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명의 뿌리를 찾아서 <하>
고대 히타이트 수도 하투샤
6㎞ 성벽에 싸인 고도 1000m 도시
종자 수백 t 쌓아두던 곳간의 흔적
인류문명 뒤흔든 제철기술도 발명
기원전 14세기경 조성된 하투샤는 첫눈에도 웅대했다. 3500여 년 전 아나톨리아(현재 터키) 반도를 호령했던 제국의 면모를 돌아보기에 모자람이 없었다. 평균 고도 1000m, 200만㎡에 달하는 구릉지대를 총연장 6㎞의 성벽으로 둘러쌌다. 10m 높이의 성벽 중간에 성문 5개를 냈고, 산비탈 암석지대에서 샘솟는 물을 급수로로 연결했다. 큼지막한 돌을 깎아 만든 저수조도 눈에 띈다. 최대 1만2000여 명이 살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하투샤는 히타이트의 위엄을 드러냈다. 주변국이 범접할 수 없도록 성채 크기에 집중했다. 도성(都城) 최정상에 들어선 거대 성곽이 대표적이다. 길이 250m, 높이 20m의 석벽을 피라미드처럼 쌓아 올렸다. 성밖 20㎞ 지점까지 이방인을 감시할 수 있다. 성채 아래에는 높이 3m, 길이 71m의 삼각 터널을 뚫어 통로로 사용했다. 샤흐너 단장은 “성벽은 3500년 전 건설된 모양 그대로다. 일부에선 방어용 기지로 판단하지만 그보다 왕국의 권위를 과시하는 종교적 상징물에 가깝다”고 주장했다. 성벽 위에는 ‘스핑크스의 문’이 있다. 원래 4개가 있었는데 두 개는 파괴됐고, 나머지 둘 중 1907년 초기 발굴 당시 독일로 넘어갔던 한 개가 2011년 현지로 돌아와 문화재 반환의 모범 사례로 꼽힌다.
히타이트인은 왜 수많은 신을 섬겼을까. 여기에 제국의 비밀이 숨어 있다. 흑해 연안에서 시작해 아나톨리아 반도를 점령한 하티족(히타이트 조상)은 토착민의 신앙과 풍속을 수용하며 영토를 넓혀갔다. 강인욱 경희대(고고학) 교수는 “히타이트는 관용과 동화정책으로 제국을 완성했다. 다른 지역의 문화를 흡수하는 다민족 국가의 원형을 보여준다”고 했다.
히타이트는 현재진행형이다. 샤흐너 단장은 “하투샤만 해도 50% 정도 발굴됐다”고 밝혔다. 풀어야 할 숙제가 많다는 뜻이다. 실제로 500년 넘게 번창했던 제국이 갑자기 멸망한 원인은 지금도 미스터리다. 뚜렷한 약탈이나 대화재 등의 흔적이 남아 있지 않다. 이집트와의 오랜 전쟁, 지중해 해적들의 침공, 내부 권력투쟁 등이 몰락 배경으로 꼽힌다. 전호태 울산대(고고학) 교수는 “히타이트는 여성권리 보장, 사형제도 폐지 등 현대 국가의 면모를 일찍부터 보여줬다”며 “우리도 동북아에 국한된 시야를 넓혀 인류 문명의 시원을 밝히는 작업에 동참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터키=글·사진 박정호 문화전문기자 jhlogos@joongnag.co.kr
[출처: 중앙일보] 스핑크스 문 들어서니, 3500년 전 철의 제국 위용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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