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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다 이야기

일주문(一柱門), 사천왕문(四天王門), 불이문(不二門)

일주문(一柱門), 사천왕문(四天王門), 불이문(不二門)

 

일주문(一柱門)

 

사찰에 들어설 때 가장 먼저 만나는 문이 일주문이다. 여기서 일주문이라는 말은 기둥이 한 줄로 서있다고 해서 비롯된 것이다. 그렇다면 왜 일주(一柱)로 하게 되었을까. 여기서 일주는 일심(一心)을 상징한다. 일심으로 진리의 세계로 들어가라는 상징적인 가르침인 것이다. 건축양식은 거의가 다포(多包)형식의 맞배지붕을 하고 있다. 그래서 자세히 보면 기둥이 유달리 굵다. 엄청난 지붕무게를 버텨야 하기 때문이다. 폭풍이 불면 수시로 잘 무너진다. 요즘엔 기둥을 여러개 세우기도 한다. 그래도 모양새는 일자다. 일주문의 현판은 대개 절집의 주산(主山)이름을 함께 병기한다. 이것은 절집을 수호하는 산신(山神)에 대한 배려다. 영축산(靈鷲山) 통도사(通度寺), 금정산(金井山) 범어사(梵魚寺). 밋밋하게 절이름만 쓰는 것보다는 멋지지 않은가. 일주문의 매력이다.

 

일명 산문이라고도하며 절에 들어서면 맨 먼저 만나게 되는 문이다. 기둥이 한 줄로 서 있다는 데에서 일주문이란 이름이 유래하였으며 이 일주문을 경계로 해서 세간과 출세간, 생사윤회의 중생계와 열반적정의 불국토로 나누어진다. 이 일주문은 절의 경내로 들어서는 첫 관문 이므로 불자들은 이 일주문에 이르러서 합장하고 법당을 향해서 공손하게 반배를 올리는 것이 불자들의 의례적인 불교예절이다.

 

사찰로 들어가는 첫 번째 문으로, 한 줄로 세운 기둥 위에 맞배지붕 양식으로 되어 있음.

 

절에 들어가는 어귀에 우뚝 서 있는 문으로, 기둥을 양쪽에 하나씩만 세워서 지어진 것이 다른 건물과 다르다. 이 문을 경계로 하여 문 밖을 속계(俗界)라 한다. 문안은 진계(眞界)인 것이며 이 문을 들어 설 때 오직 일심(一心)에 귀의한다는 결심을 갖도록 마음을 촉진시키는 데 그 뜻이 있다.

 

현상 면에서 나타난 것은 삼라만상이 따로 떨어져 있어서 하나가 아닌 것 같지만 실상인 본질 면에서 보면 그 모든 것이 둘이 아니다. 나와 남이 둘이 아니고 부처와 중생이 둘이 아니며, 반야(般若)와 번뇌(煩惱)가 둘이 아니다. 재가와 출가가 둘이 아니며 시간과 공간도 둘이 아니요, 생사와 열반이 둘이 아니다. 누구든지 이 일주문에 들어오면 이 진리를 깨닫고 잃었던 본 바탕을 되찾으라는 뜻으로 일주문이 새워진 것이다.

 

사천왕문(四天王門)

 

요즈음은 전통사찰이 주된 관광지가 되어 남녀노소가 다 들락거리고, 텔레비전을 통해 사찰 문화가 자주 방영되므로 신자가 아니더라도 사찰의 건물양식이라든가 조형물에 대해 많이 알고 있다. 하지만 아직도 많은 관람객들은 일주문을 통과할 때까지는 잡담이나 하며 떠들어대다가도 사천왕문을 지나면서 무심결에 고개를 한껏 쳐들고 바라본 사천왕상에 흠칫 놀라거나 몸이 오싹하는 경험을 하게 된다. 험상궂게 치켜올린 검은 눈썹에다 주먹보다 더 큰 눈이 툭 불거져 나온 사천왕상이 양쪽에서 아래를 쏘아보며 곧 자신을 내리칠 것만 같은 기세다. 마음 약한 사람들은 눈을 가리고 소리를 지르며 뛰쳐나가는 일도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왜 거기 사천왕상을 세워놓았는지 그 의미에 대해서는 전혀 알려고 하지 않고, 또 사찰에서도 사천왕이 상징하는 교리적 해석에도 인색해서 설명문 하나 세워놓지 않았다.

