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역사

존재하지 않는 漢族의 후예 중국인의 역사

존재하지 않는 漢族의 후예 중국인의 역사

1 개념의 정립

오늘날의 차이나인은 정치적인 목적으로 자신들을 한족이라고 내세우고, 또한 중국인이라고 부른다. 그들이 이렇게 부르는 데는 그들이 의도하는 대로 역사를 왜곡하자는 저의와, 또한 차이나 주변에 있는 국가들이 그 호칭에 속아 넘어가 주기를 바라는 저의가 숨어 있다. 한족이라는 명칭과 중국이라는 명칭은 차이나인에게는 남을 속이는 명칭일 뿐만 아니라 자신을 속이는 명칭이기도 하다. 지금 차이나 사람들은 차이나 역사 5,000년 동안 존립과 존재가 불확실한 자신을 내세워 지구상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강대한 민족, 유구하고 다양한 문화와 역사를 가진 민족이라고 떠들어대고 있다.

최근에 한국에 사는 한 화교가 차이나문화원 게시판에 차이나가 거짓말쟁이임을 일깨워주는 글을 올려 세상 사람을 어리둥절하게 하였다. 자존심이 강한 차이나 사람에겐 마른하늘에 날벼락이 아닐 수 없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선진사先秦史>에 관심이 많은 필자에게 그가 한 말은 늘 한족과 중화라는 명칭에 회의를 품고 있던 내게 본격적으로 그 존재에 대하여 생각하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中華民族都是虛構的族名。

중화민족은 모두 허구의 족명이다. (출전, 차이나문화원 자유게시판 <어느 화교의 역사적 양심고백-중국 한족은 허구다> 2004.1.27.)

그는 중화민족은 허구의 족명이라고 하였다. 이 말은 중화민국으로 지칭하는 대만정부로 오해할 소지가 있는 글이다. 그래서 오해를 하지 않게 하기 위하여 중화민족을 중국민족中國民族으로 바로잡기로 한다.

본고에서 다루고자 하는 포괄적인 주제는 중국민족이다. 중국민족이라면 차이나 역사 5,000년 동안 차이나 땅에서 생성했다가 소멸하고, 혹은 다른 종족에게 동화하여 사라진 모든 종족을 다 지칭한다. 그러나 본고에서 관심을 갖는 부분은 <선진사> 중에서 우리 조상에 해당하는 동이족風夷族, 구려족九黎族, 동이족東夷族과 관련이 되는 하화족이 조상으로 내세우는 복희족伏羲族, 신농족神農族, 유망황제족楡罔黃帝族과 치우족蚩尤族, 하화족夏華族(차이나인은 華夏族이라고 한다. 본고에서는 하화족으로 쓰기로 한다), 상족商族, 은족殷族, 주족周族 등이다.

본고에서는 우리족의 종족과 하화쪽의 종족이 어떠한 동질성이 있고 또한 이질성이 있는가를 따져보기로 할 것이다.

2 존재하지 않는 한족과 존재가 미미한 중국

古時的「中國」是指其古都河南的洛陽地區, 「中國人」是指洛陽地區的住民,也就是漢人

옛날의 ‘중국’은 고도 하남의 낙양지구이다. ‘중국인’은 낙양지구 주민이다. 이들이 한인이다. (출전, 차이나문화원 자유게시판 <어느 화교의 역사적 양심고백-중국 한족은 허구다> 2004.1.27.)

옛날에 중국은 하남의 낙양지루를 지칭하는 말이었다고 한다. 그러므로 중국인이라고 할 때는 낙양지구에 사는 주민을 지칭하는 말이 된다고 하겠다. 이들이 한인 즉 한족이다. 그러므로 현재 차이나인이 말하는 한인이나 한족의 근원은 여기에서 시작되었다고 보아야 한다. 그러나 후대에 한족이나 한인임을 표방하고 나온 종족이 낙양과 아무런 관련이 없으므로 공허한 주장이 되고 말았다. 이렇게 중국민족으로 부르고자 하는 한족은 역사상 소멸한 종족이다. 그러므로 현재에 중국 땅에 한족은 존재하지 않는다. 있다면, 한족으로 부르고 싶어 하는 혼합종족이 있을 뿐이다.

漢族向為少數民族,早已被眾蕃包圍消滅

한족은 소수민족을 가리키는 것인데 일찍이 주변의 여러 번(다른 새력)에 포위되어

소멸되었다. (출전, 차이나문화원 자유게시판 <어느 화교의 역사적 양심고백-중국 한족은 허구다> 2004.1.27.)

한족은 소수민족이고, 이 한족은 주변의 여러 번에 포위되어 소멸하였다고 한다. 그러므로 현재에 한족은 존재하지 않는다. 인용문에서는 여러 번족蕃族에 포위되어 소멸하였다고 했으니, 역사상 번蕃을 종족명칭으로 쓸 수 있는 종족은 번조선番朝鮮이나 변한弁韓 뿐이다. 산동반도 일대에 존재했던 번조선을 구성하고 있던 종족을 번족番族이라고 말할 수 있는데, 이들이 번성하여 번蕃으로 불렸다고 볼 수 있다. 산동반도 일대에서 존재했던 종족을 구려족句麗族이라고 하였고, 구려족의 나라를 구려국句麗國이라고 하였다. 구려국이 번조선番朝鮮이었다.

