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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다 이야기

웅장한 석굴사원 평원의 대탑… 환희심 나는 인도 중부 불교순례

웅장한 석굴사원 평원의 대탑… 환희심 나는 인도 중부 불교순례

 

① 인도 중부지역

아잔타 석굴은 인도불교예술의 극치인 동시에 불자들에게는 끝없는 환희심을 불러일으킨다.

 

인도중부지역 불교성지순례는 폐사지의 흔적 속에서 의미를 부여하고 무한한 상상의 날개를 펼쳐야 하는 고단함이 없다. 기원전부터 조성된 인도불교예술의 극치를 직접 확인하며 감탄하는 말 그대로 눈이 즐거운 순례 일정이다.

 

일찍부터 인도인들은 바위를 달구는 햇볕과 비를 피해 자연스럽게 석굴을 종교적 공간으로 활용했다. 이런 실용적인 측면 이외에도 석굴은 인도인들에게 무한한 종교적 상상력을 가져다 주었다. 석굴 내부의 어둠은 현실을 넘어 모든 법(法)의 근원인 마음 속 깊이 다가가는 느낌을 준다. 그래서 인도인들은 석굴을 생명의 근원인 자궁에 비유하기도 한다. 이런 석굴의 이미지는 불교뿐 아니라 인도의 다른 종교와 미술에도 중요한 모티브를 이룬다.

인도 중부여행을 하다보면 이 가운데 아름다움 그 자체인 아잔타 석굴과 3가지 종교의 모습을 볼 수 있는 엘로라 석굴을 만날 수 있으며, 평원 가운데 우뚝 솟은 산치대탑도 잊을 수 없는 순간으로 함께 할 것이다.

 

불교석굴의 진수 ‘아잔타’

아잔타 석굴사원의 부처님 열반상

 

인도 중서부 마하라슈트라 지역에 속하며, 그 옛날 인도의 남과 북을 이어주는 교통의 요지가 ‘아잔타’다. 기원전 2세기부터 조성된 석굴사원은 현재에도 29개가 남아 있다.

 

초기 발굴과정에서 많은 유물이 도난당하거나 훼손됐음에도 불구하고, 아잔타 석굴사원은 현재에도 건축물과 회화·조각 등이 일일이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남아있다. 인도불교미술의 극치를 보여주며 지금도 불교석굴사원의 백미로 꼽힌다.

인도석굴사원의 건립은 대략 3기로 나눌 수 있다. 아잔타석굴도 이와 궤를 같이하며 석굴은 하류의 동쪽부터 순차적으로 번호가 붙어져 있다. 제1기는 기원전 2세기부터 기원후 1세기에 속하는 것들로 중앙의 제8굴~제13굴까지 6개굴이 여기에 해당된다. 이 가운데 제9굴과 제13굴은 ‘차이탸굴’(내부에 탑이 있는 예배공간)이고, 나머지는 ‘비하라굴’이라 해 스님들이 생활했던 공간이다. 제2기에 속하는 4세기에 시작된 굽타왕조 당시 조성된 이잔타석굴은 제6굴, 제7굴, 제12굴~제20굴까지의 굴이다. 나머지 제1굴~제5굴, 제21굴~제29굴은 3기에 해당하는 굽타왕조 이후에 조성된 석굴들이다.

 

제1굴은 정방형 비하라굴로 전체 아잔타 동굴사원 가운데 가장 균형 있는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다. 원래 동굴사원 내부는 모두 벽화로 장식돼 있었으나, 상당부분이 도굴 및 마모 됐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수많은 그림이 남아 있어 아잔타 벽화의 아름다움을 전하고 있다. 이 곳에 남아있는 벽화들은 부처님 전생이야기를 다루고 있으며, 이외에도 경전상의 일화 및 부처님 생애와 관련된 작품들도 있다.

제2굴은 도솔천 하늘에 서 있는 호명보살과 여섯 이빨을 가진 코끼리, 그리고 남편 정반왕에게 꿈 이야기를 전하는 마야 부인 등 부처님 탄생과 관련된 이야기를 벽화로 만나 볼 수 있다.

제16굴은 아잔타 비하라굴 가운데 우아하면서도 역동적인 모습이 어우러져 있다. 내부는 20의 석주로 받쳐져 있다.

제19굴은 세계적으로도 유명한 차이탸굴이다. 말굽모양의 입구와 천정은 둥근 형상을 하고 있으며, 양쪽에 긴 복도가 있어 높은 완성도를 자랑하며 아잔타 석굴 가운데 가장 화려한 입구를 가지고 있다.

 

이웃종교와의 공존 ‘엘로라 석굴’

이웃종교도 만날 수 있는 엘로라 석굴사원의 전경.

