時論, 시에서 계절과 사랑을 읽다
[詩, 불교를 만나다] 사람과 사람, ‘맹구우목’의 因緣
도봉별곡
2025. 1. 24. 23:32
[詩, 불교를 만나다] 사람과 사람, ‘맹구우목’의 因緣
이일야 전북불교대학 학장 입력 2025.01.24 11:08 댓글 1
2. 정현종의 〈방문객〉
생명, ‘관계’로 존재… 緣起 상통
만남에서 과거·현재·미래 소통
佛法 조우도 희유(稀有)한 기회
‘환대’ 통해 만남의 인연化 가능
사람이 온다는 건
몇 해 전 tvN에서 〈이번 생은 처음이라〉는 드라마가 인기리에 방영된 적이 있다. 재미도 있고 요즘 젊은 세대가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엿볼 수 있을 것 같아 본방사수를 하였다. 특히 욜로(YOLO)로 상징되는 그들의 생각에 공감이 많이 되었다. 그들은 정체불명의 미래에 투자하기보다 지금 당장의 행복이 중요하다고 외친다. ‘인생은 단 한 번뿐(You only live once)’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내 집 마련이나 노후 대비를 하느라 현재의 삶을 즐기지 못하는 기성세대와는 분명 많이 달랐다. 무엇이 옳다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분명한 것은 노인이나 젊은이나 이번 생은 모두 처음이라는 사실이다. 여주인공의 지적처럼 어제를 살아봤다고 해서 오늘을 다 아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드라마에 문득 시집 한 권이 등장하였다. 정현종 시인의 〈섬〉이라는 시집이었다. 여주인공은 바닷가에 앉아 시를 읽고 있었다. 순간 그녀의 나지막한 목소리로 한 편의 시가 흘러나왔다.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로 시작되는 ‘방문객’이라는 시였다. 시와 여주인공, 바닷가와 배경 음악이 묘하게 어우러진 인상적인 순간이었다. 모르는 시는 아니었지만, 드라마에서 마주하니 또 다른 느낌으로 다가왔다. 불교라는 렌즈를 끼고 찬찬히 사색하면서 음미해보았다. 시와 불교가 만나는 낯선 시간이었다. 잠자고 있던 삶(生)이 조금씩 깨어나고(覺) 있었다.
정현종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좋아하는 대표적인 시인이다. ‘모든 순간이 꽃봉오리인 것을’이라는 시가 중학교 교과서에 실릴 정도로 영향력 있는 작가다. 시인의 말처럼 모든 순간이 꽃봉오리라 생각하면 지금 이 시간을 열심히 사랑할 수 있을 것 같다. 일반 대중에게는 ‘섬’이라는 시로 널리 알려져 있는데, 섬을 주제로 하는 기행 프로그램에 자주 등장한다. 짧으면서도 임팩트 있는 시를 잠시 감상해보자.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 / 그 섬에 가고 싶다”
섬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외로이 홀로 서 있는 존재다. 그런데 시인은 그 섬에 가고 싶다고 말한다. 지금은 멀리 떨어져있지만, 건너편에 있는 사람과 그 섬에서 만나고 싶은 바람을 간접적으로 드러낸 것이다. 모든 생명은 그렇게 서로 만나고 관계하면서 존재한다. 시인은 ‘비스듬히’에서 생명은 서로 기대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는 존재라고 말한다. 모든 존재는 공기와 나무 등 다른 것들에 기대여 살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기대는 것이 맑으면 나도 맑고, 그것이 흐리면 나도 흐리다. 우리 모두는 “비스듬히 다른 ‘비스듬히’를 받치고 있는” 존재라는 것이 시인의 통찰이다. 섬은 이쪽 비스듬히와 저쪽 비스듬히가 만나 소통하는 공간인 셈이다.
