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붓다 이야기

[스크랩] 지운스님 강의 :「대승기신론(大乘起信論)」- 1. 대승기신론이란? - 제 1강 대승기신론 개론 (1)

다음카페 : 『 가장행복한공부 』
    1. 대승기신론(大乘起信論)이란? 제 1강 대승기신론 개론 (1)
      「대승기신론(大乘起信論)」은 일반사람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스님들이 공부하는 강원에서는 「대승기신론」이 교재로 들어가 있어요. 「대승기신론」에도 주석서가 상당히 많이 있는데 그 중에서 원효스님의 해동소(海東疏)를 교재로 씁니다. 저 개인적으로는 이 「대승기신론」을 굉장히 좋아 합니다. 그리고 무엇을 얘기 하더라도 반드시 「대승기신론」을 근거로 해서 많이 합니다. 「대승기신론」은 대승불교의 개론서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얘기할 것은 「대승기신론」이 전체적으로 어떤 사상을 가지고 있고 또 어떤 수행을 얘기하고 있는가에 초점을 맞춰서 얘기하겠습니다. 이 「대승기신론」이 우리 선가(禪家)에 끼친 영행은 아주 지대합니다. 그래서 어록에 보면 선사들이 「대승기신론」 인용을 많이 하고 세속에 불교학자들도 「대승기신론」 연구를 참 많이 합니다. 「대승기신론」이 번역된 이래로 약 190여종의 주석서가 있습니다. 그리고 몇 십 년 전에는 이것을 영어로 번역해서 유럽에 알리기도 했습니다. 대승불교의 핵심은 이 「대승기신론」 안에 다 들어가 있습니다. 그래서 굉장히 중요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그리고 이 「대승기신론」은 문체가 아주 간결하고 알기 쉽게 문답도 들어가 있는데, 글은 짤막하지만 주석은 상당히 많습니다. 너무 함축된 게 많기 때문에 자세히 풀지 않으면 굉장히 어렵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전문적으로 수행을 하는 분들이라든지 불교의 핵심을 공부해 보고자 하는 분들은 반드시 「대승기신론」을 공부합니다. 그래서 오늘 여러분들하고 공부하게 된 것을 참으로 기쁘게 생각하구요, 저는 「대승기신론」을 많이 강의 하긴 했지만 하고나면 아쉬움이 남고 이렇습니다. 그것은 제가 스스로 미진하다는 것을 잘 압니다. 그래서 강의가 있을 때마다 강의하면서 배운다는 마음으로 합니다. 저에게 전강해준 노스님께서 하시는 말씀이 네가 강사라고 하지만 강의하면서 10년은 학인스님들에게 배운다고 생각하고 10년이 지나고 난 뒤에 비로소 강의한다고 그렇게 말할 수가 있다,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그 말씀을 잊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고 보니까 강단에서 강의한지가 17년 이상 했고 「대승기신론」 강의도 10여년 된 거 같습니다. 그래서 자신 있게 이 자리에서 「대승기신론」을 강의하게 됐는데, 그렇더라도 배우는 입장에서 여러분들하고 같이 공부해보고자 합니다. 이 「대승기신론」의 저자는 마명(馬嗚, अश्वघोष, Aśvaghoṣa,devanāgarī.)보살입니다. 부처님이 입적한 후 600년경에 마명보살이 출연을 합니다. 