엘로라 석굴은 엘로라 언덕 서쪽 경사면에 남북으로 2km에 걸쳐 34개의 석굴로 이뤄져 있다. 이 가운데 최남단에 줄지어 있는 제1굴에서 12굴까지는 불교사원이고, 13굴에서 29굴까지는 힌두교사원, 제30굴에서 제34굴까지는 자이나교사원이다. 일반적으로 후대사람들이 이전에 조성된 사원과 종교가 맞지 않으면 자신들의 종교사원으로 심하게 변형시키거나, 파괴하는 것이 당연할 것이다. 하지만 엘로라에서는 그런 일들이 일어나지 않아 불교, 힌두교, 자이나교가 이웃같이 공존하고 있다. 이런 일이 가능했던 배경은 일정부분 서로를 포용했기 때문이다. 힌두교는 부처님을 비슈누 신의 9번째 화신으로 받아들였고, 자이나교는 원래 불교와 힌두교의 융화를 통해 성립했다.

 

제1굴부터 제10굴까지는 5~7세기에 걸쳐 조성됐다. 제11굴과 제12굴은 8~9세기경에 조성됐는데, 불교사원이면서도 힌두교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제2굴은 일반 동굴사원과 색다른 모습을 보여주는데 차이탸굴이 아님에도 예배공간을 가지고 있다. 12개의 기둥으로 석굴사원 내부는 천녀들의 모습과 함께 연꽃대좌에 서 있는 부처님 및 감실입구에 있는 관음보살과 문수보살을 비롯한 여러 보살에 둘러싸인 채 사자좌에 모셔진 부처님을 만나 볼 수 있다. 제10굴은 엘로라 유일의 순수 차이탸굴로 석굴 입구부터 내부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아름다운 조각품들을 만날 수 있으며, 사이사이 밀교불교의 독특한 조각들도 눈에 띈다. 제12굴은 3층의 대형 비하라굴이다. 건물 벽면에는 후기 대승불교 및 초기밀교 교리 발전에 따른 다양한 보살상과 천신들이 조각돼 있다.

[출처] 웅장한 석굴사원 평원의 대탑… 환희심 나는 인도 중부 불교순례|작성자 임기영불교연구소

 

 

평원에 우뚝 솟은 ‘산치대탑’

평원에 우뚝 솟은 모습이 인상적인 산치대탑의 전경.

 

드넓은 평원 저 멀리 언덕이 있다. 멀리서 보면 작은 언덕 같은 산치대탑은 막상 차에서 내려 30분쯤 걸어야 언덕 위에 오를 수 있다. 이곳 산치의 유적들은 1818년 영국 벵갈 기병대에 의해 발견된 이후 두 차례에 걸쳐 현재의 모습으로 복원 됐다. 기원전 3세기 아쇼카왕에 의해 최초 조성됐고, 기원전 2세기 슝가왕조 때 증축했다. 스님들이 사용하는 바루를 뒤집어 놓은 것 같은 산치대탑의 북문은 화려한 조각을 자랑한다.

산치대탑 문에 새겨진 조각들은 부처님 일대기 및 전생 이야기, 그리고 아쇼카왕의 행적 등을 소재로 각각의 상징성을 묘사한 빼어난 조각들이 있다. 탑문을 지나 난간 안으로 들어가면 부처님이 모셔져 있고, 계단을 올라 안으로 들어가면 고요함이 감싼다. 원래 산치에는 8개의 탑이 있었다고 전해지나, 현재는 3개의 탑만이 남아 있고, 유적지 곳곳에 다른 탑의 흔적으로 추정되는 장소들이 눈에 띈다.

중심영역에 있는 산치대탑이라 불리는 제1탑은 지름 36m, 높이 16m의 거대한 규모다. 탑은 원래 유골을 모신 분묘다. 처음에는 부처님 유골을 수습해 세웠다. 부처님은 입적하기 전에, 탑 숭배는 재가신자가 할 일이며 비구는 관여하지 말라고 했다. 비구는 번뇌를 억제하고 명상과 수행에 전념하면 되지, 무엇을 숭배하는 것은 필요하지 않다고 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변화가 일어났다. 부처님 열반 이후, 당시 불상 조성은 금기시됐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탑숭배가 시작되었다. 불탑 앞에 엎드려 자아를 버리는 것도 마음 수행법에 속하고 재가자들이 탑을 건립·기증하면 공덕을 쌓는다는 통속적 종교관념이 어우러져 3세기 이후 불탑숭배는 불교문화의 중요한 요소로 자리 잡는다.

[불교신문3179호/2016년2월24일자]

[출처] 웅장한 석굴사원 평원의 대탑… 환희심 나는 인도 중부 불교순례|작성자 임기영불교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