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덕암 일기 / 불교에 관한 궁금증 / 지아 20살
학창시절 가장 흥미를 느낀 과목이 법철학이었다. 교재도 없던 시절 그때는 온통 휴교령으로 4년을 수놓았으니 출석 자체가 의미가 없는 메아리 없는 소리였다. 교수들도 이름을 한 번 불러보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고 나오지 못하는 제자들 때문에 자괴감으로 차마 부르지 못했을 것이다. 지금 생각하면 열망/정으로 치장한 한 인간의 욕심 때문에 생긴 일이지만 현대사에 끼친 영향은 아직도 유령처럼 떠돌고 있다. 그 더러운 업을 자식들이 지고 있는 것으로 보아 有業報無作者라는 불가 無我論의 대명제에 대해 다시 더듬어볼 마음이 생기는 것은 나만의 심정이 아닐 것이다. 우리는 그런 맥락에서 딱히 같지는 않겠지만 ‘나는 무엇이며, 어디서 왔으며, 어디로 가는가‘는 명제에 부딪치게 된다. 달리 할 일이 없어 도서관에 다니며 흥미를 가졌던 문학에 대해 우연히 접할 기회가 생긴 덕분에 세 권의 시집을 냈으니 그것도 어릴 때부터의 인연이 끊어지지 않은 연유가 된다. 도서관에 다니면서 처음 접한 것은 다분히 의도적인 목적이 있었으니 역사에 관심을 가지면서 사마천의 ’사기열전‘이었고 다음에 천체물리학, 철학, 종교, 문학의 순으로 천천히 섭렵하기 시작해서 오늘에 이르렀다. 그런 중에 어쩌다 철학 강의를 하게 되고 철학에 대해 공부하기 시작하며 흥미를 느꼈다. 최근부터는 철학을 전문적으로 공부하고, 연구하는 교수들로부터 철학 강의를 듣기 시작했다. 그러나 도서관은 공공시설이므로 종교에 관한 강의는 거의 하지 않는다. 노장철학이나 공맹사상에 대해서는 자주 강좌를 개설한다. 그것도 잠시, 건강이 나빠져 먼 곳이거나 가기 불편한 곳은 피하게 됐다. 그러나 뒤늦게 생긴 지적호기심 덕분인지 그 동안 명상하며 느낀 현상 등에 관하여 직접 쓰고 싶어졌다. 그래서 다시 철학 사상을 더 깊게 공부했으니 이 책이 그 첫 작업의 산물이다. 또한 손녀가 태어나서 그가 20살에 쉽게 읽을 수 있는 책을 내기로 약속했으니 지켜야 한다. 이것이 그 첫 산물이라고 본다.
우리가 80년을 살면서 겪는 것보다 겪지 못하는 것이 훨씬 더 많듯이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것이 더 많다는 겸손의 마음을 놓지 않을 수 있다면 회한이 덜 할 것이며 번뇌 또한 줄일 수 있다. 嗚呼哀哉라! 죽을 때가 가까워져야 통한의 마음을 가질 수 있으니 그것 또한 삶의 한 조각이 아니겠는가.
지난 것은 모두 역사가 된다. 글로 남기거나 말로 남겨 후세에 전할 때 과연 ‘如實知見’, ‘있는 그대로’ 전달이 될까? 수많은 역사가들의 견해는 ‘아니다’고 한다. 역사는 시대적 상황과 기록자의 사견, 기억자의 오류, 소실 등으로 인해 잘못 전해지는 경우가 수없이 많다는 것을 알아야 하며 그런 상황을 감안하고 절대적이라고 믿으면 다시 오류를 범하는 것이 된다. 사람의 마음은 심찰나에 17번 또는 1초에 십만 팔천 번이나 변한다는 주장도 있다.
