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후기

불교 조금 특별한 이야기 / 자현

도봉별곡 2024. 3. 1. 09:17

불교 조금 특별한 이야기 / 자현

 

종교의 생성은 환경과 깊은 관계

농경ㅡ유교 힌두 ㅡ다신 ㅡ선택적 관계

유목ㅡ기독 이슬람 ㅡ유일신 여러 신에게 의존할 필요가 없다 종속적 상하관계

상업ㅡ불교 지적 호기심 변화 행복 신의 불요 무신 합리성 유연성 주요 농사는 10배 상업은 100배의 이윤 변화 선호.

인도는 무더위로 명상 위주 관조문화. 주류와 오락문화가 거의 발생 어려움.

 

종교는 신성한 것이 아니다

불교, 어떻게 볼 것인가

서양화 ㅡ덧칠의 인고

동양화 ㅡ일필휘지 직관적인 방식으로 작가의 정신경계를 나타낸다.

중국사상을 일관하는 인성론

음식전문점 ㅡ유일신교 ㅡ믿음 ㅡ박물관같이 용이한 접근성

초밥 ㅡ불교는 다양하다 ㅡ앎을 통해 나를 나타낸다

미술관 같은 지성적 유희 ㅡ지적인 상형문자

 

기독교를 아는 건 3일, 유교를 아는 건 3달, 도가를 아는 건 3년, 불교를 아는 건 30년 되어도 모른다. 오죽하면

 

유일신교는 신의 창조를 표방하면서 시작하여 수천 년이 지나도 보수의 기조에 변화가 없다. 그러나 과학은 계속 변화를 요구하는 진보의 기치를 들고 나아간다. 그러므로 유일신교는 결코 과학이 될 수 없다. 경제적 종교인 또는 직업 종교인은 裕福을 보장하는 기득권 때문에 창조론을 바꿀 수 없다. 신의 권위와 자신들의 권위는 두 개의 수레바퀴와 같기 때문이다. 곧 양자의 관계는 절대 필수적 관계이지만 평행선을 가는 반대의 극명한 입장. 일시적 봉합도 어렵다.

 

5가지 이유

불교는 양면성을 갖고 있어 신의 존재를 부정하고 누구나 붓다가 될 수 있고, 무상과 무아를 표방하므로 변화를 선호하는 진보적 성향이 깊다.

 

초기불교 ㅡ연기와 사성제, 삼법인의 실천 ㅡ열반적정으로 이어진다. 중도의 수행은 한편으로 가화합성에 따른 끊임없는 변화 속에서 현재적인 적절성. 시의적절 ㅡ이것을 중도적 의미 ㅡ팔정도 중도의 중의적 의미. ㅡ진리 중심의 합리적 대안

 

대승 ㅡ보살행을 통해 붓다가 되고자 하고 上向

밀교 ㅡ붓다라는 자각에서 출발한다. 下向

 

선종ㅡ붓다가 내가 되고 그저 일상의 전체 자체가 깨달음이 된다.

밀교ㅡ내가 붓다가 된다. 이 세계가 그대로 깨달음의 경계인 만다라가 된다. ㅡ나의 편만

 

대승불교의 꽃, 티베트를 통해 세계화하다

밀교는 일부 힌두교로 흡수되고 본류는 이슬람이라는 무력적인 억압에 시달리다가 히말라야를 넘어 티베트로 가게 된다. 후일 티베트밀교가 되며 그곳에서 몽고의 세계 制霸/霸權 시기에 강력한 세력으로 중국 문화권을 휩슬게 된다. 중국의 공산화로 억압을 피해 티베트밀교는 세계 속으로 별처럼 흩어지며, 생각지도 않은 불교의 세계화에 근접한다. 덕분에 티베트불교는 전 세계 제1의 불교가 되었으며, 불교는 세계 종교 중에서 종교 인구가 늘어나는 유일한 종교가 된다. 불교는 상업자본과 운명을 같이 한다. 변화에 이골이 나있으며 넓은 세계를 안다.

 

앞으로ㅡ특수에 대한 보편의 역습 50ㅉ

힌두의 신 브라흐마와 바라문=브라만의 관계에서 더 많은 이익을 창출하기 위한 방편으로 특정한 종교의식을 통해 신의 권능을 입을 수 있다는 희생제의 ㅡ카렌 암스트롱/제사만능주의 ㅡ자현 도입. 자신들은 신과 인간의 중간자, 매개자 역할. 그런 이유에서 경제적 종교인, 직업종교인이라 불러도 무방.

