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2.소림사는 달마가 있던 곳이 아니다
북조의 효문제는 불타 선사를 존경하여 도읍을 옮길 때 佛陀 선사도 함께 낙양으로 향하였다. 도읍을 옮긴 2년 후 (太和 20년; 496)에 황실의 명령으로 少室山에 오직 불타 선사만을 위한 禪寺를 修造하였는데, 이 사찰은 少室山의 산림 중에 있기 때문에 ‘少林寺’라 불렀으며 그 소림사를 중심으로 習禪이 대대적으로 유행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胡適의 『보리달마고菩提達磨考』에서 “보리달마의 面壁 고사는 바로 이후 사람들이 소림사 불타의 고사를 달마의 고사로 혼동한 것이다.”라고 지적했듯이 사실상 소림사는 보리달마의 수행처가 아니었다. 이러한 고사의 혼동은 아마도 達磨-慧可계가 佛陀-僧稠계를 사상적으로 계승했음을 알리는 상징적 의미를 부여한 것이 아닐까 한다. 불타 선사의 법을 계승한 이가 바로 승조 선사로서 제2대 소림사의 2대 寺主를 맡았다고 하겠다.
-중국불교사상사/김진무 23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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