 

보편적 진리나 법칙의 발견을 목적으로 하는 체계적 지식을 과학이라 한다면, 믿음을 통해 인간 생활의 고뇌를 해결하고 삶의 궁극적인 의미를 추구하는 일을 담당한 분야가 종교이다. 따라서 삶의 고뇌를 해결하고, 삶의 궁극적 의미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불교는 무한의 상상 세계를 탄생시킨다. 그 대표적인 예가 극락과 지옥 같은 세계 따위다. 이런 과정에서 불교에는 우주론적인 많은 신들이 등장하는데 이 사천왕(四天王) 역시 교리적 관념이 추상화 과정을 거쳐서 고정된 것이다.

 

불교의 세계관을 보면, 이 세계의 중앙에 거대한 수미산(須彌山)이 있는데 그 수미산을 중심으로 평면적으로는 동서남북에 4대주가 있고, 수직적으로는 수미산 꼭대기에서부터 도리천이 시작되어 야마천·도솔천·화락천·타화자재천·색계18천·무색계4천으로 올라간다. 이 무색계4천을 지나야 비로소 불교의 이상세계인 불(佛)의 세계에 도달한다.

그렇다면 수미산이 상징하는 의미는 무엇인가. 이는 모든 구도자나 불자들이 부처의 세계로 입문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올라야할 고행의 상징적인 산이다.

 

그런데 이 수미산 중턱의 동서남북 네 방위에서 자신들의 위치를 지키고 있는 신이 바로 사천왕이다. 동쪽은 인간의 선악을 분별해내는 지국천왕, 서쪽은 악한 말을 물리치는 광목천왕이, 남쪽은 만물을 소생시키는 증장천왕이, 북쪽은 모든 중생을 제도하려는 다문천왕이 지키고 있다. 다시 말하자면 부처의 세계는 아무나 올라갈 수 있는 길이 아니라 고행의 상징인 수미산을 통과해야만 하는데 그 중간에서 사천왕이 구도인의 선악을 가려내어 징계하는 한편 신심을 일으키도록 격려를 주는 역할을 맡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부처의 세계가 우주론에서 말한 수없는 하늘(天) 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 속에 있을진댄 수직으로 올라간 하늘들은 바로 선정(禪定)의 체험이 여러 단계에 의하여 교리적으로 체계화된 천계들일뿐이다.

 

이제 분명한 결론에 도달해보자. 수미산과 수미산 중턱을 지키는 사천왕, 그리고 수미산 위에서 시작되는 모든 하늘들은 곧 우리의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수행과정에서의 체험의 변화를 도식화 해놓았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사천왕이 있는 위치는 우리가 부처의 세계로 입문하기 위해서는 악을 제어하고 자비심으로 중생을 제도하겠다는 서원을 세우는 단계이며 사천왕문은 바로 그런 단계를 통과해야 하는 마음의 중턱에 세워진 문이라 할 수 있다.

