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리실증주의 Logical positivism 과학철학 / 현대철학[출처]
논리실증주의 Logical positiv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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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리실증주의는 대개 1차세계대전 이후 나타났던 빈학파의 논의와 그 구성원들의 철학적 입장을 의미한다. 이들의 주장은 특히 그 어느때보다도 20세기 초반에 활발히 다루어지기 시작했던 자연과학에 대한 철학적 논의와 언어분석철학의 논의에 뒤섞여 있다. 분석적 작업은 그들의 과학에 관한 철학적 논의의 가장 핵심이었기 때문이다.
1. 논리실증주의의 배경
1.1 1차세계대전 이전
1896년 빈대학교에서는《귀납과학과 철학, 특히 귀납과학사와 이론》1이라는 새로운 성격이 강의가 개설되었다. 그리고 이 새로운 분야의 담당교수로 당시 프라하대학 물리학과의 실험물리학 교수로 유명했던 마하를 임명했다. 이후에는 볼츠만(1902), 슈퇴르(1906)등의 학자들이 후임으로 임명되며 귀납과학과 철학의 학문적 전통이 유지되었지만, 마하 및 볼츠만과 다르게 슈퇴르는 심리학자였던 탓에 원래의 특성이 상대적으로 매우 약화되었고, 그 전통은 슈퇴르의 강의가 아니라 다른 방식으로 활성화되었다. 이 무렵에 과학철학을 연구하는 젊은 과학자들의 비공식적이지만 정기적인 모임이 자연스럽게 생겨났는데, 이는 1907년부터 1912년까지 지속되었다. 이 모임의 구성원들은 나중에 '빈학파'의 핵심적인 역할을 하게 되는 학자들로, 수학자 한, 물리학자 프랑크, 사회학자 노이라트등이 있었다. 이들은 당시 복잡했던 시대상황에 대해 많이 논의했지만, 그중에서도 특히 과학철학의 문제들을 다루었다. 이들 세사람은 마하를 중심으로 싹텄던 논리실증주의의 출발에서부터 1차세계대전 이후 빈학파의 성립까지 적극적으로 개입하며 과학철학의 발전에 큰 기여를 했다. 이런 점에서 논리실증주의의 제 모습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1차세계대전 이전의 마하를 중심으로 한 논의를 알아보는 것이 적절하다.
1.2 빈학파와 비트겐슈타인
1918년 1차대전이 끝나고, 1922년 빈대학은 귀납과학의 철학 담당 교수로, 물리학과 수학을 전공한 슐릭을 초비했다. 여기에는 일찍이 마하의 실증적 과학철학 논의에 첨여했고, 마침 1921년부터 빈대학 수학과 교수로 있었던 한의 적극적인 도움이 결정적이었다. 당시 슐릭의 등장은 다시 빈 학계에 과학철학의 논의를 활성화하는 중요한 계기였다. 빈학파에는 두 종류의 중요한 토론 모임이 있었다. 첫번째는 1924년 슐릭의 제자였던 바이스만과 파이글이 슐릭에게 제안하여 매주 목요일 저녁마다 가진 토론 모임이다. 참석자들은 스스로 이 모임을 '슐릭 모임'이라고 불렀는데, 그 이름만큼 슐릭은 자연과학을 전문적으로 연구했던 학자였을 뿐더러 유일한 철학과 교수였기 때문에, 목요일 토론에서 자연스럽게 중요한 역할을 했다. 두번째는 한과 노이라트를 중심으로 마하의 학문적 입장에 관심을 품었던 자연과학자와 철학자들이 결집한 전문적인 학자들의 모임이었다. 이 모임은 당시 프라하대학에 재직하던 프랑크까지 자주 참석했을 정도로 활발했다. 목요일 모임에 참석했던 슐릭의 제자들이 학문적으로 성숙해지면서 자연스럽게 이 모임은 목요일 모임과 하나로 합쳐졌다.
