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번째 스승도 번뇌 못 풀어 ⑩… 싯다르타 홀로 떠나다
- 기자
- 백성호 기자
백성호의 현문우답 - 붓다를 만나다 ⑩
생각도 아니고, 생각 아닌 것도 아닌
해탈 이르렀다는 웃다카 라마푸타
그의 깨달음 역시 완전하지 못해
싯다르타, 더 이상 스승 찾지 않기로
이치를 풀어 고통 벗어나는 게 해탈
당시 라즈기르에는 웃다카 라마푸타라는 이름난 수행자가 있었다. 싯다르타는 그를 찾아갔다. 웃다카 라마푸타가 이끄는 수행그룹의 규모는 알라라 칼라마보다 더 컸다. 따르는 제자만 무려 700명이었다. 알라라 칼라마의 제자가 300명이었으니, 2배가 넘는 규모였다.
) 고통에서 벗어나는(脫) 일이다. 그것이 바로 ‘해탈’이다. 가령 새끼줄을 뱀으로 착각한 채로 한 방에서 평생을 산다면 어찌 될까. 죽을 때까지 두려움과 걱정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자다가도 수시로 눈을 뜨지 않을까. 행여 뱀이 이쪽으로 올까봐, 행여 나를 물까봐 말이다. 그런데 뱀의 정체가 단순한 지푸라기임을 알면 어찌 될까. 그 즉시 두려움과 고통에서 해방된다. 그것이 바로 ‘해탈’이다. 뱀의 정체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우리를 자유롭게 한다.
우리가 두려워하는 뱀도 마찬가지다. 늙음과 병듦과 죽음. 이 모두를 사람들은 뱀으로 본다. 맹독을 품은 채 우리를 노려보는 독사로 본다. 싯다르타도 그랬다. 그는 독사로만 보이는 생로병사의 정체를 뚫고자 했다. 생로병사가 뭔가. 인간의 삶이다. 그러니 싯다르타는 인간의 삶에 대한 정확한 이해를 통해 고통에서 벗어나고자 했다. 그래서 웃다카 라마푸타를 찾아갔다.
사람들은 웃다카 라마푸타가 “해탈의 경지에 있다”고 말했다. 그러니 싯다르타는 큰 기대를 걸지 않았을까. 나는 궁금했다. 웃다카 라마푸타가 말하는 경지란 어떤 걸까. 불교 경전에는 ‘생각도 아니고, 생각 아닌 것도 아닌 경지(비상비비상처·非想非非想處)’라고 표현돼 있다. 웃다카 라마푸타는 그것을 ‘해탈’이라고 불렀다.
그럼 왜 ‘생각이냐, 생각이 아니냐, 혹은 생각 아닌 것도 아니냐’하는 게 중요할까. 그건 단순한 말장난일까, 아니면 뭔가 깊은 뜻이 있는 걸까. 인간은 ‘나(에고)’가 있어서 고통을 받는다. 고통에서 벗어나려면 어떡해야 할까. ‘나’가 없어져야 한다. 그런데 ‘나’가 없으면 생각도 없어야 하지 않을까. 인간이 몸뚱아리를 가지고 사는 동안 생각은 자꾸만 올라온다. 물론 잠깐 동안 ‘아무 생각 없는 상태’를 체험할 수는 있다. 그래봤자 잠시다. 생각은 다시 또 올라온다.
“자네가 먼저 해탈하면 부디 다시 와 달라”
어쨌든 싯다르타는 그를 스승으로 모셨다. 그리고 수행에 몰두했다. 얼마나 세월이 흘렀을까. 싯다르타는 결국 스승의 경지까지 도달했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그 자리가 ‘해탈의 경지’는 아니었다. 싯다르타는 짚어보고, 짚어보고, 또 짚어봤을 터이다. 아무리 봐도
사람들은 웃다카 라마푸타가 “해탈의 경지에 있다”고 말했다. 그러니 싯다르타는 큰 기대를 걸지 않았을까. 나는 궁금했다. 웃다카 라마푸타가 말하는 경지란 어떤 걸까. 불교 경전에는 ‘생각도 아니고, 생각 아닌 것도 아닌 경지(비상비비상처·非想非非想處)’라고 표현돼 있다. 웃다카 라마푸타는 그것을 ‘해탈’이라고 불렀다.
