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지구상에 존재하는 불교는 대체적으로 3종류로 나눌 수 있다. 그것은 마하야나(대승), 테라바다(장로) 그리고 티벳불교이다. 이 셋은 교리와 의식이 다르고 수행 방법도 다르다.
마하야나에서는 수행 방법으로 화두 참선을 주로 하고 있고, 테라바다에서는 사마타 위빠사나를 주로 수행하고 있다. 화두 수행은 一超直入如來地(단박에 뛰어넘어 부처의 지위에 들어간다)를 목표로 닦는 돈오적 수행법이다. 그리고 대체로 추상적이며 직관적이고, 폭발적인 힘과 번뜩이는 지혜, 충격적인 요법을 사용하는 양적인 수행 방법으로 상근기에게만 해당되는 수행 방법이다. 사마타-위빠사나는 점진적이고 체계적인 수행법이다. 과학적이고 분석하기를 좋아하는 논리적인 사람들의 성향에 잘 맞으며. 하근기부터 최상근기까지 모든 사람이 다 닦을 수 있고 부드러운 음적인 수행 방법이다. 티벳불교는 내가 접해보지 않아서 잘 모르지만 들리는 말로는 지식호흡(숨을 멈추고 기를 모음)으로 온 몸의 챠크라를 열고 그 과정에서 생긴 삼매의 빛(淨光明)으로 모든 현상의 공성을 관찰하는 수행 방법이라 한다.
이렇게 여러 가지 수행 방법이 있지만 약이 그 병에 맞지 않으면 아무리 먹어도 차도가 없듯이 수행 방법이 자기와 맞지 않으면 십 수 년을 수행해도 효과가 없다. 반면 수행 방법이 자기와 맞으면 몇 개월만 해도 효과가 눈에 띄게 나타난다.
미얀마는 놀라운 곳이다. 이 지구상에서 가장 순수하게 붓다 재세시의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곳이다. 가사도 그 당시의 가사요, 발우도 그 당시의 발우요, 탁발도 그 당시 그대로의 모습이다. 절하는 모습이나 보름마다 빠티목카(포살)를 하는 모습이 모두 그 당시 그대로이다. 계목도 그냥 책을 보고 읽는 것이 아니라 외워서 염송을 한다. 절에서 목탁을 두드리고 기도 접수를 한다거나 재를 지낸다거나 어떤 의식이나 행사를 통해서 절 살림을 꾸려가는 것이 아니고, 단지 스님들이 수행만 하고 있으면 신도들이 와서 공양을 올린다. 절 살림을 위해서 어떤 의식이나 행사를 하지 않는다.
신도들은 1달에 4번 우뽀삿다 데이(지계일)에 절에 와서 법문을 듣는다. 스님들도 계를 철저히 지키는 편이다. 12시만 넘어서면 주스(?) 이외에는 일체 먹지 않으며, 돈도 손으로 만지지 않고, 주지 않으면 가지지 않는 계율(대승불교에서는 ‘도둑질하지 말라’로 고쳤음)을 지키기 위해 누군가가 스님에게 음식이나 물건을 공양한다면 준다는 의사표시와 그 물건에 살짝 손을 대어 받는다는 의사표시를 해야 한다. 여자와 한 지붕아래에 거주할 수 없으며, 한 자리에 같이 앉을 수 없다. 이렇게 계를 지키면서도 혹시 허물이 있을까봐 하루에 한 번 참회를 한다. 이것이 순수불교라는 생각이 든다.
테라바다는 붓다 시대의 순수함을 유지하기위해 무척 애를 쓴다. 경전도 빨리어 경전을 그대로 유지하며, 혹시 새로운 경험을 얻으면 주석서에 집어넣지 경을 새로 만들거나 추가하거나 수정을 하지 않는 것 같다.
수행 방법도 붓다 시대의 방법을 따른다. 붓다께서 펼쳐 놓으신 사마타-위빠사나 수행의 전통이 그대로 이어진다. 모두가 아는 사실이지만 붓다께서는 사마타-위빠사나 수행으로 깨달음을 얻으셨다. 그 중에서도 아나파나 사띠(호흡에 대한 마음집중)를 주로 하셨다.
옛날의 보디삿따께서는 붓다가 되기를 서원하시고 붓다의 조건인 일체지(一切智)를 얻기 위해 4아승지겁 하고도 십만 겁을 수행하셨다. 모든 것을 다 아시는 분이 수행 방법으로 여러 가지가 있지만 사마타-위빠사나를 가르치셨다는 것은 아마도 이 수행 방법이 모든 사람이 쉽게 닦을 수 있고 또 쉽게 목적지까지 도달하는 보편적인 방법일거라는 생각이 든다.
이 사마타 위빠사나에서도 2가지 종류가 있다. 위빠사나만을 닦는 수행이 그 하나요, 사마타를 닦고 나서 위빠사나로 전환하는 수행이 그 하나다. 대부분의 수도원에서는 위빠사나만을 지도한다. 이것은 아마도 마하시 사야도의 영향인 것 같다. 그러나 여기 파아욱 수도원에서는 사마타를 닦은 후에 위빠사나를 닦는다.
청정도론에 따르면 위빠사나만을 닦는 사람을 ‘마른 위빠사나 수행자’라고 부르고 위빠사나로 깨달음을 얻으면 혜해탈(慧解脫)이라 부르고, 사마타 위빠사나로 깨달음을 얻으면 양면해탈(兩面解脫)이라 부른다.