 

사천왕상 四天王像

 

수미산 중턱에 살면서 사방을 지키고 불법을 수호하는 네 명의 대천왕으로, ‘사대천왕(四大天王)’ ‘사왕(四王)’ ‘호세천왕(護世天王)’이라고도 부른다. 원시경전인 《장아함경長阿含經》 〈제5전존경第五典尊經〉 제3에는, “사천왕은 그 방위에 따라 각기 자리를 담당하고 정법을 수호하고 마귀의 습격을 방지한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사천왕이 조형화된 것은 4세기경에 성립한 《금강명경金剛明經》이나 《관정경灌頂經》이 유행하기 시작한 이후부터이다. 인도에서는 간다라* 지역에서 출토된 불전도*나 부조*에 사천왕상이 나타나는데, 주로 고대 인도의 귀인 형상을 하고 있다. 중앙아시아*를 거쳐 중국화되면서 갑옷을 입고 투구를 쓴 무인형의 형상으로 정착된다. 운강석굴* 가운데 천왕은 천관(天冠)만 쓰고 갑옷은 입지 않아 무인상으로 정착되기 이전의 모습을 볼 수 있으며, 수隋, 당唐 이후에야 비로소 갑옷을 입고 천관을 쓴 무장의 형상이 유행하기 시작하였다. 무장형의 사천왕상은 중국, 한국, 일본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이다. 사천왕은 시대와 나라에 따라 들고 있는 지물*이 약간의 차이가 있으나 대체로 칼과 창, 탑 등의 무기를 들고 있다. 그런데 북방다문천왕(北方多聞天王)은 항상 보탑을 들고 있어 명칭을 확인하는데 중요한 기준이 된다.

한편 원대(元代) 이후에는 라마교의 영향을 받은 사천왕이 조성되는데, 동방지국천왕(東方地國天王)이 비파(琵琶), 남방증장천왕(南方增長天王)이 보검(寶劍), 서방다목천왕(西方多目天王)이 나삭(羅索), 북방다문천왕이 사리탑*이나 은서(銀鼠)를 쥐고 있다.

한국에서는 신라선덕여왕 때 양지良志라는 승려가 사천왕상을 조성하였다는 기록이 《삼국유사三國遺事》에 있어 삼국통일을 전후한 시기에 만들어졌다는 것을 알 수 있고, 통일신라시대에 크게 유행하였다. 대표적인 예로 〈사천왕사지四天王寺址 출토(出土) 녹유사천왕상전綠釉四天王像塼〉, 감은사지感恩寺址 3층석탑 출토 청동사리구(靑銅舍利具)에 부착된 사천왕상, 〈석굴암石窟庵의 사천왕상〉 등이 있다.

 

동방지국천왕(東方持國天王)

 

나라를 지키고 백성들을 편하게 하는 천왕이다. 수미산 중턱에서 동서남북을 지키며 불법을 수호하고, 인간의 선악을 관찰하는 사천왕들 중에서 동쪽 영역의 황금타(黃金唾)를 관장하는 천왕(天王)이다. 지국천왕은 착한 일을 하는 사람에게 상을 주고, 악한 일을 하는 사람에게 벌을 내리며, 늘 인간들을 보살피고 인간들의 땅을 지켜준다. 부처님 또는 수미산을 다스리는 제석천이 지국천왕에게 동방에서 불법을 지키라고 명령하였다고 한다. 그러한 명을 받아 나라를 지키고, 백성을 편하게 하기 때문에 지국(持國)천왕이라는 이름이 유래된 것이다.

신화에서는 지국천왕이 권속으로 간다르바를 부린다고 되어 있다. 후대의 불경에서는 지국천왕이 동방에서 간다르바나 비사사라는 귀신을 부리는데, 참된 도리를 파괴하고 선한 백성을 괴롭히는 자들을 물리치는 역할을 한다고 한다.

 

동방지국천왕이 가지고 있는 물건(持物)에 대하여는 경전마다 조금씩 달리 표현되어 있다. 다라니집경에 의하면 동방지국천왕은 왼손에 팔을 내려 칼을 잡고 오른손을 구부려 보주(寶珠)를 쥔다고 하고, 일자불정륜경(一字佛頂輪經)에 의하면 왼손에는 창을, 오른손은 손바닥을 올려드는 형상이라고 한다. 약사여래유리광칠불본원공덕경에는 비파(琵琶)를 든 것으로 표현되어 있다.