그외에 1926년 슐릭이 라이헨바흐2의 초대로 카르납을 빈대학 조교수로 초빙한 사건도 중요하다. 카르납은 이후 1931년 프라하대학의 자연과학부 교수로 이적하기 전까지, 토론 모임에서 슐릭과 학문적으로 밀접한 관계를 맺으면서 빈학파, 즉 논리실증주의의 핵심이론을 확립했기 때문이다. 슐릭 중심의 '모임'이 '빈학파로' 불리게 된것은 1929년부터이다. 그 당시 노이라트를 중심으로 슐릭 모임의 핵심 구성원들은『과학적 세계관. 빈학파』라는 팸플릿을 발표하며, 자신들의 모임에 빈학파라는 명칭을 붙였다.3
논리실증주의 논의에서 마흐 못지 않게 늘 거론되는 중요한 학자가 비트겐슈타인이다. 모임의 구성원들은 이미 개별 접촉을 통해 비트겐슈타인을 높이 평가했을 뿐만 아니라, 1924년부터는 논리철학논고에 관하여 의견을 발표했으며, 1926-27년에는 논리철학논고를 꼼꼼히 독해, 검토하기도 했다. 물론 논리실증주의자들이 논리철학논고에 나타난 비트겐슈타인의 생각을 제대로 이해했는지는 논란이 많지만, 대체로 논리실증주의자들은 논리철학논고에 나타난 반형이상학적 태도와 철학을 '언어비판'으로 파악해서 비트겐슈타인의 주장이 이를 위한 기준의 제시라는 점에서 절대적으로 공감했다. 이는 빈학파의 논리실증주의자들이 '과학적 세계관' 말미에 아인슈타인, 러셀과 더불어 비트겐슈타인을 그들의 사상적 지주로 내세운 배경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비트겐슈타인이 논리실증주의에 전적으로 동조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비트겐슈타인은 이후 그들과 차이를 확인하고 사상적 결별을 선언했다. 그러나 빈학파의 논리실증주의자들은 비트겐슈타인의 논의를 통해 자신들의 새로운 학문적 신념을 공고히할 수 있었다.
2. 논리실증주의의 이론적 토대와 내용
러셀, 비트겐슈타인, 에이어, 카르납 등에 의해 주창된 논리 실증주의를 다음의 한 문장으로 거칠게 요약할 수 있다 : "경험적 대상을 다루거나 논리적 동어반복을 언급하는 진술들만이 의미를 가진다." 이와 같은 주장은 논리 실증주의를 발전시킨 몇가지 전통과 함께 이해할 수 있다.
2.1 반형이상학
19세기 독일 관념론이 드러낸 철학의 성격은 과도하게 사변적이었고 독단적이었다. 이러한 사변적 철학은 가장 일반적인 원리에 대한 앎을 추구하고, 세계 전체를 설명할 수 있는 철학적 시스템을 구성하는 것을 목적으로 삼았다. 그런데 이런 사변적 철학은 반실재적일 뿐더러, 자신의 사상을 유추와 시적 언어를 사용해 표현함으로써 대단히 난해하다는 문제점이 있었다. 이에 따라 당시 학계에는 반형이상학적 경향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예컨대 콩트의 실증주의가 대표적이다.4 실증주의는 사변적 철학 및 형이상학에 대한 부정이라 볼 수 있다. 한편 19세기의 반형이상학적 경향은 실증주의 말고도 다양하게 표출되었다. 무엇보다도 아인슈타인의 경험주의적 과학은 독단적 사변이 아닌 경험에 기초한 것으로, 논리실증주의의 과학적 경향을 강화해주었다.
