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산에 다시 오릅니다(詩山會 제367회 산행)
열매 떨어지는 소리는 지상의 악기소리다 - 이기철(1943~)
열매 떨어지는 소리는 지상의 악기 소리다
설핏 돌아보는 가을의 낯이 취객처럼 붉다
몸을 숨긴 벌레 울음이 풀숲 뒤에서 대패질 소릴 낸다
모본단 옷으로 갈아입고 바쁘게 지나가는 햇살
그늘 속으로 발을 굴리며 떨어지는
열매는 실로폰 소리를 낸다
나무가 이태 동안 온 힘을 내어 맺은 열매가 툭 떨어졌다. 소나무가 솔방울을 제대로 맺으려면 두 해가 걸린다. 송화 꽃가루받이 이룬 뒤에 비바람 눈보라를 두 번이나 맞아야 알알이 솔씨가 여문다. 잘 여문 솔방울이 대지의 품에 편안히 안겼다. 바람이든 사람이든 새 보금자리로 솔씨를 옮겨 갈 차례다. 새 생명을 준비한 소나무가 이룬 노동의 수고는 그래야 마무리된다. 열매 떨어지는 소리가 늦은 가을의 교향악처럼 울리는 건 열매 안에 담긴 생명 때문이다. 솔방울 내려앉은 길섶 위로 드리운 땅거미의 붉은 표정 따라 생명의 노래가 잔잔히 흐른다. 이제 모든 나무들이 소리 없이 새 생명을 잉태해야 할 겨울이다.
1. 일시 : 2019년 8월 10일(토) 10:30
2. 장소 : 전철 3호선 구파발역 2번 출구
3. 코스 : 구파발역 – 진관근린공원 – 진관사 입구(은평 한옥마을) – 삼천사 – 산천사 계곡 – 삼천사 – 진관사 입구(은평 한옥마을)
4. 참석자(14명) : 김종화, 고갑무, 기세환, 김진오, 박형채, 염재홍, 임삼환, 이경식, 이원무, 임용복, 조문형, 홍황표, 한양기, 김일화.(뒤풀이 참석)
말복 하루 전 수은주는 최고 섭씨
37도를 기록할 거라고 TV 기상 캐스터가 전해준다. 특히, 노약자는 햇볕을 피하고 충분한 물을 섭취할 것을 강조한다. 마음을 단단히 하고 마지막주 참석이 어려운 관계로 자청 산행기자를 지원했으나 은근히 부담스럽다. 찜통 더위속에서도 약속 시간에 늦지 않으려고 발걸음을 재촉하다 보니 순식간에 온 몸이 땀으로 가득하다. 그래도 전철 안은 무주구천동 계곡처럼 시원하다. 카톡을 하면서 1시간을 보낸 후 구파발역에 도착하니 고 총장을 비롯한 산우들이 반갑게 맞이한다. 구파발역 주변을 살펴보니 은평뉴타운 건설로 대규모 아파트가 자리를 잡으면서 대규모 빌딩 숲이 꽉 들어차 상전벽해라는 비유가 어울린 게 아닐까? 오늘도 30여도의 무더운 날씨에도 12명의 산우가 약속 시간에 맞춰 서로 인사를 나누며 삼천사 계곡으로 출발하는 모습이 건강하고 멋져 보인다.
진관 근린공원의 숲길은 그늘이 많고 군데군데 쉼터가 있어 등산하기에는 좋았다. 그래도 한걸음 움직일 때마다 땀방울이 주르륵 떨어진다. 30여분 지난 후 누가 휴식을 제안하지도 않았는데 너도나도 준비해 간 달걀, 주스, 젤리 과자 등 분배를 하는데 그 중 황표 산우가 준 찐 달걀이 구수하면서 별미였고, 준비해 온 산우에게 다시 한 번 고맙다고 전하고 싶다. 진관 근린공원을 지나 은평 한옥마을에 도착하였다. 진관사 입구 안내 표시가 되어 있다.
