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시대 이래 불교가 우리나라에 전래된 후에 사찰의 중심 불전은 백제의 일탑일금당식 혹은 신라의 쌍탑일금당식의 가람배치에서 볼 수 있듯이 단일의 건물이었다. 이 시기의 주요 불전의 명칭은 금빛나는 불상을 봉안한 건물이라는 측면에서 금당(金堂)으로 통칭되었다. 이후 고려시대에 諍榕종파신앙이 성행하면서 각각의 소의경전에 따라 주불전의 명칭이 분화되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변화는 조선시대의 통불교화 관정을 통해 더욱 심화되었는데, 그 중에서도 단일신앙(單一信仰) 사찰의 성격을 유지해 단불전의 가람배치를 고수한 사찰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법당의 명칭은 달라졌으며 종파에 따른 가람배치의 특징은 약간씩 구분되고 있다.
이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완주 화암사(花巖寺)는 미타계 사찰로서 극락전(極樂殿)을 주불전으로 하는데 여기서 아미타불은 열반에 들지 않고 법계에 충만하므로 영탑(影塔)을 두지 않는 것이 배치의 특이한 점이다.
둘째 관촉사(灌燭寺)는 미륵계 사찰로 미륵불과 탑을 사찰의 중심축상에 배치하는 규범울 충실히 지키고 있다. 중원 미륵대원도 이러한 배치방식을 따르고 있다.
셋째 화엄계 사찰은 부분과 부분, 부분과 전체의 통일이라는 화엄사상에 따른 강력한 통합을 가감배치에도 반영하고 있다. 평창의 월정사에서는 사찰중정(寺刹中庭)의 탑을 중심으로 4동의 건물이 강력하게 통합되어 있다.
넷째 청도 운문사는 법화계의 사찰로 중정에는 두 개의 탑이 서 있다. 다른 종파의 사찰에서는 희귀하나 법화계 사찰에서는 쌍탑가람제가 일반적이다. 그 이유는 소의경전인 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다. 즉 석가모니 부처님의 설법 도중 공중에 다보탑(多寶塔)이 나타나는데, 그 안에는 다보여래가 있어 부처님의 위대함을 증명한다. 석가탑과 다보탑은 이러한 경전상의 장면을 구현하는 것으로 쌍탑(雙塔)의 존재에 대한 설명이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