마하에서부터 시작된 빈학파의 논의를 논리'실증주의'라고 부르는 것또한 근대 자연과학의 방법과 성과의 적극적 수용과 반형이상학적 성격때문이다.5 논리실증주의는 과학에 관심을 가진 철학자들과 철학에 관심을 가진 과학자들의 협동적인 노력을 통해서 탄생했다. 이들은 물리과학이 행하는 주장 및 가설이 실험과 관찰이라는 객관적인 테스트를 통해 객관적인 지식의 집합체로 성장하는데 반해서, 형이상학이 개진하는 발언들은 객관적이고 비판적인 평가를 받을 수 없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즉 경험적 방법에 근거한 실증성과 논리성을 가진 믿을만한 논리적 지식인 과학이 인식론적으로 가장 우위에 있는 학문이며, 따라서 철학은 세계에 대한 설명은 과학자들에게 넘기고, 과학적인 개념(시간·공간·물질·에너지·양자등)의 의미를 명료화하고, 과학적 명제의 의미를 분석하는 것 등을 과제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철학자들은 시인이나 문인들이나 쓸 감정적 언어가 아니라 명석판명한 언어를 사용해야 한다. 예컨대 이전의 사변적 철학에서 보편적인 도덕적 지침을 제시하려고 시도한데 비해, 논리실증주의자들은 도덕적 규칙이 지적으로 정당화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이런 반형이상학적 경향이 가장 잘 드러나는 것이 후술할 의미검증이론이다.
2.2 경험주의
반형이상학의 경향은 '언어의 논리적 분석을 통한 형이상학의 제거'로 나타나기에 이르렀다. 논리실증주의는 논리적 분석과 자연과학을 기반으로, 참된 인식을(또는 자연세계의 진리를) '의미있는' 경험에서 찾는다. 예를 들어 경험론자였던 흄에 따르면 우리는 어떤 사물들 간의 인과성을 확신할 수 없다. 즉 'A가 B의 원인이다'라고 하는 것은, 경험상 예측하고 잠재적 사실로 가정할 뿐이지, 실제로 감지될 수 없는 부분에 불과하다. 논리 실증주의는 이로부터 영향을 받아 의미있는 진술들의 범위에 경험적 대상들과 논리적 진술들을 허용하였다. 흄과 다르게 논리적 진술들을 허용한 이유에는 크게 세 가지 점을 거론할 수 있다:
1. 논리적 진술들을 허용하여 과학에 있어서의 연역적, 귀납적 추론들을 보존할 수 있었다.
2. 논리적 진술들을 배제하면 우리 언어에 있어서의 '또는', '그리고', '만일'과 같은 요소들을 전혀 설명할 수가 없었다.
3. 세계에 관한 인식의 기본 요소는 사물들의 연쇄로 구성되지, 사물 하나로는 구성되지 않아보였다. 예를 들어 거미에 관해 이야기하고자 하면 우리는 거미가 어떤 색인지, 거미가 어디에 있는지, 거미가 언제부터 있었는지 등 거미과 관련된 사물들에 관해서도 이야기해야만 한다.6
2.3 새로운 논리학
논리실증주의는 논리학과 경험주의의 결합이다. 그러나 경험주의와 논리학이 서로 연결되기에는 전통적으로 너무 다르다. 경험주의는 세계에 관한 경험을 그 어떤 것보다도 중요하게 내세우지만, 논리학은 논리규칙에 관한 학문으로서, 경험주의의 출발점인 세계와 자연에 대한 경험과는 무관하다. 즉, 여기서 말하는 논리학이란, 전통적 의미의 논리학이 아니라, 19세기에 크게 발전해 새로운 과학혁명을 이끈, 즉 자연세계에 관한 경험과 이 구체적 경험을 기술할 수 있는 새로운 논리체계이다. 여기서 말하는 새로운 논리체계란 러셀과 비트겐슈타인등의 그것이다.7