최근에 TV에 여러 번 방영된 백초월 스님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니 지금의 한일관계에 마음이 미치면 왜 그렇게 일본이 미워질까. 만해 한용운 선생의 독립운동 이야기는 누구나 너무 잘 아는 이야기이고 기록이 남아있어 감옥에서 찍은 그 결기 서린 사진만 봐도 내가 독립운동가가 된 기분이 들었는데 만해가 투옥되고 감옥에서 나온 뒤로는 너무 감시가 심해 행동에 제약이 너무 심했다. 그후를 이은 스님인 진관사 백초월 스님은 결국 해방을 보지 못하고 감옥에서 해방을 1년 앞두고 청주교도소에서 고문으로 돌아가셨다니 안타깝기 이를 데 없다. 칠성각 단 밑에서 발견됐는데, 일장기 위에 덫대서 그린 태극기 안에 넣은 단재 신채호의 창간신문 신대한과 김구 주석이 발행한 독립신문을 보면 그 스님의 마음을 품을 수가 있다. 더구나 독지가가 마련한 청주의 묘지도 6.25한국전쟁으로 흔적이 사라졌다니 그것은 그분의 뜻이었다고 생각한다. 한 곳에 머물러 있을 것이 아니라 혼이나마 한반도를 넘어 만주까지 넘나들며, 우리를 지켜주시리라 믿어본다. 두 번의 왜란을 포함해 5000번을 노략질∙분탕질을 했다니 언제 그것을 갚아야 하나. 업보가 있다면 과보를 받을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여러 기사를 종합해보니 5년이면 극일을 하고 한민족의 저력을 보여줄 희망이 보인다. 독립운동의 심정으로 모두 분발하자.
몇 년 전에는 한두 채 한옥을 짓고 있었는데 넓은 지역에 북한산을 병풍삼아 한옥 마을로 자리 잡고 있다. 은평 한옥 마을은 북촌, 서촌에 이어 서울에서 세 번째로 큰 한옥마을이란다. 서울시에서 2008년 한옥 선언을 하며 한옥 보급을 확대한다고 발표한 후 2011년 은평뉴타운 내 3만 평방미터 부지에 분양하여 현재 156필지 모두 입주해 있거나 입주 중에 있으며 은평역사 한옥박물관도 갖추고 있고 카페도 있고 해서 데이트하기에도 좋은 곳이다.
독립운동의 얼이 서린 진관사 입구를 지나 삼천사 입구 도로를 따라 올라가니 계곡은 물소리와 함께 남녀노소 삼삼오오 왁자지껄하다. 일기예보처럼 숨이 턱 막히는 무척 더운 날씨이다. 계곡을 따라 꼬불꼬불한 도로를 따라 몇 분 올라가니 고층탑과 북한산이 어우러져 삼천사의 전경이 수려하다. 삼천사는 신라시대 원효가 흥국사 등과 함께 창건한 절이라 한다. 그 뒤 중창 및 중수의 역사는 전하지 않고 있으며, 6.25 때 불탄 뒤 1960년에 중건하였고, 현존하는 당우로는 대웅전과 선실, 요사체가 있다. 대웅전 위쪽 30m 지점에 보물 제 657호로 지정된 높이 3m의 석가여래입상이 있는데 이 마애불은 통일신라시대 작품으로 추정되어 양각과 음각을 함께 섞어 조각하여 선을 잘 살린 매우 우수한 작품이며 오래된 큰 석조와 고려시대 이영간이 쓴 비영이 있다. 삼천사를 지나 양옆으로 여름 향기 짙은 오솔길을 따라 계곡 올라가니 옆 계곡에는 인산인해를 이뤄 끼어 들어갈 틈이 없다. 마지막 졸졸 바위틈에서 새어 나오는 물 옆에 자리를 잡고 있으니 온 몸이 땀으로 범벅이 되어 정신이 한순간 혼미해 진다.
두 전직 회장인 삼환의 죽순무침, 세환의 냉 캔맥주, 고총장의 와인 등 가지고 온 음식을 내놓으니 역시 푸짐하다. 삼환이가 와야 먹을 게 있다고 어느 산우가 한 마디 한다. 오늘의 산행시 강은교 시인의 사랑법을 낭송하였다.
강은교 - 사랑법
떠나고 싶은 자
떠나게 하고
잠들고 싶은 자
잠들게 하고
그리고도 남는 시간은
침묵할 것.