마명보살은 대승불교의 아버지라고 하기도 합니다만, 하여튼 굉장히 중요한 인물입니다. 원래는 바라문 학자였고, 마갈타국에서 불교학자들과 대론을 많이 벌였는데, 이기지를 못했어요. 그래서 불교에 귀의하게 되고 불법 연구를 정말 많이 했습니다. 그래서 「대승기신론」이 탄생하게 된 거죠. 「대승기신론」은 두 가지 한역본이 있는데, 하나는 양(梁)나라 때[AD499~569] 진제삼장(眞諦三藏)이라고 진제스님이 번역을 했고, 그 다음에 당나라 때[AD652~710] 80화엄경을 번역하신 실차난타(實叉難陀)스님이 「대승기신론」범본을 가지고 번역을 했습니다. 진제(眞諦)스님이 번역한 것을 구역이라 하고 실차난타(實叉難陀)스님이 번역한 것을 신역이라 하는데, 「대승기신론」의 소(疏)는 대부분 구역을 대본으로 해서 주석을 많이 달았습니다. 이 주석서에도 삼대주석서가 있습니다. 원효스님의 해동소(海東疏)가 있고, 법장(法藏)스님은 화엄경을 근거로 해서 주석을 많이 하셨는데, 원효스님의 글을 많이 인용했습니다. 그게 기신론의기(起信論義記)라 합니다. 그 다음에 정영소(淨影疏)라고 혜원(慧遠)스님 주석을 달았습니다. 이 세분에 주석이 다 특징이 있습니다. 혜원스님의 정영소는 구식(九識)을 근거로 해서 주석을 달았습니다. 보통 팔종식이라 해서 시각, 청각, 후각, 미각, 촉각, 의식, 잠재의식인 말나식하고 무의식인 아리야식이 있는데, 아리야식은 아뢰야식하고 같은 말입니다. 이 분은 제9 암마라식을 하나 더 넣어서 주석을 하셨어요. 그리고 법장(法藏)스님은 화엄 쪽에 아주 유명한 조사스님인데, 화엄경을 바탕으로 해서 주석을 하셨어요. 그런데 원효스님은 아주 자유분방 합니다. 아주 시원스럽게 주석을 다셨는데, 어느 한 사상에 매이지 않았다고 보시면 틀림이 없습니다. 중관(中觀), 유식(唯識), 여래장(如來藏),을 많이 인용을 해서 회통시켜가면서 주석을 하셨습니다. 그래서 삼대의 주석서 중에서 원효스님 주석서를 최고로 칩니다. 우리나라 역대 유명한 스님을 보면 신라시대 때에는 원효스님을 꼽고, 고려시대 때는 보조스님, 조선조시대 때는 서산스님입니다. 그래서 원효스님의 사상은 해외 까지도 많이 알려져서 외국에서도 많이 연구를 하고 있습니다. 이 분 사상의 기저(基底)는 「대승기신론」입니다. 「대승기신론」을 근간해서 모든 원효스님의 사상이 펼쳐집니다. 그래서 아주 유명하다는 거죠. 「대승기신론」의 내용을 간추리면 일심(一心), 이문(二門), 삼대(三大), 사신(四信), 오행(五行)입니다. 일심(一心)이라는 것은 한마음 인데, 모든 존재의 본질을 불교에서는 마음이라 그럽니다. 팔만대장경의 법문을 한 마디로 얘기하라고 하면 ‘마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마음도 한마음, 그래서 일심이에요. 일심에 두 개의 문[二門]이 나옵니다. 마음이 변하지 않는 불변의 마음, 삶과 죽음이 없는 본연의 마음, 창조된 적도 없고 파괴된 적도 없는 그런 마음을 진여문(眞如門)이라고 하고, 그 다음에, 마음이 생겼다 사라졌다하는 생사가 있는 문[生滅門], 이 두 가지 문을 얘기하고, 삼대(三大)라고 얘기하는 것은 일심(一心)을 잘 살펴보면 체(体), 상(相), 용(用), 세 가지가 나옵니다. 본체적인 입장에서 그 모양, 그 쓰임새, 이것을 가지고 논한 것이고, 사신(四信)이라는 것은 네 가지 믿음을 얘기 합니다. 