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능 대사는 임종에 앞서 특별히 십대 제자를 불렀습니다. 십대 제자 가운데 마지막으로 이름을 올린 이는 당시 29살인 신회 선사였습니다. 대사가 열 명의 제자를 따로 부른 것은 당신이 입적한 뒤에도 제자들이 사람들에게 돈교법을 올바르게 전할 수 있도록 설법의 핵심과 요령을 알려주기 위해서였습니다.
대사의 법문은 곧 삼과법문(三科法門)과 36대법(三十六對)입니다. 대사는 사람과 자연에서 일어나는 모든 현상을 각각 3과(三科)와 36가지 대법(對法)으로 분류했습니다.
대사께서 드디어 문인 법해(法海), 지성(志誠), 법달(法達), 지상(智常), 지통(志通), 지철(志徹), 지도(志道), 법진(法珍), 법여(法如), 신회(神會) 등을 불렀다. 대사께서 말씀하셨다.
“너희들 열 명의 제자들은 앞으로 가까이 오너라. 너희들은 다른 사람들과 같지 않아, 내가 세상을 떠난 뒤에 각각 한 곳의 어른이 될 것이다. 나는 너희들에게 사람들에게 법을 설하는 법을 가르쳐서 근본 종지를 잃지 않게 하겠다.
3과(三科)의 법문을 들고 36대(三十六對)를 활용하여, 공(空)에 들어가고 유(有)에 나아감에 곧 양변을 여의도록 하라. 모든 법을 설하되 성품과 모양(性相)을 떠나지 말라. 만약 사람들이 법을 묻거든, 상대적인 쌍으로 말을 하여 모두 법이 서로 상대적임을 깨닫게 하라. 가고 오는 것은 서로 원인이 된다. 마지막으로 두 가지 법을 다 없애면, 다시 오고 갈 곳이 없게 된다.”
- <돈황본 육조단경> 27. 대법(對法)
삼과(三科)의 법문은 음·계·입(陰界入) 등 세 가지입니다. 음(陰)은 오온(색수상행식)을 가리킵니다. 계(界)는 18경계(六塵육진 六門육문 六識육식)이며, 입(入)은 12입(六塵육진 六門육문)입니다.
5음(五陰)이란 색수상행식(色受想行識 물질·느낌·지각·형성·의식)이다. 18계(十八界)란 육진(六塵)·육문(六門)·육식(六識)이다. 12입(十二入)은 바깥의 6진(六塵)과 안의 6문(六門)이다. 6진(六塵)은 색성향미촉법(色聲香味觸法 형상·소리·냄새·맛·감촉·사실)이며, 6문(六門)은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 눈·귀·코·혀·몸·뜻)이다.
법의 성품(法性)이 안식(眼識)·이식(耳識)·비식(鼻識)·설식(舌識)·신식(身識)·의식(意識) 등 6식과 6문과 6진을 일으킨다. 자성은 만법을 포함하여 함장식(含藏識)이라고 한다. 생각을 하면 곧 식이 작용하여, 6식(六識)이 생겨 6문(六門)으로 나와 6진(六塵)을 본다. 이렇게 하여 3*6은 18이다. 자성이 삿되면 18계가 삿되게 일어나고, 자성이 올바르면 18계가 올바르게 일어난다. 악하게 쓰면 곧 중생이요, 선하게 쓰면 곧 부처이다.
- <단경> 27. 대법(對法)
삼과 법문은 사람의 인식 세계가 안(6입)과 밖(6문)과 중간(6식) 등 모두 18 경계가 서로 의지해서 일어나는 것을 밝히는 법문입니다. 이어 대사는 36대(三十六對)를 설명합니다. 대법(對法)은 짝을 지어 서로 의지하는 상대적인 법을 뜻합니다. 외부 자연의 물질적 현상에 다섯 가지의 짝이 있고, 언어로 표현하는 법문의 모양에 열두 가지 짝이 있으며, 마지막으로 자성에서 일어나는 현상에 열아홉 가지의 짝이 있으니, 모두 36가지 대법입니다.
외부 자연에서 일어나는 다섯 가지 상대법에는 하늘과 땅, 해와 달, 어둠과 밝음, 음과 양, 물과 불 등이 있습니다. 혜능은 음양과 건곤감리(乾坤坎離) 등 도가의 자연 철학을 인용하고 있습니다. 이어 언어로 표현하는 12가지 법의 모양(法相)은 곧 유위와 무위, 유색과 무색, 유상과 무상, 색과 공, 동과 정, 승과 속 등입니다. 마지막으로 자성에서 일어나는 19법에는 어리석음과 지혜로움(愚智), 정과 사(正邪), 생과 멸, 번뇌와 보리, 자비와 인색, 교만과 평등, 법신과 색신, 고요함과 어지러움(定亂) 등이 있습니다.
삼과(三科) 법문이 사람의 분별 인식을 18경계가 모여 일어나는 상대적인 현상으로 설명하는 것이라면, 36대법은 자연 현상과 경전 법문과 자성의 모든 작용 또한 모두 서로 짝으로 의지하는 상대적인 법임을 밝히는 법문입니다. 그러므로 삼과 법문과 36대법의 핵심은 사람들로 하여금 모든 법이 서로 의지하는 상대적인 법임을 깨달아 마침내 자성으로 돌아오게 하는데 있습니다.