이들의 논리학에 따르면, 가장 복잡한 논리적 진술들도 결국에는 정말 단순한 논리적 명제들의 합으로 치환될 수 있었다. 따라서 우리 언어의 기본 골격이 논리학에 있다는 점만 인정된다면, 가장 복잡한 일상 언어도 가장 단순한 명제들의 합을 변수로 가진 일종의 함수로 간주할 수 있을 듯 보였다. 그렇다면 철학자들의 임무는 그 함수에 들어갈 적절한 상수를 찾는 일이 될 것이다. 이런 식의 발상은 주로 러셀 등 논리학자들의 몫이었다. 논리실증주의자들은 초창기 자신들이 품었던 생각, 즉 논리실증주의자들은 사변적 철학의 비학문적 성격을 벗어날 결정적 돌파구를 비트겐슈타인의 논리철학논고8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2.4 의미검증이론
논리학과 경험주의의 결합단계에 이르러 논리실증주의자들의 논의는 반형이상학을 강조하는 마하의 실증주의적 전통을 뛰어넘어 슐릭과 카르납의 논의로 정교하게 발전했다. 특히 과학과 과학 아닌 것을 구분하는 기준 설정의 문제의 해답으로 검증가능성을 제시한 카르납의 견해는 논리실증주의를 대표하는 것으로서 주목할만하다. 카르납에 있어서 유의미한 명제란 (1.) 참 혹은 거짓의 진리치를 갖는 명제이며 (2.) 직접적 관찰·경험을 통해 관찰명제로 환원될 수 있는 것이거나 (3.) 다른 단순한 명제로 환원될 수 있는 것=기록문장(검증을 요구하지 않는, 주어진 것을 직접 기록하는 문장)으로 연역될 수 있는 것" 이다. 카르납의 표현을 직접 인용하자면: “‘a’를 어떤 낱말이라고 하고, S(a)를 그것이 나타내는 기초문장이라고 할 때, ‘a’가 의미있기 위한 필요충분조건은 다음과 같다. (i) ‘a'에 대한 경험적 기준(empirical criteria)이 알려져야 한다. (ii) S(a)가 어떤 기록문장으로부터 연역될 수 있는가가 규정되어야 한다. (iii) S(a)에 대한 진리조건(truth condition)이 확정되어야 한다. (iv) S(a)에 대한 검증의 방법이 알려져야 한다.” 대부분의 형이상학적 개념들은 위의 요건들을 만족시키지 못한다. 예를 들어, ‘원리’라는 용어가 그러하다.
요컨대 카르납에 따르면 어떤 명제가 의미있다는 것은, 그 명제가 형식에 있어서 참 혹은 거짓을 분명히 할 수 있는 논리적(분석적) 명제이거나, 감각적 경험을 통해서 진위를 구분할 수 있는(검증할 수 있는) 과학적(경험적) 명제라는 것이다. 즉 "(1.) 분석적 혹은 자기모순적이거나-그형식에 의해 논리적으로 그 진위가 결정되는 분석적 문장인가? (2.) 경험적 테스트가 가능한 문장인지의 여부-경험적으로 참 거짓 여부를 검증할 수 있는가?"가 어떤 문장의 의미여부, 참 또는 거짓 여부의 기준이다.
이렇게 빈학단의 논의에서 진술의 의미여부를 의미의 검증기준으로 받아들인다는 것은 중요한 변화다. 구체적으로, 이 의미검증이론은 논리실증주의의 입장이 극명하게 드러나는 이론이라 볼 수있다. 카르납은 자신의 분석을 토대로, 철학을 과학논리학, 즉 과학의 개념, 명제, 증명, 이론에 관한 논리적 분석이라고 정의했다. 이런 기준에 따른다면, 형이상학적 명제를 포함하여 모든 규범 철학, 가치철학, 윤리학, 미학 등의 명제는 무의미한 사이비 명제에 속하는 것으로 간주되며, 철학은 종교, 도덕, 미학적 주장 등을 논의하는데 있어서는 매우 부적합하다.9 카르납에 따르면: “이 명제들은 분석적 명제를 주장하려 하지 않으며 경험과학의 영역에 속하지도 않으므로, 어떤 적용의 기준도 구체화되지 않고, 의미를 갖고 있지 않는 낱말을 채용하게 되며, 또한 분석적(혹은 모순적) 명제나 경험적 명제가 산출되는 방식으로 의미있는 낱말과 결합하지 않는다.” 결국 어떤 명제가 고찰되고 논의될 필요가 있는 유의미한 명제인가 아닌가는 그 명제가 관찰 경험을 통해 검증될 수 있는가의 여부에 달려있기 때문이다.