나는 원래 시쳇말로 원불교 모태신앙인이라고 보는 것이 정확하다. 영광에서 태어났고 당시 영광인 거의 모두가 그렇듯이 영광은 소태산 박중빈 대종사가 원불교를 일으킨 고장이다. 어머니가 하셨던 사업체의 상호가 원광이었으며 나의 이름은 定南으로, 선정의 定과 나무아미타불의 南이니 한눈에 봐도 불교식이다. 원불교는 어린 시절 목사의 아들과 친했던 나는 교회에 다녔다. 후에 그것을 알게 된 아버지는 당장 원불교 교당으로 데리고 가서 꼼짝없이 중고교 시절의 입시기간을 빼고 알아듣지도 못하고 흥미도 없는 2대 정산 종사의 책을 읽으며, 원불교 교당을 아버지와 함께 몇 년 다니면서 교무 선생님의 말씀을 들어야 했다. 거기서 받은 원불교 법명은 京星이었으나 한 번도 사용한/써먹은 적이 없을 만큼 관심은 없었다. 대학에 가서 접하게 된 불교는 오래 지속하지 못하고 공부와 직장에 다닌 관계로 멀어졌다. 기억하건데 그때 선문답집과 육조단경, 반야심경 등을 접했으나 지금 남아있는 것은 40년이 지난 반야심경 한 권 뿐이다. 어머님이 돌아가시면서 물려주신 손때가 묻은 원불교대전은 한참 후에 유품으로 간직하고 있을 뿐이며, 어머님이 생각나면 간혹 떠들어본다. 어머님은 할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꽤 많은 재산을 정리하면서 주변의 서운한 점을 들어주고 남은 것으로 양로원을 설립하고 운영하시다가 돌아가셨다. 유산을 받지 못한 것이 내게는 훗날 자립이라는 더 큰 유산을 받았음을 안 것은 한참 후의 일이다. 그런 것들을 잊고 살다가 먼 훗날이 되어서야 불연이 끊어지지 않았는지 후덕산 이인 원장님에게서 주로 유식론과 간화선, 퇴현 전재성 박사님께 초기 경전 등, 여운 김광하 선생님께 초기 경전을 공부하고 도반들을 대하는 자세를 배웠다. 다시 불교 공부를 하면서 불교는 붓다의 가르침에 지나지 않은가, 아니면 더 나아가 종교의 영역까지 들어와 있는가를 궁금해 하다가 내 생각을 정리하고자 하는 마음에 펜을 들었다. 그러나 아는 척하다가 목을 크게 다치면서 펜으로 쓸 수 없게 되었으며 자판을 두드리기 시작했으나 통증이 심해 포기했다가 ‘인생사 새옹지마’ 또는 孟子(맹자)는 고자장구(告子章句) 하편에서 大任是人(대임시인)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하늘은 한 사람에게 큰 임무를 내릴 때에 반드시 먼저 그의 마음[의지]를 시험하며, 몸[근골(筋骨)]을 힘들게 하고, 배를 곯게 하여 육신을 궁하게 하며, 온갖 유혹으로 그 행실에 혼란을 준다. 그러므로 마음이 움직이고 참을성이 생겨나며, 이로운 점이 많아져 못할 일이 없게 된다.”-(天將降大任於是人也 心先苦其心志 勞其筋骨 餓其體膚 窮乏其身 行拂亂其所爲 所以動心忍性 增益其所不能)-는 맹자 '고자편'의 교훈을 좌우명으로 삼아 잊지 않고 간직하며, 언제까지 통증과 친구삼아 싸우며 살 수는 없다는 소명의식이 들면서 다시 시작한다. 다행히 꾸띠(개인 수행처) 혜덕암에서 지난겨울을 지내면서 관련 서적을 읽으면서 생각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당연히 부족함을 느끼지만 그렇다고 중단할 수는 없다. 이미 늙어버려 무소유를 지향하는 입장에서 욕심을 부린 들 쓸모가 없어진 나의 존재이유가 된다고 본다. 철저하게 과학적 관점에서 서술하되 부족하면 도반들의 의견을 경청하고 더 배우고 익히며, 보충하고 수정하며 죽을 때까지 할 수 있는 작업이니 어찌 즐겁지 않겠는가. 과학이란 반드시 실험기구를 통한 과정을 통해 증명하지 않으면 인정하지 않고 훗날 증명이 될 것을 예정하고 가설이라 이름을 붙인다. 과학의 본질은 변화다. 다행히 불가의 입장도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는 입장을 변함없이 주장하므로 두 분야는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것에 동질성을 갖고 있다는 것에 다름 아니다/다름이 없다고 본다. 오늘날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이 블랙홀 사진을 찍으면서 100년 만에 증명이 됐다고 떠들고 있지만 더 진화한 실험기구를 통해 다른 이론이 나오면 뉴턴의 법칙이 아인슈타인에 의하여 일부 부정이 되듯이 같은 운명을 맞이할 수 있다. 아인슈타인은 우주를 대상으로 하는 거시적 방향이지만 양자역학은 물질은 무엇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어떤 운동법칙으로 변동하는가를 연구하는 분야다. 현재는 17개의 쿼크/소립자가 최소단위이지만 앞으로 더 정밀한 실험기구가 진화하면 현재의 이론은 쓰레기통으로 들어가야 한다.
