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250만 명, 미얀마 6만6000명.
2017년 두 나라를 방문한 한국인 숫자다. 베트남과 비교해서 거리도 비슷하고 근사한 바다와 산이 있는 데다 물가도 저렴한데, 우리는 미얀마를 잘 가지 않는다. 이유는 많을 테다. 아직 미얀마에는 저비용항공이 뜨지 않고, 베트남에 비해 관광 인프라도 열악하다. 오랜 군부 통치 때문일까. 국가 이미지도 친숙하지 않다. 10월 24~27일 미얀마의 세계적인 불교 성지 ‘바간’과 대표적인 고산 호수 ‘인레 호수’를 다녀왔다. 우리가 미얀마를 찾지 않는 건 순전히 ‘몰라서’라는 사실을 확인했다.
아세안의 유산① 미얀마 바간·인레
강남구 면적에 불교 유물 3822개
세계문화유산 등재 내년 내 결정
불탑에 올라 일출·일몰 감상하고
정글 헤매며 이름 모를 사원 구경
유네스코 생물권보전지역 인레호
호수 위에 뜬 밭에서 토마토 수확
미얀마의 첫인상은 혼돈, 그 자체였다. 바간공항에서 숙소로 향하던 밤, 운전석이 오른쪽에 있는 차가 우측통행을 하는 모습도 황당했는데 도로에는 운전석이 왼쪽에 있는 한국산 중고차도 버젓이 달리고 있었다. 물론 이방인만 현기증을 느꼈을 뿐, 미얀마 사람들에겐 자연스러운 일상일 터였다.
바간은 세계적인 불교 성지다. 1000년쯤 전 미얀마 중부 지역에 고대국가 바간이 위세를 떨쳤다. 당시 바간의 왕과 부자들은 불교 사원과 파고다(불탑)를 세우는 데 열을 올렸다. 현재까지 서울시 강남구 면적(42㎢)의 바간 고고학 구역에서 발견된 불교 유물만 3822개다. 불교가 들어온 1044년부터 왕조가 멸망한 1287년까지 이뤄진 역사다. 불교 유물이 전봇대보다 흔한 도시에서 바간 사람들은 살아간다. 불탑 앞에 좌판을 펼치고, 사원 안에 이불 깔고 낮잠을 잔다. 이 풍경 또한 이방인에겐 낯설었다.
오전 5시 30분. 담마야지카(Dhamma yazika) 파고다 옆의 이름 없는 작은 탑에 올랐다. 여행객 수십명과 함께 해 뜨길 기다렸다. 가없는 평원이 동쪽부터 타올랐다. 곧 열기구 십여 개가 달처럼 천천히 움직였다. 푸릇푸릇한 정글, 제각각인 사원과 불탑들, 허공에 뜬 열기구가 어우러진 장면은 압도적이었다. 세계에서 이토록 극적인 일출을 본 적 있던가. 바간 여행자에게 탑에 올라 일출을 감상하는 건 일종의 필수 코스다. 하나 지금은 아무 탑이나 오를 수 없다. 가이드 윈마의 설명이다.
“2016년 8월 지진이 발생한 뒤 아웅산 수치 국가자문역이 바간을 방문했어요. 그리고 아무 파고다에나 올라가 있는 여행객을 보고 ‘저건 아니다’고 했어요. 그때부터 일부 안전한 파고다만 개방하고 있습니다.”
바간의 불교 유물은 지진 때문에 풍상을 겪었다. 특히 1975년 대지진 때 많은 불탑이 훼손됐다. 이후 군부정권이 무턱대고 복원작업을 벌인 게 문제였다. 96년 미얀마 정부가 바간의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추진했지만, 유네스코가 단칼에 거절했다. ‘문화재 관리 상태가 미흡하고 복원 과정이 엉성하다’는 이유였다. 유네스코는 2019년 재심사 결과를 발표한다.
그럼에도, 바간의 사원과 불탑은 눈부시다. 여행자는 보통 10개 남짓한 대형 사원과 불탑을 둘러보는데, 금장식이 화려한 쉐지곤(Shwezigon) 파고다가 최우선 순위에 있다. 바간에 상좌부불교를 들여온 아노라타 왕(1044~1077)이 지었다. 스리랑카에서 부처의 치사리(치아 사리) 4개를 실은 흰 코끼리가 멈춰선 곳에 세웠다는 전설이 내려온다. 당시엔 민간신앙 ‘낫’이 강고해 사원 한편에 ‘낫 신’을 위한 사원을 지어 쉐지곤 사원을 지켜달라고 기도했단다.
아난다(Ananda) 사원은 건축미가 빼어나고 내부에 불상과 벽화가 잘 보존돼 있다. 높이 9m에 달하는 불상 4개는 모두 티크나무로 만들었는데 남쪽 불상의 표정이 신기하다. 멀리서 보면 미소 짓는 듯한데, 가까이 다가가면 근엄해 보인다.
마차를 타고 평원을 달리면서 이름 모를 사원을 둘러보는 재미도 남다르다. 불탑이건 사원이건 단 하나도 같은 디자인이 없다. 포악했던 당시 왕들은 불탑을 만들고 나면 건축가를 살해했다고 한다. 똑같이 생긴 탑이 있으면 안 되니까. 유물을 들여다볼수록 신앙 한편에 숨은 인간의 두려움과 악한 본성도 선명해졌다.
바간 동쪽 330㎞ 거리에는 드넓은 ‘인레(Inle)호수’가 있다. 해발 1200m가 넘는 봉우리들이 둘러싼 고원에 충주호의 두 배쯤(116㎢) 되는 호수가 넘실댄다. 열대 나라에 이렇게 맑고 시원한 호수가 있다는 사실도 놀라운데, 호숫가 사람들의 모습은 더 경이롭다.
미얀마 인구의 70%는 버마족이다. 하지만 여기엔 인타족을 비롯한 소수부족이 산다. 수상가옥에 사는 이들은 호수에서 고기를 잡고 농사도 짓는다. 2015년에는 유네스코 생물권보전지역으로, 지난 9월에는 람사르 습지로 지정됐다.
호수 북쪽 냥쉐(Nyangshwe)가 관문 도시다. 여기서 나룻배를 타고 호수 관광을 하거나 숙소로 이동한다. 관광객뿐 아니라 현지인도 배를 타고 다닌다. 나룻배 수십 척이 손님을 기다리는 풍경이 이탈리아 베네치아를 연상시킨다.
호수로 들어서면 낚시꾼을 마주친다. 대나무로 만든 어망을 들고 발로 노를 젓는 모습이 기막히다. 몇 해 전, 항공사 광고에도 등장했던 저들은 관광객이 사진을 찍으면 여지없이 다가와 손을 내민다. 돈을 내라는 뜻이다. 가이드 니조는 “60년대 댐이 생기면서 수위가 높아지고 어종이 바뀌어 지금은 대나무 어망을 거의 안 쓴다”며 “관광객을 상대하는 가짜 낚시꾼”이라고 말했다.
보트 투어에 참여하면 호수 주변 사원과 수공예품 상점을 순회한다. 가장 신기한 건 호수 위 농장이다. 인타족은 약 100년 전에 수경재배를 시작했다. 마땅한 농토가 없어서였다. 흙과 수초를 짓이겨 만든 밭이 호수에 떠 있다. 여기서 토마토·오이 등을 재배한다. 인레 호수에서 미얀마 토마토의 절반 이상이 난다. 허다한 불탑보다 척박한 자연과 부대끼며 사는 사람들 앞에서 더 숙연해졌다.
바간‧냥쉐(미얀마)=글·사진 최승표 기자 spcho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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