 

나는 왜 이 삶을 견디며 사는가, 내가 삶을 사는 게 아니다. 삶이 나를 사는 것이거나 살아보는 것이거나 살아주는 것이다.

 

내가 삶과 더불어 사는 것이다. 나는 왜 이 삶을 견디며 사는가. 일일호시일, 매일 매일이 새롭기 때문이다. 바뀌지, 바꾸지 않는 삶은 당연히

 

기독교가 과학이 되려하는 이유

1.명쾌한 논리이며, 왜에 방점을 찍고 사는 것이기 때문에, 깊은 사색적 노력과 더불어 산다.

2.자기중심적 삶이고 그것이 이타형이기 때문이다.

3.철학에 열등감을 느끼기 때문이다. 철학자는 과학자와 같았기 때문이다. 종교에는 철학이 없다

4.불교는 철학이다.

5.불교는 종교와 달리 배타적이지 않다. 종교가 아니기 때문에 비교감을 느끼지 않는다.

6.기독교는 농업과 더불어 살았다. 배타적이다.

 

60ㅉ.

코살라의 지방국가였던 석가 족은 공화제였으며 왕위 계승에 밀려 네팔 쪽으로 가고 바이살리는 공화제, 마가다는 군주제, 후에 코살라를 공격하여 갠지스 일대의 패권을 차지.

붓다는 보수적인 코살라에서는 수차례의 모함과 千佛化現( 大神變)에서와 같이 타 종교와 철학자들의 도전. 마가다로 가서 자리 잡는다.

 

백인인가 토속인인가

백인 크샤트리야.

신분제 비판개혁가.共議와 自決에 의한 공화적 의사결정 ㅡ 백인 귀족으로서 3

그런 이유로 20개의 부파불교로 분열해도 폭력적 사태는 전혀 발생하지 않았다

 

귀족의 자질 통치술 언어의 습득 무술 각술쟁혼 ㅡ스바얌바라

 

66.석가족도 공화제에서 군주제로 이동 중. 공화제국가에서 태자 혹은 장자는 국가를 책임질 필연적 의무는 없었다. ㅡ위대한 포기. 붓다가 중간에 위치해 가장 활동을 많이 한 곳 중 바이살리는 공화제로서 석가는 공화제를 지지했다. 곧 마가다나 코살리 같은 전제군주제에 대하여 호감을 가지 않았다.

 

73.불교의 가장 큰 장점은 합리성이다. 이는 붓다가가 굳이 석가모니가 아니더라도 진리와 그에 대한 합리성만으로도 유지발전가능하게 하며 수많은 다양한 붓다를 가지게 되는 원인이 된다.

 

78.붓다의 중도는 고락중도로서 거문고 줄을 비유했다. 균형을 잡고 집착을 탈각함을 의미. 마치 물에 빠지지 않고 파도타기를 즐기는 것과 같다. 번뇌라는 파도와 충돌하지 않고 이를 타고 가는 것이다. 붓다는 중도를 발명이 아닌 발견이라 명명했다. 중도의 재천명이다.

 

80.붓다의 깨달음과 상업의 정신 ㅡ연기와 오온, 신의 저격수.

 

전체적인 변화의 철학을 붓다는 연기, 인연생기, 즉 관계라 했다. 그리고 이러한 관계 중에서 온당한 의미를 가질 수 있는 것이 적절성인 중도가 된다. 마치 주직시장은 주가의 흐름에 따른 변화와 적절한 판단인 중도를 요구한다.

연기라는 관계성은 이성적인 통찰을 요구하며 자신을 객관화시켜서 전체를 파악하는 현실적인 입각점을 요구한다. 곧 세상은 신에 의한 것이 아니라 관계성이라는 연기의 변화 법칙에 따라 전개하고, 여기서 유효적절한 중도성을 얻는 것인 개거의 인간이라는 것이다.

 

실체에 대한 부정

'모든 것은 변화한다'는 관점은 상인의정신이 불교에 끼친 가장 큰 영향이다.

