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창작 교실의 철학 강의 노트
철학과 신학 / 소설, 때때로 맑음. 이재룡 비평에세이
도봉별곡
2023. 2. 1. 00:42
철학과 신학 / 소설, 때때로 맑음. 이재룡 비평에세이
고대 철학을 전공한 화자가 아토스 산을 탐사하는 과정을 그린 이 소설을 읽으며 우리는 화자의 눈을 통해 두 개의 세계를 만난다. 첫 번째는 아토스 산에 성모 마리아가 오기 이전의 그리스 시대이다. 인류 최초의 철학자 탈레스를 연구하는 주인공 덕분에 독자는 아테네 대학의 철학 강의를 귀동냥하게 된다. 두 번째 세계는 세상을 등지고 아토스 산 속에 칩거한 은수자들의 세계이다. 우선 주인공 어깨너머로 철학 강의를 들어보자.
나는 소크라테스 이전의 철학자들이 천문학자, 기하학자, 대수학자, 물리학자, 박물학자, 의사, 시인, 정치학자 등이 모인 이질적 집단이란 것을 발견했다. 테아노 교수는 기원전 7-6세기 사이에 살았던 탈레스가 어떻게 피라미드의 높이를 계산했는지 설명해주었다. 지팡이를 모래에 세운 후 그림자의 길이가 실제 높이와 일치되는 시간을 골라 그는 피라미드의 그늘을 재서 높이를 계산한 것이다. 그것은 흥미로웠다. 하지만 자연과 인간이 공기에서 탄생했는지, 아니면 물, 불, 흙, 그도 아니면 이 원소들의 결합에서 발생했는지를 따지는 그들의 관심사는 흥미롭지 않았다. 엠페도클레스에 의하면 인간이 시금치처럼 흙에서 발생했다는데 그 말을 듣고는 자칫 폭소를 터뜨릴 뻔했다. 하나만은 확실했다. 어떤 신도 인간과 자연을 창조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테아노 교수는 인간의 사유가 그 가능성을 발견하여 그 사유가 작용하는 영역을 무한히 확장한 것이 바로 그 순간이었다고 결론내렸다.
테아노 교수에 의하면 초월적 신이나 조물주에 의지하지 않고 오로지 추론과 논리만으로 자연과 인간을 설명하려는 시도는 그리스인에 의해서 시작되었다. 모든 존재의 근원에 조물주를 상정하지 않은 철저한 유물론적 태도가 그들 사유의 토대였으니 이른바 철학이란 것은 그리스인의 발명품인 셈이다. 다시 테아노 교수의 강의를 들어보자.
소크라테스 이전의 학자들은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있다고 믿었지만 그 길이 무척 어렵다는 것도 동시에 인식했다. 그래서 그들 중 몇몇은 아무것도 모른다는 태도를 견지했다는 것도 나름대로 수긍할 수 있다. 그들은 회의를 키우고 우주에 시작이 있다는 것을 의심했으며, 그것이 진화한다는 것도 의심한 나머지 우주의 존재마저도 의심했다.
인류 최초로 철학을 발명한 그리스인에게 기독교의 도래는 재앙이었다. 아토스 산의 신전이 부서지고 수도원이 세워지면서 그리스 철학은 그 맥이 끊긴 것이다. 그리스 뭇 신의 신전과 조각상이 파괴되고 그 자리에 교회와 성상이 세워졌으며 제각기 다른 기능을 지닌 그리스 신들은 기독교의 성자로 대체되었다. 다신교에서 일신교로 변한 데 따른 민중의 허전함은 앞서 인용했던 기독교의 뭇 순교자들을 숭배하는 것으로 다소 보상받은 셈이다. 강의실을 나오며 주인공은 눈앞에서 땅이 융기하여 두 개의 높은 흙더미로 쌓이는 것을 상상한다. 하나는 '의심의 언덕'이며 다른 하나는 '확신의 산'이었다. 스물네 살의 주인공이 이 언덕과 산을 순례하는 것이 이 소설의 줄거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