서, 이 세상에서 함께 살아가게 되기까지, 우리가 바로 지금 이 순간에 도달하기까지 있었던 그 모든 일에 대해 나는 경이를 느낀다. - 다오앤
  • P. 46
  • 우리 각자가, 살아서, 이 세상에서 함께 살아가게 되기까지. 우리가 바로 지금 이 순간에 도달하기까지 있었던 그 모든 일에 대해 나는 경이를 느낀다 - 조세핀
  • P. 121
  • 내가 틀렸어. 내가 실수했어. 내가 잘못했어. 이기적이었어. 치사했어. 어리석었어. 생각이 없었어. 미안해. 이런 말을 하기가 왜 그리 어려울까? 사람은 누구나 다 잘못을 저지르는 존재인데도? - 조세핀
  • P. 126
  • 죽음을 통해 우리는 삶의 소중함을 알게 된다. 무언가의 부재를 겪지 않고는 그것의 진짜 가치를 알 수가 없다 - 조세핀
  • P. 156
  • 글은 인류의 가장 위대한 발명일 것이다. 서로를 모르는 사람들, 멀리 떨어진 시대에 사는 사람들을 하나로 이어준다. 책은 시간의 굴레를 벗어난다. - 조세핀
  • P. 334
  • 부모님은 나에게 삶이 영원하지 않더라도(영원할 수는 없으므로) 살아 있음은 누구나 깊이 감사해야 할 아주 아름다운 것이라고 가르쳤다. 영원히 살 수 있다면 그만큼 경이롭지도 않을 것이다 - 조세핀
  • P. 12
  • 과학은 다른 사상과 비교하고 대조해볼 수 있는 사실 체계가 아니라, 어떤 견해가 면밀히 들여다보아도 무너지지 않는지 검증하고 확인하는 방식이라고 했다. - JYOH
  • P. 14
  • 우리처럼 작은 존재가 이 광대함을 견디는 방법은 오직 사랑뿐이다. - JYOH

 

 

사샤 세이건 (Sasha Sag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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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2년 뉴욕 이서커에서 천문학자 칼 세이건과 영화, TV쇼 제작자이자 작가인 앤 드루얀의 딸로 태어났다. 뉴욕대학교에서 극문학을 전공했다. 칼 세이건과 앤 드루얀은 사샤에게 방대한 우주와 자연현상에는 심오한 아름다움이 숨어 있으며, 현상을 비판적으로 보되 삶을 냉소적으로 바라보지 말라고 가르쳤다. 부모의 삶으로부터 영감을 받아 인간 존재를 다층적으로 탐색하는 글쓰기를 해왔다. 『뉴욕매거진』 『오, 디 오프라 매거진』 『바이올릿 북』 등의 잡지에 글을 실었다. 인버스미디어그룹이 뽑은 ‘2020년대에 선한 영향력을 미칠 50인’으로...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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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코스모스』의 가족 버전이다.”

 

칼 세이건이 서재에서 사랑스런 딸 사샤와 함께 찍은 사진을 본 적이 있다. 그들은 밥을 먹을 때 식탁에서 무슨 대화를 나누었을까? 방황하는 사춘기 딸에게 칼 세이건은 어떤 조언을 해주었을까? 가장 내밀한 시간과 공간을 함께했던 그들은 서로에게 어떤 영향을 주고받았을까? 사진 한 장이 전해준 수많은 질문에 답이라도 하듯, 사샤가 쓴 이 책은 아버지 칼 세이건과의 추억을 담뿍 담고 있다. 뼛속까지 천문학자였던 칼 세이건의 가족은 우주의 경이로움을 일상의 매 순간에 투영하고 있었다. 그들의 삶 그 자체가 ‘코스모스를 품은 창백하고 푸른 점’이었다. ‘별과 같은 성분으로 만들어진 우리는 결국 우주로 돌아간다’는 깨달음을 체득한 자만이 보이는 자신에 대한 성찰과 타인에 대한 이해, 삶과 죽음에 대한 겸손하면서도 의연한 태도들이 이 책 곳곳에 배어 있다. 가장 가까이에서 칼 세이건을 바라본 딸이 전하는 내밀한 부성애! 사샤는 삶에서 가장 소중한 것들을 그렇게 아버지에게 배운 것이다.