이러한 시인의 성찰은 불교의 핵심 사상인 연기(緣起)와 서로 통한다 할 수 있다. 연기란 모든 것은 관계 속에서 더불어 존재한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고(此有故彼有) 이것이 생기므로 저것이 생긴다(此起故彼起)’는 연기의 공식은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나’는 ‘너’에 대(對)한 나이며, ‘이것’은 ‘저것’에 대한 이것이다. 서로가 존재의 이유와 근거가 된다는 뜻이다. 마치 볏단 하나를 세워놓으면 쓰러지지만, 서로 비스듬히 기대면 제대로 설 수 있는 이치와 같다. 모든 존재는 그렇게 홀로가 아니라 관계 속에서 살아간다.
대학에서 철학을 전공한 정현종은 1965년 〈현대문학〉을 통해 등단한다. 그는 한때 신문 기자로 일하기도 했으며, 1977년부터는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작품 활동을 이어갔다. 〈사물의 꿈〉을 비롯하여 〈한 꽃송이〉 〈세상의 나무들〉 〈광휘의 속삭임〉 등 여러 시집을 펴냈다. 한국문학작가상과 연암문학상, 현대문학상, 미당문학상 등 수상경력도 화려하다.
이번에 소개하는 ‘방문객’은 2008년 펴낸 〈광휘의 속삭임〉에 실린 시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시인데, 특히 3월 초 첫 수업을 시작할 때면 자주 소개하고 있다. 이곳에 온 학인들은 필자가 몸담고 있는 불교대학에 방문한 손님이라는 생각에서 그렇게 하고 있다. 시는 이렇게 시작한다.
사람이 온다는 건 /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
그는 / 그의 과거와 /
현재와 / 그리고 /
그의 미래가 함께 오기 때문이다. /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
부서지기 쉬운 /
그래서 부서지기도 했을 /
마음이 오는 것이다―그 갈피를 /
아마 바람은 더듬어 볼 수 있을 / 마음, /
내 마음이 그런 바람을 흉내 낸다면 /
필경 환대가 될 것이다.
눈먼 거북이 널빤지 만나는 인연
시인은 첫 구절에서 사람이 온다는 것은 실로 어마어마한 일이라고 말한다. 왜냐하면 그의 과거와 현재, 미래가 함께 오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한마디로 한 사람의 일생이 온다는 뜻이다. 영겁의 인연과 함께 오는 손님을 어떻게 소홀히 맞이할 수 있겠는가. 온 정성을 다해 환대를 해도 부족할 지경이다. 첫 수업 때마다 ‘방문객’ 시를 들려주는 것도 이러한 마음으로 학인을 대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보면, 누군가 우리 집에 방문해서 인연을 맺는 일이 단순히 우연만은 아닌 것 같다.
불교에서는 사람으로 태어나 부처님의 가르침을 만나는 인연을 맹구우목(盲龜遇木), 즉 눈먼 거북이 널빤지 만나는 인연에 비유한다. 대개 불교에 입문하면 처음으로 듣는 이야기 가운데 하나다. 태평양 한 가운데 눈먼 거북이 살고 있었다고 한다. 그 거북은 숨을 쉬기 위해 100년에 한번 얼굴을 물 밖으로 내미는데, 바다를 떠다니던 구멍 뚫린 널빤지 안으로 거북의 목이 쏙 들어간다는 것이다. 과연 그 확률이 얼마나 되겠는가. 모르긴 해도 로또 1등에 당첨될 확률보다 훨씬 낮을 것이다. 이처럼 만나기 어려운 일을 가리켜 희유(稀有)하다고 말한다. 불교와의 만남이 그만큼 귀하다는 뜻이다. 시인의 말처럼 실로 어마어마한 일이다.
불교와의 희유한 인연을 섬개투침(纖芥投針), 그러니까 작은 겨자씨가 바늘에 꽂히는 일에 비유하기도 한다. 바늘을 땅위에 세워놓고 하늘에서 겨자씨 한 톨을 던졌다고 생각을 해보라. 과연 그 위에 꽂힐 확률이 얼마나 되겠는가. 불가능에 가까운 인연인 만큼 지금의 만남을 귀하게 여기자는 의미다. 보조국사 지눌의 〈정혜결사문〉에 나오는 대목이다.