2.4.1 강한 검증가능성
이는 초기 논리실증주의자 슐릭, 카르납, 노이라트 등이 제안한 검증원리로서, 결정적 검증성(conclusive verfiability)이라고도 부른다. 이에 따르면 경험에 의해서 결정적으로 검증되는 명제, 즉, 현재의 지각으로 직접 검증할 수 있는 기록명제나 관찰명제로 환원할 수 있는 명제만이 인식적으로 의미있는 명제이다.
2.4.2 의미검증이론의 문제점
논리 실증주의는 여러 문제들을 내포하고 있었지만, 가장 중대하고 유명한 문제는 논리 실증주의가 그 스스로 정당화되기 힘들어보였다는 데에 있었다. "경험적 대상을 다루거나 논리적 동어반복을 언급하는 진술들만이 의미를 갖는다"라는 논리 실증주의의 주장은 그 자체로는 경험적 진술인가, 아니면 논리적 진술인가? 이 주장은 언어의 특정 사용에 관한 문장이므로 경험적 진술이라고 보기엔 힘들다. 또한 이 주장이 'A=A'와 같은 논리적 진술을 표현하고 있지 않다는 점도 명백하다. 따라서 이 주장은 그 둘 중 어떤 것으로도 간주하기 힘들어보인다. 이처럼 그들의 가장 기본적인 주장은 그들의 원리에 의해 정당화되지 않았기 때문에, 논리 실증주의에서 이루어진 여러 복잡하고도 쓸모있어보였던 언어분석들에도 불구하고, 그 분석의 지침이 되었던 논리 실증주의의 주장이 정당화되지 않았으므로 그 분석들이 도대체 왜 필요한가를 설명하기가 곤란했다. 즉 귀납적 방법으로 과학의 이론이나 법칙은 성립되지만, 보편진술의 형태인 이론이나 법칙의 진리는 어떤 방식으로든지 검증될 수 없다는 것이다. 결국 논리실증주의의 주장은 과학이 이론 체계의 많은 부분을 구성하는 문장들을 비과학적인 것으로 판정해야 하는 부담을 안게 된다. 특히 보편명제로 표현되는 과학적 법칙을 의미없는 것으로 만들어 버리게 되는 난점이 발생한다. 예컨대 “모든 사람은 죽는다”, “모든 물체는 열에 닿으면 팽창한다”와 같은 일반명제, 미래에 관한 명제, 과거에 관한 명제, 타인의 마음에 대한 명제, 감각의 유사성에 대한 명제마저도 과학에서 배제해버린다. 실질적으로 그들은 형이상학을 제거하려는 열망으로 인해, 형이상학과 함께 과학도 없애 버린다.
이외에도 논리 실증주의에는 여러 문제들이 있었다. 대표적으로 다음과 같은 문제들을 거론할 수 있다:
1. 유아론의 문제 : 논리 실증주의의 가장 기본적인 요소가 감각 경험이라고 할 때, 나의 감각 경험은 다른 사람의 감각 경험과 그 성격이 일치하는가?
2. 원자 명제의 문제 : 세계에 관한 가장 기본적인 명제들을 과연 우리가 표현할 수 있는가?
3. 논리 체계들의 문제 : 논리 실증주의에서 사용되는 여러 논리적 도구들 중에, 완전히 성격이 다른 논리 체계를 바탕으로 한 도구들이 존재한다면 어떤 기준을 통해 더 나은 논리 체계를 선택해야 하는가?
논리 실증주의(Logical Positivism)의 유화된 변형인 논리적 경험주의(Logical Empiricism)의 주장이다. 즉 후기 카르납, 라이헨바하, 에이어, 헴펠 등이 제시한 약한 의미의 검증가능성의 기준으로서, 이것은 확증가능성의 기준(criterion of confirmability)이라고도 부른다. 에이어에 따르면: “강한 의미의 검증가능성에서는 하나의 명제는 오직 그것의 참됨이 경험에 의해 결정적으로 입증되는 경우에만 검증가능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약한 의미에서는 그것은 경험에 의해서 개연적(probable) 확인이 가능한 것이면 검증가능한 것이 된다.” 즉 어떤 명제에 긍정적인 증거가 몇이라도 드러나면 그 명제는 의미있는 것이 된다는 것이다. 요컨대 확증가능성의 원리는 확실성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고, ‘어느 정도의 확실성’만을 요구하는 것이다.