신은 모든 것을 변화하게 하는 불변자이다. 즉 부동의 제1자여야만 한다. 여기에는 '신'만이 존재하는 증명 불가능한 선행 사항(선험)'과 '신의 독선' 문제가 발생하며, 합리적 논리에 따른 접근이 불가능한 믿음의 영역은 사제들이 신을 빌어서 전횡하는 문제를 만들게 된다. 변화성∙논리성∙합리성을 전제로 하는 점에서는 신이 설 자리는 자연스럽게 사라진다.

불교가 철학을 말하는 것은, 신이라는 불변자의 부정이라는 시대적 요청 과제를 해소하는 측면이 있다. 불변의 신 대신 연기라는 변화의 법칙으로 합리적 이성의 인간중심주의를 전개하는 것이 불교인 것이다. 불교가 신과 매개자와 개인의 문제를 정조준하고 있다고 하겠다. 그 대안으로 오온. 십이처. 십팔계

삼과설로 세상을 세 가지 요소적 관점을 든다. 마치 114개의 원소로 우주를 구성한다는 논리와 유사하다.

그러나 불교는 철학이지 과학도 신학도 아니다. 그러므로 삼과설은 불교적 방편이고 이를 통하여 깨달음을 구해 자기완성을 추구할 뿐이다.

 

85.연기의 관점과 공

개새끼?ㅡ

관계성을 통해 전체를 보는 방식 ㅡ연기로 본다

분절이라는 분석 방식 ㅡ空性으로 이해한다.

즉 이 세계에 고정된 실체가 없다는 관계적 관점이 연기, 분석적 관점을 통해 관계마저도 풀어버리는 것이 공이다

 

87.합리성의 보편화 ㅡ불교는 신과 같은 독립적이고 의지적인 존재에 의해 이 세상이 움직인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과학과 같이 합리적인 법칙을 적용한다. 과학은 합리적 법칙의 제시를 통한 문명의 발달만을 추구한다면, 불교는 진리의 체득을 통한 깨달음을 목적으로 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단 과학은 보편법칙의 객관화를, 불교는 주관화를 방편으로 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으나 합리성 추구는 동일하다.

 

88.삼법인과 사법인

무상. 고. 무아. 열반. 불교의 진리관은 사실 이것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것을 어느 방향에서 보느냐의 경계 차이 따라 '관계성을 중심으로 보면 연기론'이 되고, '본체론을 중심으로 보면 공의 철학'이 된다. 공의 인식은 후일 대승에 와서 용수 보살에 의해완성을 이룬다. 중도의 본뜻인 적절한 인식에 따라 눈이 밝아지면 수다원이라는 성자에 이르고 무아와 변화를 체득해서 집착이 없어지면 번뇌가 붙을 곳이 없기에 열반적정에 이르고 아라한이 되고 다시 몸을 받지 않으므로 일체개고는 생길 여지가 없다. 그러나 대승은 몸을 다시 받는 재생은 생멸의 경계 속에 있으나 아라한에게는 오직 모든 중생의 구제에 뜻을 두었으므로 중도고락조차 존재하지 않는다.

 

매트릭스에서는 어느 세상의 진짜의 세상인지 가름하고 싶어하나 공의 관점에서 무의미하다. 일체개고의 세상이나 사성제 중 고성제는 같은 맥락이며 연기의 단면일 뿐이다.

 

92.윤회론의 다양성과 붓다의 생각

윤회론의 진실

 

불교와 윤회론

붓다의 가르침은 인도라는 문화 기반 위에서 윤회론을 배경으로 삼지만, 윤회론을 전제로 성립한 것은 아니다. 만약 윤회론이 필수였다면 붓다의 가르침은 인도 문화권을 벗어나지 못했을 것이다. 붓다는 연기론을 바탕으로 시작하여 사성제, 중도, 오온, 삼법인 등을 통하여 가르침을 펼친 것이다. 그러므로 윤회에 대한 붓다의 생각은 열반과 해탈, 영생과 인간존재의 소멸에 대한 두려움 등은 동전의 양면을 닮아 윤회론을 방편으로 간주하여 일체개고의 해소를 위해 사용하고 있다.

열반은 해탈과 같은 영속의 논리가 아닌 해체의 논리로 설명한다. 잡아함경 권34ㅡ962에서 열반이 마치 "불을 끈 것과 같아서 어디로 가거나 하는 것이 아님"을 설명하는 붓다의 언설을 통해서 분명해진다. 그러나 두 개념은 실체 개념에 비해 관점이 뚜렷하지 않아 양자는 혼재하여 사용하곤 한다.

