始覺은 비롯할 시 깨달을 각으로 비로소 처음으로 깨어간다는 뜻이다. 깨닫는다 깨어 간다의 반대 말은 잠자는 것이다. 잠 들어 꿈 속에 있다 깨어나듯 미몽에서 깨어나는 것을 시각이라 한다. 그래서 원효스님께서 범부각 상사각 수분각 구경각 4가지 깨달음을 꿈에 비유해 설명하고 계신다. 미몽은 어떻게 생겼나?
법신 보살들은 번뇌로 달라진 모습이 없다는 경계에 머무는 마음을 깨달아 그 생각에 나로 바뀌어 머무는 모습이 없으니 이 분별하는 거친 망념의 모습을 떠났기 때문에 수분각이라고 한다.
수행을 하면 회광반조를 한다. 정념 알아차림으로 관찰을 한다. 모양색깔 소리 냄새 맛 촉감이 눈귀코혀몸을 만나 시각 청각 후각 미각 촉각이 생긴다. 반성의 힘이 여기까지 미치면 범부각이 된다. 十信 10가지 믿음의 단계다. 시각 청각 후각 미각 촉각의 정보를 다 받아 나타난 것이 法이다. 법은 개념의 뜻이다. 이 法을 의식이 인식한다. 그러면 여기서 갖 가지 생각이 일어난다. 물론 의식 자체도 대상을 똑 같이 인식한다. 그러나 그보다 들어온 정보를 인식하는 것이 의식의 가장 큰 힘이다.
입으로 4가지 몸으로 3가지 잘못된 일을 수행을 하면 그치게 된다. 의식은 6가지 탐진치만의악견을 일으킨다. 그런데 관찰하는 힘이 이를 타파하면 始覺이 생겨 탐진치만의악견 같은 미혹들이 깨진다. 그 다음 의식차원을 넘어 말라식<자아의식>으로 들어가면 아취 아만 아애 아견 4가지 나<我>라 하는 번뇌를 타파하고 수분각의 경지에 들어가게 된다. 수분각은 자기 분수에 따라 깨닫는다는 뜻이다. 자의식을 타파하면 我空과 法空의 경계가 나타난다. 나라고 하는 꿈을 깨뜨리니 시각이 수분각의 모습이 되는 것이다. 상사각은 성문 연각 초지보살의 경지다. 수분각은 2지부터 7지까지의 경계다. 부분적인 법신을 이루기 때문에 수분각이다.
보살의 모든 수행을 다 한 이들은 방편을 다 갖춰 한 생각에 맞서 마음이 처음 일어나는 모습을 깨달아 그 마음에 처음 일어나는 망념의 모습이 없으니 이 미세한 망념을 멀리 여의었기 때문에 마음의 참 성품을 볼 수 있고 그 마음이 늘 이어지니 究竟覺이라 한다. 이 때문에 경에서 중생이 無念을 볼 수 있다면 부처님의 지혜로 간다 고 말한 것이다.
구경각의 아리야식까지 들어갔다. 시각이 말라식을 타파하고 아리야식의 미세 망념인 업상 전상 현상을 타파하러 들어왔다. 覺心初起 心無初相 마음이 처음 일어나는 것을 깨달으니 마음에는 처음의 모습이 없다는 것이다. 구경각이다. 이 경계는 보살의 경지를 다 타파하고 마지막 아리야식의 미세 망념을 타파해 불지에 들어간 경지다.
어떻게 이런 심식과 번뇌가 생겼나? 우리의 본 마음은 진여다. 여기까지 전체 다 진여의 모습이다. 우리의 참 마음인 진여가 무명의 영향을 받아 첫번째 움직인 모습이 아리야식이다. 아리야식은 다시 업상 전상 현상의 모습을 띤다. 업상은 주객미분의 상태로 그냥 마음이 한 번 움직인 것이다. 轉相은 能見相 능히 보는 모습으로 주관이 된다. 주관의 모습이 다시 한 번 마음이 바뀌어 境界相<現相> 바깥 대상의 모습을 띠니 객관이 된다. 진여가 무명의 영향을 받아 한 생각 딱 움직여 生이란 말을 쓰는 것이다.
무명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계속 영향을 미쳐 말라식의 모습을 띤다. 진여가 자의식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그러면서 나라는 어리석은 미혹의 4가지 번뇌를 일으킨다. 진여는 空인데 마치 내 모습이 있는 것으로 나타난다. 말라식은 아리야식을 我로 삼고 아리야식 중 경계상을 我所로 삼는다. 자기 모습으로 싹 달라져 아리야식이 나고 내 것이다 하면서 마음이 딱 머물러 버린다. 그래서 머무를 住 자를 쓴다.