여기서 확증이란, 이론의 정당화를 위한 테스트 과정에서 가설에 대해 유리한 증거나 증거상의 지지가 발견된 경우를 말한다. 확증은 관찰이나 실험을 통해서 얻어진 경험적 자료(증거)를 토대로 한다. 이는 귀납적 방법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며, 유용한 증거가 가설에 부여하는 지지의 강도인 확증도는 귀납적 확률로 표시된다. 확증가능성을 통해서 강한 검증가능성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과거 사실에 대한 명제, 타인의 마음에 대한 명제, 미래에 관한 명제도 과학적 적합성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확증가능성에 따르면 과학적인 법칙을 포함한 일반명제들은 그것에서 유도할 수 있는 직접명제들에 의해 확증되기 때문에, 과거는 간접적인 검증을 허용하기 때문에 유의미하며, 타인의 마음은 그의 행동을 관찰함으로써 확인가능하며, 미래또한 기다림을 통해 확인가능하기 때문에 신빙성이 있다. 그러나 여전히 형이상학적 명제들은 그것의 확증을 위한 증거나 그것에서 유도된 직접명제를 얻을 수 없기 때문에 무의미하다.
허나 확증가능성이란 너무 느슨한 기준이다. 관찰적 사실에 의한 확증을 통해, 이론은 개연적인 것이 될 뿐이지, 결코 확실한 것이 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확증가능성의 기준에 근거하자면, 점성술이나 역술가의 주장은 물론 어떠한 횡설수설이라도 모두 과학적인 것으로 해석할 수밖에 없다. 이들도 그 정도가 낮을 수는 있겠지만 확증가능성을 찾을 수 있다고 해야 하기 때문이다.
2.5 통일과학의 이상
카르납은『세계의 논리적구성』에서 '구성이론'을 제시해 경험세계에 대한 논의들의 논리적 구성가능성을 모색했다. 이어서 출간한『언어의 논리적 통사론』과『철학과 논리적 통사론』에서는 세계의 논리적 구성을 위한 '논리적 통사론'을 제시한다. 이는 논리실증주의가 기대했던, 특히 노이라트가『과학적 세계관』에서 구체적인 방향을 제시했던 빈학파의 이상에 대한 실현계획을 구체화한 것으로서, 지식을 경험을 통해 정당화함으로써 형이상학을 위시한 독단적인 주장들로부터 학문의 지위를 빼앗고, 모든 학문의 기초를 자연과학, 특히 물리학의 방법을 따라 하나의 단일한 학문적 체계로 묶는 '통일과학'을 위한 이론이다. 이 통일과학운동은 과학주의의 대표적 예시라 말할 수 있다.10
2.5.1 논리실증주의와 과학주의
카르납에 따르면, 과학에는 한계가 없어 무제한적으로 확장될 수 있다. 또한 헴펠은 과학이 예측과 설명, 그리고 통제에서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다고 말한다: “우리 시대는 과학과 과학적 기술의 시대라고 종종 일컬어진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자연과학자들에 의해서 이룩된, 보다 최근 들어서는 심리학과 사회학의 영역에서 이룩된 지난 몇 세기 동안의 진보는 우리의 지식을 확장하고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와 인간에 대한 이해를 깊게 하였으며, 과학적 통찰의 실천적인 적용은 자연의 힘과 인간의 정신을 통제할 척도의 증가를 가져왔다.”
이런 점에서 헴팰은 과학이 인간에게 혜택을 가져온다고 주장한다: “과학적 지식과 그것의 응용은 인간의 가장 오래되고 무서운 재앙의 위협을 상당한 정도로 경감시켜 준다. 그것은 삶의 물질적 수준을 높여 주었다...또한 과학은 우주 공간으로의 탐험을 가능하게 해 주었다.”