또는 꽃에 대하여
또는 하늘에 대하여
또는 무덤에 대하여
서둘지 말 것
침묵할 것
그대 살 속의
오래 전에 굳은 날개와
흐르지 않는 강물과
누워있는 누워있는 구름,
결코 잠깨지 않는 별을
쉽게 꿈꾸지 말고
쉽게 흐르지 말고
쉽게 꽃피지 말고
그러므로
실눈으로 볼 것
떠나고 싶은 자
홀로 떠나는 모습을
잠들고 싶은 자
홀로 잠드는 모습을
가장 큰 하늘은 언제나
그대 등 뒤에 있다.
세환 산우가 가져온 냉장 캔맥주를 한 모금 마시니 그렇게 시원할 수가 없다. 좁은 바위 틈에서 졸졸 솟아나오는 바위물에 두 발을 담그니 이 찜통더위에 땀을 흘리면서 피서를 위해 산행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지 않은가?
2시간 동안 흐르는 물에 몸을 씻고 담그니 땀이 저절로 식는다. 자리를 정리한 후 삼천사 경내를 둘러본 후 버스를 타고 가나안 농원 뒤풀이 장소에 도착하니 가까이 거주하는 김일화 산우가 반갑게 맞이한다. 내일이 말복이라 능이버섯 오리 백숙과 시원한 맥주와 막걸리를 푸짐히 먹으니 올 여름 더위가 모두 물러날 것만 같다. 일화 산우가 아들이 어려운 체육교사 발령을 받았다며 한턱을 내니 모든 산우들이 이구동성으로 축하를 한다. 다시 한 번 일화 산우에게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
사업을 하면서 느끼는 점은 쉬운 삶은 없다고 생각한다. 그런 이유로 가장 나쁜 일상은 아침에 일어나면 나오는 국회의원의 막말을 듣는 것으로 시작하게 된다는 것이다. 짜증나는 세상사에서 벗어나는 길은 철학이 좋다고 생각한다. 일석오조는 될 것이다. 잠시 책을 보고 읽었던 감회를 돌이켜본다. 철학공부를 하는 것이 10년 남은 여명을 정리하는 기간으로 정하고 공부에 열중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부쩍 든다. 철학적 작업을 '논리와 언어의 오류에서 발생하는 문제들을 해소하는 것'이라고 여기고 있다. 지혜는 오류와 실수를 줄이는 조건이므로 철학과 지혜는 관계가 있는 것이다.
모든 철학의 밑바닥에는 기본적으로 여섯 개의 질문이 존재한다.
1)나는 누구인가, 어디서 왔으며, 왜 왔는가, 현상계 및 인간과 나의 관계는 무엇인가?
2)내 생명의 근원은 무엇이며 현상계의 근원은 무엇인가?
3)의식의 중심과 세상 사물의 관계는 무엇인가?
4)현상계의 사물이 지니고 있는 이름과 형태의 성품은 무엇이며 그들은 인간 및 우주의식에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가?
5)육체가 살고 있는 동안 어떤 행위를 해야 하는가, 사후에도 삶은 지속되는가?
6)진리란 무엇인가, 어떻게 진리의 의문에 대한 올바른 대답에 도달할 수 있는가?
종교와 철학과 과학의 관계에서는 불가지론(不可知論)의 세 가지 질문에서 벗어날 수 없다.
1)우주의 기원은? 우주의 끝이 있는가?
2)보이지 않는 신과 영혼의 존재는? 존재한다면 미치는 영향은?
3)선과 악의 인과응보의 결과는?
시산회답게 시와 글을 씀에 있어 우리는 일상사적 이야기만을 늘어놓는다면 신변잡담으로 그칠 수 있다. 그러나 세상에 내 글을 내놓을 때는 세상과 인간에 대한 통찰을 빼놓으면 안 된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다. 그 신념에 대한 질문은 다음과 같다.
1)개인은 선한데 개인이 모여 형성한 사회는 왜 이기적으로 굴러가는지, 이유는?
2)종교는 많은데 사람들이 선해지지 않는 이유?
3)인류의 사상과 철학은 훌륭한데 개인의 생각은 어리석은지?
4)먹고 살만한데 개인의 인격은 그에 미치지 못하는지?
5)살면서 많은 감동을 받으나 왜 행동으로 이어지지 않는지?
나는 어디서 왔으며, 나는 누구(무엇)인가, 나는 어디로 가는가? 모두의 화두이고 대명제다.