자의식이 무명의 영향을 계속 받으면 의식으로 나타난다. 진여가 의식의 모습으로 전환되어 나타난다. 얼굴을 싹 바꿔 탐진치만의악견 6가지 번뇌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그래서 異다. 진여가 의식의 모습을 나타내 번뇌의 모습으로 달라졌다 해서 다를 異 자를 쓴다. 하지만 의식을 일으키고 생각하는 이 자체가 사실은 무명의 영향을 받은 진여의 작용이다. 의식이란 욕심으로 물들어 있는 모습이지만 사실은 진여가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의식은 그 다음 무명과 같이 합작해 시각 청각 미각 후각 촉각의 모습으로 달라져 나타나면서 실제 악업을 일으킨다. 달라진 모습인데 滅이란 모습이다. 보통 思業 思己業이란 말을 쓴다. 생각이 뭔가? 의식이 法이란 개념을 인식함으로 해서 생각이 일어나는 것이 思業이다. 생각도 의도와 선과 악이 들어가 있다. 누굴 만난다 어디 간다 하는 것은 의도가 일어난 것이다. 그러면 그 안엔 윤리적인 것이 들어가 있다. 의도가 생기면 행위로 나타난다. 행위로 나타난 것이 思己業이다. 생각이 이미 지나서 나타난 업이다. 행위다. 입으로 몸으로 나타난다.
탐욕과 성냄 어리석음을 생각하면 입으로 악담 거짓말 이간질 꾸미는 말로 나타나고 몸으로 살생 도둑질 삿된 음행이 나타난다. 결국 생각이 사라지고 난 다음 행위로 나타나는 것이다. 그래서 滅이란 말을 쓴다. 악업이 생기는 것이다. 시각 청각 후각 미각 촉각을 통해 그대로 행위로 나타난다. 보고 듣고 하면서 바로 나타난다. 그래서 미혹이다. 시각 비로소 마음이 깨어나기 시작하는 이유는 보고 듣고 생각하는 자체가 너무 고통스럽기 때문이다. 자신의 육신이 괴로우면 벗어나야지 하는 마음을 일으킨다. 그러면 무명의 영향을 받았던 진여가 반대로 무명에 영향을 준다.
향 연기를 피우면 연기가 허공에서 사라져 버린다. 마찬 가지로 진여라는 텅 빈 마음이 자각을 일으켜 연기라는 번뇌를 없애간다. 그래서 입과 몸으로 짓는 7가지 업을 없애버리기 시작한다. 범부의 깨달음이다. 꿈에 비유하자면 큰 강에 빠졌다. 살아야 하겠다 발버둥 친다. 이렇게 헤어나려고 몸부림 치는 것이 범부의 깨달음이고 그 강물이 바로 7가지 악업이다. 그 걸 아는 사람들은 참회한다. 왜냐 하면 한 번 지은 업은 아리야식에 저장돼 계속 영향을 준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러다 상사각의 깨달음으로 온다. 강 물에 빠져 헤어나려 하는데 헤어나오지 못한다. 강물 자체가 꿈인 줄 알아버린다. 그래서 그 물에 빠져있어도 헤어나려 하지 않는다. 꿈이기 때문에 하고 알고 물 속에 있어도 편안히 있다. 잠겨도 죽지 않는다는 것을 안다. 그 때는 벌써 탐진치만의악견 6가지가 꿈인 줄 안다. 그러나 아직까지 나라는 꿈 속에 남아 있다. 강 물에 빠진 것만 꿈인 줄 알았는데 그 자체가 꿈인 줄 아직 모른다. 서산대사의 三夢詩에 보면 주인이 객에게 객이 주인에게 꿈 얘기를 한다. 제 3자가 봤을 때 꿈 얘기하는 두 사람 다 꿈 속 사람들이다. 하지만 꿈 속에 있다고 지적한 제 3자도 사실은 꿈 속 인물이다.
아직 자의식의 꿈 속에 있다. 자의식의 4가지 꿈에서 벗어나야 한다. 꿈에서 벗어나 아! 이 강물도 꿈이구나. 내가 아직 꿈 속에 있구나 한다. 이렇게 발버둥 치다 마지막 구경각에 와 業相 轉相 現相의 꿈에서 깨어나는 것이다. 꿈에서 깨어나는 것이 바로 시각이다. 최초로 생긴 한 생각을 탁 깨뜨려 벗어나는 것이다. 온갖 고생을 하고 집으로 돌아와 이 게 꿈인 줄 알고 탁 깨어나 보았으나 침상에서 한 발자국도 물러나 있지 않았다. 이제까지 침상에서 꿈을 꾸고 있었다. 꿈 속에서는 여러 나라를 헤맸지만 꿈을 깨고 나니 평상에서 한 발자국도 벗어나지 않았다. 이 것이 구경각의 경지다.
전부 무명의 영향을 받아 진여가 더러운 모습을 보인 것이다. 이런 괴로움에서 벗어나려는 마음이 있으면 꿈에서 깨어난다. 각이란 미혹의 꿈에서 깨어난다는 뜻이다.
34강. 지운스님 시각의 4가지 모습으로 풀이함1<대승기신론> 강론 중에서
[출처] 474.시각의 4가지 모습으로 풀이함1|작성자 Inkf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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