 

신분 고착형 윤회론과 로또형 윤회론

붓다는 신분제는 부정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야 신분 고착으로 인한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당시 잦은 영토분쟁으로 발생한 전쟁은 왕족과 군인이 주축인 크샤트리야계급이 브라만사제보다 낮은 것에 대한 불만은 자연스러운 견해였다. 동시에 상업자본의 번영은 신분제를 강하게 흔들었다. 본인은 왕족의 신분임에도 불구하고. 붓다는 공화제 부족장의 장자로서 브라만은 태생적인 것이 아니라 고귀한 행위를 통해서 완성하는 것(숫타니파타 ㅡ136 바셋따의 경)"이라고 한 것은 같은 연장선상에서 나온 말이다. 행정과 재판 등을 통해 힌두 사제들의 전횡을 보아 왔으며 그것을 개선하기 위하여 많은 토론을 해야 했지만 그들의 저항은 완강했고 결국 출가의 길을 선택한다. 붓다는 그들 바라문 사제들을 직업종교인 또는 경제적 종교인으로 생각했다. 인간에게는 이기적 유전자가 선험적으로 존재하여 그 가문에서 출생한 사람들은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 인간과 신의 매개자로서의 특권을 대대로 누렸다. 그것은 오늘날 신분 고착형 로또와 다를 것이 없다. 한편으로 로또의 앞 숫자와 뒤의 숫자는 인과 관계를 가지지 않는다. 붓다는 인과론을 말하지만, 유회와 관련해서는 현상적인 인과만이 아닌 부정연속성에 대해 말한다. 이는 자유로운 신분 계층의 이동을 가능하게 하기 위한 것이다. 붓다의 윤회론은 전생과 현생을 끊어야 할 필연성이 있었다. 그래야 현생에서 노력의 가치가 더 부각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이러한 노력은 내생과 연결되어야 한다. 노력의 산물은 수행자 계위인 수다원에 이른다고 했다. 일종 시험 합격인 셈이다.

 

진학형 윤회론

윤회를 통해 한 번 올라간 계위는 하락하는 법이 없다는 윤회론이다. 이것은 느슨하여 긴장감을 줄이는 원인이 되므로 불가를 쇠퇴하게 만든다. 채택하지 않아야 할 윤회론이다.

붓다는 사촌 동생이자 석가족의 왕 마하남이 자신은 죽어 어디로 가겠느냐고 묻자, "나무를 벰에 있어 나무는 기운 쪽으로 쓰러진다(잡아함경 권93ㅡ930)."라고 대답했다. 윤회를 통한 내생의 가치도중요하지만, 그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내일을 만드는 오늘이라고 붓다는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99.인도 문화의 특수성과 붓다의 대성공

문화권적 특수성

 

나이를 따지지 않는 능력제

인도문화의 주류인 아리안 문화는 유목에 기반을 둔다. 능력을 중시한다.

중국은 농경에 문화적 바탕을 둔다. 연장자에 대한 우대의식이 강하다. 한 번 스승이면 영원한 스승.

인도의 능력 위주 문화는 35살에 깨달은 붓다가 활동하기가 쉽다.

 

인도의 논쟁 문화

인도는 무더워서 공연 문화가 적다. 대신 상대적 현상으로 논쟁 문화가 성행하게 된다. 제자가 스승을 이기면 상태는 역전되는 경우 세 가지의 경우

1.제자 밑으로 들어가는 것

2.완전히 은퇴하여 조용히 살아감

3.자살

붓다의 전기에는 붓다의 승리로 인한 이와 같은 양상을 다수 수록하고 있다. 대표적인 가섭 삼 형제의 교화와 사리불. 목건련의 귀의로 인한 산자야의 도전 후 피를 토하고 죽는다.

 

103.불패의 신화와 붓다 당시의 불교

공자는 73년 살고 전 중국을 14년 유랑하며 유세해도 제자는 72명. 붓다는 기록상 비구 886 비구니 103명. 미루어 볼 때 10만 명. 교통과 통신이 원시적이었던 2500년 전 이것이 가능했던 것은 논쟁 불패의 기록을 이뤘기 때문.