 

남방증장천왕 (南方增長天王)

 

중생의 이익을 증대시켜주는 천왕으로 수미산 세계의 남쪽을 관당한다.

 

수미산 중턱의 남쪽 영역 류리타(琉璃唾)를 관장하는 천왕(天王)이다. 중장천왕은 자신의 위엄과 덕으로써 만물을 소생시키고 덕을 베푼다. 고대인도어인 산스크리트어로는 “Virudhaka”라고 하는데, 그 뜻은 자꾸 늘어난다 · 확대된다는 의미이다. 한문으로 증장(增長)이라고 한다. 중생의 이익을 증대시켜준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증장천왕은 그 부하로 굼반다와 프레타를 부린다. 굼반다는 배가 매우 부른 모습으로 표현되는 욕심이 매우 많은 아귀이며, 지국천왕의 부하인 비사사와 마찬가지로 사람의 정기를 빨아먹는 귀신이라고 한다. 프레타는 탐욕스러운 자가 사후에 떨어지는 생존 상태인 아귀도(餓鬼途)를 뜻하는데, 죽은 자의 영혼을 부린다고 한다.

 

붉은 관을 쓰고 갑옷을 입었으며, 오른손은 팔꿈치를 세웠고 삼지창(三枝槍)을 들고 있고 갑옷을 입었다. 증장천왕의 지물(持物)은 대체로 칼을 쥐는 것으로 표현된다. 다라니집경은 왼손을 펴서 칼을 잡고 오른손에는 창을 잡는다고 하며, 일자불정륜경에는 오른손을 허리에 대고 왼손에 창을 잡는다고 하고, 약사여래유리광칠불본원공덕경에는 칼을 잡는다고 씌여있다.

 

서방광목천왕 (西方廣目天王)

 

인간세계의 선과 악을 살펴 죄 지은 자를 벌로써 다스리고 반성하게 하는 천왕이다. 크고 넓은 눈을 가진 천왕으로 수미산 서쪽 중턱에 자리한 백은타(白銀唾)라는 곳에 머물며 불법을 지킨다. 고대인도어로는 “Virupaksha”라고 하는데, 이상한 눈 · 추한 눈이라는 뜻이다. 한문으로는 추목(醜目) · 악안(惡眼)이라고도 하며, 일반적으로는 광목천왕(廣目天王)이라고 불리어진다. 광목천왕은 죄인에게 심한 벌을 내려 고통을 느께게 하여 반성하는 마음을 갖게 한다.

광목천왕은 3개의 눈을 가졌다는 고대 인도 시바신의 화신이라고 하는데, 그래서 광목(廣目)이라 불리우는 것 같다. 그 부하로는 여러 종류의 용(龍)과 부단나(富單那) 등이 있다. 부단나는 냄새나는 귀신 · 아귀를 말하는데, 때로는 열병을 앓게 한다고 한다. 용은 하늘에서 구름 · 비 · 천둥 등을 부린다.

 

매서운 눈을 부릅 뜨고 있는 광목천왕은 오른손에는 용을 쥐고 있으며 왼손에는 용의 입에서 꺼낸 여의주를 쥐고 있다. 갑옷으로 단단히 무장한 모습이다.

 

북방다문천왕 (北方多聞天王)

 

부처님의 설법을 가장 많이 들으면서 불법을 수호하는 천왕으로 암흑계를 관리한다. 수미산 중턱의 북쪽 구로주(瞿盧州)를 수호하는 천왕으로 비사문천이라고도 한다. 부처님의 도량을 지키며 부처님이 설법하시는 것을 많이 듣는다고 해서 다문천(多聞天)이라 불린다.

고대 인도의 신화에서는 다문천왕이 암흑계에 머무는 악령의 우두머리로서 재물과 복덕을 주관하는 존재로 표현되어 있다. 이러한 다문천왕이 불교에 흡수되면서 부처님의 설법을 가장 많이 듣는 호법신이 된 것이다.