우리에게 진여가 있음을 믿고, 그 다음에 불(佛), 법(法), 승(僧), 삼보(三寶)를 믿는 거예요. 이 믿음에 의해서 우리가 수행해 나갈 수 있습니다. 그 다음 오행(五行)이 있습니다. 오행은 육바라밀(六波羅密)을 얘기합니다. 보시(布施), 지계(持戒), 인욕(忍辱), 정진(精進)까지 네 개 맞는데, 다섯 번째는 지관(止觀)으로 되어 있습니다. 지(止)는 선정(禪定)이고, 관(觀)은 지혜(智慧)입니다. 그래서 오행이지만 사실 육바라밀을 얘기 합니다. 그래서 「대승기신론」의 수행은 육바라밀이에요. 마지막에 하나 더 얘기하자면, 아미타불염불이 들어 있습니다. 수행할 수 있는 근기가 안 되는 분들에게는 ‘염불하라’,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대체적으로 이게[一心, 二門, 三大, 四信, 五行] 핵심 되는 부분인데, 그 중에서 가장 핵심 되는 부분이 일심(一心), 이문(二門)이에요. 그래서 옛날부터 일심(一心)에 의지해서 개이문(開二門), 이문(二門)은 연다, 했습니다. 여기서 사상이 일심(一心), 이문(二門), 삼대(三大), 사신(四信), 오행(五行), 이렇게 되어 있지만, 이 사상의 내용은 중관사상(中觀思想)과 유식사상(唯識思想), 그리고 여래장사상(如來藏思想), 이 세 가지 사상이 어울려져 있습니다. 이 세 가지 사상은 일심(一心), 이문(二門)으로 다 응축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대승의 모든 어떤 사상적인 핵심이 바로 일심(一心), 이문(二門)에 다 들어 있다고 해도 틀림이 없습니다. 중관사상(中觀思想)은 공사상(空思想)에 대한 얘기입니다. 이 중관사상의 중관학파는 AD 1세기경 용수보살에 의해서 창안되었는데, 불교 사상사를 보시면 이해가 되실 겁니다. 그리고 1~2백년 지나 3~4세기 쯤 되어서 유식사상이 등장합니다. 중관사상인 중관학파가 등장 한 것은 설일체유부(說一切有部)라 해서 인무아(人無我), 사람은 공하지만 나타나는 현상계는 실체가 있다고 주장하는 학파가 있어요. 일체유부(說一切有), 일체는 존재한다는 것을 주장하는 학파인데, 여기서 있음에 대한 주장, 실체로서 흘러 가버립니다. 그래서 모든 것은 상호 관계를 갖고 있기 때문에 실체가 없는 데도 불구하고 그것이 고착화 되어가지고 실체성으로 보는 거죠. 과거에도 실체가 있고, 현재, 미래에도 무엇인가 실체가 있어서 이 현상계를 유지한다, 이렇게 주장하게 됩니다. 그때 중관학파가 등장하면서 ‘그렇지 않다, 과거 현재 미래는 실체가 없다’는 것을 얘기 합니다. 사람이니까 공하고 자아가 없는 것은 인무아(人無我)임과 동시에 나타나는 모든 현상도 무아(無我)다, 실체가 없다, 이것을 얘기 하는 거죠. 그런데 100여년 지나가면서 공(空)을 허무 공으로 보는 그런 사람들이 생기기 시작합니다. 그랬을 때 나타나는 게 중관학파의 중도를 계승했다고 주장하는 학파가 유식사상을 얘기하는 유식학파입니다. 그 다음에 또 하나, 학파는 아니지만 여래장사상(如來藏思想)이 등장 합니다. 불성(佛性), 부처 성품에 대한 가르침이죠. 그런데 이 세 가지 사상이 같이 어우러져 가지고 내려오면서 만난 게 바로 「대승기신론」이에요. 「대승기신론」이 논서가 생기기 이전에 경전에 나타나는데 그 경전이 『입능가경(入楞伽經)』입니다. 