 

그래서 역설적이게도, 사샤 세이건은 아버지에 대한 추억을 넘어, 그 스스로 훌륭한 작가로 성장했음을 이 책을 통해 증명한다. 가족과의 사랑을 성숙하게 실천하는 대목에서, 자신의 일을 독립적으로 수행하고 어려움을 헤쳐나가는 모습에서, 삶과 죽음에 대한 당당하면서도 사색적 태도에서, 그는 『코스모스』의 전 우주적 성찰이 일상에서도 얼마든지 발견될 수 있음을 아름답게 보여준다. 이 책은 『코스모스』의 가족 버전이다. _정재승(뇌과학자, 『열두 발자국』 저자)

 

당연하던 것들을 당연하지 않게 만드는 책을 좋아한다. 우연의 산물이며 찰나에 불과한 우리의 삶이 얼마나 경이롭고 소중한 것인지 다시 생각해보게 한다. 전능한 신을 믿지 않아도, 이야기와 음식과 노래와 작은 의식들로 우리는 매일을 축일祝日로 만들 수 있다. 저자의 어머니 앤 드루얀의 말처럼 “누구한테 감사해야 할지 모르더라도 감사할 수는 있지”(나의 영웅 칼 세이건과 앤 드루얀의 사적인 모습과 말들을 딸의 시선으로 접하는 것도 값진 일이었다). 책을 덮고 나니 새삼 동지가 지나면 낮이 길어지기 시작하고 마침내 봄이 당도한다는 사실이 얼마나 근사하게 느껴지던지! 이 작고 유일한 삶에서 당연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리고 ‘우리처럼 작은 존재가 이 광대함을 견디는 방법은 오직 사랑뿐이다’. 결코 당연하지 않은 삶을, 서로를 사랑하게 하는 책이다.

_김하나(작가, 『말하기를 말하기』 저자)

 

칼 세이건의 딸이라는 사실이 글에서 드러난다. 과학적 산문시의 대가한테서 물려받았구나 싶은 문체다. 이 세계를 물리주의적으로 보는 관점을 한순간도 저버리지 않으면서, 서정적인 언어로 탄생에서 죽음까지 삶의 리듬을 새기며 의식儀式의 의미를 옹호한다. 삶의 기쁨으로 진동하는 사랑스러운 책. _리처드 도킨스(진화생물학자, 『이기적 유전자』 저자)

 

삶의 의미는 무엇인가? 사샤 세이건은 모든 곳에서 의미를 찾는다. 가족에게서, 세상에서, 특히 우주의 별들 사이에서. 이 책을 읽으면 나의 걸음 하나하나, 내가 먹는 음식 한 입 한 입, 내가 쉬는 숨 한 모금 한 모금이 더욱 소중히 여겨질 것이다. _빌 나이(과학 커뮤니케이터, 〈빌 아저씨의 과학 이야기〉 진행자)

 

리처드 도킨스, 정재승, 김하나 추천!

“삶의 기쁨으로 진동하는 사랑스러운 책!”

 

칼 세이건과 앤 드루얀의 딸, 사샤 세이건의 첫 책!

과학적 사유가 녹아든 인문학적 시선이 그려낸

삶에 관한 아름다운 통찰

 

삶의 리듬을 아름답게 만드는 매일의 의식儀式들과,

너무 가까이 있어 알아차리지 못했던

일상의 조각들이 만들어내는 경이로운 우주에 관하여

 

『우리, 이토록 작은 존재들을 위하여』는 천문학자 칼 세이건과 과학 저술가이자 TV쇼 제작자 앤 드루얀의 딸 사샤 세이건이 쓴 첫 책이다. 출간 전부터 화제를 모았으며 2020년 가디언이 선정한 ‘이 세계를 이해하도록 돕는 30권의 책’에 선정되었다.