 

104.명상에서 종교로

자유와 제도

 

수행 집단의 거대화

불교는 시대의 요구에 따른 새로운 종교와 수행 문화에서 시작된다. 즉 자유로운 수행 집단이었다. 붓다라는 개방적이고 자유로운 관점을 가진 스승에 의해 전개되었다. 초기에는 인도 수행 문화의 전통과 차별성을 가진 길을 걸었다. 실제로는 布薩과 自恣와 같은 인도의 수행 전통을 초기에는 따르지 않았다. 율장은 빔비사라 왕의 건의에 따랐다고 기록하고 있다.

 

제도와 화합승

ㅡ만장일치제 선택

 

개인과 집단의 갈등

 

통과의례의 무시와 부재

결국 장기간에 걸쳐 인도와 동아시아를 휩쓸업음에도 너무도 쉽게 밀려난 이유로 판단하고 있다. 후일 불교가 종교화되는 과정에서 보완되지 못함은 아쉬운 부분으로 남아 있다. 이는 붕다가 틀린 것이 아니라 철학의 측면에 치우쳐 시대의 변화를 읽지 못하고 교단화된 불교의 문제였다. 붓다의 변화수용의 관점을 교단은 효율적으로 계승하지 못한 것이다. 그 결과는 인도와 중국이라는 두 문화권에서의 몰락을 가져왔다. 이는 불교의 목적이 포교가 아닌 개인의 깨달음에 있다는 점에서 종교와 이질적 측면이 있다고 본다.

 

111.붓다가 가장 오래 머문 곳은 코살리국 사위성의기원정사이다. 이 사원은 제타 태자의 휴식 동산을 급고독장자가 사들여 7층 건물의 절을 지어 승단에 기부한 것이다. 2500년 전 7층 건물이면 션재라면 7성급 호텔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여기에 《비나야잡사 毘奈耶雜事》권17에 따르면 불가 최초의 회화장식이 화려하게 걸려있었다고 한다. 여기서 19~25년간을 머물렀다. 경전의 대다수를 여기서 설했음은 당연하다. 흔히 승려는 검소하다고 생각한다. 검소는 무심한 겸손과 궤를 같이 한다. 이것은 사치나 자랑 같은 하열한 대립이 아니고 집착이 없는 자유로움이야말로 수행자의 미덕이라는 고등한 관점을 붓다는 제시한 것이다.

붓다는 도시의 멈추지 않고 항상 변화하는 역동성을 선호했다. 붓다는 이를 수용하는 변화의 철학과 다양성을 제시하여 역동성과 함께 이들을 사로잡을 필요가 있었다. 상업이 발달한 도시에서는 탁발이 쉬워 승단의 식사를 해결할 수 있었고 많은 인구는 자신의 철학을 널리 펼치기에 적합했다.

 

112.교단에 주인은 없다

붓다는 공화제론자

자신보다 일찍 죽은 사리불 외에 다른 제자의 가능성을 보지 못해 自決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교단 운영방식 확정.

열반 전 3개월 전, 바이살리의 마지막 안거를 마치는 과정에서 교단의 다음 수장을 임명해야 하지 않느냐는 아난의 물음에 통솔자가 없으며 모든 가르침은 설했으니 판단은 각자 알아서 하라는 천명.

自燈明 法燈明의 가르침. 燈은 본래 등불이 아닌 '언덕 섬'을 의미. 거친 바다에 떠있는 외로운 언덕 섬.

스스로를 의지처로 삼고 진리를 의지처로 삼으라는 뜻. 교단의 해체와 자율성 강조.

붓다의'제도를 최소화하는 자유주의' 천명은 후일 불교가 다양하게 발전하는 배경이 된다.

 

114.만년의 어수룩함

붓다 만년의 교단은 이미 한 사람이 장악할 수 없을 만큼 거대해져. 불가의 논쟁 문화 때문.

사람들은 대통령과 같은 집단의 최고 수장이 되면 많은 것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나 안정된 집단의 수장은 사실 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다. 빛 좋은 개살구.

열반에 즈음한 붓다는 교단의 자기 복제를 통한 확대 방식에 대해 우려와 염증. 대도시가 아닌 소도시를 전전하는 여행에서 최후로 쿠시나가라는 작고 초라한 도시에서 열반에 든다. 아난의 한계와 붓다의 심경변화. 1차 결집은 대도시 왕사성 부근의 七葉窟에서 이루는 계기.

 

115.제도화의 거부와 소소율의 폐지

 

117.변화의 철학과 영원한 생명력

 

147.我空法空

아공법공이 되면 연기라는 관계성의 현상론과는 다른 본체론적인 空觀이 가능하게 된다. 즉, 일체는 꿈과 같으므로 여기에는 실체라고 할 만한 것이 전혀 없다는 주장이다. 이것이 空의 철학이다.