「대승기신론」이 『능가경(楞伽經)』을 근거로 해서 지어진 논서라 해서 ‘능가경의 별신서(別伸書)’라는 얘기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대승기신론」은 기존의 앞에 중관, 유식, 여래장을 다 합쳐서 하나로 서술해 놓은 거죠. 그렇지만 하나 알아둬야 할 게 있습니다. ‘일심(一心), 이문(二門)’, 이것은 근거가 어디에서 비롯되었느냐 하면, 부처님의 깨달음인 연기(緣起)에서 비롯된 겁니다. 연기법(緣起法)이라는 것은 요즘 말로하면 ‘모든 것은 상호 의존해서 존재한다’, 이런 말입니다. 『연기법경(緣起法經)』에 보면 어떤 사람이 부처님께 묻습니다. “부처님이여, 연기법은 당신이 만들었습니까, 다른 사람이 만들었습니까?” “내가 만든 것도 아니고 다른 사람이 만든 것도 아니다. 여래가 이 세상을 출연하든지 출연하지 않든지 법의 성품은 상주한다.”, 그랬어요. 법계(法界)라 하기도 하고 법성(法性)이라고 하기도 하는데, 그것을 법계상주(法界常住), 법의 계는 항상 머문다는 말입니다. 여기서 법계(法界)는 연기법(緣起法)의 다른 이름입니다. 그러면서 이 법계에 대한 얘기가 나오는데, 이 ‘법의 계는 상주한다.’ 했을 때 ‘계(界)’는 어떤 경계선을 얘기하기도 하지만 사실은 ‘계(界)’하면 이 세상이 유지하는 것, 이 세상이 존속하는 것은 법에 의해서 존속한다 해서 법계(法界)라 그러는 겁니다. ‘법(法)’은 상호 의존하는 모든 것이 법이라는 겁니다. 분리되어 있지 않다는 거죠. 그런데 분리되어 있지 않다는 이 진실을 잘 몰랐을 때 고통이 오고 괴로움이 오고 삶과 죽음이라는 게 생기는 겁니다. 연기(緣起)라는 사실을 몰랐을 때는 생사를 반복하면서 윤회를 하지만 어느 순간 모든 존재가 분리되어 있지 않고 하나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 열반(涅槃)을 얻게 됩니다. 여기서 윤회의 길을 유전문(流轉門)이라 하고 열반으로 가는 것을 환멸문(還滅門)이라 그럽니다. 그래서 일심(一心)이라는 게 바로 연기(緣起)에요. 그리고 이문(二門)에서 그 하나가 유전문(流轉門)에 해당하는 심생멸문(心生滅門)이고, 또 하나 환멸문(還滅門)은 심진여문(心眞如門)입니다. 여기서 진여(眞如)는 허망하지 않아서 ‘진(眞)’이고, 바뀌지 않아서 ‘여(如)’라는 거죠. 우리 마음 자체가 창조된 적도 없고 소멸된 적이 없는 마음, 그것을 진여(眞如)라 그럽니다. 그런 문을 진여문이라 하는데 문은 통로죠. 우리가 깨달음의 길로 들어간다는 거죠. 이 얘기는 제가 몇 번 되풀이해서 했습니다. 제가 강단에 있을 때 다른 강원 학인스님한테 연기법이 무엇이냐는 질문 전화를 한 통 받았습니다. 그래서 제가 그랬습니다. 스님이 나한테 전화를 하고 내가 전화를 받는 것은 서로 관계를 얘기하는데 이것을 연기라 그런다, 스님과 나의 관계가 만일에 분리되어 있다면 스님의 전화를 내가 못 받을 것이고, 내가 얘기를 해도 스님이 못 알아들을 것이다, 그렇지만 스님과 나는 서로 분리되어 있는 것 같지만 하나로 연결되어 있지 않는가, 이것을 연기라 그런다, 그랬습니다. 그리고 이 스님이 연기를 마음이라 하는데 연기가 어떻게 마음입니까 하고 또 묻는 겁니다. 스님이 나를 알고 내가 스님을 알듯이 이렇게 아는 것은 마음인데 서로 아는 것에 의해서 연기가 이루어져 있지 않느냐, 그래서 마음이 연기다, 이렇게 얘기했습니다. 