 

이 책은 부모에게서 이어받은 과학적 사고의 뿌리와 극문학을 전공한 저자의 인문학적 통찰이 돋보이는 에세이다. 칼 세이건과 앤 드루얀에게 과학이란 직업이기도 했지만, 세계관이자 철학이기도 했다. 그들이 말하는 과학적 시선이란 냉정한 검증의 눈초리가 아니라, 새롭게 발견된 진실을 기쁘게 바라보는 태도다. 사샤는 십대 때 아버지를 잃었지만 그의 가르침을 기억하며 세계와 인간사를 정밀하게, 그러나 매우 따스한 시선으로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사샤 세이건은 태어남과 성장, 명절과 결혼, 죽음같이 인간의 생애주기에 따른 사건들을 계절의 순환이라는 자연의 리듬과 이어나가며, 우리가 행하는 일상 속 작은 의식들이 얼마나 삶의 순수한 기쁨을 일깨우는지 담담하고 아름다운 문체로 발견해나간다.

 

칼 세이건과 앤 드루얀은 딸에게 어떤 유산을 남겼을까

“지구에 온 걸 환영해”

 

세계적인 천문학자의 교육법은 무엇일까? 칼 세이건과 앤 드루얀이 딸에게 남긴 정서적, 지적 자산이 책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칼 세이건은 사샤를 어린아이가 아니라 세상을 함께 탐사해가는 동료로 대했다. 그들은 모든 일에 끊임없이 토론하고 답을 찾아갔다. 칼 세이건은 브루클린 벤슨허스트라는 조그만 마을에서 성장기를 보냈다. 칼의 부모님인 레이철과 샘은 고등교육을 받지 못한 분들이었다. 하지만 아들에게 ‘도서관’이라는 우주를 알려주었다. 사샤가 태어나자 이 지적 여정은 대를 이어 계속되었다. 딸의 질문에 칼은 한 번도 “그건 원래 그런 거야”라든가 “내가 그렇다면 그런 거야”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 그들은 함께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을 펼치고 놀이하듯 답을 찾았다. ‘죽음’이라는 관념을 알게 된 어린 사샤는 매일 밤 엄마와 아빠에게 말한다. “죽지 마!” 그러자 ‘정확성’을 중시하는 칼 세이건은 대답한다. “최선을 다할게!”

 

현상을 비판적으로 보되 삶을 냉소적으로 보지는 말라는 가르침을 바탕으로, 사샤는 부모의 명성에 중압감을 받지 않고 부모에게서 물려받은 과학적 사고를 디딤돌 삼아 삶을 더 풍요롭고 반짝이는 시선으로 마주하는 사람으로 자란다. 조상의 뿌리를 궁금해하고 그 전통을 존중하는 법, 자연현상을 새롭게 감각하고 계절의 흐름을 소중히 여기는 법. 칼 세이건은 딸에게 ‘과학적 사실’이 그저 검증의 대상만이 아니라 아름답고 경탄해 마땅한 통찰의 원천이라는 걸 함께 일러주었다. 또 그것을 함께 탐사해나가는 매일의 일상을 세이건 가의 작은 의식으로 만들었다.

 

가톨릭교도가 전부 성직자는 아니듯이 과학적 방법론을 신봉하는 사람이 모두 과학자는 아니다. 부모님은 낮에 일하는 도중에 대두된 논쟁을 저녁식사 때까지도 이어가곤 했는데 이런 일들이 내 사고를 풍부하게 해주었다. 부모님은 아주 복잡한 개념까지도 나에게 설명해주려고 애썼고 그것도 절대로 무시하는 태도 없이 지적이고 다정한 존중심을 보여주며 그렇게 했다. 나를 마치 작은 아이의 몸안에 갇힌 교수처럼 대했다. 부모님이 이런 태도로 다큐멘터리를 만들었기 때문에 과학자가 아닌 많은 보통 사람들에게 쉽게 다가갈 수 있었던 게 아닐까 생각한다. _99쪽

 

이토록 작은 존재들인 우리가 서로를 기억하고 사랑하는 법

_크고 작은 일상의 의미를 새기고 기억하고 축하하기

 