다문천왕은 권속으로 야차 · 나찰을 부린다. 야차는 행동이 민첩하고 가벼우며 음악과 환락 · 음식 · 오락 ·바람을 주관하며, 숲 속이나 묘지 · 골짜기에서 산다고 한다. 나찰은 두려운 존재라는 뜻으로 혈육(血肉)을 먹고 탐내는 존재이다.

 

 

다문천왕은 지물(持物)로 보탑을 들고 있어 특징적이다. 불교미술의 수많은 신장상 중에서 사천왕을 구별해 낼 수 있는 중요한 표식이기도 하다. 다라니집경에는 다문천왕이왼손에 창을 잡고 오른손에는 불탑(佛塔)을 든다고 하며, 약사여래유리광칠불본원공덕경에는 왼손에 막대를, 오른손에 탑을 든다고 하였다. 어둠속을 방황하는 중생을 제도한다는 뜻에서 얼굴이 검은 색으로 표현되기도 한다.

 

불이문(不二門)

 

천왕문을 지나면 불이문(不二門)이 나타난다. 이 문은 번뇌의 속된 마음을 돌려서 해탈의 세계에 이르게 한다하여 '해탈문(解脫門)'이라고도 하며, 궁극적으로 번뇌와 해탈이 둘이 아니기 때문에 '불이문'이라고 일컫는 것이다. 이같은 불이(不二)의 뜻을 알게 되면 해탈할 수 있으므로 '해탈문'이라고도 한다.

 

일반적으로 해탈문은 누각 밑을 통과하는 형태로 되어 있다. 2층의 다락집 형태인 누각 밑 1층 기둥 사이로 길이 나 있어 문의 모습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2층 누각'은 불법을 설하는 '강당'으로 쓰여 왔다. 그래서 진입하는 쪽에서 보면 문이요 진입하고 난 뒤 법당 쪽에서 보면 누각으로 다가온다.

 

불이문인 해탈문을 지나면 그 사찰의 중심 법당인 대웅전이 보인다. 그리고 법당 앞마당에는 부처님의 진신사리나 말씀인 경전을 간직한 탑과 석등이 서 있다.

 

불이란 둘이 아니라는 경지이다. 이 문을 본당에 들어서는 곳에 세운 것은 이곳을 통과해야만 진리의 세계인 불국토에 들어갈 수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기 위해서이다. 나와 네가 둘이 아니요, 생과 사가 둘이 아니며, 부처와 중생, 생사와 열반, 번뇌와 보리, 세간과 출세간, 선과 악, 색과 공 , 만남과 이별 역시 그 근원은 모두 하나이며, 모든 상대적인 것이 둘이 아님을 천명한 것이다. 그 근거는 법계의 실상이 항상 여여평등하다는 데 있다.

 

그러나 불이가 하나를 뜻하는 것도 같음을 뜻하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하나일 수도 같은 것일 수도 있지만, 서로 개별성은 분명히 구별되어 있는 평등과 자유 그 자체이다. 진정한 불이는 참된 해탈의 경지, 즉 언어를 넘어선 것에 있다.

 

불교이 우주관에 의하면 수미산 중턱에 사천왕이 지키는 사천왕천을 지나 수미산 정상에는 제석천왕이 다스리는 도리천이 있다. 도리천 위에 불이(不二)의 경지를 상징하는 '불이문'이 서 있다. 이 불이문이 '해탈문(解脫門)'이다. 불이의 진리로써 모든 번뇌를 벗어 버리고 해탈을 이루어 부처가 된다고 하여 '해탈문'이라고도 부른다.

 

불이문은 사찰에 따라서 이름이 다르기도 하다. '불국사 불이문'에는 자하문(紫霞門)이라는 현판이 붙어 있다. 이 문에 들어서려면 청운교와 백운교를 거치는데, 이들 다리의 계단은 모두 33개이다. 곧 도리천의 33천을 상징적으로 조형화한 것이다. 자하는 자주빛 안개라는 뜻으로 부처의 몸 빛깔을 상징한다. 이 문을 통과해야 '부처의 세계'에 도달할 수 있음을 뜻한다.