사실 알고 보면 참 간단한 거예요.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대승기신론」에서는 유식을 얘기하더라도 유식교의(唯識敎義) 전체를 다 얘기 하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서, 유식의 특징적인 가르침 중에서 종자설(種子說)이 있습니다. 우리가 보고 듣고 하면 모든 것이 마음에 저장이 된다, 정보가 입력되는 거죠. 그것을 종자(種子)로 표현하는데, 훈습설(熏習說)은 있는데 종자설이 없어요. 이게 다른 점입니다. 그런데 유식의 한계가 뭐냐 하면, 유식은 자성청정심(自性淸淨心)을 얘기 하지 않습니다. 우리 인간은 왜 이렇게 중생노릇을 하고 왜 고통에 차 있는가에 대해서 설명은 잘하는데, 자성청정심(自性淸淨心)에 대한 얘기가 약하다는 거죠. 그런데 여래장은 자성청정심에 대해서는 많은 얘기를 하지만 중생이 왜 중생이 되었는지 그 소의에 대한 얘기는 별로 없습니다. 그러니까 유식사상하고 여래장사상이 「대승기신론」에 왔을 때는 어떻게 변모하는가 하면, 자성청정심을 둘러싸고 있는 것은 아리야식이다, 이렇게 합니다. 아리야식은 유식 속에서 가져온 거죠. 그래서 이렇게 싸여 있는데, 이 더러운 껍질을 다 벗겨 내면은 자성청정심이 탁! 생긴다는 거죠. 나타난다는 얘기죠. 우리가 본래 갖춰져 있는 것은 더러움을 제거하면 깨끗함이 나타난다, 이렇게 얘기를 합니다. 그런데 여래장과 유식을 풀 수 있는 가장 핵심 되는 게 뭐냐 하면, 중론(中論)의 공사상(空思想)입니다. 그것을 원효스님께서 잘 말씀을 하시는데, 우리가 깨달음을 본각(本覺), 불각(不覺), 시각(始覺), 이렇게 세 가지를 얘기합니다. 본각(本覺)은 본래 우리는 깨달아져 있는 거죠. 그런데 이 본각이 매(昧)해 있을 때는 불각(不覺), 깨어 있지 못한 무명이라는 거죠. 그런데 이것을 자각해서 깨기 시작하면 시각(始覺)이에요. 이 본각(本覺), 불각(不覺), 시각(始覺)의 삼자의 관계를 공(空)사상을 가지고 탁월하게 설명하신 분이 원효스님입니다. 본각(本覺), 불각(不覺), 시각(始覺)은 「대승기신론」의 핵심 중에 한 부분이거든요. 그래서 중관사상을 모르면 안 되는 겁니다. 이런 것이 「대승기신론」 안에 다 들어가 있다는 거죠. 한 마디로 얘기하자면, 유식을 얘기하더라도 유식사상에서 얘기하는 유식하고 다르고, 여래장을 얘기하더라도 불성사상에서 말하는 그런 여래장하고는 달리 얘기하는 부분이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대승기신론」이 세 가지 사상을 융합해서 일심(一心), 한마음으로 용해시킨 사상이다, 이렇게 얘기 할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의 특징은, 수행문입니다. 앞으로 여러분들하고 공부할 내용 중에서 되도록이면 수행에 대한 얘기를 많이 하겠습니다. 21세기는 수행시대, 명상시대라 그럽니다. 지금 우리나라 불자들의 불교에 대한 이해가 상당히 높아져서 수행에 대한 관심을 많이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참으로 안타까운 것은, 기도는 열심히 하면서 법문을 잘 안 듣는 분들이 계십니다. 