이러한 과학의 성과는, 과학의 방법이 다음 세가지 이유에서 객관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1. 과학은 관찰이라는 의심할 수 없는 토대를 가진다.
2. 관찰된 특수한 사례들로부터 보편적인 법칙들을 일반화할 수 있는 귀납이라는 정당한 방법을 가진다.
3. 과학의 설명과 예측은 타당한 논리적 구조를 가진다.
2.5.1.1 과학주의의 문제점
과학주의에 의하면 오직 과학만이 합리적인 것이다. 따라서 합리성도 이제 전적으로 과학적 합리성이 되고 만다. 과학이 아닌 것은 비합리적인 것이기 때문에 지적인 활동에 포함될 수 없을 뿐 아니라, 과학적 방법이 아닌 방법으로 얻어진 것들은 지식으로서의 지위를 잃게 된다. 이처럼 과학주의는 우리의 삶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문제들 또한 과학적인 방법에 의해서만 해결되어야 할 것으로 여기게 된다. 급기야 과학주의는 과학을 맹신의 대상으로 삼고 과학 이외의 것들을 경시하거나 무시하는 태도를 드러낸다.
2.5.2 논리실증주의 과학철학의 성격
철학의 역사에서 과학은 늘 중요했지만, 그 가운데에서도 논리실증주의는 자연과학을 중요한 한가지 주제로 이끌어낼 뿐만 아니라, '과학철학'이라는 철학의 한 분야를 가능케 했다. 1920년대부터 40년대까지 지속되었던 논리실증주의는 사실 단순한 철학적 사조라기보다 철학과 과학의 협동에 의해 이루어진 하나의 거대한 활동이었기 때문이다. 과학자들은 본인의 작업들에 관해 보다 유용한 언어를 얻기 위해 논리 실증주의에 동참했고, 철학자들은 과학의 활동들에 자극을 받아 철학도 일종의 과학으로 만들기 위해 논리 실증주의에 동참했다. 실제로 논리 실증주의에서의 중요한 그룹이었던 '비엔나 학파'에는 철학자들과 더불어 다수의 과학자들이 참가하고 있었다. 그 그룹에서 철학자들과 과학자들은 다같이 모여서 철학을 논리학으로 환원하는 데 힘을 모았던 것이다.
논리 실증주의는 비록 실패하였지만 과학의 성과들을 외면하지 않고 철학하는 데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할 것이다. 이렇게 논리실증주의가 과학의 형식적 측면에 관련된 논의를 전개했다는 점에서 논리실증주의에 반대하는 사람들도 과학의 형식적 측면을 다루게 되었고, 이 과정에서 과학철학은 급격하게 발전했다. 포퍼, 핸슨, 퍼트넘, 콰인, 쿤 등의 주장들은 근본적으로 논리실증주의 과학철학을 비판하면서 등장했기 때문이다.
- 줄여서 '귀납과학의 철학'
- 라이헨바흐는 일찍이 빈학파와 관심이 유사했으나, 독일의 베를린에서 활동하고 있었고, 베를린학파를 결성했다. 그러나 베를린학파는 활동기간이 너무 짧았고 빈학파와 입장도 유사해서 주로 빈학파에 곁들여져서 거론된다.
- 당시 노이라트가 주도하고 한과 카르납이 검토해서 공동명의로 발표했다는 것이 정설이지만, 슐릭의 제자 파이글과 바이스만이 노이라트의 초고 작성에 깊이 관여했다는 증언도 있다.
- 콩트가 말하는 실증주의란, 철저히 관찰가능한 물리적 대상에 관한 것으로, 근대 자연과학의 방법이나 성과를 토대로 성립되었다. 이는 명백한 사변적 철학 및 형이상학에 대한 부정이라 볼 수 있다.