자연현상과 불법의 교리를 천지(天地) 음양(陰陽) 생멸(生滅) 정사(正邪) 동정(動靜) 체용(體用) 등 이원론적인 상대법으로 정리한 것은 그 뜻이 깊습니다. 만물을 하늘과 땅, 해와 달, 음과 양 등으로 이해하는 것은 중국 민중들의 오랜 관념입니다. 이원론에 익숙한 사람은 어느 한 쪽에 치우치거나 머물지 않는 지혜를 자연스럽게 터득합니다. 사람들이 불교의 선(禪)에 쉽게 접근하도록 오랜 정서와 관념에 맞게 경전의 뜻을 정리한 것입니다. 대사께서 십대 제자들을 위해 3과 법문과 36대법을 설하는 까닭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마크 로쓰코(Mark Rothko 1903 - 1970) (무제)
대승의 반야부에서는 공(空)이 제일의제(第一義諦)입니다. 그러므로 오직 무아(無我)나 공만을 부처님의 가르침으로 인정하는 입장에서는 자성을 주장하는 선종의 가르침을 받아들이기 어렵습니다. 혜능 대사는 색과 공은 곧 상대적인 양변(兩邊)이니, 자성을 보기 위해서는 양변을 떠나라고 법문했습니다. 여기에 자성을 보는 것(見性)을 궁극의 깨달음으로 여기는 선불교(禪佛敎)만의 독특한 입장이 있습니다.
36대법을 잘 이해하여 활용하면, 일체의 경전에 통하고, 공(空)에 들어가고 상(相)에 나오는 것에 곧 양변을 떠난다. 어떻게 자성(自性)에서 대법을 활용하는가?
36대법으로 사람과 말을 하거나 문자를 쓸 때에는, 밖으로 모양(相)으로 나오더라도 모양을 떠나고, 안으로 공(空)으로 들어가더라도 공에서 떠나라. 공(空)에 집착하면 오직 무명만 기르고, 상(相)에 집착하면 오직 사견만 기를 뿐이다(著空即惟長無明 착공즉유장무명 著相即惟長邪見 착상즉유장사견).
- <단경> 27. 대법(對法)
만법이 공(空)하다는 생각에 머물면, 세상살이를 외면하거나 도피하기 쉽습니다. 이웃이 살아가는 현실을 외면하고, 마침내 함께 살아가는 가족들의 고통마저 외면합니다. 단절은 무명을 키웁니다. 이와 반대로 수행하는 가운데 특별한 경계(相)에 집착하는 사람은 갖가지 사견을 일으키기 쉽습니다. 상에 집착할수록 교만이 늘어납니다. 이 모두 자성을 보지 못한 수행자들의 미망입니다. 혜능 대사의 관점은 교리에 대한 논리적 정합(整合)을 따지는 것과 달리, 교리를 따라 수행하는 사람의 수행의식(修行意識)에 두고 있습니다. 대사는 사람의 심행에서 수행의식을 관찰했습니다.
삼과(三科)와 36대법(對法)은 보는 이에 따라 번거롭게 보일 수 있지만, 대사가 자세하게 설한 까닭은 모든 법이 상대적임을 꿰뚫어보아야 비로소 공(空)과 상(相)에서 벗어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대사는 언어 문자를 경시하는 당시의 선의 풍토를 비판했습니다.
법을 비방하면서, 곧 말하기를 '문자를 쓰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나 이미 문자를 쓰지 않는다고 말한다면, 사람이 말도 하지 말아야 옳을 것이다. 언어가 곧 문자이기 때문이다.
자성에 대해서 공(空)을 말하지만, 바른 말로 하면 본래의 성품은 공하지 않다. 스스로 어리석어 미혹에 떨어지는 것은 문자를 없애려고 하기 때문이다. 어둠은 스스로 어둡지 않으니, 밝음 때문에 어두운 것이다. 어둠이 스스로 어두운 것이 아니요 밝음이 있기 때문에 변화하여 어둠이 되니, 어둠 때문에 밝음이 나타난다. 오고 가는 것이 서로 원인이 되니, 36 가지 대법도 또한 이와 같다.
- <단경> 27. 대법(對法)
불립문자(不立文字)의 뜻을 잘못 이해하면, 도리어 돌이나 흙과 같이 생각이 없는 것을 수행이라고 여기는 폐단이 일어납니다. 대사는 단경 전체를 통해 반야의 관조(觀照)를 강조했습니다. 반야의 지혜가 없는 선(禪)은 단멸의 선입니다. 밝음과 어둠을 관찰하면 두 법이 서로 의지하여 존재하는 것을 알 수 있는 것과 같이, 36가지 대법이 모두 서로 의지하는 상대적인 법(對法)임을 보면, 분별을 그치고 본래의 자성으로 반본환원(返本還源)하게 됩니다. 법문을 끝내고 대사는 제자들에게 말했습니다.
대사께서 말씀하셨다.
“너희 열 명의 제자들은 이후로 법을 전하되, 서로가 이 한 권의 <단경>을 가르쳐 주어 우리 본래의 종지를 잃지 않도록 하라. <단경>을 이어받지 않으면 나의 종지가 아니다. 이제 단경을 얻었으니 대대로 세상에 전하도록 하라. <단경>을 만난 사람은 나를 만나 직접 가르침을 받은 것과 같다.”
열 명의 스님들은 대사의 가르침을 받고서 <단경>을 베껴 대대로 널리 전하였다. 이 단경을 얻은 사람은 반드시 자성을 볼 것이다(得者必當見性 득자필당견성).
- <단경> 27. 대법(對法)
(如雲 2019. 3. 15.)
[출처] 십대제자를 위한 대법(對法) |작성자 여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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