사샤의 외가는 정통파 유대교 집안이었다. 그의 외증조부모, 즉 앤 드루얀의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독실한 유대인이었다. 교리에 따라 영어가 아닌 이디시어를 쓰고, 안식일에는 전기를 사용하지 않고 자동차도 타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아들인 사샤의 외할아버지는 더이상 유대교를 믿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사샤는 유대신앙의 뿌리를 거슬러올라가며, 신을 믿지 않을 뿐, 삶을 찬미하는 것까지 포기한 것은 아니라는 걸 강조한다. 종교를 믿지 않지만, 유대인이 아닌 것은 아니다. 유대 전통에서 강조하는 토론, 철학적 질문, 회의주의는 그들의 삶 속에 고스란히 전해졌다.

 

사샤는 태어남과 성장, 결혼, 죽음 사이 봄과 겨울 사이 수많은 축하 의식을 다층적으로 살핀다. 문화마다 다른 역법曆法을 쓰고 사회문화적 체계도 다르지만, 인류에게는 저마다 삶의 주요한 길목을 기념하는 의식이 있었다. 그리고 이는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일이기도 하다.

 

크고 작은 일상의 의미를 새기고 기억하고 축하하기. 사샤 세이건이 말하는 유한한 삶을 가치 있게 살아가는 방법이다. 계절과 자연을 인간의 삶으로 끌어들이는 아주 좋은 방법이기도 하다. 꽃봉오리가 올라오는 봄날 식구들과 티파티를 열기, 하짓날에 세상을 떠난 사람을 그리워하며 시간여행을 해보기, 첫눈 오는 날을 기념하여 아이스크림 먹기…… 기도를 드리거나 초에 불을 밝히는 오래된 전통에 변화를 주어도 좋고, 가족의 새로운 의식을 만들어도 좋다. 이 작은 의식의 목적은 다른 사람들과 연결되어 있다고 감각하는 일이다. 유한하고 변화무쌍한 삶에서 변치 않는 의식을 지켜가는 일은 이 광대한 우주에서 우리 존재를 기억하고 사랑하는 방법이다. 믿음에서 비롯한 이 의식의 끝에는 서로에 대한 사랑이 있기에.

 

우리처럼 작은 존재가 이 광대함을 견디는 방법은

오직 사랑뿐이다

 

사샤 세이건은 우리 삶 속 찰나들을 놓치지 않고 길어내 기념하여 삶을 풍요롭게 채우도록 이끈다. 책을 읽으며 그의 문장을 음미하다보면, 너무나 당연해 잊기 쉬운 진실과 마주한다. 이 무작위성과 혼란 가운데 단 하나 확실한 것이 있다면, 이토록 작은 존재인 우리가 이 세상에서 어떻게든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찰나를 살다 사라지지만, 저 우주 어딘가에 아직 우리가 알지 못하는 놀랍고 아름답고 혼란스러운 무언가가 밝혀지길 기다리고 있을 거라고. 그러니 찰나의 우연 속 우리가 만나 사랑하며 살아간다는 축하받아 마땅한 작은 기적을 오늘도 힘껏 기뻐하자고.

 

우주에 어떤 비밀이 숨어 있든 우리가 태어났다는 사실은 달라지지 않는다. 우리는 기쁨을 느낄 것이고 고통을 느낄 것이고 거대하고도 광활한 우주의 아주 작은 일부로서의 존재를 다양하게 경험할 것이다. 다음에 무슨 일이 일어나건 간에, 우리는 여기에 있었다. 각각의 삶의 기록은 시간의 흐름 속에서 잊힐지라도 우리가 여기에 있었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우리는 살았다. 우리는 이 거대함의 일부였다. 살아 있음의 모든 위대함과 끔찍함, 숭고한 아름다움과 충격적 비통함, 단조로움, 내면의 생각, 함께 나누는 고통과 기쁨. 모든 게 정말로 있었다. 이 모든 것이. 광대함 속에서 노란 별 주위를 도는 우리 작은 세상 위에 있었다. 그것 하나만으로도 축하하고도 남을 이유가 된다. _343쪽 접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