부처님께서는 계 정 혜 삼학(三學)을 펼쳐 놓으셨다. 계행의 단속을 통해서 몸과 말을 청정하게 하고, 사마타를 닦아서 삼매를 이루어 마음을 청정하게 하며, 그 청정하고, 집중된 마음으로 위빠사나(지혜)를 수행해서 깨달음을 얻는다. 즉, 단계를 밟아 성인의 지위에 이른다.
쌍윳다 니까야의 사마디 숫따에 붓다의 말씀이 나온다.
비구여, 삼매를 개발해야 한다. 충분한 삼매가 있다면, 현상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다.
여기서 현상은 오온과 오온이 일어난 원인을 말한다. 오온은 물질, 느낌, 지각, 상카라, 의식이다. 느낌, 지각, 상카라, 의식을 함께 정신이라고 부를 수 있다. 그래서 오온을 다른 말로 하면 정신-물질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면 현상이란 무엇인가? 현상은 정신-물질과 정신-물질이 일어난 원인(연기)를 말한다.
현상을 있는 그대로 본다는 말은 정신-물질과 정신-물질이 일어난 원인(연기)을 있는 그대로 본다는 말이다.
어떻게 물질을 있는 그대로 보는가? 사선정을 성취한 사람은 삼매에서 나오는 지혜의 빛으로 깊은 통찰이 이루어진다. 그 빛으로 자신의 몸과 타인의 몸을 관찰하면 물질의 더는 쪼갤수 없는 극미세 단위인 깔라파를 식별하고, 그 깔라파를 구성하고 있는 궁극적 물질(빠라마타)인 땅, 물, 불, 바람의 요소, 색깔, 향기, 맛, 냄새, 생명기능 그리고 영양소 등을 볼 수 있다. 이 궁극적 물질은 찰라 간에 생멸을 거듭한다. 이 물질의 일어나고 사라짐을 봐야 이 몸이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무아임을 뼈저리게 느끼게 되고 해탈을 원하게 된다.
어떻게 정신을 있는 그대로 보는가? 정신은 물질보다 더 생멸이 빨라서 물질이 한 번 일어나고 사라질 때 심찰라는 16번 또는 17번 일어난다고 한다. 삼매를 성취하지 않은 사람은 빠르게 일어났다 사라지는 심찰라를 볼 수 없다. 이 하나하나의 심찰라 속에 여러 가지 마음부수(心所)가 같이 일어나는데 이것을 식별하려면 깊고 강한 집중이 필요하다. 삼매에서 나오는 집중력으로 이것을 식별해야만 무상 고 무아를 통찰할 수 있고 깨달음을 이룰 수 있게 된다.
어떻게 정신-물질이 일어난 원인(연기)을 있는 그대로 보는가? 삼매의 빛으로 바왕가(마음의 기저에 흐르는 생명 연속체)를 추적해 올라가면 전생의 죽는 순간의 마음을 포착할 수 있고 그 마지막 일어난 재생의 표상(이 표상이 다음 생의 삶의 수준이나 태어나는 곳을 결정한다)이 무엇인가 식별하고 그 원인으로 금생에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 확연히 알 수 있다고 말씀하신다. 이런 식으로 연기를 관찰한다. 이렇게 깊은 통찰이 이루어질 때 삶에 대한 집착이 떨어져 나가고 모든 오염원이 부서진다고 한다.
이것이 파아욱 또야 사야도께서 주장하시는 이 책의 내용의 일부분이다. 그런데 이 내용이 파아욱 또야 사야도의 혼자만의 경험이나 새롭게 발견한 방법 또는 자신만의 독단적인 이론이 아니고 경전, 청정도론, 아비담마 주석서에 나오는 정통 수행법이라고 강조하신다.
또 파아욱 사야도께서는 사람들이 사마타 수행을 해보지도 않고서 궁극적 물질(깔라파 속의 원소)이나 궁극적 정신(심찰라 속의 정신 현상)은 부처님만이 보실 수 있지, 우리 같은 사람은 할 수 없다고 미리 퇴굴심을 일으킨다고 말씀하신다.
실제로 부처님 당시에는 대부분의 제자들이 삼매(사마타)를 먼저 닦았다. 경전을 읽다보면 선정 수행을 강조하시는 부처님의 마음을 느낄 수 있다. 팔정도의 마지막 항목인 바른 삼매(正定)는 사선정을 성취해야 한다는 것을 말한다. 여러 경전에 나오는 이 말은 부처님이 직접 말씀하신 것이다.
사선정 이상을 성취한 사람만이 5가지 영적인 힘(五神通)을 얻을 수 있다. 이 힘은 사마타 수행자에게서만 나타난다. 선정을 생략하고, 곧바로 위빠사나로 들어간 사람은 신통력이 없다. 부처님 당시의 제자들은 대부분이 신통력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은 먼저 사마타부터 체계적으로 수행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불교에서도 여러 가지 수행법이 존재하지만 근본 불교의 정통 수행법으로 수행을 해보는 것이 많은 도움이 될 수도 있다. 붓다 시대로 되돌아가서 불교의 근본정신을 알고 현재의 문제점을 인식할 수 있고 궁극적으로는 붓다의 가르침을 훨씬 깊이 이해하는 지침이 되리라 생각된다.
이 책을 통해 어떻게 아비담마 이론이 실 수행에 구현되는가를 알 수가 있다. 이 책은 아비담마에 대한 기초지식이 없으면 읽기 힘들다. 그래서 이 책을 읽고자 하는 사람은 아비담마 이론서(아비담마 길라잡이, 초기불전연구원)를 같이 보아주기 바란다.
이 책이 많은 사람에게 윤회를 벗어나고 해탈로 가는 올바른 길을 안내하기를!
미얀마에서
무념 합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