나의 정치적 성향은 사회민주주의, 가장 나쁜 일상은 아침에 일어나 정치에 관심 점심에도, 저녁에는 거품을 물고 토론하는 짓, 원래 토론이란 사용하는 용어의 개념 차이로 결론을 낸다는 것은 어렵다. 법대는 정치학에 정치학과는 헌법에 관심을 가질 수 있었다. 그때 교수의 조심스런 언어 구사는 지금도 마음 아프다. 한때는 어느 정치가의 정치 입문 계기를 세상을 바꾸는 것은 그래도 적극적 행태인 정치로 보는 입장이므로 거기로 뛰어든다고 해서 거기에 동감했지만 혹시는 역시가 됐다.
내 문학적 소양은 광주고 앞에 살았던 큰매형의 서가에서 이루어진 것으로 보는 것이 맞다. 내 키보다 높은 서가를 장식한 그분의 책을 틈날 때마다 읽은 것으로 시작한다. 서울대를 합격하고도 가난한데다 부양할 가족이 너무 많아 다니지 못하고, 돈을 벌어 고려대를 합격하고도 다니지 못한 그분은 책으로 한을 풀어간 것 같다. 어려운 현실에도 지적 호기심으로 그 많은 책들을 마련하고도 학업을 계속하지 못하고 세무공무원으로 재직한 그분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한다. 그것으로 소양을 싾은 나와 조카들도 당장은 그것을 이루지 못한다. 다만 셋째 여자 조카는 드라마 작가는 했지만 성공하지는 못하고 선생님으로 재직하고 있다. 남편과 그는 민주투사가 되어 오늘도 평범한 생활인이 되어 지낸다. 조카사위는 군부 독재정부에 찍혀 제대로 직장생활을 하지 못했다. 가족 모두 안타까운 일이다.
우리의 기억도 거짓말을 한다. 다만 방식에 따라 수동태, 중동태, 능동태로 분류할 수 있다.
좋은 소리도 한두 번이면 족한데 여러 번 이야기하는 것은 차마 통증을 거론하는 것은 민망하다. 그러나 잠을 청할 때 가장 좋은 법문은 지휴 스님의 ‘깨달음은 없다’에 점수를 준다. 오온은 내가 없다는 주장인데 그러므로 자아는 없다는 주장에 동의하므로 지적 갈등이 없다는 의미에 다름 아니다.
어쩌다 밤중에 깨어보면 소적 울음소리 여전하고 산짐승 우짖는 소리 변함없이 들린다.
혜민 스님의 ‘참나’에 대하여 아트만 사상이라는 무아론자인 포항공대 수학 교수 강병균 교수의 소리는 내게 온 산을 흔드는 호랑이 울음소리로 들린다. 의문이 깨지 않았다는 은유적 상징이다. 성철 스님의 대한 돈오돈수에 대해 사기꾼 같다는 소리에 “에이”하고 반발하는 도반의 소리는 내게 다시 생각하라는 의미로 들린다. 나름의 수행방식이 다르고, 수행방식이 다르다고 해서 서운할 것도 없다.
1.나는 무엇이며, 어디서 왔고, 어디로 가는가-붓다의 10無記 또는 14無記
1.불교는 철학인가 종교인가 과학인가, 아니면 그 역할은 무엇인가-종교사 참조. 불교 Buddhsim은 300년 전 서양에서 붙인 용어다. 불교에 ‘교’가 들어간다고 종교로 보는 관점이 있으나 나는 붓다의 가르침이라고 간주 및 분류하는 것이 옳다고 본다.