그러나 空임에도 불구하고 꿈을 꿀 때의 꿈은 꿈꾸는 자에게 영향력을 발휘하면서 존재하는 것 아니냐는 주장도 성립한다. 이것이 '내가 그렇게 생각한다'는 개념의 인식론적 유식 철학이다. 곧 '꿈에는 실체가 없다는 관점을 취하면 空의 철학이 되는 것이며, '꿈은 내가 만들어서 내가 영향을 받는다'고 생각하면 유식 철학이 된다.

 

155.통일의 시대와 불교로의 귀의

 

157.자본의 흐름과 통일 왕조의 수립

아소카왕의 필요에 의하여 3차 결집 ㅡ종교와 정치의 함수관계

 

보이지 않는 손

차축의 통일은 상업자본에 의해 이루어지며, 상업자본의 보이지 않는 손은 역사 이래 가장 힘센 권력이기도 하다.

 

163.평등에대한 불만과 인간 심리

사리의 재분배와 성지의 특수화

 

168.붓다의 주된 거주 공간 여래향실 2곳

마가다국 왕사성 영취산정 법화경 대승

코살라국 사위성 기원정사 금강경

 

170.본생담 그리고 불상과 공 사상의 반격

불교의 2차확장

동방에서 서방으로 아소카왕에 의한 인도 통일ㅡ100~200년에 걸쳐 간다라 유역인 지금 파키스탄 북서부와 아프카니스탄과 그리스까지 확장. 아마 이슬람이 없었다면 기독교의 폭력성을 감안하더라도 인류 역사는 불교의 평화적 성향으로 폭력은 훨씬 줄었을 것이다.ㅡ이슬람 급진 원리주의자들, 탈레반이 저지른 지상 최대의 석불상 바미얀 파괴

 

본생담을 통한 변증

 

형상주의 ㅡ진리와 하나된 완전한 존재인 붓다에 대한 모독으로 생각해 무형상주의를 주장했으나 완전을 불완전으로 고착하는 것은 오류라고 주장 ㅡ인도불교 최후의 형태인 밀교로 종착

무형상주의 ㅡ공 사상에서 ㅡ선종으로 종착.

이들의 논쟁은 카톨릭과 이슬람과 비슷

 

178.기록, 다양성 합리화의 길

다양성의 정당화

 

대승불교의 다양성과 성립의 문제

대승불교의 성립은 불탑에서 시작했다.

붓다의 원음을 듣지 못하는 아쉬움 뒤에는 존경하는 성스러운 자의 말씀은 문자가 있었어도 암송하는 관습에 따라 8언4구의 운문인 슬로카 방식으로 편집해서 암송했으므로 후에 아소카왕이 소집한 3차 결집 때에 비로소 문자화했다. 그런 이유로 번역의 어려움은 불교에 대한 깊은 지식과 언어에 대한 식견, 견성의 경험이 없었다면 불가능할 만큼 연결이 견성에 비견할 정도이다 ㅡ전제성 박사.

 

불경의 成文化

성전을 구전에 의지해서 전수한 이유 중 가장 중요한 점은 지식의 독점 때문이다. 불교 이전의 인도 전통에서 가르침은 은밀히 전수하는 비전의 형태 ㅡ奧義書로도 번역하는 <우파니샤드> 역시 이런 방식이었다.

붓다는 지식을 통한 특권화의 유지를 반대한 계몽자로서 스스로 쥔 주먹握拳은 없다고 천명했다. 장아함경 중 유행경.

1차 결집 후 바로 성문화했다면 불교는 오늘날 겪는 많은 문제들로부터 자유로웠을 것이다. 공자의 <논어>는 제자들이 바로 지었으므로 부러운 일이다.

 

출가자로서의 권위가 무너지다

지식의 개방은 이제 선택된 소수가 아니라 노력하는 소수가 우위를 점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당시는 인터넷을 통한 지식의 완전 개방으로 반드시 스승을 필요로 하지 않은 현대와 같은 의미로 다가왔다. 당시는 이 정도까지는 아니었지만 문자 성전에 의한 문화적인 충격만큼 오늘날의 인터넷보다도 더 컸을 것이다.

 

대승과 소승의 분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