 

'절' 속의 '불이문'이 있는 선상(線上)의 경역(境域)은 오직 '도리천'을 지난 지점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그 위의 여러 하늘, 예를 들면 범천(梵天)까지를 포괄하는 곳으로 상징화된다. 사천왕천을 지나 '도리천' 위에 '야마천-도솔천-화락천-타화자재천'을 지나야만 비로소 '욕계'의 음욕(淫欲)에서 벗어나 항상 깨끗하고 조용한 하늘 사람들의 나라인 색계(無界)의 첫째 하늘, 범천(梵天) 곧 초선천(初禪天)의 하늘인 '범중천, 범보천, 대범천' 등이 열린다.

 

도리천: 도리천은 불교의 28천중 욕계6천의 제2천이다. 도리천은 33천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도리천은 불법에 귀의한 원래 인도의 천신 인드라신인 제석천이 다스리고 있다. 벼락과 비바람을 관장했던 마신(魔神)은 부처님의 감화를 입어 불교에 귀의한 뒤 정법을 수호하고 부처님과 그 제자들을 옹호하겠다는 서원을 세웠다.

 

제석천왕은 현실적으로 사바세계를 다스리는 천왕으로 그는 반석위에 굳건히 서서 오른손으로 불자(拂子)를 쥐고 왼손으로 금강저(金剛杵)를 받치고 있다. 불자는 중생의 번뇌를 털어내는 상징적인 도구이며, 금강저는 탐요과 죄악을 타파하는 지혜와 힘을 상징하는 도구이다.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사찰들에는 여러 가지 크고 작은 문들이 수없이 건립되어 있습니다만, 그 중에서도 대문들에 해당하는 입구의 일주문과 중턱의 천왕문 및 마지막의 불이문(不二門)은 보통 입구에서부터 법당을 바라보며 일직선상으로 배열되어 있는 경우가 많아 이 세개의 대문이 산문(山門)의 기본적인 구조를 이루고 있습니다.

불이문은 달리 해탈문(解脫門)이라고도 하는데, 세 개의 문 가운데 가장 안쪽에 자리잡고 있고 이층으로 지어져 윗층은 누각을 이루고 있는 경우도 있으며 이 문을 들어서면 곧바로 그 사찰이 본존격인 부처님을 모신 법당 앞에 이르게 됩니다. 이와 같은 구조는 말하자면 부처님은 너와 나, 중생과 부처, 미망과 깨달음, 생사와 열반 등 온갖 상대적인 개념들을 초월하여 모든 것이 둘이 아닌 불이(不二)의 경지에 계신다는 사실을 공간적으로 상징해 놓은 것으로서, 그러한 곳에 이르는 문이므로 불이문이라고도 하고 그와 같은 경지가 곧 해탈이므로 해탈문이라고도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찰의 초입에 세워져 잇는 일주문이 중생들의 세계와 진리의 세계 사이의 경계를 표시하는 것으로서 불자들에게 세속이 번뇌를 벗어버리고 오로지 진리를 구하는 한마음으로 돌아올 것을 일깨우는 문이고, 천왕문이 거기에서부터 사천왕의 수호를 받는 청정도량임을 표시하여 몸가짐과 언행을 더욱 신중히 할 것을 당부하고 있는데 비해, 불이문 또는 해탈문은 부처님의 세계에 이르는 마지막 관문임을 나타내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 불자들이 불이문 안으로 들어설 때는 그곳이 바로 부처님과 부처님의 진리가 깃들어 있는 신성하고도 복된 곳임을 명심하여 보다 엄숙하고 지극한 마음가짐으로 임해야 하겠습니다.》

 

[출처] 일주문(一柱門), 사천왕문(四天王門), 불이문(不二門)|작성자 임기영불교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