2.소승이론과 대승이론의 차이
3.교종과 선종의 입장 차이/선종인가 교종인가
4.불교 무아론은 모두가 승복하는가 - 불교의 무아론 참조
4-1.혜민 스님의 ‘참나’와 강병균 교수의 무아론에 관한 견해
4-2.한자경 교수의 무아론과 업보에 관한 견해
4-3.불가는 죽으면 色受想行識오온이 해체되면서 무엇이 되는가
5.불교설화에 관한 접근과 개인적 의견
6.간화선은 불교의 영역인가, 신비주의인가 철학인가
7.선시, 즉 선문답의 방식 - 선문답은 왜 동문서답인가/
8.깨달음이란 무엇인가, 차원인가, 단계인가, 방향인가
8-1.뇌과학자 입장에서 본 깨달음 - 뇌작용의 작난? 고장, 오작동?
9.초기 불교에서 현대불교가 얼마나 변했는가
9-1.북방불교와 남방불교 티베트 불교의 차이 - 임제종인가, 조동종인가, 남방불교인가, 티베트불교인가
10.윤회론에 대한 의견/무엇이 윤회하는가
11.유식론의 인간의 본성에 관한 견해와 이기심
12.종교가 세상을 바꿀 수 있는가
12-1.인공지능을 어디까지 발전할 것이며 이기심을 이타적 호혜심으로 바꿀 수 있을 까
13.개인의 명상법-중도 명상, 사무량심 명상, 공 명상, 연기 명상, 간화선 명상, 호흡 명상
13-1.남방불교의 소의경전인 청정도론의 명상법 소개
13-2.북방불교의 오정심관, 사념처/신수심법 명상
13-3.티베트불교의 명상법 - 자애명상
14.불교와 힌두교/베다 사상의 차이
15.마음속 종교를 만들어 믿어야 할까/신앙생화를 해야 할까
16.잘못 알고 있는 불교 이론
17.공사상에 관한 이해
18.여래장 사상에 관한 이해
19.수행의 방법 및 깨달음의 단계는 존재하는가
20.돈점의 옳고 그름
21.서양철학과 동양철학의 차이
22.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 무상 · 고 · 무아 삼법인
23.붓다의 수행법
24.중국으로 간 승려들
25.혜초의 왕오천축국전
26.붓다 법통의 문제점은 없는가
26.붓다의 오리지널 사운드
27.붓다의 설교 목적
28.우주의 기원과 팽창의 한계, 과연 창조론이냐, 진화론이냐
29.옛 사람들은 왜 목숨을 걸고 구도의 길을 택했을까, 먼 길 인도를 향했을까
30.삼천 배와 돈오돈수를 고집한 성철의 태도는 옳았는가
31.불가, 도가/노장, 유가 사상과의 상관관계
31-1.선불교가 중국에서 꽃을 피우면서 도가, 유가(주자학/성리학, 양명학/심리학)와 서로 영향을 미치면서 격의불교로 불리게 된 까닭 - 불교사 100장면 참조
32.티베트불교에 관하여 우리가 오해하고 있는 사실
33.종교 또는 철학도 생물도 과학처럼 진화해야 할 당위성이 있다
34.유일신교의 문제점-제사장
35.신의 기원과 탄생의 필요성
36.한국불교의 혁신
37.서양철학과의 접목
38.수행의 목적의 시작은 사무량심을 키우는 것이며 마지막도 같다
39.출가자와 재가자의 생활지침으로 팔정도와 육바라밀 또는 십바라밀로 충분한가
40.유체이탈은 신비적 현상인가 뇌과학자들이 말하는 뇌의 자극적 현상인가
41.시비의 이중성 또는 다의성/다의적 모순
41-1.시비의 모순 및 해결책으로서의 중도
42.기억도 거짓말을 한다. 다만 방식에 따라 수동태, 중동태, 능동태로 분류할 수 있다.
43.붓다는 왕자였는가, 아니면 오늘날의 공화제와 비슷한 석가족의 족장의 장자였을 뿐인가? - 도올과 붓다 이야기 참조
44.인도불교가 인도에서 쇠퇴한 원인
45,우리는 연기론에 대래 얼마나 아는가
46.우리는 중도에 대해 얼마나 아는가
47.우리는 여래상 사상을 얼마나 아는가
48.붓다는 왜 아뜨만, 즉 범아일치의 베다 사상을 배척하고 부정했는가
49.선불교의 유래
50.원효가 이해한 대승기신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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