이런 분들은 까딱 잘못하면 사견에 떨어져서 다른 길로 갈 가능성이 많습니다. 기도를 열심히 하면서도 법문도 열심히 들으셔야 바른 견해가 세워집니다. 그런데 기도도 하고 법문도 잘 듣는데 실제로 수행하지 않는 분들이 계십니다. 그것은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우리가 부처님의 지혜를 얻으려면 수행을 해야 됩니다. 그런데 그 수행이 기도와 법문이 뒷받침 안 되는 수행은 아무 소용이 없는 겁니다. 「대승기신론」 강의를 하는 이 내용도 보면 제일 끝에 수행에 대한 얘기가 나옵니다. 그렇기 때문에 결국 수행으로서 회향을 해야 되는 겁니다. 「대승기신론」 사상에 대해서 말씀을 드렸고, 다음시간에는 총괄적으로 얘기를 하겠습니다. 「대승기신론」 인도의 마명(馬嗚菩薩, Aśvaghoṣa)이 저술하였다고 하나 그의 생존 연대가 불확실하여 중국에서 만들어진 것이라는 설도 있다. 원전인 산스크리트 원본은 전해지지 않고 있으나 중국 양(梁)나라 때의 진제(眞諦)와 실차난타(實叉難陀)의 한역본이, 한국에는 실차난타의 한역본이 전해지고 있다. 마명(馬嗚, अश्वघोष, Aśvaghoṣa,devanāgarī.) 중인도 마갈타국 사람으로 불멸 후 6백년 경에 출세한 대승의 논사(論師). 본래 외도의 집에 나서 논의를 잘하며 불법을 헐뜯었으나 협존자(脇尊者, 일설에는 富那奢)와 토론을 벌여 설복당하고 그의 제자가 됨. 그 뒤부터 마갈타국을 중심으로 중인도에서 전도하다가, 가니색가왕이 중인도를 정복했을 때 배상금 대신으로 마명을 데리고 갔다. 북쪽의 월지국으로 들어가 임금의 보호를 받으며 대승 불교를 선전하였다 하여 그를 대승 불교의 시조라고 한다. 고전기 산스크리트 문학의 선구자로서, 범(梵)문학 사상 그 이름을 떨치고 있다. 저서로는 대승기신론(大乘起信論) 1권 · 대장엄론경(大莊嚴論經) 15권 · 부처님의 생애를 시로 엮은 장편 서사시 불소행찬(佛所行瓚) 5권 등이 있으며, 난타가 사랑하는 아내에 대한 애착을 끊고 출가 수도승이 되기까지의 사연을 아름다운 시로 읊은 순다리난다, 중앙아시아에서 그 일부가 발견된 고전 산스크리트극의 가장 오래된 것으로 <샤아리푸트라 프라카라나> 등이 있는데, 어느 것이던 불교의 신앙심이 넘쳐흐르고 있다. 문학과 음악에도 조예가 깊어 마갈타국에 있을 때 뢰타화라(賴吒和羅)라는 가곡을 지었고, 왕사성에서는 몸소 악사들과 어울려 가곡을 연주하며 무상한 이치를 가르쳐, 성안의 5백 왕자를 출가하게 하다. 그를 보호하던 카니슈카왕이 그의 법력을 시험하려고 여러 날 굶긴 말 수십 필을 그가 설법하는 자리에 끌어다 놓고 먹이를 주었다. 그러나 말들은 먹이를 먹지 않고 조용히 설법을 듣고 나서 슬프게 울었다하여 그를 마명대사라 부르게 되었다고 전한다. 다음카페 :『가장 행복한 공부』
출처 : 가장 행복한 공부
글쓴이 : 虛 堂 원글보기
메모 :

'붓다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일원상의 진리  (0) 2015.05.06
간화선의 화두  (0) 2015.05.05
일원은 우주만유의 본원  (0) 2015.04.30
숫타니파타/붓다의 초기 말씀  (0) 2015.04.10
삼신불(三身佛)=법신불, 보신불, 화신불   (0) 2015.04.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