<조선기-이고선>에서, “단군왕검치세 때인 무오 51년(BC2283) 홍수가 국토를 휩쓸었다. 홍수가 대황大荒의 동쪽과 남해南海의 끝과 대산岱山 서쪽과 ?유의 동쪽에 미처 동서로 5천여 리요 남북으로 6천여 리를 휩쓸었다. 홍수가 차이나간 후에 나라의 땅을 나누어 제후를 훈신勳臣에 봉했다. 남서의 땅을 치우蚩尤에게, 동북족의 땅을 신지臣智에게, 동남쪽의 땅을 고시高矢에게, 태백산 동남쪽의 땅을 주인朱因에게, 흑룡강근처의 땅을 여기수余己守에게, 발해의 땅을 비천생緋天生에게, 예의 남쪽을 부여夫餘에게, 진번眞蕃을 부우夫宇에게, 구려句麗를 부소夫蘇에게 봉했다.”고 하였다.

고조선의 지명에서 번蕃과 구려句麗가 나오므로, 이 시대에 설사 한족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조선의 막강한 제후국들에게 포위되어 멸망했다고 볼 수밖에 없을 것이다.

3 한족의 조상을 알 수 없다

차이나의 송대宋代에 정초鄭樵가 지은 <통지通志>의 삼황세보三皇世譜는 송대宋代 사람의 생각을 반영하여, 차이나의 시조를 유소有巢로, 유소 다음을 수인燧人으로, 수인 다음은 복희伏羲로 기록하였다. 복희 이후에 대정大庭 백황柏皇 중앙中央 율육栗陸 여연驪連 혁서赫胥 존노尊盧 혼돈混沌 주양朱襄 갈천葛天 음강陰康 무회無懷 등 15세 1,260년의 역사가 있었다고 기록하였다.

이들 조상 가운데에서 한족이 어느 누구에게서 나왔는지 알 수 없다. 그러므로 이들 조상의 후대에서 그 근원을 찾아보아야 할 것이다.

위의 기록은 서진西晋 때의 안정조나安定朝那 사람 황보밀皇甫謐(215-282)이 <백납본이십사사百衲本二十四史>에 등재한 것이다. 안정조나는 지금의 감숙성甘肅省 평량현平凉縣이다. 화정현華亭縣 북쪽에 있다.

안정조나安定朝那는 조선나라를 평정하여 안정을 얻었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이 곳이 옛 조선의 땅이었음을 알 수 있다. 그가 살던 곳에서 조선의 역사 고본을 발견하여 이 고본에 기록된 역사를 첨삭을 가하여 <백납본이십사사>에 등재하게 되었을 것이라는 의심을 하지 않을 수 없다.

古時華夏人種稱呼洛陽盆地四周的外國人為,東夷、西戎、北狄、南蠻。這些外國人,土地大,人口 眾多,後來輪流統治「中國」四千多年,人口居於少數的漢族,血統上早已溶入居於多數的異族當中,亡國也亡種,那裏還有漢族?

옛날에 화하인종은 낙양분지 四周의 외국인을 동이, 서융, 북적, 남만이라 불렀다.

외국인이 땅은 크고, 인구가 많아 후대에 흘러 들어와 중국을 4천 년이 넘게 통치했다. 인구가 적었던 소수의 한족은 혈통상 일찍이 다수의 이족에 녹아들어 망한 나라의 망한 인종이 된 것이다...... (출전, 차이나문화원 자유게시판 <어느 화교의 역사적 양심고백-중국 한족은 허구다> 2004.1.27.)

중원 역사에서 서융 북적 남만이 준동하게 된 때는 조선이 진에게 멸망한 진시황 8년 이후였다. 그 전에는 풍이족으로 불리는 한국이나 구려족으로 불리는 배달나라에 포함되어 있었다.

한인이 동이 서융 북적 남만에게 둘러싸여 소멸하였다는 기록은 풍이족시대에 이미 한인이 소멸하였음을 말한다고 볼 수 있다. 동이, 서융, 북적, 남만이 4,000년이 넘게 중원과 만주를 다스렸다.

今日的中國歷史以 漢族為中心,是假歷史。… 四千六百年歷史當中漢族被蕃族統治四千兩百年

오늘날 중국역사는 한족을 중심으로 하기 때문에 거짓역사다. … 4,600년 역사에서 한족이 번족의 통치를 받은 것이 4,200년이다. (출전 위와 같음)

화교는 분명히 한족을 중심으로 하는 역사는 거짓의 역사라고 말한다. 차이나 역사 총 4,600년에서 무려 4,200년이나 번족이 통치했으므로, 한족의 역사는 기껏해야 400년에 차이나지 않는다. 따라서 중국의 역사가 거짓의 역사가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단언하건대, 한족은 차이나 역사상 일직이 멸망한 종족이고, 중국이라는 호칭은 손문이 중화민국을 세우면서 국가적 명칭으로 쓰기 시작한 국가적 명칭으로서 일천하기 짝이 없는 이름이다. 그 이전에 중국이라는 명칭이 낙양에서 생긴 것이므로 사실상 중국의 정체성을 말할 때 차이나支那 즉 차이나로 해야 맞을 것이다.

-민속학자, 작가 고담 노중평 씀-

 

 

 

출처 : 대륙 조선사 연구회

글쓴이 : 김순옥 원글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