“자네가 먼저 해탈하면 부디 다시 와 달라”
어쨌든 싯다르타는 그를 스승으로 모셨다. 그리고 수행에 몰두했다. 얼마나 세월이 흘렀을까. 싯다르타는 결국 스승의 경지까지 도달했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그 자리가 ‘해탈의 경지’는 아니었다. 싯다르타는 짚어보고, 짚어보고, 또 짚어봤을 터이다. 아무리 봐도
해탈의 상태는 아니었다. 큼직큼직한 고뇌의 덩어리들은 사그라들었지만, 생활 속에서 부딪히는 자잘한 번뇌의 싹은 계속 올라왔다. 마치 화단의 풀을 뽑았는데 또 올라오고, 뽑았는데 또 올라오듯이 말이다. 싯다르타는 아직 ‘번뇌의 정체’ ‘생각의 정체’ ‘나의 정체’를 꿰뚫지 못했다.
싯다르타는 스승에게 가차없이 물었다.
“생각도 아니고, 생각 아닌 것도 아닌 자리에서는 ‘나’가 있습니까, 아니면 없습니까? 스승께서는 착각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해탈이 아닙니다. 스승님은 번뇌를 다 해결하지 못했습니다.”
싯다르타의 지적은 단호했다. 웃다카 라마푸타는 아무런 대답도 못했다. 결국 싯다르타는 그를 떠났다. 세 번째 스승이자 마지막 스승이었다. 떠나는 싯다르타에게 웃다카 라마푸타는 이렇게 말했다. “만약 자네가 먼저 해탈을 이루게 된다면, 부디 여기로 와서 우리를 해탈케 해달라.” 알라라 칼라마나 웃다카 라마푸타는 당대에 내로라하는 수행자들이었다. 그럼에도 그들의 깨달음은 불완전했다.
나는 궁금했다. 떠나는 싯다르타의 뒷모습은 어땠을까. 세 명의 스승을 만났지만, 그가 찾던 ‘열쇠’는 없었다. 그렇다고 그 간의 수행이 무의미하진 않았으리라. 더 깊어지고, 더 단단해졌을 싯다르타는 이제 더 이상 스승을 찾지 않기로 했다. ‘나 홀로 승부’를 걸 참이었다. 그럴 만한 수행 장소를 찾아서 길을 떠났다.
라즈기르(인도)=글·사진 백성호 기자 vangogh@joongang.co.kr
싯다르타는 스승에게 가차없이 물었다.
“생각도 아니고, 생각 아닌 것도 아닌 자리에서는 ‘나’가 있습니까, 아니면 없습니까? 스승께서는 착각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해탈이 아닙니다. 스승님은 번뇌를 다 해결하지 못했습니다.”
싯다르타의 지적은 단호했다. 웃다카 라마푸타는 아무런 대답도 못했다. 결국 싯다르타는 그를 떠났다. 세 번째 스승이자 마지막 스승이었다. 떠나는 싯다르타에게 웃다카 라마푸타는 이렇게 말했다. “만약 자네가 먼저 해탈을 이루게 된다면, 부디 여기로 와서 우리를 해탈케 해달라.” 알라라 칼라마나 웃다카 라마푸타는 당대에 내로라하는 수행자들이었다. 그럼에도 그들의 깨달음은 불완전했다.
나는 궁금했다. 떠나는 싯다르타의 뒷모습은 어땠을까. 세 명의 스승을 만났지만, 그가 찾던 ‘열쇠’는 없었다. 그렇다고 그 간의 수행이 무의미하진 않았으리라. 더 깊어지고, 더 단단해졌을 싯다르타는 이제 더 이상 스승을 찾지 않기로 했다. ‘나 홀로 승부’를 걸 참이었다. 그럴 만한 수행 장소를 찾아서 길을 떠났다.
라즈기르(인도)=글·사진 백성호 기자 vangogh@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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