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과 유전자의 창고
니체의 독일과 기억의 창고 윤회의 주체인 기억들인 유전자들의 창고인 아라야식을 가르쳐준 붓다 선생이 원망스러울 때가 있다 차라리 모르고 살 것을
초기불교와 선불교를 비유하다가 죄와 벌의 은유처럼 빌어먹을 지구에 머리를 처박았다가 목과 손이 굳어버린 나는 머릿속 창고에 글씨를 쓴다 밤이 되어서야 겨우 손가락이 풀려 미끄러운 펜으로 미끄러운 종이에 옮겨 적는다 10분이 지나면 다시 손이 굳어 쓰기를 멈추고 다시 기억의 창고에 저장한다 부호조차 쓰는 것이 귀찮다
그러면 기억의 창고에 쌓여 있던 유전자와 섞여 뒤죽박죽된 기억들을 굳은 손으로 추려내지만 특히 하필 100년 전에 들어와 굳게 자리 잡은 니체의 기억만은 떼어내기가 쉽지 않아 애를 먹는다 가톨릭과 프로테스탄트의 싸움 때문에 망쳐버린 니체를 위로하기가 어려워진 만큼에 비례해서 내 시는 이해하기가 어렵다 독일 국민의 5분의 3이/1600만 명 중 600만 명만 살아남고 나머지 1000만 명이 죽어버린 같잖은 다툼을 지금 와서 떼어내기 어렵고 야훼가 본시 창조자가 아닌 신 중 전쟁의 신이었다는 사실을 알아버린 루터도 나를 괴롭힌다 도대체 뭐가 중요한지
그래도 수많은 성자가 다녀갔어도 세상을 바꾸지 못했다 오늘은 5월의 구름이 흐르고 내일은 7월의 축제가 벌어진다 고소공포증이 있어 가지 못하는 몽골의 초원이나 히말라야의 산이 아프리카의 초원이나 바다보다 익숙하다는 것은 죽어 흩어진 유전자가 현재의 머나먼 전생에서 비행하여 모아진 기억의 창고 때문이든가 종교는 피를 마시고 자라고 철학은 지성의 확장을 통해 지혜를 완성시켜준다 낯짝이 없어진ㅡ붉어진 신들은 변신을 거듭하면 하여 부끄러워 해 뒤로 숨었다 그러고는 일식 때나 가끔 얼굴은 내 비친다 일식이란 신의 얼굴의 변화일 수도 있겠다
니체의 죽어버린 신과 세상을 바꿀 초인을 위하여 경배!
나마스떼
옴마니반메흄
그 좋은 술 끊어 좋은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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