- 그러나 실증주의라는 용어외에 콩트와 빈학파간의 공통점은 없다. 오히려 두 입장을 구분짓게 만드는 결정정 차이점이 있는데, 이는 각 하문간의 관계에 관한 입장에서 잘 드러난다. 콩트의 실증주의에서 실증적 단계의 학문들 간의 위계는 실증과학(즉 사회학)을 확립하는데 기여했지만, 그렇다고 실증적 단계에 있는 학문들 간의 통합을 논의하지는 않는다. 이와 달리 빈학파는 '통일과학'의 이념을 그들의 핵심 주장으로 내세운다.
- 즉 거미가 어떤 색인지는 이야기할 수 있어도 아무 색깔도 아무 위치도 없는, 즉 아무 속성도 없는 거미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런 점에서 세계에 관한 우리의 인식과 표현의 기본 요소는 사물 그 자체가 아니라 사물들의 연쇄이다. 따라서 사물들의 연쇄를 구성하는 '그리고', '또는'과 같은 논리적 진술들도 의미있는 진술에 허용되어야만 했다.
- 러셀은 새로운 논리학이 기존의 철학적 문제들에 대한 해결책으로 이끌 수 있는 분명한 방법을 제시할 것으로 확신했다. 여기서 새로운 논리학의 출현은 단순히 하나의 논리체계가 생겨났다는 것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 논리적 진술은 동어반복의 분석적 진술로 필연적으로 참이지만, 논리적 진술의 본질은 논리적 형식과 구조에서 찾을 수 있다. 따라서 참으로 받아들여진 세계에 관한 경험적 진술들은 논리적 형식과 구조에서 학문적 성격을 찾을 수 있다. 따라서 세계에 관해 언어로 기술된(진술된) 독단적인 사변철학은 비트겐슈타인이 말하는 '언어비판'의 대상이 된다. 이러한 것이 논리철학논고의 서문에서 러셀이 이 책에 대해 "어떻게 해서 전통적 철학과 전통적 해결 들이 기호체계의 원리들에 대한 무지와 언어의 오용에서 발생했는가를 보여주고 있다"라고 썼던 이유이다.
- 그러나 논리 실증주의가 문학, 윤리, 사랑 등을 모두 포기해야 한다는 극단적인 과학주의라고 보기에는 문제점이 있다. 논리 실증주의자들이 저런 극단적인 주장을 펼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논리 실증주의는 과학의 언어로 정당화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탐구하는 사조였다. 이는 논리 실증주의로부터 배제된 특정 영역들이 과학과는 다른 방식으로 주장되어야 한다는 것을 함축할 뿐, 그것들이 인간의 삶에서 배제되어야 한다는 것을 함축하지는 않는다. 물론 과학이 아닌 것을 경시하는 태도가 몇몇 논리 실증주의자에게서 보이기는 한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논리 실증주의자들이 더 많았다. 예를 들어 비트겐슈타인이 그랬다. "말할 수 없는 것에 관해서는 침묵해야 한다."는 논리철학논고의 유명한 언급은 흔히 과학이 아닌 것에 대해서는 말하지 말아야 한다는 건방진 발언으로 이해된다. 그러나 실제로 비트겐슈타인은 철학의 문제들보다 삶의 문제들, 삶의 형식들이 훨씬 중요하다고 간주했다. 위 언급은 인간 인식, 인간 표현의 한계에 대해 우리가 숙고해야하고 그 한계를 넘어서는 표현들이 과연 정당한지에 관해 숙고해야한다는 발언일 뿐이다. 비트겐슈타인 외에도 에이어 등의 논리 실증주의자들은 과학이 아닌 것을 존중하였고, 그것들이 다만 과학과는 다른 형태로 주장되어야 함을 강조하였다. 따라서 논리 실증주의가 극단적인 과학주의를 함축한다는 주장은 많은 점에서 사실이 아니다.
- 그렇다고 '논리적 통사론'이 단지 과학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과학철학의 방법론으로 제시된 논리적 통사론은, 이는 언어로 이루어진 논의에 적용되는 것으로서, 당연히 통사론이 적용될 수 있는 언어적 표현에도 유효하다. 이른바 언어분석철학이 그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