'누구'와 '무엇'의 의미와 차이를 잘 새겨야 한다.
자주느끼는 것은
당신을 만든 신과 당신이 만든 신은 같습니까? 틀립니까?
힌트 : 만들어진 신 / 리처드 도킨스
세상의 모두가 잘 되기를.
옴 마니 반메 훔. 연꽃 속의 보석 같은 그대여.
나마스떼. 내 안의 신이 그대 안의 신에게 인사 드립니다.
항상 좋은 언어를 사용하며 잘 살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주위에 폐를 끼칠 염려도 없고, 쓸데 없이 남 얘기를 하다보면 자신도 은근히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정신의학자의 말이 생각납니다.
올 여름 중 가장 더운 날씨인 데도 많이 참석한 산우에게도 항상 건강과 행복을 빈다.
이 원 무 올림
3.오르는 산
다시 구름산을 가신다니 소개를 생략합니다. 부디 잘들 다녀오소서.
4.동반시
동반시는 도봉의 시집 제1집에 수록한 자작시 '정암 조광조의 귀양길'을 올린다. 요즘 부쩍 사법개혁이 열기가 뜨겁다. 도학정치에는 임금도 예외가 없다는 기치를 내세우며 기묘명현으로서 모든 선비들의 존경을 받았던 그분은 혼군 중종을 선도하기 위해 나라다운 나라, 임금다운 임금을 만들기 위해 결기 하나로 온몸을 불사른 분이다. 결국 간신들의 모함에 사약을 받았던 그분의 평전, 소설 등을 읽고 흠모하는 마음과 간신들에게 휘둘린 중종을 '마른 똥막대기'로 폄하한 시다. 그러므로 자랑스러운 후손 조문형 산우가 조상을 기리는 엄숙한 마음으로 낭송해야 한다. 도봉산에 가면 도봉서원이 있다. 그곳에 우암 송시열과 함께 모셨다. 정암 선생을 송시열 같은 당쟁정치의 우두머리와 함께 모신 것에 대해 개인적 불만이 크다. 훗날 두 분의 이야기는 할 기회가 있을 것이다.
정암靜庵 조광조의 귀양길 / 도봉 김정남
군자와 소인배가 다툰 끝
도道와 예禮는 한낱 공염불에 그치고
진보를 꿈꾸었다
보수에 꺾인 귀양길, 남도 천리 화순길
엄동에
짚신에 깔 신갈나무 잎 떨어져 없어도
명분은 무거웠으나 발걸음은 가벼웠다
운주사 와불臥佛 앞에 선 기개 적벽까지 울렸으나
기묘명현己卯名賢*들 지켜주지 못한
혼군昏君 향한 분노 하늘을 뚫는다
마침내
까마귀떼
하늬바람 타고 서쪽으로 날아가는 저녁 어스름
부자 끓인 약사발 들이켜고
뜨거운 방안으로 들어가며
남긴
미투리 한 켤레
*기묘명현 : 기묘사화는 조선 조 4대사화 중 하나로서, 연산군 때의 난정을 극복하고자 등장한 중종의 최대 급무는 유교질서의 재건을 통한 전반적 국가체제의 정비였다. 이러한 과제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중용된 이들이 바로 성리학을 자신들의 학문적 기반으로 하여 삼대의 이상정치를 실현하고자 했던 조광조(趙光祖) 를 비롯한 사림이었다. 이들은 대간과 홍문관을 장악하고 경연과 같은 언론활동을 통하여 기존의 보수세력을 견제하면서 급격한 개혁정치를 시도했다. 그러나 남곤(南袞)·심정(沈貞) 등 보수세력의 공격을 받아 실각하고 말았다. → 기묘사화
이들 기묘사림들에 대해서는 김정국(金正國)이 편찬한 〈기묘당적 己卯黨籍〉에 94명이 수록되어 있다. 또 김정(金淨)의 후손 김육(金堉)이 편찬한 〈기묘제현전 己卯諸賢傳〉에는 218명이 수록되어 있다. 대체로 중종대의 개혁정치를 주도한 조광조·김정국·김안국(金安國) 등 주로 김굉필(金宏弼)의 문인들이 주축을 이루고 있었다
2019. 8. 24. 詩를 사랑하는 산사람들의 詩山會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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