“무릇 부처님의 가르침을 보고 듣고 외우고 익히는 사람은 마땅히 부처님 법 만나기가 어렵다는 마음(難遇之心)을 일으켜야 한다.”
난우지심(難遇之心), 즉 부처님 가르침을 만나기 어렵다는 마음을 내는 것이 중요하다는 뜻이다. 그래야 불교와의 만남을 소중히 여기고 자신을 성찰하면서 공부할 수 있기 때문이다. BTN에서 제작한 108대 참회문에 맞춰 절을 할 때면 가끔씩 마음이 울컥해지곤 한다. 특히 61번에서 63번, 부처님과 가르침, 승가에 귀의하게 되어 감사한 마음으로 절한다는 내용이 나올 때 더욱 그렇다. 불교와의 만남이 없었다면 나는 지금 어떻게 살고 있을까? 이를 생각하면 불교라는 세계에 방문해서 공부하고 수행하는 지금 이 순간이 감사할 뿐이다.
그런데 그 방문이 항상 즐거운 것만은 아니다. 시인의 말처럼 때로는 ‘부서지기 쉬운, 부서지기도 했을’ 마음과 함께 오기 때문이다. 그 마음을 더듬어볼 수 있다면 환대가 되겠지만, 그것이 어디 쉬운 일이던가. 문득 〈어린 왕자〉의 한 장면이 생각났다. 어린 왕자는 자기별을 방문한 꽃에게 짜증을 많이 낸다. 꽃이 변덕스럽고 거짓말을 하기 때문이라 생각한 것이다. 꽃 역시 자신의 과거와 현재, 미래 모두와 함께 왔을 텐데 말이다. 물론 부서지기 쉬운 마음도 왔을 것이다. 그 마음을 어린 왕자는 알지 못해 꽃은 환대 받지 못한 것이다.
자기가 살던 별을 떠나 지구에 방문한 어린 왕자는 여우와의 만남을 통해 많은 것을 깨닫는다. 그 유명한 대사, ‘길들인 것에는 책임이 있다’는 소중한 교훈도 얻게 된다. 무엇보다 ‘부서지기 쉬운, 그래서 부서지기도 했을’ 꽃의 마음을 더듬어 볼 수 없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큰 수확이었다. 이러한 깨달음에 이르자 어린 왕자에게 많은 변화가 일어난다. 꽃의 변덕스러운 행동은 사랑의 또 다른 표현임을, 꽃의 거짓말 뒤에는 연약함이 숨어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잠자고 있던 어린 왕자의 삶(生) 또한 깨어나기(覺) 시작했다. 아마 자신의 별로 돌아가면 꽃에게 짜증을 내지 않고 반가운 마음으로 안아줄 것 같다.
방문객의 마음의 갈피를 더듬어 보는 것이 쉬운 일만은 아니다. 그래서 시인은 바람을 흉내 내라고 한다. 사람과 달리 마음의 벽이 없기 때문이다. 바람은 섬이든, 육지든 가리지 않고 방문하는 이들의 부서진 마음을 어루만져준다. 이런 점에서 불교는 바람의 마음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지구라는 별에 방문해서 환대를 받고 불교와의 인연을 맺었으니, 이제는 집주인의 마음이 되어 바람이라도 흉내 내어야 하지 않을까. 또 다른 방문객을 환대하기 위해서 말이다. 한글을 조금 파괴해서 이렇게 인사하는 것도 환대를 위한 노력이 될 것 같다.
“차~암 좋은 인연입니다.”
이일야 전북불교대학 학장
보조사상연구원 연구위원과 사)부처님세상 이사장을 역임했다. 저서로 〈아홉 개의 산문이 열리다〉(13회 불교출판문화상 대상)와 〈철학자와 함께 읽는 동화〉(2020세종도서), 〈불교에 대해 꼭 알아야 할 100가지〉, 〈죽음을 철학하는 시간〉 등 다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